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성검은 미소녀가 되었습니다.
* * *
성검과 나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계약을 하고 나서 더더욱 성검과 이어진 기분이 들어 굉장히 기분이 포근했다. 그 포근함을 느끼며 루미네스와 대화 하고 있는데 루미네스가 말하였다.
나도 현신할까?
"현신? 너 검 말고도 다른 걸로 변할 수도있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신이라는 말을 하는 걸 보니 검 말고 다른 형태로 변하려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검은 내 말이 맞다는 듯이 부르르 검신을 떨며 말했다.
후후 맞아! 사실 나는 다른 인간 모습으로 현신 할 수 있거든! 으음~ 따지고 보면 그 모습은 내 자아의 인간 형태라고 하면 될까?
성검의 말을 들어보니 성검은 기본적으로 검의 모습이 본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한다면 어떠한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자신과 더욱 편히게 대화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하려는 것이다. 성검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성검의 인간 형태가 궁금해졌다.
"그러면 현신 해 줄 수 있을까?"
후후 기대하시라~ 사람으로 현신한다!
성검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이 절로 보이는 듯한 미소를 짓고는, 빛의 형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손을 벗어나 공중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며 빛을 내던 성검은 이윽고 완전한 빛무리로 변하여 거대한 구 모양을 취하였다.
공중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던 구는 이윽고 서서히 사람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구에서 다리가 생기고, 몸이 생기고, 팔이 생기고, 마침내 머리까지 모두 생겨난 모습이 빛 속으로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서서히 빛무리가 걷어지고 가려져 있던 인영이 드러났다. 허리까지 찰랑 거리는 머리칼은 어느새 해님은 사라지고 떠오른 달이 비추는 달빛이 창가의 틈새로 길게 손을 뻗고 들어와, 이윽고 찰랑거리는 비단 같은 은발에 빛나며 아름답게 빛났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절로 미녀라는 소리가 나왔고, 눈동자는 은은한 백금색으로 빛나며 그 총명함을 슬쩍 내보였다. 적당히 부푼 가슴과 가느다랗고 매끈한 허리, 그리고 반대로 부각되어 있는 골반, 매끈하고 길쭉하게 시원하니 뻗어있는 팔다리는 환상적인 슬렌더 체형이였다.
그 모습은 창가로 흘러들어오는 달빛에 빛나며 마치 꿈과 같이 이질적이여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성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성검이 해맑게 미소를 짓고는 뒷짐을 지고 상체를 숙이며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고는 말했다.
"안녕? 내 모습이 어때 피아나?"
루미네스의 물음에 핫!하고는 멍하니 있던 정신을 차리고는 당황하며 허겁지겁 말했다.
"으, 응! 예쁘네."
"흐흥~ 그으래? 그치만 피아나도 예쁜걸~?"
루미네스는 나의 반응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 거리며 말했다. 원래라면 루미네스 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내 미모를 칭찬하면 기쁜 것이 당연했으나.. 오히려 살짝 우울해졌다. 예쁘다 라니! 아무리 지금 내가 여자라지만! 그래도! 원래 남자였는데요! 아무도 듣지 않고 믿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속으로 불평스레 중얼중얼 거렸다.
그 모습에 루미네스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장난스레 미소짓고는 말했다.
"그치마안~ 지금 피아나는 너무 예쁜 걸? 확 반해 버릴거 같은데?"
"으,으.."
저.. 저! 요망한! 저 모습은 분명히 일부러 저러는게 틀림없다! 그야 지금 루미네스와 나는 마음이 이어져 있단 말이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모를리가 없는데 저렇게 천연덕스러운 표정이라니, 심지어 지금 루미네스에게서 전해지는 감정은 기쁨이였다.
하지만 여자라고는 별로 만나본 적도 없는 쑥맥인 내가 그걸 어찌 미소녀에게 따지겠는가? 차마 따지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루미네스가 후후 하고 웃고는 말했다.
"으으~ 피아나! 너무 귀여운거 아니야? 확 잡아 먹어 버린다!?"
"힉!"
아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정신은 몸을 따라 간다고 했는가? 누가 지은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여자에 면역이 없더라도, 이렇게 면역이 없지는 않은데 말이다.. 이러면 정말 여자아이 같잖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신은 내 몸을 따라 여자아이 처럼 바뀌는 것 같았다.
루미네스는 내가 어깨를 움츠리고 헛숨을 들이키는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장난스레 말했다.
"에이~ 장난이야 피아나, 진심으로 말했을리가 없잖아?"
루미네스는 그리 말하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하긴 진짜로 루미네스가 나를 잡아먹으려 하기라도 하겠는가? 루미네스가 남자라면 몰라도, 서로 여자니까 말이다. 약간.. 진심으로 느껴지긴 했는데, 기분탓 이겠지?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올랐지만 기분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보다 감정에 예민한 내가 잘 못 느꼈을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차마 파고 들어갈 용기는 없었기에 애써 합리화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루미네스는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해맑게 웃고는 신기해 하였다. 그 모습이 퍽이나 루미네스의 모습에 어울려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긴, 루미네스는 따지고 보면 자아가 꺠어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던가? 성검이라서 그런지 머릿속에 여러 가지 지식이 채워진 채로 깨어나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신기할 것이다.
방안 이곳저곳을 통통 뛰어 다니며 구경하는 루미네스의 모습을 침대에 걸터 앉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루미네스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루미네스는 방안 곳곳을 다 보고 나서야 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얼굴이 붉어지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으,으..'하고는 신음을 흘렸다.
방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활발하게 돌아다닐 때는 이곳의 풍경에 시선이 팔려 전혀 몰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가 자신의 추태를 전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창피함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장난스레 말하고 활발하게 행동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렇게 얼굴을 붉히며 창피해 하는 모습이 더욱 귀여웠다. 이걸 갭모에라고 하던가? 도대체 중세시대에 누가 이런 말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참 이상황에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루미네스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매우 빠르게 말했다.
"그, 그그, 그러니까! 나는 뭔가 몸이 찝찝하니까! 샤워하러 갈게! 안녕!"
루미네스는 그리 말하고는 오도도 뛰어나가 샤워실로 들어가고는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이래 봬도 원래가 성검인지라 생리현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땀을 흘리지 않아 찝찝할리도 없을 텐데, 이 상황을 벋어나고 싶었는지 변명을 하고는 토도돗 샤워실로 도망간 게 귀여웠다.
잠시 뒤 샤워실에서 쏴아아, 하며 물소리가 나고는 루미네스가 신기해 하는듯이 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수치심을 잊고는 샤워실에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참 루미네스 답다며, 생각하고는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살며시 감았다.
불이 꺼진 방에서 살며시 열린 커튼 사이로 은은한 달빛이 새어 들어와 방안을 밝히고는 내 눈꺼풀을 비췄다. 내 눈꺼풀에 은은하게 서린 달빛에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나는 용사가 됐어. 용사가 되면서 여자가 되면서 걸린 저주가 풀리고 힘이 돌아온 것도 모자라서 더욱 강해지고는 반신에 이르렀으니.. 당장이라도 마왕성에 쳐들어가 7악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여신. 테르시아가 했던 말이 거슬렸다.
'분명.. 7대 죄악이라고 했었지..'
여신은 그들이 이제 7악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으로 훨씬 더 강해져 7대 죄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의 강함은 하나하나가 내가 마왕일 때의 전성기와 같다고 하니, 아무리 나라고 해서 아군하나도 없이 적진에 쳐들어가 그들을 처리 할 수는 없었다. 이 말도 테르시아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여야 한다는 가정이 존재했지만, 테르시아가 용사가 된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으니, 신중해지기로 했다.
'초월적인 존재..'
여신조차도 차마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던 존재. 그것이 어째서 이 상황에 개입하는 걸까? 그것이 원하는 목표는 뭘까? 마족들을 강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얻을 이득은 무엇인가?
'모르겠어..'
전혀 모르겠다. 아직 정보가 부족한 것도 있고, 원래 초월적인 존재란 변덕이 심한 존재다. 그런 존재를 일반인의 감각으로 이해한다는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뭘까? 지금 나는 강하다.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지금의 나를 1대1로는 이기지 못하고 설령 7대 죄악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싸운다면 이길 수 있다. 무수한 마족들을 상대하지 못 해서 그렇지 말이다. 적들은 수 없이 많고, 지금 아군은 나 혼자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이 중요한가?
'동료를 만든다.'
동료. 한 번도 만들지 않았던, 아니 만들지 못했던 동료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내가 키워준다. 그렇게 해서 훗날 내가 그들과 싸울 때 동료들은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는 없다. 그러니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동료들은 레이나, 밀리나, 루데나, 라이온, 벨리엘, 스텔라, 아리샤, 아를레아.'
그들 말고는 내게 어울리는 동료는 현재로서는 없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역대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고,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그들을 하나하나 동료로 만들고 힘을 키워준다면, 충분히 그들과 싸우는 것이 가능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강제로 동료로 끌어들이거나, 행동을 통제할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내 동료가 되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나는 그들에게 길을 제시해주면 된다. 내가 그들을 강제한다고 해서 그게 진정한 동료도 아니고 말이다. 내게는 그저 장기말 같은 존재가 필요한게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 레이나는 이렇게 도와주고.. 밀리나는 어떻게 싸우는지 알아야 겠지. 일단은 그들만.'
다른 애들은 아직 친분이 별로 없고 섣불리 다가가 봤자 경계심만 살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샤워실 문이 덜컥 열리며 루미네스가 나왔다.
"후아아.. 포근해에~"
얼굴이 헤실헤실 풀려서는 노곤노곤하게 말하는 것이 배부른 고양이 같아서 귀여웠다. 루미네스는 곱게 개져있는 여우 잠옷(도대체 왜 잠옷은 모두 동물들인 거지?!)을 입었다. 참고로 지금 나는 펭귄 잠옷을 입고 있다. 아무튼! 루미네스는 여우 잠옷을 다 입고는 자연스레 침대에 쏙 들어와 내 옆에 누웠다.
어라? 왜이리 자연스럽지? 내가 잘못된건가? 여자들끼리는 같이 자는게 자연스러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루미네스! 어째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 옆에 눕는 거야?"
"으응, 같은 여자끼리 그게 어때서~ 혹시 나를 의식하고 있는 거야?"
루미네스는 그리 말하고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척하면서 '꺄아~ 변태~'라고 작게 소리질렀다.
하아.. 그래 내가 얘를 어떻게 이기겠니. 내가 포기해야지. 루미네스와 대화해봤자 나의 정신력만 소모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루미네스의 옆에 살며시 누웠다.
"후우.. 그래 루미네스, 나도 그냥 자야지. 졸리다아.."
"응, 피아나도 잘자~ 그리고 루미라고 불러~"
"알았어, 루미 잘자."
"흐으, 나도. 잘자 피아나."
루미네스, 아니 루미의 인사를 받고는 밀려오는 수마에 나는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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