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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화 (2/87)

〈 2화 〉 조졌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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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랄친구가 빤스런을 쳤다. 내가 그 잔혹한 현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 이새끼 갑자기 내 전화를 씹기 시작했으니까.

‘……뭐지, 많이 바쁜가?’

잠수 3일 차. 그래도 그때까진 그렇게 믿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띠리리링─!

띠익─!

“아, 여보세요. 유한나 친구 맞죠?”

“……네?”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가만히 무슨 내용인가 들어보니 내 십년지기 친구가 자신한테 돈을 빌렸는데 갑자기 연락을 안 받는다고 한다.

아무튼, 당신이 절친이라 들어서 연락했다.

대강 그런 요지의 전화.

‘……왓?’

‘아무튼’이라니. 아니, 도대체 무슨 맥락으로 나한테 전화를 건 건데?

이 사람한테 어처구니가 없는 한편으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정말로 친구 새끼가 돈 먹고 튄 건가 싶어서.

그래도 일단 내색하진 않고,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에게 대충 둘러대며 전화를 끊었다.

“……설마.”

친구야. 연락 좀 제때 받지. 지금 이게 도대체 뭐니. 시발.

나한테 전화가 오게 만드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봐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얼마나 급한 일이시길래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손을 벌린 거야.

“흐음.”

뚜두두둑─

나는 목을 꺾으며 생각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의 이야기지만, 녀석이 튀었다면 손수 죽여야 하지 않을까.

원래 쓰레기는 먼저 발견한 사람이 치워야 하는 법이니까.

쓰레기가 된 친구를 척살하는 것은 친구로서 올바른 도리니까.

그래도 나는 우리 사이의 유대를 믿었기에 녀석이 하루빨리 답신을 날려줬으면, 하고 오매불망 기다렸다.

띠리리릭─!

그리고, 또다시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왠지 모를 데자뷰를 느꼈다.

……싸늘하다.

“안녕하세요? 저기…, 한나 대학 선배인데요. 그, 걔가 갑자기 전화는 안 받고, 학교도 안 나와서… 아, 돈 빌렸냐고요? 네…, 그래서 저 한나는……?”

그렇게 보름 동안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연이어 걸려왔다.

게다가 전부 다른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새끼 얼마나 빌린 거지? 라는 생각은 아주 잠깐.

이 사람들 왜 죄다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지? 라는 의문을 느끼고 말았다. 하나둘이면, 어떻게든 찾아서 걸었나 보다 넘길 텐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설마 너, 내 전번 뿌렸니?’

에이, 그건 정말로.

설마…….

“…….”

그제야 나는 십년에 걸쳐 쌓아왔던 굳건한 믿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포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친구에 대한 의심암귀가 아주 활짝 피어났다.

“……씨발.”

내가 호구처럼 녀석을 믿고 기다린 데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녀석이 넙죽 엎드리면서 사과하거나. 아니면 헤헤 이죽거리며 뻔뻔하게 나오거나.

어느 쪽이건 결국 돌아와서 돈을 갚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믿고 기다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암울하고도 언빌리버블한 상황이 끝도 없이 계속된다면…….

흑우와도 같은 내 성정이랄까, 우정. 마음 한편에 다크한 감정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배신감이나 분노라는 것이.

“……개새끼가?”

어느새 내 기억 속의 천진난만한 절친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래, 이제 뇌리에 남은 건 오직 돈을 먹고 튄 개새끼뿐이었다.

그냥 빤스런을 친 것도 아니고, 이따위로 불똥을 튀기는 게 말이 돼?

실화야? 진짜로? 반드시 아구창에 파이어 펀치를 박아넣는다.

아주 그냥 줘패버린다.

그렇게 굳은 다짐을 수천 번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분노의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는 간신히 수마에 사로잡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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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영혼을 탐색합니다.』

『친구』

『돈』

『배신』

『대상에게 적합한 능력을 부여합니다.』

『24시간 뒤,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 * *

하느님께서 개새끼를 돌로 쳐 죽여라.

현대 사회에서 그게 안 된다면 주먹으로라도.

그런 계시라도 내리신 걸까.

왠지 오늘따라 컨디션이 엄청 좋았다.

그래도 아직 살인죄로 교도소에 가기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래, 일단 밥부터 처먹고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아주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없네?”

아무것도 없다.

나는 텅텅 빈 냉장고 안을 바라보다가 뒤이어 쌀통과 밥솥과 찬장까지 전부 확인했다.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없다.

“간밤에 도둑이라도 들었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집에 어떠한 식량도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친구 새끼를 저주하느라 생활패턴이 극도로 게을러져서 식량 보충을 안 한 것뿐이었다.

“으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현재 직면한 식량난의 해결책을 궁리했다.

그래도 500mL 업소용 콜라와 치킨 무, 돌김이 남아 있긴 했지만, 앞으로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마트 가서 장 봐야겠네.”

내가 선택한 것은 굉장히 명쾌하고,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바로 근처에, 동네 마트가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평소엔 귀찮아서 잘 안 갔지만, 오늘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가야만 했다.

“……어쩔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

그래도 오늘 쌩쌩한 편이라 다행이다.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어!

그렇게 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라면, 스팸, 즉석밥, 우유 등등등. 무엇을 살지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해놓으면서, 주섬주섬 옷을 껴입었다.

*

3월 31일.

계절 구분상 명백한 봄.

그러나 날씨는 아직 동장군이 지배하는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즉, 나시와 반바지, 슬리퍼만으로는 얼어 죽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그래서 패딩까지 착실하게 장착했다.

칼바람을 뚫는다.

더럽게 높은 도로의 언덕길을 넘는다.

이따금 동네 어르신이 보이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그런 악전고투 끝에 결국 나는 고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사실 그래도 동네마트라고 금방 도착했다.

나는 곧바로 물자들을 바구니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렇게 손을 바삐 움직이던 내 레이더망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 후링글스 ]

긴 원통의 케이스에, 여러 다양한 맛이 존재하는 아주 유명한 감자칩 브랜드.

저작권으로 인해 풀네임을 올리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여하튼 저건 내가 집구석에 십수 통씩 쟁여놓을 정도로 최애 과자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관성적으로 십수 통을 바구니에 담으려 했고……,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손을 부들거리며 멈춰 세워야만 했다.

……현재 내 잔고는 강렬한 Red light. 매우 위험한 상태로 빨간불이 켜져 있다.

어째서냐고? 돈을 떼먹고 Run을 때린 전직 부랄친구이자 현직 개새끼 덕분이다.

[ 후링글스 ]는 과자치고 비쌌고, 그런 녀석을 여러 개 구매하면 치킨 한두 끼를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내 앞으로의 기분 상태에, 생활계획에 커다란 어그러짐이 생기고 만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오리지널과 치즈 맛, 그렇게 2통만 바구니에 담았다.

그래, 그게 내 최선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 여유는 있을 테니까.

“……여유 있던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전에 봤을 때 40만 원은 남아 있던 것 같긴 한데.

그러나 뭔가를 까먹은 듯한 찝찝한 기분이 자꾸 신경 쓰인다.

삐빅─삐빅─!

일단 장바구니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계산을 기다리는 동안 은행 어플을 켰다. 곧바로 잔고를 확인했다.

[ 잔액 : 85, 130원 ]

“……오오?”

뭐지.

뭔가 굉장히 상상 이상인데?

내가 문과라지만, 무려 30만 원이라는 오차가 생길 정도로 산수를 못 할 리는 없는데.

“아니, 설마.”

그렇게 내가 멍청이는 아니겠지.

현실을 부정했다.

나는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믿으며, 출금 내역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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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한테 빌려준 돈 50만 원.

+

식비와 교통비 40만 원.

+

컴퓨터 할부금 30만 원.

+

의문의 그 외.

=

총합 124만 원.

──────────────────

“…….”

금방 원인을 찾았다.

내 방 책상 위의 먼지 한 톨 묻지 않게끔 정성스레 관리한 최고급 컴퓨터.

쾌적한 게임 환경을 위해 그래픽카드부터 RAM까지 제대로 질렀던 바로 그 녀석.

어느새 벌써 반년이나 지난 덕분에 깜빡 잊고 있었다.

내게 청구되었던 180만 원 6개월 할부금을.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일반 거지에서 특급 거지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곧 생활비 들어오니까. 뭐…, 8만 원 정도면 버틸 만…,”

“3만 9천 8백 원입니다. 혹시 봉투 필요하신가요?”

“……어?”

갑자기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사무적인 미소를 보이는 캐셔 씨.

그녀는 빨리 카드나 내놓으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챘다.

아주 잠깐 그녀를 잊고 있었다.

‘……시밤바?’

어라, 갑자기 수전증이 생겨났다.

그래도 나는 벌벌 떨려오는 손을 이겨내고 기어코 카드를 내밀었다.

캐셔는 이미 텅텅 빈 카드를 잡아챘다.

곧 그것이 긁혔다.

지이이잉─

곧 울리는 주머니 속 휴대전화의 진동을 느끼며 나는 직감했다.

내 생활계획…….

조졌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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