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나는 죄악이다.
* * *
"모두 만나서 반가워요, G반 밀리나라고 합니다."
밀리나가 나와 눈이 마주치며 생긋 웃었다. 아니, 아침에 조금 이따가 보자는게 이거였어!? 상상도 못했다. 설마 아카데미로 입학할 줄이야,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하루만에 들어온거지? 그게 말이 안되는데, 정보 수집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유능할 지도..
내가 밀리나의 전학해 경악하고 있을 때 케인은 교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원하는 빈자리에 앉도록 해라."
"네에~"
밀리나는 신난다는 듯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총총 거리는 발걸음으로 내 옆에 앉았다. 참고로 아카데미 교실의 배치 구도는 교탁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진 책상과 의자가 늘어져 있어서, 한 책상에 여러명 앉을 수 있다. 그러니까 레이나 나 밀리나 이렇게 앉아 있다.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후후"
밀리나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밀리나가 전학온 것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렇게 같이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도 환영이다. 안그래도 게속 기숙사에 박혀 있으면 어떡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응, 또 만났네."
"..."
내가 생긋 웃으며 말하자, 밀리나가 멍하니 날 쳐다봤다. 왜 저러지? 그때 레이나가 끼어들었다.
"피나, 아는 사람이야?"
왜인지 모르게 레이나의 목소리가 싸늘한 것 같은데..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으, 응."
"그래, 그렇구나. 응, 만나서 반가워 난 레이나라고 해, 피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내 말에 레이나가 밀리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째서!? 왜 저렇게 노려보는 거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밀리나는 알겠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 그렇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피아나와 어제 함.께 기숙사에서 잔 밀리나라고 합니다."
"뭐, 뭐!?"
"왜 그러시나요? 친구 끼리 함께 자는 것은 당연한거 아닌가요?"
밀리나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이나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피나."
"어? 아, 응"
"사실이야?"
"어,, 응. 맞아."
내 말에 주변의 온도가 갑자기 확 내려진거 같다. 이 몸 추위 못느끼는데?! 왜 추위가 느껴지는 거죠? 내가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때, 레이나가 상냥한 미소를 짓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피나, 오늘은 나도 너 기숙사에서 같이 자도 되지?"
"응?"
"같.이.자.도.되.지?"
"아, 무, 물론이지!"
당황해서 거절하려했는데, 갑자기 본능이 경종을 쳤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였다. 하아.. 그래도 나 남자였는데, 이렇게 같이 자도 되는걸까? 여자로 변한게 내 탓은 아니지만, 뭔가 내가 여자로 변해서 레이나를 속이는 것 같아,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아무렴 어때, 지금 몸은 여잔데. 응, 난 속이는게 아니야. 그것도 레이나가 먼저 제안했잖아?'
자기 합리화를 하며 합리적인 내 생각에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밀리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같이 자도 될까요?"
"밀리나도?"
"네."
"음.. 그래, 딱히 상관없겠지."
까득
이미 레이나도 같이 자는데 새삼스럽게 밀리나와는 못 잔다고 하면 이상할거 같기에 밀리나의 말에 긍정했다. 무언가 살벌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엄청나게 뛰어난 청각을 가진 내가 잘 못 들을리가 없지만 잘 못 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하하, 밀리나도 같이 잘거야?"
"네, 친구끼리 같이 자는 것 정도는 당연한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마치 서로의 눈빛에서 번개가 튀어 나오는 거 같다. 내가 둘 사이에 껴서 덜덜 떨고 있을 때, 앞문을 열고 새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을 가진 인자하게 생긴 한 노인이 들어왔다.
"자,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역사학 교수 레이놀드 입니다."
'역사학이라..'
나는 역사에 상당한 흥미가 있었다. 왜 흥미가 없겠는가? 역사는 과거를 분석하여 미래를 판단하는 거울이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치장하며 우리를 판단하듯이, 역사는 우리가 과거에서 일어난 일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에 최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배운다. 또한 역사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우면 당연히 재미가 없다. 뭐 당연하지 않은가? 그저 정해진 시간대를 그 시간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저 하나의 이름으로 칭하고 그 이름에 따라 시대를 구분해서 외우는게 무엇이 재밌는가? 하지만 역사를 즐기기 시작하면 다르다.
역사를 세세히 분석하면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인다. 그저 전쟁을 치룰때도 단순히 적과 맞서 싸우는 것 같은 전쟁도 자세히 뜯어 살펴보면 수많은 전략을 바탕으로 판단한것이다. 지형, 날씨, 적군과 아군의 숫자, 아군의 사기, 적군의 위치 등등. 단순한 전쟁에는 단순하지 않은 판단들이 섞여있다. 그리고 그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뜯어보면 더 재밌다. 그저 전쟁을 치루는 것 뿐일텐데, 아무리 가벼운 전쟁이라고 해도, 그 전쟁에는 수없이 많은 이해득실이 있다.
또한 아군의 시점으로 전쟁을 분석할때와 적군의 시점으로 전쟁을 분석할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서로가 어떤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키는지, 그 전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미치는지.
역사에는 수 많은 사건이 있다. 간단한 전쟁의 승리, 조그마한 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 부터, 황제 암살, 한 나라와의 전쟁 등등. 정말 수많은 사건이 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건들을 일으킨다. 황제 암살은 황권이 교체된다. 한 나라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인해 수십, 어쩌면 수백의 나라가 달라진다. 이렇게 커다란 사건은 커다란 변화를 낳고 자그마한 사건은 자그마한 변화를 낳는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어떤 시점에서는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도, 어떤 시점에서는 최악의 살인마가 되니까. 그렇게 본다면 내가 과거에 저지른 끔찍한 일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큰 죄악일까? 라는 생각이 무딘 내 마음 속에서 떠올라서.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저지른 일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다. 나는 용서 받으면 안되니까, 내가 벌인 일들은 묻혀져서는 안되니까.
그 사건은 어느 시점으로도 끔찍한 죄악이겠지. 하지만 나는 하기 싫었다. 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왜, 도대체 왜 저지르겠는가? 나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이렇게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누구의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 한 줌의 평화가 내게는 더 소중했다. 내가 저지른일에 마음이 깎인다. 그 사건들은 내가 아무리 시선을 돌려도, 그 기억을 깊숙한 곳에 쳐박고 자물쇠로 꽁꽁 막아도, 다른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내 인식 하지 못한 곳에서 그 생각과 기억들은 차츰차츰 나의 마음을 갉아 먹는다.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숨을 쉬기위해, 잠시라도 끔찍한 과거에서 벗어나, 내가 그토록 원하던 평범한 삶을 살고싶어서. 그래서 애써 폭군도 성군이 될 수 있는 역사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내가 끔찍한 죄악을 저질렀다지만. 조금이라면, 남들이 날 뭐라해도 상관없으니까, 날 깎아 내려도 상관없으니까, 내 마음에 말이라는 비수를 꽃아도 좋으니까, 조금이라도 내 마음속의 짐을 덜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다른 시점으로는 내가 저지른 죄악이 선행은 아니여도, 적어도 그렇게 큰 죄악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날 역사로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상념에 빠지면 빠질 수록 그때의 사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괴물같은것.
너 같은건 태어나면 안된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라면 너를 태어나게 만든 것 이다.
아니야. 난 원하지 않았어. 난 이렇게 까지 하면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야? 왜 나는 그런일을 해야하는 건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정말 내가 태어난게 죄였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흘러 나온다. 이미 묻어버렸다고, 완전히 메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감정의 편린은 아직 내 마음속에 남아 있나 보다. 그래, 그게 내 죄야. 나는 악을 먹고 태어났어. 그러니까 당연한거지. 내가 어떻게 평화롭게 살건데? 나도 알고 있다. 이 아카데미에서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나는 누군가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다고. 그래, 그래서 내가 좀 얼빵한 척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척이 아닌가?
나는 나에 대한 경계를 낮추기 위해서, 위해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그들과 어울리며 살기 위해서, 한 줌의 평화라는 내가 원하던 삶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벌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끔찍한 자아를, 피 비린내 나는 본성을 짓누른다. 지금의 자아에서 한 때 내가 유약했던 시절에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망설이던, 피로 더렵혀지기 전에 나의 순수한 시절을 밖으로 꺼내 그 자아를 집중적으로 키웠다. 그 자아를 중심으로 나의 사고를 회전 시켰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마왕답지 않게 평범한 사람인척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내 원래 자아라면 이렇게 쉽게 사회에 녹아들 수 없었겠지. 모두가 내게 본능적으로 공포와 혐오감을 느낄테니까. 내 몸에 묻은 피 비린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처럼. 모두가 나를 거부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평화와 거리가 먼 사람이였으니까. 아니 마왕이라고 해야하나?
내가 농담을 하다니, 아무래도 지금 커다란 방향을 차지하고 있는 자아가 내게 조금씩 섞여들어오는 것 같다. 그 자아가 섞여 들어오는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해지는 느낌이 죄악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아니 사실은 매우 기뻐서 격렬하게 거부하지는 않았다.
옛날 생각으로 떠오른 과거의 자아를 짓누른다. 다시 떠오르지 못하게. 그리고 나의 유약한 자아를 끌어올린다. 순수했던 시절이 올라 올 수록 점점 옛날의 죄악이, 업이, 내 손에 묻은 피가, 가라앉는다. 끈적한 타르처럼 내게 떠오른 죄악이 천천히 내려 가라앉는다. 마침내 모든것이 가라앉았을때, 나는 다시금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악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고 순수했던 나의 옛날의 자아로.
잠시라도 그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기꺼워 나는 생긋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