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전학생
* * *
던전에 생긴 통로를 레이나를 안아들고, 은신한 밀리나와 함께 나왔다. 던전에 나오자 어두운 동굴과 대비되는 따스한 햇살이 내 눈을 비춰, 그 빛이 눈부셔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차례차례 던전에서 생도들이 나왔다. 그들은 나중에 들어보니 우연히 마주쳐 개미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던전이 공략 되었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던전을 공략하게 만들었다. 다시 한번 사과하지."
케인이 던전을 무사히 빠져나온 우리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괜찮으니까, 레이나를 먼저 보건실에 데려다 놓을게요."
나는 앞서서 말했다. 그에 케인은 내게 안겨있는 레이나를 한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먼저 가거라. 뒤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네, 감사합니다."
나는 케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보건실로 향했다. 보건실은 아카데미 내부에서 상처를 치료하거나 휴식을 할 수 있는 시설인데, 이 아카데미의 보건실은 어지간한 병원 못지 않다. 나는 보건실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자 먼저 하얀 침대와 하얀 이불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가지 약병, 체력 회복 포션, 마나 회복 포션 등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마나 회복 포션은 왜 있는 거지? 보건실에 맞지 않는 물건에 고개를 갸웃하니 보건 선생님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갈색 머리칼에 푸르고 맑은 눈을 가진 선생님이였다.
"무슨 일 이니?"
보건 선생님은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시더니 상황을 파악하신거 같았다. 보건 선생님은 읽고 있던 책의 페이지에 책갈피를 끼워 살포시 덮고는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침대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여기에 눕히렴."
보건 선생님의 말을 따라 레이나를 침대에 눕혔다. 보건 선생님은 레이나의 배에 손을 올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을 감은 보건 선생님의 손에서 신성력이 느껴졌다. 따스한 신성력의 빛이 레이나의 몸 곳곳에 퍼졌다. 그 신성력은 과연 보건 선생님의 외모처럼 자애롭고 따스한 느낌의 신성력이였다. 보건 선생님의 신성력이 거둬지고 보건 선생님의 감겨져 있던 눈이 살포시 떠졌따.
"딱히 부상은 없고, 정신이 지쳐 쓰러진거야. 조금 쉬다 보면 나을거야."
"하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괜찮아, 이게 내 일인걸."
다행히 레이나는 딱히 부상이 없었다. 마나를 신성력으로 바꾼건 처음이여서 혹시 내가 회복시키는 와중에 실수를 저질렀나, 불안했는데 다행히 잘 치료한거 같다. 그나저나 보건 선생님의 이름은 뭐지? 계속 보건 선생님이라고 부를 순 없으니 말이다. 나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선생님, 이름이 무엇인가요?"
"응? 아 세리나 라고 해."
세리나.. 세리나. 이름을 몇번 속에서 곱씹었다. 과연 보건 선생님, 아니 세리나 선생님의 외모를 닮아서 그런지 이름도 무척 예뻤다. 혼자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세리나가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니?"
"저는 피아나라고 해요."
"그렇구나, 피아나. 가볍게 세리나 라고 불러."
"네? 정말 그렇게 불러도 되나요?"
"응, 딱딱하게 규칙을 지키는 거 싫어하니까. 나이차이도 별로 안나고."
과연 세리나는 신성력에서 느꼈듯이, 심성이 매우 착한거 같다. 저렇게 이름을 부르게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니, 나는 약간 감탄했다. 나는 세리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밝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네, 세리나 잘 부탁해요."
"후후, 나도 잘 부탁해."
세리나는 나의 말에 만족 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으으, 마왕일때는 여자 만나 본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멍하니 쳐다봤잖아..'
마왕 일때 부터 지금 까지 여자를 만나 본적이 없어서 여자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 비록 여자의 몸이 되긴 했지만 하여튼 정신은 남자였으니 말이다. 세리나는 내 모습에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그에 내 얼굴에 피가 더 몰리는게 느껴졌다.
"으으.. 그, 그럼 레이나 잘 돌봐주세요!"
그 말을 하고는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더 이상 있다가는 얼굴이 토마토처럼 변해 터져버릴게 분명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서둘러 기숙사로 도망갔다.
"그래, 다음에도 또 봐!"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기분탓 일거라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기숙사로 도착한 나는 기숙사 문에 카드 키를 가져다 대었다. 카드가 마법식을 인지하고는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신발을 벗고 클린 마법으로 던전에서 찝찝했던 흙먼지를 털어버린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나와도 돼."
스르륵
아무도 없던 공간에서 밀리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밀리나는 나를 보고는 장난 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왕님, 의외로 귀여운 부분이 있으시네요~"
"시, 시끄러.."
밀리나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에 창피해진 나는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며 기어 갈듯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에 밀리나가 정말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후후, 정말 너무 귀여우신데요? 싸움은 그렇게 폭력적이면서, 평소에는 이렇게 귀여우시다니."
"으,으.."
이대로 있다가는 밀리나의 마수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나는 허둥지둥 말을 돌렸다.
"그, 그러고 보니! 넌 이제 부터 어떡할 거야?"
밀리나는 내 말에 다 알고 있다는 미소를 짓고는 봐준다는 듯이 말했다.
"으음, 글쎄요? 딱히 인간 세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없어서 말이죠, 마왕님이 알려주시면 안되나요?"
"나도 모르는데.."
밀리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오는 대답에 나는 그렇게 대답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인간 세상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밀리나에게 인간 세상에 대해 알려 주겠는가. 밀리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에 나도 밀리나를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에 빠졌다.
'밀리나는 이대로 어떡하지?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야 하나? 밀리나라면 내 기숙사에 있다는 걸 들키지 않을테니까, 딱히 문제는 없을 거고 으음..'
내가 고민하고 있자니 밀리나가 생각을 마쳤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밖에 나가서 정보를 얻은 다음 정보를 토대로 행동하는게 좋겠네요."
"모습은 어떡하려고?"
"제 모습은 제가 원하는 대로 변화 시킬 수 있어요."
그 말과 함께 밀리나의 몸이 하얀 빛줄기에 휘감겼다. 이윽고 빛이 사그라 든곳에는 밤하늘 처럼 새카만 머리칼과 어둠을 밝히는 여명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성숙한 분위기의 미녀 대신 평범한 생김새의 갈색 머리칼, 갈색 눈의 소녀가 서 있었다.
"어때요? 이정도면 문제 없겠죠?"
"그러네, 확실히 그 정도면 눈치 못채겠어."
확실히 밀리나의 아름답던 모습은 사라지고 정말 평범한 외모의 소녀가 서 있었다.
'저정도 마법이면 폴리모프인가? 폴리모프는 드래곤 같은 마력 제어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예상은 했지만 정말 보통이 아닌걸.'
밀리나가 외형을 마음대로 변환시킨 마법은 폴리모프인것 같았다. 폴리모프는 드래곤의 시그니쳐 마법이였다. 그야 폴리모프는 유지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마력이 소모되고 그것을 유지시키고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뛰어난 마력 제어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밀리나는 드래곤과 힘이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보였다.
밀리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했다. 순식간에 밀리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마 정보를 찾으러 간것이겠지, 밀리나가 걱정되긴 하지만 뭐 똑똑해보이고 힘도 강하니 별 문제는 없을 거다. 나는 밀리나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고는 샤워실로 향했다. 아무리 클린 마법으로 몸은 깨끗했지만 따뜻한 물을 맞으며 몸을 헹구는 것은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옷을 벗고 나는 양치질을 한뒤 샤워기로 몸을 적셨다. 그리고 여러가지 샴푸로 머리를 감고는 몸에도 마찬가지로 거품칠을 하고 헹궜다. 그리고 나서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맡기고는 축 늘어졌다.
"흐아아.."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고 있으니 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몸이 노곤노곤 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거 같았다. 그에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레귤러 던전, 통칭 '개미의 굴'. 아무리 내가 던전을 공략해본적이 없다고는 해도 던전에 들어갔다고 푸른 메시지가 떠오르는 던전은 들어 본적이 없다. 그리고 떠오른 던전에 대한 의문, 밀리나는 어떤 존재에게 끌려 왔는지에 대한 의문, 던전은 어떤 세계와 연결 되어있는지에 대한 의문 등등. 여러가지가 떠올랐지만 모두 구석에 고이 모셔놨다.
'이렇게 생각만 한다고 해서, 던전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 차근차근 알아가는 수 밖에.'
여러가지 가설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하지 못한 정보는 내 머릿속에 편견으로 남아 단단히 굳고, 진실을 외면할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불확실한 정보를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내가 눈으로 확인한것. 오직 그거 하나뿐이였다.
상념을 마치고는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샤워실을 나서며 마력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처리하고는 바람 마법과 불 마법으로 머리를 말렸다. 몸을 다 말리고는 속옷을 입고, 침대위에 개어져 있는 잠옷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펭귄 잠옷이냐..'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침대위에 놓여있는 잠옷이 펭귄 잠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주섬주섬 펭귄 잠옷을 챙겨 입었다. 침대에 앉아 멍 때리고 있으니 밀리나가 돌아왔다.
"어, 왔어?"
"꺅, 마왕님 너무 귀여워요!"
"잠옷이 이거 밖에 없는 걸 어떡해.."
밀리나의 귀엽다는 말에 볼이 조금 붉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에헴, 그래서 정보는 모았어?"
"후후, 네 어지간한 인간 상식은 모두 알아냈어요."
"그래?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꺼야?"
"비밀이에요."
밀리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자니 밀리나가 말을 이었다.
"곧 알게 될테니까 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
"하아.. 그래 널 데리고 온 내가 문제지.."
한탄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밀리나에게 손짓했다.
"자 그럼 샤워부터 하고 와. 너 던전에서 흙 먼지 많이 묻었잖아."
"클린 마법 샤용해서 깨끗한데요.."
"자자, 일단 들어가서 샤워해 봐."
나는 투덜거리는 밀리나의 등을 떠밀고는 샤워실에 밀어 넣었다. 잠시뒤 밀리나의 옷이 사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벗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자가 내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당당히 들었다.
'난 여자니까! 괜찮겠지. 음음.'
본인의 정신이 남자든 여자든 몸이 여자니까 상관없다며 자기합리화 하고는 밀리나가 샤워하고 나오길 침대에 누워 멍하니 기다렸다. 폭신한 침대와 보드라운 이불의 감촉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밀리나가 샤워를 끝내고는 나왔다. 밀리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해서 그런지 몸 전체에 생기가 돌고 볼에 홍조가 띄고 있었다.
"하아.. 샤워라는 거 정말 기분좋네요."
"그렇지? 그럼 슬슬 자자."
"네, 그럼 저는 어디서 자나요?"
"내가 마력으로 침대를 만들어 줄테니까 거기서 자."
밀리나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싫어요. 저는 마왕 전하랑 같이 침대에 잘래요."
"응?"
순간적으로 머리에서 생각회로가 돌아가지 않아, 굳은채로 가만히 있자니 밀리나가 후후 하고 웃으며 내가 누워있는 침대 속으로 들어왔다.
"자.. 잠깐만!"
"잘자요, 마왕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내가 당황하며 황급히 빠져나오려 했지만 밀리나가 마력으로 불을 끄고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힘은 자신이 더 세기에 마음만 먹으면 확 풀어버릴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녀는 모질지 못했기에 이도저도 못하고 결국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신을 꽉 끌어 안은 여체에서 방금 샤워에서 그런지 향긋한 냄새가 나를 자극했다. 옆구리에는 푹신푹신한 감각이 들어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고개를 슬쩍 돌려 밀리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밀리나는 벌써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자신만 요란한건가 싶은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겨우겨우 잠을 청했다.
그녀가 잠든 것은 그로부터 3시간 뒤였다.
***
잠에서 깬 나는 옆에 있는 밀리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일어나 샤워를 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었다. 아카데미에 갈 준비를 마친 나는 밀리나를 돌아보았다.
"밀리나, 나는 아카데미에서 갈게 나중에 보자."
"네, 조금 이따가 봐요."
조금 이따가 라는 말이 의미 심장했지만, 마물인 밀리나의 감각에 그 정도의 시간이면 조금 이따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기에 별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밀리나에게 잘 있으라고 한뒤 아카메디로 향했다.
교실에 도착한 나는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서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과연 저기서 익숙한 빨간 머리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생긋 미소 짓고는 레이나에게 다가갔다.
"안녕, 레이나."
"아! 피나 나도 안녕~"
"어디 아픈곳은 없어?"
내 걱정어린 표정에 레이나는 미소짓고는 말했다.
"괜찮아, 피나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고맙긴, 당연한거지. 앞으로도 무슨일이 생기면 내가 구해줄게."
"피나.."
레이나는 내말에 감동한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렇게 레이나와 얘기하고 있자니 앞문이 열렸다. 케인은 뚜벅뚜벅 교탁에 걸어와서는 출석부를 탁 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전학생이 있다. 모두 잘 지내도록."
으음..? 전학생? 갑자기 전학생이 온다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동동 떠올랐다. 이 시기에 전학생이라는게 굉장히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마구마구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나는 애써 부정하면서도 전학생이 올 앞문을 빤히 쳐다 보았다.
그에 전학생이 앞문을 열고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밤하늘 같이 새카만 아름다운 흑발, 밤하늘의 별 같이 아름답게 빛나느 황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미소녀는 나를 보며 싱긋 웃응며 말했다.
"모두 만나서 반가워요. G반 밀리나라고 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