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소녀가 된 마왕님-32화 (32/35)

〈 32화 〉 첫 눈

* * *

신성은 마나랑 다르다.

신성은 본질적인 힘 부터 마나와 다르게 이질적인데, 애초에 신성 자체가 초월자가 쓰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반신이다. 비록 초월자라고는 하나, 아직 불완전한 반쪽짜리 초월자라는 소리다.

따라서 원래라면 내가 신성을 쓰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성을 쓸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역시 성검을 뽑은 것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정말 여러가지 신이 있다. 일단 인류의 편 여신 테르시아, 마신 카이드닉스 또는 외신이라 던가. 외신은 그냥 외부에서 온 신이라고 보면 된다. 음…그러니까, 다른 차원에서 넘어 온 신이라는 소리다.

뭐 외신은 딱히 중요한 게 없으니까, 넘어 가고.

내가 신성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용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은 초월자들 보다도 더 격이 높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신의 사도가 되어서 신의 일부나마 그 편린을 받아 내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쓰는 신성은 여신의 힘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니 여신이 그렇게 강하면, 직접 현현[??]하면 되는거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가지기 쉽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건 불가능 하다.

여신은 격의 존재가 높다. 그러니까 그런 아득한 존재가 현현을 하려면 힘이 제한된다는 소리다. 아득한 여신의 격이 이곳에 직접 현현하면서, 그 격이 이곳에 맞춰진다는 소리다.

그 외에도, 여신이 직접 현현하면 그 후폭풍만으로도, 나라 하나는 우습게 사라진다.

아니 그러면 마신이 현현하면 세상이 멸망하는거 아닌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의외로 마신은 마족과 관련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기를 만든 것은 마신이 맞지만, 마신이 마족에게 인류를 멸망시키라고 한적은 없기 때문이다.

마신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저 중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저 흥미 위주로 움직일 뿐이다.

하여튼 본론으로 넘어와서, 여신의 사도가 되면서 얻은 편린으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은 신성[??]이다. 반대로 마신의 사도가 된다면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은 마성[??]이다. 마귀와 성스럽다는 단어가 합쳐져 참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원래 마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레귤러 이므로 쓰는 기운도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다.

하여튼 내가 왜 신성이 무엇인지 주저리주저리 말을 길게 늘어 놓았냐면, 결론은 요컨데 이거다. 신성은 마나랑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소리다.

당연한 게, 초월적인 격을 지닌 존재의 편린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모든 생도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완전히 다르다.

그 성능부터, 운용 속도, 효율, 파괴력, 등등. 또한 이정도 되면 신성에는 특별한 권능을 지니고 있다. 이건 마성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용사가 되고 난뒤에 신성을 얻고 나서, 단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다. 그야… 뭐 이리저리 바빴으니 말이다.…아무튼! 요컨데 연습이 필요 하다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내 전용 훈련실로 와 있다.

저번에 레이나가 개인 훈련실을 사용한 것을 보고, 그러면 나도 개인 훈련실이 있겠구나, 싶어서 기숙사를 관리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위치를 알려 주고는 카드 키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과연 아카데미 만만세다. 기숙사를 관리하시는 분께 물어본 기억을 바탕으로 길을 찾아가니,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 건물에는 문 하나가 달려 있고, 창문하나 없는 밀폐 건물 이였는데, 문에 있는 네모에 카드 키를 가져다 대니까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좌우로 열리더라.

훈련실은 정말 신기했는데, 어떤 재질인지 모를 광물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튼튼했고 보기도 좋았다. 넓디 넓은 건물의 중앙으로 다가가니, 내 눈 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저번에 세레스와 레이나가 사용한 게 이거 인가?

갑작스레 떠오른 창에 고개를 갸웃하며 자세히 보니, 정말 세부사항이 조절 가능했다.

사막, 바다, 숲, 설원, 마경 등등. 지역을 고를 수 있는 것 부터, 온도와 습도. 기후까지 조절이 가능했다. 심지어는 마물까지 소환할 수 있었는데, 마물의 수준을 보아하니 나에게는 전부 잔챙이일 뿐이라, 도움이 안될 거 같아 마물은 소환하지 않기로 했다.

허공에 손을 가져다 대고, 새하얗고 긴 손가락을 허공에 유려하게 휘저으며 설정을 마쳤다.

설정을 적용하겠습니까? [Y/N]

Y를 클릭하니, 점점 훈련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딱딱한 광물에서 푹신푹신한 눈으로, 천장에서 훈련실을 밝히던 빛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조각으로. 따뜻하던 공기는 살을 에는 추위로 변하였다.

그렇다. 나는 설원을 고른 것이다.

왜 설원을 골랐는가. 설원을 고른 것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마경에 쳐박혀 있다 보니, 설원을 본적이 없어서 신기해서 그럴 뿐이다…. 크흠.

아무튼 처음 본 설원은 무척 신기했다. 하늘에서 방울방울 내리는 새하얀 눈들과, 무릎까지 차오르는 푹신한 눈더미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온통 새하얀 것이, 시커멓고 잿빛이 가득하기만 하던 마경과는 완전히 비교가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눈도 처음 봤다. 그야 마경에는 눈이 내릴리야 만무하고, 인간계로 갔을 때도, 항상 날이 더웠단 말이다.

그래서 일까? 처음 본 눈은 너무나도 새하얀 순백이여서, 내 시선을 매료시켰다.

그 새하얀 순백에 나의 질척질척한 검은색이 묻어 날까 약간 두려웠지만, 다행히도 순백의 눈은 나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았다.

나는 상체를 살짝 숙여 소복히 쌓인 눈을 손으로 퍼 보았다. 처음 만져본 눈은, 그 생김새와 다르게 너무나도 차가웠다. 그 생김새는 너무나도 새하얗고 따뜻해 보여서, 눈도 따뜻할 것만 같았건만, 그 겉과 속은 어찌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외면과 내면이 너무나도 다른 것이 마치 나와 같아서, 씁슬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여튼 눈의 촉감은 되게 보들보들했다. 손으로 만지니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하얗디 하얀 자취를 남기는게 매우 예쁘기도 했고, 촉감도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얼마나 눈을 만지작 거렸을까? 시간이 벌써 순식간에 흘러갔다. 한참을 눈을 만지던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지금 할 일은 매우 부끄럽기에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먼저 내 손에 있는 눈을 털어내고 머리에도 수북히 쌓인 새하얀 눈을 고개를 도리도리 해서 치웠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자세를 잡았다. 먼저 상체는 살짝 아래로 내리고 무릎을 스프링 처럼 접는다. 그 상태로 앞으로 살짝 몸을 기울인 다음 숨을 크게 들이 쉬고는 준비를 한다.

이윽고 스프링처럼 접었던 다리를 쭉 폄과 동시에 상체를 앞으로 숙인다. 하체에서 일어난 운동량은 내 다를 타고 허리, 이윽고 몸 전체에 퍼져 내 몸을 땅으로 부터 밀어 냈다.

그 상태로 내가 상체를 숙인 탓에 나의 몸은 눈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그렇다. 사실 눈에 다이빙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솔직히 눈 하면 로망이 아니 겠는가? 사실 엄청나게 하고 싶었는데, 눈을 본적이 없을 뿐더러 주변에 사람도 있으니 부끄러워서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사람도 없으니 합법 아니겠는가…!

눈에 다이빙을 하자 처음으로 느낀 것은 차가움 이였다. 그 다음은 푹신푹신함, 그 다음은 포근함 이였다.

내가 다이빙 하자 보들보들한 눈이 겹겹이로 쌓여 나를 붙잡는데, 그게 굉장히 기분이 좋다. 그…뭐라고 해야하나… 보들보들하면서도 푹신푹신한? 또한 이래 뵈도 반신의 육체이기에 추위도 느끼지 않아서, 서늘한 눈의 느낌도 그저 시원한 느낌 밖에 주지 못해서, 더더욱 기분 좋았다.

또한 새하얀 눈 속에 포옥 파묻혀 있으니, 굉장히 안정감이 느껴졌다. 세상이 고요하고 푹신푹신한 눈이 내 온몸을 감싼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느낌과 함께 보드라운 눈이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양 팔과 다리를 쭈욱 펴고는 좌우로 반복해서 휘저어 주었다.

이윽고 모두 휘젓고는 몸을 일으켜, 내가 만든 흔적을 바라 보았다.

새하얀 눈에 내가 만든 사람 모양이 떡하니 있는 것을 보니 그 모습이 웃겨서 피식 하고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왜 이곳에 왔는지를 상기 시키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러자 머리칼 위에 소복히 쌓여 있던 눈이 흩날리며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겼다.

'정신 차려야죠…!'

휴… 하마터면 정신을 못차릴 뻔 했네요… 이런 부분에서는 은근 약하단 말이죠…, 나는 그렇게 중얼 거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몸이 여자가 된 영향일까? 하는 행동이 조금 유치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그래도 미소녀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귀여워서 다행이다.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는 집중을 한다. 어떻게 신성을 이끌어 내야 할까?

신성을 이끌어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몸 안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폭발적으로 치솟는다.

그것은 파괴적이지만 온화하고, 따뜻하지만 서리처럼 차갑다. 묵직하지만 가볍고, 뭉툭하지만 날카롭다.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단어의 조합들이 만들어진다. 신성은 정말 이질적인 기운이였다.

도대체 하나의 기운에 얼마나 많은 속성이 담겨 있는지….

단 하나 확실히 말하자면, 아직 신성의 힘을 모두 이끌어 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설마 지금 나의 경지로도 안되다니… 초월자가 된다면 가능할까?

어쩄든 신성을 몸에서 일으켜 손으로 옮겼다.

그러자 마치 신성은 그 자리에서 생겨났다는 듯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새하얀 빛을 내었다.

신성은 뭐라고 할까… 마나랑 완전히 다르다. 본질적인 것이 달라서 그런걸까? 신성은 마나랑 다르게 몸에서 순환하지 않고, 몸 전체에 녹아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대로 움직이면 순식간에 그 행위를 마친다.

그야 말로 엄청난 이점이다. 만약 마법사가 신성을 얻는다면, 그자에게 영창은 무의미 할것이고, 캐스팅 시간조차도 무의미 하다. 검사가 신성을 얻는다면, 검기나 몸의 할용도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원래 검사가 몸을 강화하려면 오러를 몸 전체에 순환시켜야 한다. 당연하게도 순환 시키는 데는 매우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며, 이는 전투에서 시시각각 정신력을 깎아 먹는다. 또한 검기도 마찬가지다.

검기는 자신의 몸이 아닌 외부에 직접 둘러야 하므로 더더욱 힘들다. 하물며 오러를 압축까지 시켜야 하는데 오죽 힘들겠는가. 허나 신성은 다르다. 매우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기에 정신력을 깎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상대와의 싸움에 더더욱 집중 할 수 있다.

또한 신체의 상승폭이나 검기의 운영능력 자체가 달라지기에, 오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근데 나는 마법사와 검사. 즉 마검사이니 이 활용도를 완전히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단 나는 손에 신성을 동그란 구 모양으로 압축 시켰다.

신성을 몸에서 끌어내 손에서 압축시키고 압축시켜, 점점 동그랗고 커다랗게 만든다.

황금빛이 살며시 녹아 들어 있는 흰색의 구는 내 손아귀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며, 주변의 눈들을 휘몰아 치게 만들었다.

그 순간 신성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것만 같다.

나는 그 신성의 구를 바라 보며 따스함을 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황금빛으로 빛나는 흰색의 구가 점점 붉게 빛났다.

그것은 마치 작은 태양 같았지만, 그 빛은 강렬하지 않고 따스하다. 마찬가지로 온도도 그저 따뜻하기만 한게 아니라 포근한 느낌이다.

나는 그 작은 태양을 조심 스레 손에서 띄워 올렸다.

내 손위에서 두둥실 떠오른 작은 태양은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가 다시 천천히 내려 온다.

점점.

천천히.

조금씩.

더.

이윽고 서서히 땅에 다가가다가 땅에 닿았을 떄.

신성의 구를 중심으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눈부신 빛이지만 어째서인지, 그 빛은 내 눈을 아프지 않게 하는 따스한 빛이여서, 그 빛을 정면으로 보고 있어도 눈이 따갑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그 빛은 신성의 구를 중심으로 설원 전체를 집어 삼켰다.

따스한 빛이 터져나오고, 신성의 포근함을 느꼈을 때.

그리고 점점 그 빛이 사그라 들었을 때.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급한 몸놀림으로 주변을 휙휙 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하하…"

내 주변에 가득 차 있던 눈더미들은, 흔적도 없이 녹아 메마른 땅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윽고 땅에서는 푸른 풀이 한포기 자라나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라 땅에서 풀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무가 자라고, 풀들이 자란다.

눈이 휘몰아치는 영향으로 시커멓게 하늘에 쌓여 있던 구름도 사라져 버려서, 따스한 태양히 설원을 비추었다.

이윽고 설원은 하나의 울창한 숲이 되었다.

눈이 녹아 내리며 생긴 물은 어딜 갔는지 모르겠으나, 적당한 양의 물이 땅으로 들어가, 양분의 역할을 해줬다는 것은 알겠다.

설원의 흔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밝고 울창한 숲이 된 그곳에서 나는 멍하니 내 손을 바라보며 중얼 거렸다.

"파괴가 아니라 창조를 하는 힘이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픽 웃었다.

"그것 참 필요 없네요…."

나는 자조하며 씁슬하게 웃겼다. 파괴가 아니라 창조라니. 그런 기운이 내게 맞기는 한단 말인가? 나는 오히려 모든걸 파괴하는 힘을 얻어야 마땅할텐데….

한 때 모든걸 파괴 했던 악[?]이 생명을 만들어 내다니….

그건 너무나도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나에게 창조란 필요 없는 단어라고 생각 했는데 말이다….

허나, 겉으로는 부정하더라도 속은 알고 있었다.

내심 파괴가 아니라 창조하는 힘을 얻어서 기쁘다고.

더 이상 부수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내 힘으로 아군을 지켜낼 수 있다고.

아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힘이 필요 없다며 자책하는 소녀의 표정은.

그 어떤 때 보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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