〈 12화 〉 던전 실습(3)
* * *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던전을 공략했다.
아까전에 수많은 개미들을 죽여서 그런지 개미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잘하게 몇마리씩 나왔다. 그렇게 개미들을 처리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눈 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빨간색 나무로 된 문에 금테가 둘러진 문은 세로 7m 가로 3m의 크기를 자랑했다. 던전을 공략한건 처음이지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저 문 뒤에 던전 보스가 있다고.
먼저 문을 열기전에 눈을 감고 내부를 감지했다. 문에 마법저항이 강해서 내부를 보기 어려웠지만, 조금 더 집중을 하니 가볍게 무시하고 탐지 할 수 있었다.
'역시 여왕개미가 있네.'
문 내부를 감지하니 과연 딱봐도 보스라고 할만한 거대한 개미가 있었다. 저게 보스 '여왕 개미'인가, 그리고 마치 여왕개미를 보호하듯 그 주변에는 여왕개미 만큼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중에 가장 큰 개미들이 줄지어 여왕개미를 보호하고 있었다. 아마 병정개미? 그런거 같다.
'어라..?'
좀더 자세히 감시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거대한 병정개미들이 마치 여왕개미의 앞을 포위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왕개미는 마치 칼처럼 생긴 거대한 앞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내리 찍을 것 같이.
그리고 여왕 개미가 찍어내리려 하는 무언가를 자세히 보니.
'사람..?'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딱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아마도 나와 같이 들어왔던 유망주 중에 한명이겠지. 체형을 보니 여자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파장이 익숙했다.
누구였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다가 떠오른 생각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레이나..!'
그 순간 나는 문을 발로 차며 단숨에 부서졌다.
콰앙
문이 부서지는 소음에 개미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이나!"
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레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개미들의 틈사이에서 보이는 레이나의 상처는 심각했다. 온몸에 생채기가 가득했고, 복부에는 거대한 자상이 길게 그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성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나는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다. 나에게 처음으로 호의를 보낸 존재였다. 나와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와 함께 놀아주었다. 그런 레이나가, 지금 내 앞에 쓰러져 있다. 커다란 상처를 받고서, 나는 개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의 감정에 반응하듯 그 어떤 때 보다 격렬하게 마력이 흩날렸다. 단숨에 해방된 마력이 내 의지에 따라 거대한 공동에 휘몰아친다. 주변의 공기가 떨리고 내 몸을 중심으로 칠흑같은, 빛조차 삼길 거 같은 완전무결한 어둠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콰아앙!
내가 땅을 박참과 동시에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지고 먼지가 흩날렸다. 개미들을 향해 도약한 내 몸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내 머리칼이 휘날리는 것을 느끼며 개미들의 얼굴이 코앞에 나타났다.
키에에엑!
개미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마치 물이 흐르듯 유려한 검격이 아가리를 들이 밀고 있는 개미를 스쳐지나갔다.
서걱
거대한 개미의 몸체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땅을 강하게 디뎠다. 그 상태로 허리를 크게 돌리며 오른쪽에서 달려든 개미의 머리통을 사선으로 베었다.
다시 앞에서 아가리를 들이 미는 개미를 향해 검은색의 작은 구를 밀어 넣었다. 개미의 몸에 검은색 마력 구가 들어 간것을 확인 하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터져라
내 말에 반응하여 개미의 몸체가 내부 부터 터져나갔다. 터져나간 잔해 사이로 개미들이 일제히 달려 들었다. 개미들이 공격하는 것에 맞춰 마력 베리어를 전개했다. 그 상태로 나선모양으로 교차하여 만들어진 베리어 사이에 불의 마나를 새겼다.
콰가가가각
개미들이 베리어를 갉아 먹으려는게 느껴졌다. 콰득 콰드득. 개미들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베리어를 갉아 먹었다.
그게 죽음이라는 것도 모른채.
개미들이 베리어를 거의 갉아 먹은게 느껴졌다. 그에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가 손을 펼치며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펼치고, 위에서 아래로 느릿하게 내리 그었다.
타올라라
내 의지에 반응한 마력이 개미를 태우는 지옥의 겁화가 되었다. 개미들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검은색 불기둥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재로 변한 개미들의 잔해가 흩날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내 눈과 여왕 개미가 눈을 마주쳤다. 여왕 개미는 내가 부하들을 모두 죽일 때 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여왕 개미의 동공이 좌우로 거세게 흔들리는게 느껴졌다. 여왕 개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미도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내가 감탄했다.
'그런데 왜 저렇게 가만히 있는거지?'
고개를 갸웃하고는 일단 레이나의 상처부터 치유해야한다.
나는 마력을 이용해 여왕 개미 앞에 쓰러진 레이나를 옮겨 안아 들었다.
"피..아나.."
"이제 괜찮아, 푹 쉬어."
내 말에 안심한듯 레이나가 그제서야 눈을 감았다. 나는 마나를 신성력으로 바꾸었다. 신성력은 본디 신을 믿는 마음에서 나오는 힘이지만, 나의 고유능력은 그 제한 조차 무시했다. 하기야 내가 누굴 믿겠는가? 내가 마왕인데.
내가 일으킨 따스한 신성력이 포근하게 레이나를 휘감았다.
[힐]
레이나를 휘감은 신성력이 하얀 빛을 내뿜으며 빛났다. 저렇게 밝게 빛나면 눈이 부셔야 정상인데 신성력은 눈이 부시지 않게 따스하고 밝게 빛났다. 신성력에 휘감긴 레이나의 몸이 빠르게 회복됐다.
온몸에 가득한 자상이 단숨에 아물고 레이나의 배에 새겨진 거대한 자상이 서서히 아물었다. 마침내 모든 상처가 회복된 레이나의 피가 잔뜩 묻은 찢어진 옷 사이로 말끔하게 아문 배가 보였다. 레이나의 배를 손가락으로 스윽 쓸어보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부드럽네..'
마력으로 조형한 침대에 레이나를 눕이고는 다시금 내 앞에 있는 여왕 개미를 바라 보았다. 여왕 개미는 아직도 가만히 있었다. 뭐 딱히 상관은 없겠지, 어차피 죽일 거니까. 묵빛의 검을 들고는 여왕 개미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여왕 개미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때 맑고 고운 미성이 들렸다.
마..마왕 전하?
응? 당황한 나는 미성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여왕 개미가 있었다.
'말을 했어..?'
"지금 너가 말한거야?"
네..네!
허.. 어이가 없었다. 말을 하는 여왕 개미라니? 강한 마물은 지능도 가지고 있는건가? 아니다.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여태까지 내가 만난 마물들은 얘기가 통하지 않았다. 이성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본능만을 가지고 행동하는 짐승 같은 존재. 그것이 마물이라는건데.. 그럼 얘는 뭐야..
"너는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거야? 아니, 어떻게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거야?"
저는 태어날 때 부터 지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음.. 이레귤러라고 해야 하나? 특이하게 저 혼자만 지능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역시 얘가 특이한거구나. 그 외에도 나는 여러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질문을 하고 여왕 개미가 대답했다. 여왕 개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원래 던전에 살고 있는 마물이 아니였단다. 마경의 깊숙한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던전으로 이동되고 행동이 제한되었다고 했다. 여왕 개미는 던전에서 자신의 의지에 간섭하는 강한 힘을 느꼈다고 했다. 던전에 들어오는 모든 생물을 죽이라는 강한 의지만이 머릿속에 새겨져, 이성이 지워지고 본능만이 남은 존재가 된것이다.
어떻게 정신을 차렸냐고 물으니 내가 자신 쪽으로 다가가자 간섭하는 힘이 점점 약해지고 마침내 모든 간섭이 풀렸다고 했다. 내가 마왕인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냥 보니까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단다.
'던전.. 던전은 도대체 뭐지?'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의문이 치솟았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갑자기 균열이 생겨 문이 열리고 그 문을 들어가면 마물이 나타난다. 매우 단순한 사실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의문을 느낄 수 있다. 던전은 갑자기 왜 생겨났는가? 왜 던전 안에 있는 마물들은 모두 어디서 나타난거지? 던전 내부에 있는 지형은 도대체 어느 곳이지? 왜 보스를 처치하면 던전이 공략된것일까?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여러가지 의문이 생겨나는게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게 신기할정도. 마치 생각이 제한된것처럼 말이다. 잠깐.. 제한? 그러고보니 여왕 개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던전에 관한 의문이 떠올랐다. 제한.. 제한이라.. 혹시 내가 여왕 개미의 말을 들음으로써 그동안 제한되어있던 정보가 풀려난게 아닐까? 어쩌면 던전에 의문을 느끼지 못한 이유가 생각이 제한 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던전이 만들어진 이유. 그리고 그것에 간섭하는 초월적인 존재라.. 도대체 던전은 무슨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지금으로써는 알 방법이 없었기에 의문을 뒤로하고 여왕 개미를 바라보았다.
'이걸 어떡하지..'
여왕 개미가 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덕분에 여러가지 비밀도 알게 되었는데 굳이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던전을 나가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는데.. 으음..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것일까? 여왕 개미가 다급히 말했다.
굳이 저를 죽이지 않으셔도, 제가 마왕님께 복종하면 던전을 공략 할 수 있어요!
"응? 그래? 너는 어떻게 알았어?"
음.. 그냥 알게 되더라구요.
"그러면 어떻게 복종할건데?"
그 말에 거대한 여왕개미의 육신이 찬란힌 빛으로 휘감겼다. 빛 속으로 보이는 여왕 개미의 형체가 점점 줄어드는게 느껴졌다. 마침내 빛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허리 춤에서 찰랑거리는 칠흑같은 머리칼과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색의 눈을 가진 미녀였다. 키도 크고 허리도 가느다랗고 특히 여왕 개미라 그런지 흉부가 매우 폭력적이였다.
크흠. 헛기침하며 그녀의 폭력적인 흉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미소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에 서고는 한 쪽 무릎을 꿇고 내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던전 '개미의 굴'의 보스 밀리나가 마왕 전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띠링!
[보스의 복종을 맹세 받았습니다!]
[히든 루트, '보스를 복종시켜라'가 클리어 되셨습니다.]
[던전이 공략 되었습니다.]
던전이 공략되고 눈 앞에 푸른색 문이 열렸다. 나는 눈앞의 여왕 개미, 아니, 이제 밀리아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몰래 나올거야?"
"후후, 저 매우 강하다고요?"
그말과 동시에 밀리아의 몸이 투명해졌다. 나 조차도 방심하고 있으면 모를 정도로 정교한 은신이였다.
"좋아, 그럼 가자"
나는 레이나를 안아들고는 밀리아와 함께 던전에서 빠져 나갔다.
모두 나가고 텅빈 던전의 공동 그곳에 한가지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당신을 지켜봅니다.]
***
레이나는 거대한 공동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서서히 어둠에 적응한 눈이 시야에 비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공동에 여러개의 굴이 뚫려 있었고 그 굴에는 끝없는 어둠만이 보였다.레이나는 생각했다.
'던전에 들어왔구나.'
무슨 던전인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축축한 흙 천장에 달린 종유석 등등. 레이나는 여기가 동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면 무슨 마물이 나오는거지?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니 저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사각
레이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끝없는 어둠속 거대한 개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레이나는 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을 전개했다.
[파이어 볼]
기초적인 마법, 마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초적이고 쉬운 마법이다. 역시 기초적인 마법이기도 하고 시전하기도 쉽다보니 파이어 볼의 위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딱 축구공모양의 불덩이. 그게 파이어 볼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게 레이나라면 고유능력이 불에 관련된 레이나라면 달랐다.
레이나의 주변으로 거대한 불덩이 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불로 인해 생겨난 빛에서 끝없이 보이는 개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저히 어느정도인지 가늠조차 안되는 개미들, 그 개미들을 향해 레이나가 손짓했다. 그러자 레이나의 의지를 받아들인 듯 레이나 주변을 떠오르고 있던 거대한 불덩이들이 개미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쾅. 콰과광
거대한 굉음이 일어나며 폭발이 일어난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개미들이 불에 순식간에 타오르고 몸 마디마디가 터져나가며 사방에 흩뿌려졌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개미들이 재가 되었지만 아직 그 뒤로 끝없이 개미가 몰려왔다. 레이나는 다시 마력을 일으키며 마법을 끝없이 전개했다.
[파이어 볼트]
[파이어 볼]
[파이어 웨이브]
사방에 불덩이들이 날라다니고, 폭발하고, 거대한 불의 파도가 개미를 덮친다. 끝없이 몰려가는 개미들도 차츰차츰 사라지고 점점 잿더미가 늘어간다. 마침내 레이나가 시전한 파이어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개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잿더미만 흩날릴뿐.
"하아, 하아."
갑작스레 밀려오는 탈진감에 무릎이 꿇렸다. 단시간에 너무나 많은 마나를 쓰니 마나가 한계에 달한거 같다. 레이나는 자리에 앉으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사각
그때 갑작스레 소리가 들렸다. 그에 화들짝 놀란 레이나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 레이나의 눈 앞에 아까보다도 더 거대한 개미들이 눈에 보였다.
"망할.."
이미 거의 바닥을 드러낸 마력을 끌어올려 최대한 저항해보지만, 역시 역부족이였다. 끝없이 몰려드는 거대한 개미에 몸에 자잘한 상처가 나고 마침내 배가 길게 찢어지며 레이나가 쓰러졌다.
쓰러진 레이나를 거대한 개미들이 들쳐업고는 어딘가로 이동했다. 앞이 보이질 않는 끝없는 어둠속에 강제로 끌려가는 레이나의 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레이나는 아직 죽기 싫었다. 이렇게 죽으려고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게 아니였다. 끝 없는 노력 끝에 결말이 이런 허무한 죽음이라니, 레이나는 살고 싶었다.
얼마나 끌려갔을까? 마침내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그 어떤 개미들 보다 거대한 개미가 눈에 보였다. 딱 봐도 보스처럼 생겼다. 레이나의 몸이 여왕 개미의 앞에 던져졌다. 거대하고 섬뜩한 여왕 개미의 눈에 레이나는 의지를 잃었다.
천천히. 여왕 개미의 앞다리가 올라갔다. 거대한 낫 처럼 생긴 앞다리가 올라 갈 수록 레이나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저 앞다리가 나를 꿰뚫겠지, 고통스러울까?'
레이나는 체념했다. 항거할 수 없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저 거대한 앞다리가 나를 향해 쇄도 할것이다. 온몸이 다쳐 움직일 수 조차없는, 나는 저 거대한 앞다리에 속수무책으로 몸이 뚫리겠지. 그리고 처참히 죽어갈거야. 여태까지 쌓아올렸던 나의 인생이 철저히 남에게 유린당한다.
마침내 앞다리가 들어올리는 것을 멈췄다. 레이나는 앞으로 느껴질 죽음과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콰앙
거대한 굉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문이 부서졌다.
"레이나!"
굉음이 들린 곳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묵빛의 검을 들고있는 칠흑같은 머리칼과 아름다운 루비 같이 붉은 눈을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감탄이 나올정도로 예쁜 미소녀가 보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에 레이나의 눈에 희망이 깃들었다.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피아나가 날 구해줄거라는 희망이. 마음 깊은곳에서 치솟아 올랐다.
피아나는 매우 강했다. 순식간에 개미들의 전열에 뛰어들더니 검으로 베어가르고, 마법으로 터트렸다. 어느새 여왕 개미만 남기고 모든 개미들을 처치한 피아나가 마력으로 나를 살포시 들어 품에 안았다.
고개를 올려 피아나를 바라보니 피아나가 생긋 미소 지었다.
"피..아나.."
"이제 괜찮아, 푹 쉬어."
피아나의 말에 안심이 되며 급격한 피로감이 몸을 스쳐지나갔다.
'반칙이잖아.. 저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백마탄 왕자님 처럼 구해주는 건..'
눈을 감기전 마지막으로 바라본 피아나의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