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레이나에게 킁카킁카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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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은 유수처럼 흘러가 언제 시간이 다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토너먼트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그 일주일 동안 내가 한것은 의외로 별거 없었다.
훈련장에서 신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연구한다던가, 집에서 뒹굴 거린다던가… 루나랑 파르페를 먹는다던가… 루나라는 애칭은 루데나랑 친해지면서 서로 애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나는 루나, 루나는 피나.
루나라고 부르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 하는 모습은 굉장히 귀여웠다.
음음.
그 외에는… 루미랑 얘기를 한다던가?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별거 안하긴 했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미 나는 완숙한 경지에 들어서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경지를 올리는 것은 무리란 말이다.
…변명 아니다. 아무튼 어쩔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란 말이다!
하여튼 본론으로 넘어와서 이번 토너먼트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 수있다.
원래 토너먼트라고 하면, 하나의 학년이 모두 토너먼트에 참가해서 우열을 가리는게 맞지만, 이번 토너먼트에서는 일반 생도 따로, 유망주들 따로 토너먼트를 치룬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냐면 매우 간단하다. 우리 유망주들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번 유망주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처음 볼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이 아무리 천재라고는 해도 유망주들 앞에서는 무의미 한것이다.
그래서 우리 유망주들은 따로 토너먼트를 치룬다.
유망주들이 토너먼트를 치룰 때는 그 방법이 참 특이한데, 그냥 순서대로 싸운다거나, 그런게 딱히 없다. 이번 유망주들은 9명이기 때문에 토너먼트 순서로 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면 부전승을 만들면 되는거 아닌가 싶긴 한데, 아카데미 측에서 고집이 참 쌔다.
모두가 골고루 싸워 봐야 제 실력을 모두 발휘 한다던가?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유망주들의 고유 능력이 모두 다른 만큼, 분명히 상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기대에 찬 눈으로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참고로 입을 수 있는 옷도 생도복이다.
토너먼트 시험까지 치루는데, 굳이 생도복을 입어야 하는가… 싶었지만.
사실 생도복은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는 몰라도, 그 어떠한 옷 보다도 착용감이 좋았고, 찢어지면 자동 수복 기능과 약간의 보호 마법까지 걸려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납득했다.
도대체 생도복에 얼마나 돈을 갈아 넣은건지… 이런 생도복이 하나도 아니라 수백, 수천 개 일텐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짐작 조차 하기 싫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토너먼트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토너먼트는 커다란 경기장에서 치루어 진다. 또한 토너먼트를 치루는 동안에는 외부인이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와서 직접 구경 할 수 있다.
제국의 유망주들의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사기를 높여 준다는 뜻에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던가?
확실히 관객들이 그 모습을 본다면 희망을 얻기야 하겠지만, 뭔가 남들의 구경거리가 된거 같아서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다.
토너먼트가 치루어지는 경기장에 처음 입장한 내 생각은, 경기장이 참 더럽게 크다는 거다. 도대체 경기장이 어찌나 큰지, 반경 3 km는 돼 보인다.
아니 미친거 아닌가? 도대체 어떤 곳에서 경기장을 3 km 짜리로 만든단 말인가.
이 아카데미는 자본주의에 몰락했음이, 틀림없었다.
아카데미의 무시무시한 자본력에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내 귀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순간적으로 지진이 난줄 알았다. 막 땅이 흔들흔들 거리는 거 아니겠는가?
당황한 눈빛으로 시선을 올려 관객석을 바라보니, 세상에.
그 커다란 경기장에 관객들이 정말 꽉 차 있었다.
좌우로 가늠이 안될정도로 많은 좌석에 관객들이 한 가득 들어차 있는데, 그 수가 족이 몇 만명은 될 것 같았다.
'미,미쳤어…'
귀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그들의 함성을 애써 무시하고는 경기장의 중앙으로 걸어 갔다.
그곳에는 수 많은 생도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뭐 개최식 같은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는, 종종 발걸음을 옮겨 생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와… 쟤 용사 아니야?"
"그러니까… 입학 테스트도 수석으로 입학 했다며?"
생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확실히 같은 생도 치고는 성검도 뽑고, 참 많은 일을 한 나는 그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할 것이다. 뭐 내가 미소녀인 부분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조금 기분이 우쭐 해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왠지 아까보다 조금 경쾌해진 발걸음을 놀리며, 생도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매우 유명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시선을 잡아 끌 것이다.
그렇다면 생도들이 시선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겠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니, 과연 여러 무리로 나뉘어져 웅성거리는 인파가 모이는 곳이 있었다.
여러개로 인파가 나뉜 이유는 역시,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눈을 살며시 감고 감각에 집중 했다.
내 몸 속에 이어져 있는 가느다란 실타래.
마치 끊어질 것 처럼 매우 가느다랗지만, 그 어떤 실보다도 질긴 인연의 끈이 잡아끄는 곳으로, 나는 홀린듯 발걸음을 옮겼다.
뭉쳐서 도란도란 얘기를 하던 생도들은 내가 다가가자,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로 인해서 마치 홍해처럼 갈라진, 생도들의 인파 사이에서 나는 익숙한 붉은 머리칼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일주일만에 보는 반가운 뒤통수가 눈에 보여서, 나는 바쁘게 발걸음을 놀려 붉은 머리의 소녀에게 다가가며 크게 외쳤다.
"레이나!"
그 말에 뒤돌아 있던 레이나가 고개를 뒤로 홱 돌리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레이나가 활짝 웃으며 손을 높게 들어 흔들고는 외쳤다.
"피나!"
레이나가 나와 눈이 마추지며 매우 기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나는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레이나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응응! 나 그 뒤로 수련을 해서 경지를 하나 더 뛰어 넘었거든! 모두 피나 덕분이야!"
레이나는 그리 말하고는 가까이 다가온 나를 와락 끌어 안았다.
나에게 포옥 안긴 레이나의 몸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우선 가느다랗고 보드라운 팔이 내 허리를 부드럽게 휘감았고, 레이나가 고개를 숙여 내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로 인해 레이나의 붉은 머리칼이 사르르 흘러내리며 내 쇄골을 간지럽혔다. 레이나의 머리칼은 매우 부드럽고 장미 향이 났다.
또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당당히 주장하는 흉부가 나의 흉부와 맞닿으며 가볍게 찌그러졌다. 푹신푹신하게 서로를 밀어내는 감촉이 나를 아찔하게 만들어 어질어질 했다.
"아으…?"
어째서인지 레이나의 몸에서는 달달한 향기가 풍겼는데, 그 향기가 직접 내 코를 스쳐 지나가 내 뇌리에 강하게 때려 박혔다. 순간적으로 호흡이 턱 멎을 정도로 아찔한 충격이 내 뇌리를 강타하였다.
"흐읏…!?"
그 아찔한 충격에 덜컥 몸이 굳어 딱딱하게 얼어붙었으나, 레이나는 여전히 내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다음 나를 더욱 꽉 끌어 안고는 놓아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 목덜미에 코를 들이밀고는 킁킁하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레이나의 따뜻한 콧김이 내 목을 스쳐 지나가고, 레이나가 내 체취를 맡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으…으읏…."
내 심장이 터질 것 처럼 위 아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점점 빠르게 두근거리는 내 심장의 펌프질에 몸의 혈액이 더더욱 빨리 순환하며, 내 몸의 체온을 높혔다.
"…하아."
내가 내쉰 숨결에는 내가 놀랄 정도로 진한 열기가 스며 들어 있었다. 점점 머리가 아찔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직 옅게나마 남아 있던 이성이 이건 위험하다며 소리를 쳐서, 레이나의 몸을 밀어내려 했으나, 레이나는 힘이 빠진 내 미약한 손길에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나를 세게 끌어 안으며 내 목덜미에 코를 박으며 내 체취를 더 깊게 들이 켰다.
점점 몽롱해지고, 이성의 끈이 얇아지고 있을 때, 나를 구해준 것은 익숙한 목소리 였다.
"거기서…뭐하고 있어?"
벚꽃 색의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벚꽃 색의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그에 레이나는 움찔하며 몸을 떨었고, 나는 그 틈에 정신을 차린 다음 레이나를 살며시 밀어 내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레이나가 쉽게 떨어져 나가 주었다.
레이나는 내게 떨어지며 흥분한 듯 뜨거운 숨을 연신 내뱉었다.
"하아… 하으… 흐으… 후우."
레이나의 눈동자는 살짝 몽롱해서 위험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나, 레이나의 흐트러진 모습은 내가 눈을 깜빡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하게 되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내가 착각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 였다.
어느새 우리의 곁에 다가온 세레스는 나와 레이나의 몸에 흐르는 땀을 바라보며 의심스럽다는 듯이 우리를 빤히 바라 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흐음, 그래?"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힘겹게 말하자, 세레스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긍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저기로 가자."
세레스는 그리 말하며 우리의 손을 잡아 끌고는 의자에 데려가 앉혔다.
그리고는 내 목에서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아주며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괜찮은거 맞아…?"
"윽."
그 말에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세레스는 안심했다는 듯이 살며시 미소 짓고는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에 나는 레이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 레이나도 나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레이나는 나를 보고는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어오는 것이였다.
"왜 그래 피나?"
"…아무것도 아냐."
레이나를 바라 본 이유는 방금전의 사건 때문이기도 했지만, 레이나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함이기도 했다.
세레스는 하루 사이에 갑자기 머리칼과 눈의 색깔이 변했다. 심지어 외형까지 변했는데 레이나는 태연하기만 하다.
그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설마… 모두에게 암시를 건거야?'
암시.
암시는 간단하게 말해서 가벼운 명령이다. 예를 들면 '인사는 상대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이다.'라는 암시를 건다면, 상대는 인사가 하이파이브 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암시는 암시이기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나를 좋아해. 라던가 오크는 사람이다. 같은 암시는 전혀 소용 없다.
어느정도 가벼운 암시여야만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암시는 상대의 정신력에 따라서 가벼운 것도 전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허나 세레스는 아카데미의 모든 사람에게 암시를 걸었다.
자신의 머리 색과 눈 색, 외모는 원래 이 모습이였다고 말이다.
아무리 가벼운 암시라고는 해도,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전부 걸어야 하고 그들의 정신력은 평범한 이를 아득히 상회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어마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건지….'
세레스가 얼마나 강한지 감이 안잡힌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저 앞의 무대 위로 연보라 색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마찬가지로 연보라 색의 눈동자를 가진 글래머러스한 미녀가 무대위에 올라 온다.
또각또각
단 한명의 분위기에 모두가 압도당하여,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던 생도들도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수 만명이 있는 경기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한 경기장에서, 그녀는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겨 단상으로 향했다.
이내 단상에 도달한 그녀는 관중을 스윽 둘러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붉은 입술을 살며시 열었다.
"아카데미의 교장 샤티라고 해."
그녀는 고혹적인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매력적이게 눈웃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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