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레이나 백염[白?] 각성
* * *
확실히 레이나는 매우 강력했다. 역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역시 미숙한 점은 있었다.
"레이나."
"응!"
"마력을 운용할 때 순환 속도가 너무 느려."
레이나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가 내가 지적하자 시무룩 해졌다. 그 모습이 매우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레이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내 말을 경청해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활기를 되찾고는 나를 바라 보았다.
"확실히 위력은 강해. 하지만 마력을 운용할 때 순환 속도가 너무 느려서 기운을 모으는데 너무 오래 걸려. 만약 실전에서라면 쓰기도 전에 죽을 거야."
레이나는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운용을 빨리 할 수 있는거야?"
레이나의 말에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해 보았다.
'으음.. 어떻게 해야 마력의 운용이 빨라질까?'
나는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 부터 마기라든가 마력이라든가 여러가지 기운을 운용하는 속도나 능력은 어떠한 이들 보다 빠르고 섬세하게 운용했기에 어떻게 해야 마력 운용 능력이 강해지는지 몰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되겠네.'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레이나에게 다가가 레이나의 등에 양 손을 짚었다.
"피, 피나?"
"내가 효율적으로 마력을 운용하는 회로를 새겨줄테니까, 그 회로를 따라서 마력을 주입해 봐."
"으, 으응?"
내 말에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기야 남의 몸에. 그것도 이미 완숙한 경지에 오른 사람의 몸에 타인이 마력 회로를 새긴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다. 자칫하면 회로가 꼬여서 마력을 운용하지 못할 수 도 있고, 성공적으로 된다고 해도 부작용이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사실은 완전히 마력 회로를 각성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마력 회로를 각성한 상태에서 타인의 몸에 회로를 새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났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그들과 비교해서 마력이나 기운 등의 운용이 차원이 다르다. 어느 정도로 차이나냐면 대략 7써클의 경지를 예로 들어보자. 참고로 마법사의 경지는 1~3 써클이 비기너, 4~6 써클이 익스퍼트, 7~9써클이 마스터, 10 써클이 그랜드 마스터다. 하여튼 마스터 정도의 마법사가 운용하는 마력의 운용을 수학으로 따지자면 1+1 정도의 매우 간단한 더하기 이고, 내가 하는 마력의 운용은 미적분, 기하학 등 으로 매우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그랜드 마스터 경지의 마법사라면 곱하기 정도는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불가능한 일을 나는 해낼 수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불가능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레이나의 등에 올린 내 손에서 하얀 빛이 자그맣게 일어난다. 내가 일으킨 신성이 내 의지에 따라서 조심스럽게 레이나의 몸에 파고든다. 내가 등에서 일으킨 신성은 레이나의 등을 거쳐 팔, 몸, 다리, 머리 등 점차 모든 곳을 구석구석 순환한다. 신성으로 순환 시킨 기운으로 레이나의 회로를 살펴 보았다.
'으음, 확실히 대단하네, 회로가 튼튼하고 운용 속도나 효율도 매우 좋아.'
사실 레이나의 마력 운용은 수준급이다. 아마 같은 경지의 마법사를 데려와도 마력 운용에 관한 부분은 레이나가 압도할 것이다. 하지만 내눈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야, 앞으로 레이나와 비교도 안될 정도의 강자가 나타날테니까.'
테르시아에게 들은 말로는, 7악 이였던 이들이 7대 죄악이 되면서 예전에 내가 마왕일 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레이나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찬란한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레이나의 재능은 아직 개화하지 못했다.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미약하게나마 뿌리를 내리며 버티고 있는 재능은, 그들의 풍파를 견디기에는 아직 미약하다. 그렇기에 하루 빨리 그들의 재능을 온전히 개화 시켜야 한다. 만약 그들이 그 찬란한 재능을 온전히 개화시킨다면, 그들은 역사에 그 찬란한 이름을 남기리라.
그러므로 그들이 재능을 개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도와줘야 한다. 그들은 아직 전력으로는 부족하다. 허나, 가능성은 있다. 그 찬란한 가능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들의 재능을 찬란하게 꽃 피우기 위한 노력이 지금. 첫발을 내디딘다.
나는 레이나의 마력 회로를 완벽히 조사했다. 어떻게 해야 다치지 않고 마력 회로를 새길 수 있을지, 어떤 방식으로 새겨야 더더욱 효율적으로 될지. 부작용은 없을지. 그 모든 것을 확인하고는 마침내 계산을 마쳤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 이기에 나조차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단 한번의 실수로 레이나는 마력 회로가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서, 모든 힘을 다해서 레이나의 회로를 변화 시켜야 한다.
"레이나, 집중해 시작할게."
"응."
레이나도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장난기를 지우고 눈을 지그시 감고는 심호흡 했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나 또한 집중했다.
레이나의 마력 회로를 바꾸기 위한 생각 말고는 모든 잡념을 지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던 상념이 하나, 둘 사라진다. 아카데미가 사라진다. 훈련장이 사라진다. 성검이 사라진다. 밀리나가 사라진다. 레이나가 사라진다.
내가 지워진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던 상념들은 내가 집중을 하는 것과 동시에 점차 사라져간다. 마침내 나의 머릿속에서 남은 것은 오직 레이나의 마력 회로를 효율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 오로지 그것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의 모든 상념을 지우고 집중한다.
후아..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숨을 참는다. 내 몸에서 신성을 일으켜 레이나의 몸에 점차 투입 시킨다. 내가 일으킨 신성이 레이나의 몸에 파고 들어가 레이나의 마력 회로에 직접적으로 간섭 시킨다.
레이나의 마력 회로에 스며든 내 신성이 점차 레이나의 마력 회로와 조화를 이룬다. 경계를 하던 레이나의 마력도 점차 내 신성을 받아 들인다. 내 신성을 머금은 레이나의 마력 회로가 은은하게 빛이 나며 점점 더 튼튼 해지고, 순환이 빨라진다.
마력 회로가 강화된것을 확인한 나는 본격적으로 집중했다.
여기서 부터가 중요하다. 여기서 실패한다면 모든게 끝난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레이나의 마력 회로에 간섭하고 있는 내 신성에 힘을 가하였다. 레이나의 마력 회로는 내 신성에 의하여 점점 모양이 변해간다.
꾸드득
무언가 비틀리는 소리가 나면서, 17년의 시간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마력 회로가 점차 비틀린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신성을 사용해 조금씩 조금씩 마력 회로를 변화 시켰다.
내가 머릿속에서 그렸던 모양 대로 레이나의 몸 전체에 있는 회로가 움직인다. 조금씩 조금씩. 매우 느릿하게 레이나의 마력회로가 변해간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입에서 거친 숨 소리가 나온다. 이정도로 섬세한 운용은 처음이기에 매우 힘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점점 내 머릿속에 그려진 마력 회로와 레이나의 몸 속에서 변화해가는 마력회로가 일치해 간다. 이윽고 완전히 내 머릿속에 있는 마력회로와, 레이나의 마력회로가 일치한 순간. 레이나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렇게 까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마력의 운용이 매우 빨라지고 마법의 위력이 더 강해지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무언가가 레이나의 몸을 변화 시킨다.
나는 무엇이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 위해 레이나의 몸에 집중했다.
이건..
신성인가.
레이나의 마력 회로에 담겨진 신성이 찬란한 빛을 내며 레이나의 마력 회로를 변화 시키고 있다. 처음 알았다. 신성에 이런 기능이 있었는지. 그야 용사가 되고나서 신성을 쓴건 처음이니 말이다.
레이나의 몸은 내가 용사가 되면서 변화한 것 처럼 점차 레이나의 몸을 변화 시켰다.
수없이 많고 자잘하게 있던 마력 회로가 점차 뭉친다. 몸에 수없이 뿌리내린 마력 회로들이 신성에 의하여 합쳐지면서 더더욱 거대해지고 튼튼해 진다. 원래 레이나의 몸에는 수없이 많은 마력 회로가 있었다. 적어도 몇십만개의.
그러나 그 많던 레이나의 마력회로가 점점 뭉치고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회로를 만든다. 점차 점차 자잘한 마력 회로의 뿌리들이 마치 서로가 이끄는 듯이 거대한 하나의 회로에 합쳐지고 합쳐져서, 레이나의 온 몸을 순환하는 거대한 하나의 마력 회로를 만들었다.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레이나의 몸에 서린 신성은 레이나의 기운에 까지 영향을 끼쳐, 레이나의 불 속성 기운에 스며 들었다.
매우 새빨간 레이나의 불 속성 기운은, 신성에 의해 변화를 일으킨다. 새 빨갛기만 하던 기운이 점점 옅어지고 밝아진다. 레이나의 기운이 발 끝부터 머리까지, 점차 하얀색으로 새하얗게 물든다. 점차 점차 레이나의 몸에 영향을 끼치던 신성은 레이나의 속성을 변화 시켰다. 레이나의 변화한 기운은 새하얀 백염[白?]이였다.
신성으로 인해 변화 시킨 레이나의 속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 레이나의 몸을 백염[白?]으로 휘감았다. \
찬란한 섬광이 레이나의 몸을 스쳐지나가고, 마침내 레이나의 눈이 떠졌다.
레이나는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