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미소녀 마법사
* * *
녹색 표면.
두 손으로 머그컵을 받들고, 그 안의 내용물을 들이킨다. 그러자 컵을 붙들고 있는 손바닥뿐만 아니라 위장까지 따뜻하게 데워졌다.
혀에 감도는 녹차라떼 특유의 달콤쌉싸름한 맛. 누군가는 이것을 녹조라떼라며 놀리곤 했지만, 내겐 카페 메뉴 최애의 음료였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여학생을 슬쩍 곁눈질했다. 빨대로 망고 프라페를 쪽쪽 빨아 먹는 모습이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저런. 얼마나 못 먹었으면 저럴까. 금세 마음이 아파져 와 눈시울이 붉어지게 된다.
그런 내 시선을 알아차린 걸까. 그녀는 흠칫하더니 뚱한 표정을 지으며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흠흠. 이내 목을 가다듬었다.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할 때, 저렇게 가다듬는 것이 그녀의 습관인 듯했다.
그녀는 이내 허리를 곧게 펴고, 진중한 태도로 내게 고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셀베르크 마탑 소속의 황(?)급 마법사 신혜영이라고 합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당신을 인도하러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혜영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길거리에서는 당황스러워 잘 와닿지 않았지만, 굉장히 정중한 태도로 나를 대한다.
허허, 예의가 바른지고. 그녀가 마법사인 건 모르겠고,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인 것은 확실했다.
내가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신혜영은 곧바로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제 말이 믿기 어렵다는 사실은 잘 알고”
“아니, 믿는다.”
“…네? 제 말 이해하신 건 맞죠?”
“제대로 이해했다.”
굳이 설명을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왜냐?
나는 이미 그녀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
우리는 이미 우정과 신뢰와 공감을 나눈 『동지』이자 『친구』였으니까.
더 이상 왜냐고 이유를 묻는 건 넌센스다. 나는 설령 그녀가 외계 소녀라 자신을 소개했어도 믿었을 것이다.
그래, 그것이 바로 『신뢰』니까.
내가 아주 뜨거운 우정의 눈빛을 쏘아보내자 신혜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마법사 아니시라고 좀 많이 미쳐계시네요.”
“응? 마법사들은 대부분 미쳐 있는 건가? 그보다 그 말 내가 무슨 마법사라는 듯이 들리는데.”
“네네. 아무래도 마법사 중에는 괴짜거나 나사 빠진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녀는 관자놀이 옆으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진우 씨가 말했듯이 마찬가지로 당신도 마법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데리러 왔어요!”
뿌뿌뿌─!
빵빠레를 터뜨리는 시늉을 하는 신혜영.
얼마나 외로웠으면, 혼자서 저런 시늉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벅차오르는 슬픔에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제발 부탁인데.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저희 부모님 정정하니까.”
하아, 신혜영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스케줄도 빠듯하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간단하게 해결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자아, 이진우 씨가 마법사가 됐다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드릴게요.”
“오오. 그게 뭐일까요. 너무 기대가 되구요.”
“…자아, 저를 따라해보세요.”
“…자아, 저를 따라”
“상태창.”
“상태창?”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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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우 >
[ 등급 : 녹(?) ]
[ 직업 : 거상(巨?) ]
[ 특성 : 금력(力) ]
[ 능력 : 매수(??), 매각(?) ]
[ 성향 : 중도(中?), 열혈(?血) ]
[ 근력 : 13 ] [ 체력 : 15 ]
[ 민첩 : 11 ] [ 지혜 : 22 ]
[ 마력 : 02 ] [ 행운 : 73 ]
[ 소지금 : 100, 000, 000 Gold ]
──────────────────
“…….”
나는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웹 소설을 즐겨 보는 편이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이건 마법사가 아니라 아무리 봐도 헌터인데. 대마법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인정할 수 없다.
이건 마법이 아니야!!!
찌릿. 신혜영을 노려보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브이 자를 내보였다.
* * *
부우우웅─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슬슬 모르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있다. 참고로 나는 뚜벅이니 소거법으로 신혜영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신혜영의 모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능숙하게 핸들을 어루만지는 교복 차림의 여학생을 도대체 언제 어디서 볼 기회가 있을까.
예아, 이건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할 소중한 광경이다.
내가 무려 상태창을 가진, 호트와그의 그리핀도르 부럽지 않은 마법사가 됐다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설렜다.
하지만, 의문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근데 너 고등학생 아니었어?”
“아아, 교복이요?”
신혜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으드드득─ 곧이어 이 갈리는 소리가 났는데 뭘까. 착각이겠지?
“음, 올해 졸업했고, 이거는 어떤 미친 선배가 첫 영입을 하러 갈 때는 자신한테 제일 익숙한 복장을 하고 가는 거래서. 속아서 입고 와버렸습니다. 제가 좀 상식이 부족해서.”
“헤에….”
“돌아가면 선배 죽이려고요.”
어머머.
살기 돋는 목소리와 공허한 눈동자가 걸크러시다. 자신의 선배를 어떻게 죽일지 저절로 궁금해질 지경.
“그런데 마탑이나 그 마법사들은 보통 무슨 일을 해? 마법 연구?”
“뭐, 그런 것도 당연히 하지만. 아까 헌터 운운하신 걸 보니 게임이나 소설을 많이 보시나 본데 그쪽 언어로 ‘던전’을 청소하는 일을 합니다.”
던전이라….
한창 단풍이야기의 모든 던전들을 휩쓸었던 시절이 있었지.
물론 그보다는 내가 아는 헌터물 소설의 그 던전을 말하는 듯싶었지만 말이다.
신혜영의 사뭇 진지한 얼굴을 보니 딱히 농담도 아닌듯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아니…, 마법사는 개뿔. 역시 헌터물 맞잖아.
웬 마법사?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거 아니야?
의심의 눈빛을 그녀의 얼굴 옆면에 지그시 쏘아 보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내밀어 시선을 차단했다.
“의심하지 마요. 원래 있던 마탑·마법사에 새로 나타나기 시작한 각성자들까지 싸잡아서 마법사라고 부르는 거예요. 나름 마력을 가진 능력자니까.”
“그럼 마법사들은 옛날부터 있었어?”
“네네, 아주 옛날부터 있었죠.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으로는 거의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던데요.”
“뭐야. 호트와그 실제로 있는 학교였어?”
“다른 이름이지만, 비슷한 느낌이긴 하네요.”
오오….
한때 마법 학교 소설을 독파한 사람으로서 부디 죽기 전에 한 번쯤 관광하러 가고 싶다.
대머리 빡빡이 악의 마법사나 이마에 번개 문양의 흉터가 있는 안경잽이 마법사는 없더라도 드래곤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두근두근. 심장이 떨려온다.
“근데 왜 숨기고 있는 거야? 마법사들이나 각성자들이나. 그 던전이라는 위험한 거일 텐데. 저희 열심히 지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라고 알리면 좋지 않나?”
“으음, 첫째로 세상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돌아가진 않는 점에서 기각이고.”
“둘째로 마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시스템이나 던전 등 관련된 정보를 못 이야기하는 제약 같은 게 있거든요.”
“헤에….”
뒤에서 몰래 우리를 지켜주는 정의의 용사나 비밀결사 같은 건가.
그거 참 멋진 사람들이다.
짝짝짝짝─ 운전자가 신경 팔리지 않게 조그맣게 물개박수를 쳤다.
문득 신혜영이 말했다.
“아, 다 왔어요.”
“에, 다 왔다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좌측에는 석촌호수가 보이고, 우측에는 빌딩가밖에 보이지 않는데. 저 멀리 라떼월드도 보이는 그야말로 도심가 한복판이다.
아무래도 내가 상상했던 마탑의 모양새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비밀 결사인데 일반 건물처럼 위장하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은근 실망할 무렵.
신혜영이 검지와 중지를 모아 허공을 내리그으며 읊조렸다.
“개(?).”
찌지지지지지직─────!
공간이 반으로 갈라졌다.
‘……결계(??).’
장르소설 내공이 심후한 나는 곧바로 그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자동차는 균열로 곧바로 직진해 덜커덩 소리도 안 내고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마탑?”
정면에 피사의 사탑이 반듯이 서 있다면 저랬을 것 같은 새까만 탑이 보였다.
마탑이라고 미리 설명을 안 들었다면, 흡사 마왕성이라고 착각할 만한 외양.
헤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얼굴을 찌푸리고 신혜영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런데 저기요. 님 마법사라면서요. 제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뭐랄까. 룬어라던가, 최소 영어로 된 주문을 쓰는 거 아니었어요? 웬 한자?”
“아, 그거 편견 맞고요. 그리고 그…”
금발 적안의 미소녀 마법사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토착이예요.”
“……아.”
그렇다면 인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