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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가 된 마왕님-29화 (29/35)

〈 29화 〉 피아나 개화[?花]

* * *

밀리나, 아니 이제 세레스와 헤어진 나는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위에 철퍼덕 누웠다.

"하, '언니'라니, 내가 언니라고 할 줄이야…"

아무리 위로하는 상황이였다고는 해도, 자연스럽게 언니라는 말을 한 것에 충격이 몰려왔다. 그제서야 나는 체감이 된거 같다. 여자가 된게 맞다고. 사실 여자가 된것에 확실한 체감이 되었냐고 하냐면 그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17년의 생활을 남자로 지냈다가, 갑자기 여자가 됐는데 체감이 될리가 없다. 어쩌면 그동안은 사실 외면해 온게 아닌가 싶다. 내가 여자가 됐다는 사실을, 이제는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동안 내가 행동한 모습을 보면 확실히, 고의가 느껴질 정도로 남자처럼 행동한 거 같기는 하다. 여자가 된 몸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억지로 여자처럼 말하려고 하면 억눌렀다. 여자 같이 행동하는 것도 고의적으로 의식해서 남자 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나는 여자가 됐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거 같다.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어서, 온 힘을 다해서 남자처럼 행동했건만.

감정이 격해지면, 그것도 통제하기 어려운가 보다. 아까 자연스럽게 언니라는 말이 나온 걸 보면 말이다. 세레스를 봤을 때, 그리고 세레스가 사실을 밝혔을 때, 무덤덤한 표정 뒤로 그늘진 눈동자를 바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때 내가 아버지에게 당한 일이 생각 나서.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 상처를 내가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그마한 흉터 정도로는 만들 수 있었기에. 어쩌면 세레스에게 위로하면서 했던 말이 모두 내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위로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억누르고, 억눌렀던 게. 터져나오던 감정의 화산 처럼. 같이 터져 나와서, 나도 모르게 내게 스며 들었다. 어쩌면 이미 늦은게 아닌가 싶다. 내가 남자였다는 사실이 말이다.

누군가 정신은 육체를 따라 간다고 말했던가?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였던 내 정신은 몸이 여자로 변하면서 점점 여자의 몸에 동화 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예전의 나를 찾을 수는 없겠지. 설령 내가 남자로 다시 변한다고 해도. 그건 예전의 내가 아닐 거다. 이미 여자의 정신과 남자의 정신이 뒤죽박죽 섞인 무언가겠지. 나는 내게 질문해 보았다.

두려운가?

"응. 무서워. 내가 나를 잃어 버릴까봐. 변한 나는 더 이상 나라고 할 수 없을 까봐. 혼돈이라는 굴레 속에서, 그 어떤 쪽의 선택도 받을 수 없을까 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구나. 두려웠던 거구나. 나는 내가 점점 여자에 동화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내가 남자로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여자로 변했지만, 내 본질은 남자 였기에. 자연스레 여자가 되길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였다. 나는 여자가 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어설프게 여자가 됐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 했던 것이였다. 혹시라도 여자가 되는 것을 받아 들였다가는 정말로 내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를 것 같아서.

정신마저 여자가 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억누르고, 억눌러서,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게, 최대한 남자답게 행동하려고 했다.

'참…,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었다. 그 끔찍한 과거를 겪고도, 고작 성 정체성에 갇혀서 나는 두려워 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이 되는 것에 두려워서. 그저 최선을 다해 외면 했을 뿐 이다. 만약 여자도, 남자도 아닌 무언가가 되는 것이 두렵다면, 확실히 둘 중에 하나가 되면 되는 것 아니곘는가?

현재 여자로써 변해가는 내 정신을 받아 들이는 거다. 확실히 여자가 된다면, 내 정체성을 거부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여자가 된다고 해서, 내 생각이 모두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나의 신념.

나의 생각.

나의 취향.

나의 행동.

비록 여자로써 변한다면, 많은 것이 변화하겠지만. 굳이 모든 것을 변화 시킬 필요는 없다. 내 정신이 여자가 되더라도, 남자로서의 나는 남아 있다. 그저 행동 거지가 달라질 뿐. 내 몸은 확실히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

'남자랑 사귀고, 결혼하고, 그런 짓을 하라고…? 우욱….'

아니 사실 남자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게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역겹다. 남자랑 그렇고 그런짓을 하는 것과, 자살하라고 하는 것 중에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자살하리라. 아무리 내 정신이 여자로 변한다고 해도, 암컷타락은 싫단 말이다! 몸이 여자라고는 해도, 나는 확실히 남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건전한 여성 취향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아니… 솔직히, 여자로 변했다고 남자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하면, 그게 게이지 뭐냔 말이야….'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절대로 남자랑 사귀지 않을 거다. 차라리 혼자 늙어서 죽고 말겠다.

'아, 이제는 안 늙는 구나.'

생각해보니 용사가 되어서 반신이 되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반신이라고는 하나, 신은 신. 필멸자의 굴레를 벗어나면서, 더 이상 노화라는 현상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늙어 죽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남자랑 그렇고 그런짓을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짓을 겪을 바에야, 평생 홀로 살고 말거다.

"흠흠…."

아무튼 잠시 이상한데로 굴러 갔던, 정신을 원래대로 돌리고, 생각하고 있던 주제를 떠올린다.

나는 남자가 될것인가? 여자가 될것인가?

남자는 될 수 없다. 이미 몸이 여자이기에, 내가 아무리 남자처럼 행동하고 판단해도, 나는 여자다. 그렇다면 여자가 되는 것은? 사실 완벽히 여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방금 내 정체성을 여자로 바꾼다는 소리를 했지만, 사실 남자로써의 정신이 남아 있는데, 온전한 여자가 된다니,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렇다면 내 성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나는 남자가 되야 하는 것일까, 여자가 되야 하는 것일까.

'아니지, 아니야….'

틀렸다. 애초에 대전제부터 틀렸다. 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라니?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나는 피아나다.'

그래, 다 소용 없는 소리였다.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나는 피아나다. 나는 나 자신 그 자체다. 성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나는 피아나 이기에.

'그렇다면… 상관 없겠지.'

내가 피아나라면, 여자처럼 정신이 변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남자가 아니더라고 해도. 설령 여자가 아니더라고 해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이 된다고 해도.

그 어떠한 쪽에도 선택 받지 못한다고 해더라도.

내 자신이 피아나로 남을 수 있다면, 결국 그것은 나 자신이다.

어쩌면 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아니면 완전히 여자가 되야 한다고. 미래의 나는 지금 내 모습을 보며 그렇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이상 후회할 생각은 없다.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를 할 필요는 없다. 비록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내 선택을 바꾸지 못하기에. 한번 선택한 일은 다시 한 번 기회가 오지는 않는다. 아무리 내가 선택한 일에 후회를 하고, 과거에서 허우적 대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최선을 다한다. 어떠한 선택을 했더라도, 그것은 내 의지이기에. 그것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기에. 나는 나를 믿고 내가 선택한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니까… 받아 들이자.'

촤르르르르륵­

여자의 정체성을 꽉 묶어서 봉인하고 있던 사슬이, 점점 풀려난다.

촤르르륵…­

점점 사슬은 느슨해지고, 내가 억눌렀던 정체성이 나를 변화시키려 한다.

이 일이 내게 어떤 변화를 만들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내 정신마저 잃을지도 모르겠지. 어쩌면 기억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현재의 기억을 전부 잊어버리고 완전히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확실히 내가 완전히 여자로 변할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내가 여태까지 쌓아 왔던 정신력은 그리 약하지 않거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억누르고 있던 사슬을 완전히 부서 버렸다.

촤르륵…콰앙—!!

여자로써의 정체성은 엄청난 속도로, 현재 나의 정체성에 다가와 그 몸을 섞었다. 점점 내 생각이 변화해가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 이겠지.

두렵다.

너무나도 두렵다.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이, 내가 나로써 느낀 감정의 마지막일 까봐.

너무나도 두렵지만, 나는 버텨낸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믿기에.

정체성이 섞이면 섞일 수록, 내 몸에서 빛이 점점 강해졌다. 그 빛은 이윽고 나를 전부 집어 삼켰다.

이 현상이 나는 무엇인지 알고 있다.

개화[?花]

개화는 정신으로써 크나큰 깨달음을 얻어 몸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용사가 되고 나서 환골탈태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개화[?花]는 사실 이렇게 흔히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일 평생 개화를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은 엄청난 천재라는 뜻이며, 이는 미래가 보장 된것과 다름 없다. 애초에 개화라는 것이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이는 평생을 수련해도 개화 할수 없으며, 어떤 이는 그저 책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개화를 한 사람의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몸이 변한다. 더 이상적인 체형으로, 여기서 몸이 변한다는 것은 외형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 속에 가지고 있는 회로가 더 알맞는 형태로 변한다. 또한 외모가 변한다. 막 눈, 코, 입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가 더 좋아진다. 또한 머리색이나 눈동자의 색이 변한다.

그러니까 현재 내 머리색과 눈동자의 색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칠흑같던 머릿결은 적색의 기운을 머금은, 붉은 금발로 변하였다. 피처럼 붉던 눈동자도, 점점 연해져서 적색이긴 하지만, 금색으로 빛나는 특이한 눈으로 변하였다. 인상은 약간 날카롭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얼굴이 고압적이지는 않다. 날카로운 인상은 어찌보면 별로 좋지 못한 인상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내 인상은 다르다. 마치 도도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전과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운이 다르다고나 할까. 어느덧 완전히 변한 모습을, 아공간에서 거울을 꺼내 비춰 보았다. 적색의 느낌이 나는 금발과, 금빛과 적빛이 섞인 특이한 눈동자, 약간 도도해 보이는 이미지 까지. 완전히 변한 모습에서, 어느덧 마왕 시절의 모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이 이 전과는 완전히 달라서. 과연 왜 개화[?花]라고 불리는지 알거 같다.

완전히 변해 버린 내 모습을 바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나는 내 자신이라고. 더 이상 겉모습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그날 피아나는 한 송이 꽃으로 완전히 개화[?花]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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