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소녀가 된 마왕님-27화 (27/35)

〈 27화 〉 밀리나의 정체

* * *

­피아나…

루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거 같다. 현재, 모든 힘을 다 쓰더라도 밀리나를 이길 확신이 없다. 즉 밀리나는 반신인 나랑 동급이라는 소리다. 처음 보는 강자에 몸이 절로 끓어오르지만 그 상대가 밀리나라는 사실에 내 이성은 차갑게 식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싸워야 하나? 제압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죽여야만 하는 걸까…

밀리나는 위험하다. 정체를 숨기고 내게 접근했다. 만약 그 목적이 내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밀리나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내가 죽일 수 있을까…?

밀리나가 내게 웃어 주던 순간이 떠오른다. 장난스러운 얼굴로 내게 미소 짓는게 떠오른다.…정말, 그 모든 게 가짜였을까? 날 보며 미소 짓던 그 얼굴도. 내게 장난스럽게 대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게 대해준 것도, 모두 연기 였던 걸까? 모두 거짓말이 였을까?

복잡한 상념이 떠오른다. 원래라면… 내 주변을 위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 할 필요도 없을 텐데, 밀리나를 죽여서 얻는 이득이 너무 많은데, 어째서 나는 망설이지? 왜 밀리나를 단숨에 죽일 거 라는 판단을 못하는 거지? 지금 당장 무방비한 밀리나에게 온힘을 다해 성검을 꽃아 넣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텐데. 어째서 손이 이렇게 떨리는 거야?

"하아, 하, 하아…"

숨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더욱 거세게 위아래로 펌프질을 반복한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떨린다.

무서워.

무섭다니? 뭐가 무서운데?

밀리나를 죽이는게, 내 소중한 사람이였던 이 중 하나를 내 손으로 으스러트리는게 무서워.

밀리나를 죽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미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발이 떨린다. 어째서 나는 밀리나를 죽이지 못하는가? 나는 깨달았다. 밀리나는 이미 내게 너무 깊숙이 들어 왔다. 비록 시간은 얼마 안됐지만, 내게 진심으로 미소 지어주던 그 얼굴이, 장난스레 장난치던 네가, 너무 내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버렸다.

비록 첫만남은 안좋았지만, 밀리나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였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타고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내게 품은 감정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면 끈적한 타르 같은 기운이 내 몸을 휘감았고, 내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절로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밀리나는 내게 소중했다. 밀리나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했다.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는 기분이였다. 서늘하고 끔찍하고 끈적한 기운들 속에서 밀리나의 마음은 내게 따스한 안식을 주었다.

그런데…, 내게 누구보다 따스한 감정을 보내던 밀리나가, 하물며 레이나보다도 더 따뜻한 마음으로 내게 미소짓고 날 봐주던 밀리나가,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심지어 마왕이였던 내 시절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강하다. 위험하다. 아직 밀리나가 내게 해를 끼친건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내게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그러니 죽일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물어보면 알려주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내게 친절하게 미소지어 주지 않을까?

만약 밀리나와 함께 했던 시절이 이렇게 길지 않았다면, 밀리나가 내게 전해준 마음에 조금이라도 부정이 섞여 있었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밀리나를 적으로 배제하고 죽이려 들겠지.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밀리나를 죽인다면, 내 마음은 수없이 갈라지고 부서져 제대로 쓸 수 조차 없을 거다.

어째서 내가 밀리나에게 이렇게 호감을 느끼는 가? 단순히 내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 와서? 내게 친절한 친구여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밀리나를 죽일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 본능이 밀리나를 친숙하게 여긴다. 본능이 밀리나를 죽이면 안된다고 내게 말하고 있다. 마치 밀리나와 내가 무언가 가느다란 인연의 실로 연결 되어 있는 것만 같다.

'이건 도대체….'

밀리나와 내게 인연이라니? 그런게 있을 수가 있나? 밀리나는 던전에서 처음 만났다. 그러니까 그 전에 밀리나와 내게 접점은 없을 것이란 말이다. 하물며 그 전에 이룬 인연은 모두 내게 끔찍하다. 그런 인연을 내 손으로 끊는데, 이런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밀리나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레이나가 밀리나에게 다가갔다.

"밀리나! 너… 뭐가 이렇게 강해…?"

"후훗, 요즘 힘순찐이 유행 아닌가요? 그래서 한 번 해봤어요."

밀리나는 그리 말하고는 '뭐, 딱히 숨기지도 않았지만 말이죠.'라고 말했다. 레이나는 내게 다가와서 뭐라고 말하려다가 내 굳은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밀리나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내 시선과 밀리나의 시선이 마주 쳤다. 밀리나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내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밀리나가 내게 다가올 때마다 숨이 막혔다. 그녀를 죽일지 정해야 하는데…, 끔찍하게도 그녀가 내게 전해오는 마음은 너무나 따스했다. 그녀는 내게 천천히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제 정체를 알고 싶다면, 제 기숙사로 오세요, 피아나와 같은 기숙사예요."

"……!"

순간 눈이 크게 떠졌다. 놀란 표정으로 밀리나를 바라보자, 밀리나는 귀엽다는 듯이 미소 짓고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훈련장을 나섰다. 레이나는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이제 괜찮아…?"

그렇게 티났던 건가…, 레이나도 알아차릴 정도로 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것에 자책을 하며, 내 눈치를 봐준 레이나도 대견 스러워서 미소 짓고는 머리를 쓰다 듬어 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응!"

레이나는 내가 머리를 쓰다 듬어 주는 손길을 눈을 감고는 즐기다가 말했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

"응, 이제 많이 늦었네."

훈련장을 나오며 하는 레이나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 보니 과연, 어느새 하늘은 검게 물들어 밤이 되었다.

***

레이나는 기숙사 앞에서 헤어졌다. 기숙사에 도착한 나는 옷을 벗고는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제 정체를 알고 싶다면, 제 기숙사로 오세요, 피아나와 같은 기숙사예요."

'분명…, 같은 기숙사라고 했지…'

밀리나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자신의 기숙사로 오라고 말했다. 밀리나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한 번 침착하게 생각해 봤다.

'정말 가는 게맞는 걸까? 사실 함정이 아닐까? 나를 죽이기 위한 함정인가?…그렇다면 가지 말아야 하는가?'

마지막에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밀리나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반드시 밀리나의 기숙사로 가야 한다. 설령 그게 모두 함정이라도,

만약 내가 죽더라도.

­피아나.. 정말 갈꺼야?

나와 연결된 루미가 내게 물어왔다. 하긴 루미는 나와 연결 되어 있으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지.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한다. 밀리나의 정체는 무조건 알아 내야 한다.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

루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활기차고 천진 난만한 아이 같이 행동 하면서, 이럴 때는 눈치가 좋다니까. 루미의 침묵에 피식 웃고는 루미에게 말했다.

"걱정마, 나는 여기서 죽을 생각 없어. 내가 구해내야 할 사람이 몇명인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풉, 하긴 그렇네.

루미는 내 장난스러운 말에 픽 웃고는 다시 기운을 되 찾았다.

­암! 피아나는 절대 못죽지! 내가 지켜줄거야!

"그래,그래."

루미의 말에 대답을 하고는 수도를 잠갔다. 그리고 수건을 이용해서 긴 머리를 한참이나 털어내고, 마법으로 따뜻한 바람을 일으켜서 머리를 말렸다. 어째서 마법으로 직접 털어내지 않고 이렇게 수건으로 말리느냐면 마법을 사용해서 머리를 말리면 머릿결이 안 좋아 진다고 해서 이렇게 직접 말린다. 이것도 밀리나에게 들은 말이다.

하아…, 나는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고는 속옷을 입고, 옷장을 열었다. 옷장에는 생도복 몇벌과 동물 잠옷만 있었다.

'처참하네…'

새삼 내가 옷을 하나도 사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주말에 옷이라도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생도복을 입었다. 생도복을 입고 준비를 마친 나는 기숙사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마법을 일으켜 탐지를 사용해 보았다. 밀리나의 마기가 느껴지는 곳이 어디 인지 찾아 보니, 바로 내 옆방이였다. 밀리나는 기숙사 문 앞에 있는 거실에서 탁자에 앉아 기숙사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함정은 아닌 거 같은데….

밀리나의 기숙사 문 앞에 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루미, 들어갈게."

­응…

루미도 막상 들어가려 하자 긴장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는 기숙사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밀리나가 탁자에서 벌떡 일어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한발, 한발 다가와서 문을 열어 줬다.

철컥­

"왔어?"

"응…."

밀리나는 생긋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밀리나는 간단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는데, 바지는 돌핀 팬츠에 상의는 커다랗고 하얀 박스티를 입고 있었다.

"들어와."

밀리나는 그리 말하고는 몸을 돌려 다시 아까전의 탁자에 앉았다. 나는 밀리나의 뒤를 졸레졸레 따라 가서는 밀리나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밀리나는 내가 의자에 앉자 생긋 미소 짓고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태웠다.

"미안, 집에 커피 밖에 없어서."

"아냐, 괜찮아."

밀리나는 내게 커피를 건네주고는 나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단숨에 분위기가 진중하게 바뀌었다.

"내 정체가 궁금해?"

"응…."

밀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아한 걸음 걸이로 내게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내 정체는…."

꿀꺽­

절로 침이 삼켜졌다. 밀리나는 누구지? 3년 전에 봉인 되었던 마왕인가? 아니면 마신인가? 여러 가지 상념이 복잡하게 머리에 꼬이고 꼬여 추측을 이어가고, 밀리나의 입이 열렸다.

"네 누나야, 칼리엘."

"네?"

상상도 못한 답에 절로 얼빠진 답이 나오자, 밀리나는 푸흐흐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누나라고, 누나. 정확히는 배다른 누나라고 하면 될까?"

밀리나, 아니 이제는 누나…가 아니라 언니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나가 생긴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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