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루데나는 파르페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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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잠든지 모르겠지만, 거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즐기며 눈을 뜨니,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개화로 인해 변했던 내 적금발은, 다시 칠흑같던 검은색으로 변했고, 눈동자도 루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색으로 변했다.
좋은 아침!
"응, 루미도 좋은 아침."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밝고 힘찬 루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지개를 쭉 피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물 모양 잠옷을 벗고는 터벅터벅 걸어가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서 간단하게 샤워하고는 생도복을 입고 길을 나섰다.
음? 어딜 가는 거냐고? 이번에는 옷을 사려고 한다. 옷장에 있는 옷이라고는, 동물 모양 잠옷과 생도복 밖에 없었기에, 사복이 필요 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내부에는 그 크기가 넓은 만큼 정말 여러가지 시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는 당연하게도 옷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내가 옷을 사기 위해 간단한 생도복을 입고 거리를 거닐자, 수 많은 생도들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야, 저기 저 사람 용사 아니야?"
"맞네, 와 외모 미쳤다."
"크큭, 진짜로 외모가 미쳤긴 하지."
나를 품평하는 듯한 생도들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긴 했으나, 솔직히 그들에게 신경쓰는 것도 이제는 시간이 아깝기에,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는 아공간에서 갈색 로브를 꺼내, 뒤집어 썼다. 아카데미에 입학 하기 전에 상점에서 샀던 로브였다.
그러고보니, 아카데미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여자가 되고, 입학 시험 치루고, 환상으로 실전 연습을 하며 드래곤도 썰고, 이레귤러 던전도 클리어 하고, 용사가 되고, 던전의 보스인줄로만 알았던 세레스가 사실 내 누나 였고.
불과 이 모든 일이 일어난지 2주도 채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는 절로 아찔해졌다. 뭐지? 미친거 아니야? 사실 누군가 내 운명을 조작하고 있을지도 몰라.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여자로 변한 뒤 내 인생은 블록버스터 였다.
앞으로도 막 사건 사고가 터지는거 아니야?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우연이겠지. 설마 계속 그런일이 일어나겠어?'
뭔가 소설 속 클리세가 제대로 박힐만한 대사를 한것 같지만, 애써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외면했다.
어느새 옷 가게에 도착한 나는 옷 가게 건물을 한번 스윽 둘러 보았다. 가게는 딱 봐도 크기가 더럽게 커서, 어찌나 큰지 작은 운동장 크기 였다. 또한 안에는 옷이 가득 진열 돼 있었는데, 도대체 몇벌이나 있는지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압도적인 옷의 물량 공세에 잠시 벙쪄 멍하니 있으니, 직원이 내게 다가와 안내를 해주겠다고 말하였으나, 나는 매우 귀찮았기에 괜찮다고 말하고는 내가 입을 사복을 둘러 보았다.
옷을 둘러보는데, 한눈에 내 시선을 잡아 끄는 옷이 있었으니, 빨간색 드레스에 프릴은 치렁치렁 달려 있고, 보석이 가득 붙어 있어서 조명에 반짝반짝 거리는 드레스 였다. 나는 그 드레스를 보고는 소름이 돋아 팔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내가 여자로 변한 것을 인정한다고는 해도, 저런 미친 옷은 절대 입기 싫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원래 여자였다고 해도, 저런 옷은 입기 싫었을 거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른 옷을 찾아 보았다.
이 세계에는 옷이나 과학이 이상하게 매우 발달해 있었기에, 옷은 정말 종류가 다양했다. 간단한 면티에, 티셔츠, 자켓 등등. 도대체 왜 이렇게 옷이 발전해 있는데, 중세 시대 인지 이해가 안갔다.
'아니, 돌핀 팬츠까지 있네….'
세레스가 입은 모습은 봤지만, 막상 내 눈으로 돌핀 팬츠를 보니 참 어이가 없었다. 돌핀 팬츠는 솔직히 여자가 되면 매우 입어보고 싶었다. 여자들이 입는 돌핀 팬츠는 매우 편하고 디자인도 예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남자였지만, 지금은 겉모습이라도 소녀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핑크색 돌핀 팬츠를 집어 들었다.
사실 다른 색을 사고 싶었는데, 핑크색 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흰색 면티라던가, 검은색에 후드가 달린 옷, 긴팔 저지, 반바지도 여러개 샀다. 그리고 트레이닝복도 있었는데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반바지에 반팔에다가 집업까지도 있어서 디자인도 그렇고 매우 편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쇼핑을 마친 나는 옷들을 주섬주섬 들고가서 카운터에 계산했다. 카운터에서 옷을 계산하는 직원은 옷을 스윽 살펴보더니 말했다.
"3000 pt 입니다."
솔직히 3000 pt 가 어느 정도인지 나는 몰랐지만, 내 생도 카드에 30만 포인트가 있는 걸 보니, 나름 합리적인 가격인거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도 카드를 꺼내 내미니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생도 카드를 보다가, 내 이름을 발견했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다급하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계산 끝냈습니다!"
뭐가 미안하다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카데미에는 귀족들이 매우 많다. 아무리 귀족들이 설칠 수 없게 아카데미에서는 평등을 주장하지만, 꼬장을 부리는 귀족들은 어딜가나 하나 둘 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쓸데 없는 자존심이 더럽게 높은 그들이라면 직원의 태도는 귀족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 였으나, 나는 그들과 똑같이 꼬장을 부릴 생각은 없었기에 적당히 인사를 받아 주고는 옷 가게를 나왔다.
옷은 모두 그녀가 준 종이백에 넣고는, 다시 로브를 푹 쓰고는 길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길거리를 걷다가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디저트 가게에 절로 시선이 끌렸다. 오랜만에 나오기도 했고, 여자가 된 영향인지는 몰라도 달달한 게 매우 떙겼기에, 나는 디저트 가게로 들어 갔다.
디저트 가게는 과연 인기가 매우 많았는데, 어찌나 생도가 많은지 자리가 꽉 차 있었다. 나는 어디에 앉아야 하나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익숙한 뒤통수를 확인하고는 저기에 앉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미소 짓고는 카운터에 다가가 파르페를 주문하고는 익숙한 뒤통수로 향했다.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서 앞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안녕 루데나?"
"어, 응? 어라?"
익숙한 뒤통수는 루데나 였다. 루데나는 파르페를 먹고 있었는데, 그 작은 입에 어떻게 저게 다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파르페를 숟가락으로 야금야금 퍼먹고 있었다. 루데나는 나를 만날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나를 바라보더니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이 몰래 사료 훔쳐먹다가 들킨 토끼 같아서, 웃음이 절로 흘러 나왔다.
"아, 으응, 안녕 피아나…."
루데나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가 웃으니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 거렸다. 고개를 푹 숙인 루데나의 귀를 바라보니 새 빨갛게 달아 올라 있는 걸 보니 혼자 파르페 먹다가 걸린게 어지간히 부끄러웠나 보다. 그 모습이 귀여워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파르페 좋아해?"
"으, 으응."
루데나는 고개를 숙인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좋아하니까 저렇게 많은 양을 먹고 있는 거겠지? 저번에 레이나랑 왔을 때도 파르페 먹는 모습을 봤는데, 지금도 있는 걸 보니 정말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다.
"빨리 먹어, 다 녹겠다."
"아!"
루데나는 내 말에 고개를 번쩍 들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르페를 먹기 시작했다. 루데나는 어느새 부끄러움도 있었는지 파르페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 거리고 있었다.
"헤헤."
루데나는 파르페를 한입 먹자 말자, 헤실헤실 웃더니 그 작은 입으로 옴뇸뇸 하며 부지런히도 파르페를 먹었다. 파르페를 한입 먹고는 새삼 행복해 하는 표정으로 파르페를 먹고 있는 루데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주문한 파르페도 나와서 루데나를 따라 나도 파르페를 먹기 시작했다.
달달한 바닐라와 그 위에 뿌린 초코 시럽이 어울러져 매우 달콤했고, 딸기는 반대로 매우 새콤해서, 파르페를 질리지 않게 해주었다. 또한 파르페 위에 쌓인 과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달달함을 즐기고 있어서, 매우 달콤했지만, 질리지는 않는 여러가지 단맛을 내게 선사해주었다.
나는 파르페를 한입 먹고는 부르르 떨며 빠르게 파르페를 먹기 시작했다. 열심히 파르페를 먹던 나는 "앗!"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이 몸은 먹을 것을 너무 좋아 하는지, 맛있는 것만 먹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게 문제 였다. 오늘도 허겁지겁 파르페를 먹다가 정신을 차린 나는 루데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눈앞에 벌어진 참상에 입을 쩍 벌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 트렸다.
땡그랑
수저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나는 차마 주울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루데나를 바라 보았다. 루데나는 어느새 다 먹었는지 제 몸만한 파르페의 빈 그릇이 옆에 3개나 쌓여 있었고, 또 다른 파르페를 시켜서 옴뇸뇸 먹고 있었다.
도대체 저 자그마한 몸에 저렇게 많은 파르페가 들어가는지 절로 의문이 생겼다. 심지어 아직도 행복한 표정으로 빠르게 퍼 먹는걸 보면, 저거… 아직 배부르지도 않는거 같은데….
루데나의 먹방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도 파르페를 먹었다.
어느새 서로 파르페를 다 먹고 났을 때는 루데나의 옆에 10개의 다 먹고 빈 파르페의 그릇이 쌓여 있었다.
루데나는 순식간에 파르페를 해치우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살짝 튀어나온 제 배를 통통 튕기다가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였다. 이제와서 부끄러워 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와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맛있었어?"
"응…"
루데나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같이 먹을래?"
"응? 아, 응! 같이 먹을래!"
루데나는 내 말에 눈을 빛내고는 고개를 쉴새 없이 끄덕끄덕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흐뭇한 아빠 미소…, 가 아니라 엄마 미소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에도 같이 먹자."
"좋아…!"
그녀는 나랑 같이 먹는게 그리고 기쁜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르페를 계산하고는 디저트 가게에서 나온 나는 루데나를 바라보며 팔을 흔들었다.
"잘가, 오늘 귀여웠어."
"윽…!으응 피아나도 잘가."
루데나는 내게 손을 흔들며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고는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참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생각하며 미소 짓고는 나도,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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