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소녀가 된 마왕님-34화 (34/35)

〈 34화 〉 일생 일대의 위기

* * *

역사상 제국 최고이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뛰어난 아카데미를 설립한 인물.

제국에서 용사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마왕을 잡을 수 있던 이유가 바로 카이란 아카데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이란 아카데미는 정말로 우수하고 뛰어난 교육 기관이었다.

각이 잡혀져 이루어지는 체제, 여러 가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환상을 이용한 실전 전투, 그리고 어지간한 고위귀족 뺨치는 엄청난 인재들이 교사가 되었으니.

솔직히 과장 조금 보태서 카이란 아카데미는 한 나라에 맞먹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아카데미 하나가 국가 하나에 맞먹는 전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나 카이란 아카데미가 국가 하나의 전력에 맞먹는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실제로 카이란 아카데미는 국가 하나와 충분히 전쟁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그런 아카데미를 세운 이를 두고 많은 추측을 내세웠다.

아무래도 정말 엄청난 업적을 세웠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카데미 교장은 나이가 지긋한 현자라느니, 용사가 만들었다느니, 제국의 황제가 만든 기관이라느니, 정말 수많은 추측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대부분 제국의 황제가 만들었다는 가설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야 일개 개인이 만들었다기에 아카데미는 너무나도 뛰어나고 우수한 기관이었으니까.

황제 정도는 돼야 그런 아카데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카이란 아카데미를 만든 인물은 나이가 지긋한 현자도, 용사도, 제국의 황제도 아닌 젊은 여성이었다.

마치 절로 빠져들 것만 같은 몽환한 빛을 내는 연보랏빛 머리칼과 연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누가 보더라도 감탄이 나올 글래머러스한 미인.

그녀가 처음 카이란 아카데미의 교장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야 그렇지 않겠는가? 그 누가 그 위대한 카이란 아카데미를 세운 인물이 고작 젊은 여자라고 생각하겠는가?

심지어 그녀는 귀족조차 아닌 평민이었을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그녀의 실력을 의심했고, 그에 제국의 고위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사나 마법사를 파견하여 그녀와 싸우게 하였으나…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지.'

그 누가 어떻게 당했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녀와 싸운 사람들이 갑자기 픽픽 쓰러지며 제 목을 부여잡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는 것.

그것은 그 누가 오더라도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는 어느 한 번 귀족의 패악질에 화가 나서, 그대로 귀족의 악한 이들을 전부 죽여 버렸을 정도니 그때 죽인 수가 1000명은 족히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다.

그 당시에는 그녀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에 대한 의견이 난무했으나 요즈음 들어서는 그 이유가 밝혀졌다.

'환상.'

그녀가 특출난 마법은 환상이었다.

그녀는 단지 손짓 한 번으로 대상의 정신력에 따라서 수십년간 악몽을 보여 줄 수도 있었으며 거기서 더 나아가서는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모르나, 모두의 앞에서 거대한 운석을 만들어 내 제국을 침입하는 마족을 막는 것은 모두가 본 사실이었으니,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아마도 진실이리라.

그런 엄청난 인물이 아카데미의 교장이랍시고 토너먼트 축제를 위해 직접 인사하려고 무대에 나와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존경과 경외를 담아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본 그녀에 대한 나의 소감은….

'종잡을 수가 없네.'

나는 무대 위에 선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으음~모두 안녕 너희들도 알다시피 난 이 카이란 아카데미 교장, 샤티야."

그녀는 쾌활한 목소리로 토너먼트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말했다.

"오늘은 토너먼트가 있는 날이니 내가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이며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하는 게 맞겠지?"

"솔직히 매우 하기 싫고 귀찮고 힘들기만 한데 말이야…."

샤티는 그리 말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번쩍 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딴 미사여구 붙이지 말고 토너먼트는 그대로 시작할게! 솔직히 이거 보고 있는 분들도 귀찮잖아?"

"……."

그런 그녀의 반응에 관중석에서 침묵이 맴돌았다. 다만 그 침묵은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것이 분명했지만….

"그.. 원래 저러나?"

"푸흐, 재밌네요."

하물며 레이나가 저렇게 얼 빠져서는 중얼거리는 거 아니겠는가.

세레스는 어째선지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지만 말이다….

샤티는 그대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이미 다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규칙상으로 말해야 할 테니 토너먼트 규칙 알려줄게."

먼저 하나, 샤티는 그리 말하더니 손가락 하나를 쫙 피고는 말했다.

"모두 진심으로 할 것."

그 순간, 장난스럽던 그녀의 분위기가 진지하게 변했다.

"아무리 토너먼트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실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다치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설렁설렁할 생각은 하지 마."

"너희는 어째서 이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거지? 설렁설렁 놀기나 하면서 학창들과 즐거운 추억이라도 쌓으려고 왔나?"

"나중에 커서는 친구와 함께 저 노을을 바라보며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추억을 쌓길 원해?"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픽 웃었다. 그 웃음에는, 선명한 비웃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해 줄게."

그녀는 순식간에 토너먼트의 분위기를 꽉 잡아버렸다. 장난스럽기만 하던 그녀가 진심으로 분위기를 잡자, 그녀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사람을 잡아끄는 느낌. 어느덧 토너먼트안에 수많은 관객들이 숨조차 죽인 채 그녀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개.소.리. 하지 마."

서늘한 목소리가, 토너먼트 내부를 휘감았다. 비록 그 내용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단어의 배열이었지만, 그 문장에 스며든 그녀의 목소리는 진심을 담고 있었다.

"뭐? 즐거운 추억? 그딴 거를 바라고 이 아카데미에 들어 왔나?"

몇몇 생도의 몸이 움찔 떨렸다.

"뭐 편하게 졸업하고 그 명성으로 가문에 돌아가서 호의호식하는 꿈을 꿈꿨어?"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심호흡을 마친 그녀가 눈을 뜨고는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은, 차가운 미성으로 말했다.

"부디 그렇다면 진심으로 아카데미는 퇴학하길 바랄게."

서늘한 목소리가, 토너먼트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내가 어째서 이 아카데미를 만들었는지 알아?"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패배하는 제국을, 희생당하는 일반인들을, 그 찬란한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채 썩어 문드러지는 어린 생명들을 위해, 마족과 마왕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거야."

"그딴 친목질이나 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사실, 인류와 마왕간의 전쟁은 그리 유리하지는 않은 전망이었다.

고작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마왕과의 전쟁으로 인해 제국은 피폐해졌으며, 부모를 잃고 굶는 아이들이 제국 전체에 널려 있었다.

제대로 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인류에게 마왕은 너무나도 강대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물론 그 시절에 아카데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한계는 확실했다. 제대로 되지 못한 교육 환경,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조차 충분히 없었다.

마왕과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전쟁에 끌려갔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아이는 하루하루 어떻게 해야 굶어 죽지 않을까 생각했고, 어른들은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물며 몇십년 전에는 제국이 멸망할 뻔했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때, 의문의 여성이 나타나서 마왕을 잡지 못했더라면 필시 제국은 멸망했으리라.

그리고 그년는 그런 세상을 살아온 장본인 일 테니 그 누구보다 그 참혹함을 잘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저렇게 감정적으로 변했지 않았을까,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서 싸워, 너의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소중한 사람을 지켜."

"언제까지나 그들이 너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지 마, 이 세상은 그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니까."

"어느 날 갑작스럽게 마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 할 수도 있고 마왕의 침입으로 죽을 수도 있어."

"니 소중한 사람이 계속해서 너와 함께한다고 생각 하지 마. 이 세상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 얼음판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다음에도 여러 가지 토너먼트 규칙을 읊조렸으나, 그 전에 했던 말이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대부분의 생도들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멍하니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생도들의 모습에 샤티는 흐뭇하게 웃더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샤티의 연설이 모두 끝났다.

"……규칙은 이렇게 끝. 자 나는 모두 설명했으니까 이제 마무리 할게, 토너먼트 힘내!"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토너먼트의 무대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휙 돌리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알 수 없는 몽환적인 연보라의 눈이 내 붉은 눈과 마주치고, 그녀는 나를 보고는 눈을 빛내더니 싱긋 웃으며 입을 달싹였다.

"…피아나였나?"

"……!!"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움찔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나에게만 목소리를 전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아직 토너먼트 시간 남았지? 얘기할게 있는데 학장실로 와줄래?"

난느 그런 그녀의 모습에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전혀 예상을 못 하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내게 말할 게 있으려나?

물론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럼 기다릴게."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마치 모래처럼 제 몸이 흩어지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레이나와 세레스에게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한다음 곧바로 신성을 전개했다.

순식간에 드넓은 아카데미에 퍼져나가는 거대한 신성의 파동.

나는 그 파동으로 샤티의 마력을 찾고는 그대로 그 위치로 텔레포트 했다.

내가 텔레포트하고 감았던 눈을 뜨자 그녀는 학장실에 앉아 다리를 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자신에 대해서 전혀 놀라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그럼~ 내가 왜 불렀는지 궁금하지?"

"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앉았던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어느덧 내 곁에 완전히 다가온 그녀는 내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더니 확신이 담긴, 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으나.

나는 그 내용을 듣고는 딱딱하게 굳었다.

"너… 마왕이지? 안 그래 칼리엘?"

"……!!!!!"

그녀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칼리엘이라는 사실은, 내 언니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텐데.

내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대자,

그녀는 당황하는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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