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더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아
* * *
'하아.. 하아.. 드디어 그를 죽였는데..'
한 숲 깊은 곳에서 한 남성이 거칠게 숨을 몰아 쉬고 있다. 그는 밤에 녹아들듯 새카만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으며, 루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가진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정도로 잘생긴 미청년 이였다.
허나 누구라도 그를 본다면 지금 그의 문제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온 몸에는 자잘한 생채기가 가득해 피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고,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다리는 절뚝거리고, 머리도 다쳤는지 머리에서도 피가 주륵주륵 흘러 내린다.
청년의 정체는 마왕. 조금 전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마왕이 되었다.
허나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이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원래대로라면 가볍게 치료 할 수 있을 정도의 부상이나, 그 상처를 입힌 것은 그의 아버지인 마왕. 그가 공격한 공격 하나하나에 서린 마기는 치유를 늦추고 상처를 더 벌어지게 했다.
그는 복부를 손으로 틀어 막고는 살기 위해서 숲을 벗어나려 발걸음을 옮겼지만,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안돼.. 안되는데..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는데.. 드디어 날 불행하게 만든 자를 모두 죽였는데.'
그는 어떻게든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고 발악을 하지만, 결국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안돼.. 안..되...는......ㄷ'
풀썩
결국 그는 앞으로 고개를 처박고 쓰러졌다. 그가 쓰러진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무렵, 이것은 신이 내려준 축복인가? 아니면 나의 저주인가? 한 남자가 풀 숲을 헤치고 나왔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나를 들쳐메고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
쓰러져 잠들어 있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마왕성에서 지내던 나의 방에 비하면 방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방이였다. 허나 그 방은 나에게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낡았지만 안락한 침대, 햇빛으로 말렸는지 시원한 냄새를 내는 이불, 사용감 가득한 책상과 의자, 옷장, 나무로 된 바닥과 천장 등등.
"으윽!"
나는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끔찍한 고통이 복부에서 찾아 와서 다시 쓰러지듯 누웠다.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대니 붕대로 치료가 되어 있었다.
'치료가 되어 있어..?'
그 때 내 기척 감지에서 내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포착했다.
'뭐지? 나를 죽이기 위한 암살자인가? 아니면 이것은 다른 함정인가?'
일반적으로는 쓰러져 있던 그를 이렇게 데려다 놓고, 깨어 났을 때 죽이려고 할리가 없으나, 그는 마왕성에서 있던 일로 인해 모든 것을 경계했다. 그가 그렇게 좋아하던 호의라도 뒤에서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고, 나를 칭찬하던 사람도 뒤에서는 나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 누구도 나를 보살펴 주는 사람 하나 없었고, 괴물이라고 소리치며 나를 괴롭혔다.
마왕성에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저지른 이유가 있었고, 이유 없는 호의가 제일 위험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떠한 상황이라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마침내 발소리는 나의 방문 앞에서 멈췄고, 나는 어떠한 상황이라도 대처 하기 위해 긴장했다.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열린 틈 사이로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고, 상당히 예쁘게 생겼는데 외모를 보니 젊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30대 후반 같았다. 그녀는 깨어 있는 나를 보고는 놀란듯 살짝 눈을 크게 뜨더니 미소 지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안녕? 깨어 났구나, 나는 데이지 라고 한단다. 너는 이름이 뭐니?"
왜 나의 이름을 묻는 거지? 왜 상냥한 미소를 짓는 걸까? 나긋하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 있지? 여러가지 상념이 떠올랐으나 고개를 털어내고는 다시 데이지를 바라 보았다.
'이름.. 이름이라. 굳이 내가 마왕 일 때 이름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 무슨 이름으로 정하지?'
"데인.. 데인이라고 합니다."
"데인.. 좋은 이름이네, 조금만 쉬고 있어 줄래? 수프 좀 가져 올게"
그녀는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듯 한번 곱씹고는 수프를 가져온다며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여긴 어디인가, 그녀는 누구인가, 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으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그녀가 다시 문을 열고 찾아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의 손에는 수프가 들려 있었다.
"자, 먹어봐, 많이 다쳐서 배고플 거야."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내게 수프를 내밀었다. 이 수프는 뭐지? 독이 들어 있나? 독으로 나를 암살하려고 했나? 나는 먹지 않으려 했으나, 배가 고팠고 감지를 돌려봐도 독은 없었기에 조심스레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었다.
수프의 맛은 담백했다. 닭고기에다가 여러가지 채소를 넣고 끓이기만한 수프. 매우 평범한 수프라 그저 맛도 평범했는데, 어째서 그렇게 맛있었는지는 몰랐다.
나도 모르게 수프를 순식간에 다 먹어치우니, 정신을 차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후후 웃더니, 내게 그릇을 가져가고는 다시 방을 빠져 나갔다.
그녀가 나간것을 확인하고는 긴장을 느슨하게 풀었다. 어째서 내가 긴장하지 않은 채로 무방비하게 수프를 먹었는지, 그 이유를 그 때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생에 처음 받은 호의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리고, 느슨하게 반응한 것 같았다.
나는 수프를 먹어 노곤해지는 정신 속에서 경계를 풀고 서서히 잠들었다. 그 날 잤던 잠은 여태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잤던 잠중 가장 편안했다.
***
어느새 이 집에 있던 것도 일주일이 흘렀다. 그는 일주일 동안 그녀의 간호를 받으면서 여러가지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 데이비드, 장남 주크, 둘째 주디.
일주일 동안 그녀의 호의를 받은 나는 어느정도 긴장을 풀고는 그들을 대했다.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데이비드는 유쾌했다. 그는 나를 경계하지 않았고, 나를 매우 친절히 대해줬다.
이 집안의 장남 주크는, 잘생긴 청년 이였다. 이제 막 20살이 된 그는 나를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며 재치가 넘쳤다.
둘째 주디는 갈색 머리에 파란색 눈을 가진 소녀 였다. 그녀는 날 바라보고는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항상 친절과 호의를 베풀었다.
그들의 호의를 받으며 간호를 받은 나는 일주일 만에 모든 상처를 회복하고는 침상을 털고 일어났다. 침상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니, 가장 먼저 주크가 보였다. 그는 나를 반가운 눈으로 보고는 말했다.
"데인~ 일어났어? 이제 상처 다 나았나 보네?"
"네, 이제 괜찮습니다."
"에이, 왜 그렇게 딱딱해? 형이라고 불러 형."
"그건 조금.."
그는 털털한 성격이 있어서 조금 부담스러웠으나, 항상 선은 넘지 않았고 적당히 재치있고 재밌었으니 괜찮았다.
"아! 일어나셨어요, 오빠?"
주크와 여러 얘기를 하고 있으니 갈색 머리칼에 하늘 처럼 푸르고 맑은 파란 색 눈을 가진 미소녀가 도도도 달려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는 주크의 여동생 주디다. 그녀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는지, 미색이 매우 뛰어나고 성격도 친절하고 착했다. 그녀의 말에 주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니 옆에 있는 이 오라버니는 보이지도 않는 거냐?"
"흥! 맨날 보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러는 거야?"
"데인이 그렇게 좋아?"
"무, 무,, 무슨!"
주크의 갑작스러운 말에 주디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데이비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놀이는 그만하고 와서 밥 먹거라."
"하핫! 알겠습니다!"
"아, 아빠!"
""하하핫!""
당황한듯한 주디의 모습을 바라보며 둘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식탁에 앉으니 주디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내 옆에 앉아 그녀는 손을 베베 꼬으며 안절부절 못했는데, 그녀의 시선이 내 손으로 가기에,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녀는 내가 손을 잡아주니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 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놀란 토끼 같아서 미소를 지어주니,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헤헤 하고 귀엽게 웃었다.
데이비드와 주크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잠시 뒤 데이지가 음식을 가져오며 말했다.
"오늘은 빵과 수프에요. 모두 맛있게 먹어요."
"그래, 여보 오늘도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잘먹겠습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빵에 수프를 찍어 먹었다. 문득 평화로운 일상에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어느새 나는 그저 이 평화가 계속 되기를 바랬다.
***
어느새 이 집에서 생활한지도 6개월이 흘렀다.
나는 완벽하게 그들의 집에서 적응했고, 그들도 나를 아들, 동생, 오빠로 받아주어 가족같은 사이가 되었다.
사냥 나갈 준비를 하는 나를 보며 주크가 말했다.
"또 사냥 나가냐?"
"네, 형"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짓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으이구, 매일 같이 사냥을 나가지 말고 좀 쉬기도 하고 그래. 인마."
"괜찮아요. 걱정해줘서 감사합니다."
"그 존댓말도 집어 치우고."
"이건 제 말투여서.."
"그래, 알았다 알았어, 다치지 말고 돌아와라?"
"네."
다시 사냥을 나가려는데 어디서 밝고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그 미성이 들린 것 만으로도, 내 기분이 좋아졌다.
"오라버니~~!"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내 품에 뛰어 들었다. 그녀는 내게 쏙 안겨서는 날 꽉 끌어 앉으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도 사냥 나가시는 거에요?"
"그래, 나는 하는게 없는데 사냥이라도 나가야지."
"으~ 오라버니가 하는게 왜 없어요. 그정도 되면 병이에요, 병."
"알았어, 미안해, 미안."
그녀는 내 사과를 받고는 만족 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품에 안겨 헤실거렸다. 마지막으로 날 꽈악 끌어 안고는 고개를 부비고는 떨어졌다. 그리고 뒷짐 지며 헤실헤실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치지 말고 다녀오세요, 오라버니!"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내게 빠르게 다가와서 까치발을 들고는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쪽!
그녀는 내게 입을 맞춘게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도망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미소가 나왔다. 그녀가 입을 맞춘 자리가 유독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진짜 오라비는 찬밥이구나, 이래서 서러워서 살겠는지.."
주크가 뭐라뭐라 중얼 거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한 나는 숲으로 향했다. 숲은 울창하고 싱그러워 맑고 깨끗한 공기가 내가 호흡함에 따라 폐부에 들어왔다. 신선한 공기가 내 폐부에 가득차니 상쾌해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나 숲을 돌아 다녔을까?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악!"
나는 서둘러 비명이 들린 곳으로 달려 갔다. 순식간에 신체를 강화해서 달려가자 한 남자가 오크 앞에 쓰러져 있었고, 오크가 몽둥이를 크게 들어 올려 내리 찍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순식간에 달려가서는 오크의 머리통을 터트리고는 남자를 바라 보았다.
"괜찮으신가요?"
그는 내가 말을 걸자 나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허겁지겁 도망갔다.
"왜 저러지?"
사람이 구해줬는데 고맙다는 인사조차 안하고 겁에 질려 도망가니 기분이 나빴지만, 세상에 별 사람 다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사냥을 마친 나는 멧돼지를 잡아와서 가족들과 같이 나눠 먹고는 잠을 잤다.
다음날.
또 다시 나는 사냥을 나갔다. 오늘도 귀여운 주디를 바라보며 힘을 내고는 숲에 들어가 사냥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게 보였다.
'저 방향은.. 우리 집인데?!'
오싹!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난 기분. 이미 한 발 늦어버린 기분. 다시 돌아올 수 없을거 같다는 기분.
심장이 쿵쾅 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속이 메스꺼워서 토악질을 할것만 같았고 식은 땀이 주륵주륵 흘렀다. 나는 모든 힘을 다해, 그 어떤 때 보다 전력을 다하여 우리가 살던 오두막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본 광경은 지옥이였다. 오두막이 불타고 있다. 수십의 기사가 오두막을 불태우고 있었고, 크게 소리쳤다.
"이들은 모두 마족에게 넘어간 사악한 인간이다! 모두 죽여라!"
성스러워 보이는 흰색 갑옷을 입은 자들이 외쳤다. 나는 다시 한번 멍하니 앞을 바라 보았다.
"꺄아아아악!"
나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던 데이지가 불에 산채로 태워지고 있다. 얼마나 고통 스러운지 온몸을 발작하며 날뛰었지만 순식간에 화마에 온몸이 집어 삼켜지고, 풀썩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데이비드는 수십개의 창이 등에 박히면서도 눈을 핏발 서며 어떻게든, 쓰러져도, 창에 찔려도, 칼에 베여도 바닥을 질질끌며 데이지에게 다가갔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데이지의 옆까지 기어가서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며 죽었다.
나에게 다정하게 웃어주며, 때로는 유쾌하고 장난을 치던 루크는 이미 수십개의 창에 찔려 있었는데, 자신의 고통조차 모르겠다는 듯 그저 이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쓰러졌다.
주디의 복부에는 날카로운 칼 한자루고 뒤에서 관통해 복부를 뚫고 검신이 피에 젖으며 튀어 나왔다. 주디는 칼에 찔리면서도 방금 도착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주디는 생긋 웃으며, 그 끔찍한 고통을 집어삼키며, 죽음이 닥쳐와도 그것들은 두렵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은 죄가 없어요."
"자책하지 말아요."
"오라버니."
생긋
그녀는 미소지으며 배가 관통당한채 쓰러졌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악!!
뭐야, 이거 뭔데, 내가 잘못 보고 있는거지? 꿈을 꾸고 있는 거잖아.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이제야 겨우 평화를 찾았는데. 행복했는데. 기뻤는데. 어째서. 나한테 왜 그래. 도대체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저기 저 자식이 마족이다!!"
그 때 한 남자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그는 하얀색 신도복을 입고는 해골같이 추악한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아.
어제 내가 구해준 그 남자였다.
사제였구나.
그래서 내가 구해줄 때 사용한 마기를 알아봤구나.
다 깨달았다. 저들이 어째서 여기에 와서 내 가족을 죽였는지. 나 때문이였다. 내가 괜히 누군가를 구해주겠다고, 선량하게 살아보겠다고 생각해서. 그를 내가 살려줘서, 그가 기사단을 이끌고 나를 죽이러 온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왜.. 나만 죽이면 되잖아.. 내가 오기전에 그들을 인질로 잡고, 나보고 죽으라고 하면. 나는 죽을 수 있었어. 그들을 위해서 바치는 내 목숨이라면, 기꺼이 웃으며 바칠 수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왜 무고한 그들을, 그저 나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죽이는 거야..
그렇구나.
나 때문이구나.
내가 괜히 평화를 원한다고 까불어서.
그저 죄악의 덩어리인 내가.
과거를 잊으며 행복하게 살아서.
그 대가를 지금 받는 거구나.
그들을 내가 죽였구나.
응, 내가 죽였어. 모두! 모두! 모두! 모두! 나한테 친절하든 나쁘게 대해주든 차별없이! 모두! 내가! 죽였어! 내가 곁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내가 행복을 원한다는 이유로. 잘 알고 있었어야지. 나같이 추악한 사람이 무슨 평화를 쫓아. 주제를 알았어야지. 밀어 냈어야지. 그들을 다치게 하지 말았어야지. 이 무능한 새끼야.
맞아. 내가 죽였어. 그들의 평화를 내가 유린했어. 행복하게 살아가던 가정을. 내게 처음으로 호의를 베푸던 이들을. 날 구해준 이들을. 은혜로 갑기는 커녕. 원수로 갚아버렸어. 모두 내 잘못이야. 그렇구나. 나는 사악해. 그래. 그래서. 그들을. 기사단을 모두 죽여야만 이 화가 풀릴 거 같아.
응, 그렇구나. 다 죽여야 돼.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사제를 노려보았다. 추악한 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악한자. 그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고통스럽게 죽인다. 나는 천천히 사제한테 걸어갔다. 오직 사제만 바라보며. 사제는 날 보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추악하게 소리쳤다.
"저 자를 죽여! 내게 오게 하지 말라고!"
그 말에 기사단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가볍게 오른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걱.
내 주먹에 기사단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다리를 땅에 강하게 딧고는 몸을 회전시키며 다리로 또 한명의 기사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몸에 마기를 폭발적으로 터트리고는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은 모두 피하고 그들의 머리통을 하나 하나 친절히 부서주었다.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퍼걱.
얼마나 머리통을 부섰을까? 그들은 나를 보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괴물이라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는 그들을 하나 하나 쫓아가 모두 죽여버리고는 미소 지었다.
그래. 나는 괴물이구나. 모든 행복을 잡아먹는 괴물. 불행을 몰고 오는 괴물.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사제를 향해 다가갔다.
찰박찰박
사방에 피가고여 웅덩이가 이루어져 내가 걸을 때 마다 피가 신발에 달라 붙으며 끈적한 소리를 내었다. 그는 피칠갑을 한 나를 보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뒷걸음 치며 소리쳤다.
"이.. 이 괴물! 지옥에나 꺼져라!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존재야!"
너는 태어나면 안되는 존재였다.
아. 그의 말과 비슷하다. 그렇구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됐구나. 하지만, 너는 죽이고 싶은걸. 어떻게든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고 싶은 걸.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이윽고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냉혹한, 어떠한 감정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그는 겁에 질렸는지 바지가 축축해졌다. 더러워. 역겨워. 혐오스러워. 죽어.
나는 그의 손가락을 마디마디 꺾어 주었다. 손가락이 완전히 꺾여 손등과 맞닿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내가 손가락을 꺾을 때 마다 감미로운 비명을 내질러 주었다.
아.
중독 될거 같아.
그 다음은 팔.
팔꿈치의 관절을 완전히 꺾어버려, 그의 뼈가 살갗을 뚫고 빠져 나왔다.
"으악! 으아! 으아! 으어어어!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감미로워.
너무 아름다운 소리야.
나의 정신이 무너지는게 느껴졌다. 수없이 많은 상처들이 나의 정신을 갉아 먹고 있었다.
뚜둑!
그의 양팔을 뽑아 버렸다.
그의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내 얼굴에 튀겼다.
아.
이거지.
그의 팔에 마기를 사용하여 피를 막아 주었다.
아직 죽으면 안되지. 할게 많은데.
그의 발가락을. 발목을. 다리를. 모두 부러트려 주었다.
망가진 정신에, 날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트려 버린 그 당사자의 비명은 너무나도 감미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끅! 끄르륵! 꺼어억!"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보니 온 몸의 관절이 꺾이고 뽑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거품을 물며 기절한 그를 내려다 보았다.
재미없어.
퍼석.
그의 머리통을 터트려 버렸다.
내가 받은 고통은 그거보다 훨씬 아팠는데. 내가 느낀 고통과 비교조차 안됐는데, 고작 그 정도로 기절하다니. 실망스럽네.
나는 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지독하게도 맑아 너 따위는 이 세상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수많은 시체를 넘으며 데이지와 데이비드를 찾았다.
그들에게 고개를 처박으며 땅에 머리를 찧었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저를 죽어서도 원망하십시오."
그들은 함께 묻어주었다.
그 다음은 루크.
나는 그의 시체 앞에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형, 미안해, 죽어서 말을 놓네. 나 때문이야. 모두 내 탓이니까. 날 원망하면서 죽어줘. 죽어서도 날 원망하는 것을 놓치지 마."
땅을 파서, 그의 시체를 묻었다. 허망하게 솓은 땅을 바라보니 정신이 나갈거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주디.."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아.. 주디. 그녀는 죽을 때 까지 나를 찾았다.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웃었다. 나의 표정과 눈을 바라보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위로를 해주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하지만.. 하지만... 주디. 미안해. 너의 유언. 못 지켜 줄거 같아.
더 이상은 지쳤어. 행복을 찾아가는 것도. 평화를 추구하는 것도. 내게 처음으로 호의를 보내던 이들의 최후는 끔찍했어. 나는 재앙이야. 나는 그녀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배에 뚫린 상처를 보며 쓰다듬었다. 그러자 내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와. 그녀의 배를 치유했다. 치유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저 예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내길 원해서.
아아.. 주디.. 그녀의 뺨을 쓸어주고는 그녀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쪽.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내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살포시 그녀의 입술에서 내 입술을 떼어놓고는 살며시 주디를 눕히며 자리를 일어났다.
나는 미소 지었다.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더 이상 평화에 눈도 주지 못하게. 무심코 그 따스함에 다가가지 못하게. 그러니까. 그저 괴물처럼. 수많은 시체 사이에서 피칠갑을 하며 미친놈처럼 웃었다.
내 눈에서 물이 한줄기 새어 나와 주디의 얼굴을 적시고는 사라졌다.
이제 돌아가자.
마왕성에.
지긋지긋하던 그곳에.
나의 적밖에 없던 그곳에.
거기라면, 누가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소중한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까. 그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아파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마왕성으로 텔레포트 했다.
내가 떠나고 난뒤, 피가 흥건하고 시체가 가득한 그곳에서.
주디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