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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화 (5/87)

〈 5화 〉 죽어요

* * *

악산(?山).

풀 한 포기 없고, 바위로만 그득한 산의 정상 부근. 커다란 바위에 기대어 쉬고 있던 여인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푸른 하늘은 고요하기만 했으나.

“…….”

그녀는 감지했다. 인연의 실에 생겨난 거센 흔들림을. 그에 당황한 여인은 어쩔 줄을 모르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안위를 확인하고서야 점차 침착함을 되찾았다.

‘다행이다…….’

여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무슨 변고라도 당한다면, 모든 게 도루묵이었으므로. 그녀는 살 희망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저기요~ 유한나 씨~ 저희 너무 오래 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제한 시간 끝나면 저희 다 뒤져요!”

반대편 바위에 기대 있는 남자가 소리쳤다. 확실히 결전을 앞두고 있다고 평소보다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있긴 했다. 유한나는 타이머를 확인했다.

[ 17 : 59 : 36 ]

던전 클리어 제한 시간이 18시간 남짓 남았다. 그것을 확인한 그녀는 땀에 전 머리를 뒤로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장 보름간의 서바이벌이 끝에 달했다. 시간을 초과하면 자신들이 죽겠지만, 정상이 머지않았다.

드디어 나갈 수 있다. 그를 생각한 유한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밖에 나가면, 꼬질꼬질한 얼굴과 피로한 몸을 녹이고 바로 찾아가야지.

그러려면 우선 이 망할 산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녀는 일부러 기운찬 목소리로 자신의 동료에게 소리쳤다.

“오늘 우리 둘 다 안 죽을 운명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좀 있다가 제대로 집중하기나 해!”

“저희 팔다리도 온전한 거 맞죠? 불구 되는 거 아니죠?”

“괜히 방심하다가 처맞으면 뒤지기도 하겠지.”

“…….”

그래도 죽진 않을 거라는 말에 남자는 확연히 밝아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다시 높고 가파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내딛는 여인의 얼굴이 사뭇 결연했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산을 울리는 괴성. 비행기가 이륙할 때도 이 렇게 소리가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고함을 지르는 상대가 인간보다 몇백 곱절은 큰 거인이라면 충분히 참작할 여지가 넘치고도 남았다.

유한나는 자신보다 수백 곱절은 거대한 위용에도 겁먹지 않고, 검을 내뽑았다. 그녀는 이런 객지에서 죽을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게다가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돈을 갚아야 했다.

검을 든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달려갔다.

신화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셀베르크 마탑 인근 마을.

검은 탑을 중심으로 하여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탑을 제외하면 5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진 작은 마을.

스위스에 가본 적도, 자세히 알아본 적도 없지만.

내 막연한 상상 속 그곳 산등성이에 있는 마을이 왠지 이럴 것만 같았다.

갑자기 마을 외곽에 주차해놓고, “저희 이제 걸어서 가야 해요!”라고 했을 때는 귀찮아 죽을 뻔했는데, 이 정도면 걸어가는 보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저기 와플이 진짜 맛있고요! 아, 저기는 돈까스가!”

거리 곳곳의 건물을 가리키며 내게 맛집을 알려주려는 신혜영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다가도 어떤 의문이 생기고 만다.

뭉그적뭉그적 신혜영의 뒤에서 얌전히 가이드를 받고 있던 나는 성큼성큼 그녀의 옆까지 다가가 물었다.

“저기는 꼭 가야 돼! 저기는 구슬 아이스크림이!”

“야, 근데 여기 마을 사람들 다 마법사야?”

“넹?”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데에 무슨 제약이 있다며. 그, 딱히 마법사분들 같지가 않아서.”

인자한 인상과 후줄근 차림의 아줌마, 아저씨나 기원이나 탑골 공원에서 볼법한 노인분들은 여태껏 상상해오던 마법사들과 거리가 멀었다.

마탑이 있는 것과 스위스 마을처럼 생긴 것만 달랐지 내 자취방 근처의 주민들과 거의 판박이.

설마 이것도 편견인가?

나 그렇게 고정관념이 강한 사람이었어?

아아, 신혜영은 내 얼굴과 마을 사람들을 번갈아 보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지그시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환상이랄까. 편견이 강하신데요.”

“아, 죄송쓰.”

“아녜요. 저분들 비(?) 마법사 맞거든요.”

“……?”

나는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도대체 왜 사과한 거?

신혜영은 방긋방긋 웃으며 서둘러 설명을 이어갔다.

“그 뭐냐. 일반인 중에도 제법 높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마력을 빼먹으려는 빌런한테 안 좋은 짓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 보호조치 중이예요.”

“헤에, 빌런이 있구나.”

“네, 어디에나 미친놈들은 존재하니까요. 골치가 많이 썩어요.”

그리 말하며 신혜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비밀결사의 일원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분명 던전을 정리하다가, 악의 무리와 싸우다가 죽는 사람이 많을 테지.

언젠가 나도, 그녀도 불상사를 겪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

훌쩍. 감수성이 벅차오르는구나.

“혜영아! 우리 오래토록 건강하자!”

“…당신 또 무슨 생각을 했길래 눈시울이 붉어졌나요?”

한 20분 정도 걸렸나? 그렇게 얼마간 걷다 보니 마탑에 도착했다.

초행은 볼거리가 많아서 그럭저럭 걸을 만했는데 나중에는 확실히 귀찮게 느껴질 것 같다고 직감했다.

마탑!

셀베르크!

마법의 세계!

분명 호트와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공중을 떠도는 계단이나 비밀의 방이나 이따금 부엉이들이 날아와 선물과 편지를 건네주는 홀은 없을지라도!

그래도 신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봤던 문화센터와 비슷한 외양의 로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낚였네.

이런 실망은 또 따로 없었다.

“풉, 입탑 수속 다 끝났어요. 이리 와요.”

불퉁한 내 표정을 보고 신혜영은 피식 웃더니 나를 어딘가로 잡아끌었다.

뭔가 고풍스러운 느낌의 승강기.

이것만큼은 뭔가 마법 학교의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이건 디자인이 왜 이렇게 좋아?”

“당신 같이 현대화를 반대하는 사람이 이것만은! 제발! 하면서 빈 적이 있어서요.”

“흐음. 훌륭한 열사분이 계셨구나.”

저만큼은 당신의 피땀눈물을 기리며, 또 기억하겠습니다.

묵념.

그 길로 나는 셀베르크의 일원이 되었다는 증표를 받은 뒤, 계속 어딘가를 뺑뺑,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받고, 이따금 복도에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는 등.

뭔가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훈련소 첫날 보급품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다.

아니면 어쩌다가 여사친의 쇼핑에 따라나섰을 때라던가.

뭔가 많이 사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많이 돌아다녔던 그 느낌.

또, 그만큼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뺑뺑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복을 받아야 한다나.

의상실에 오게 되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멍하니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대었다.

반면, 신혜영은 아직 쌩쌩한 모습으로 로브와 제복 상의를 들치며 내게 물었다.

“진우 씨. 상의 몇 입으세요?”

“110.”

“그러면 바지는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러면 다리 좀 쭉 뻗어보세요.”

그 말대로 다리를 쭉 뻗었다.

신혜영은 내 하체를 보며 바지 길이를 가늠하는 듯 눈을 좁혔다.

결정했는지 두 손에 든 바지 중 하나를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뭔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는 것 같긴 한데…….

지금 스케줄을 너무 빡세게 잡은 게 아닌가 싶었다.

나 그래도 이거 출근 첫날이라고?

애초에 출근인가?

“처음부터 일정 빡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약간 불평이라는 자각도 하고 있긴 한데. 하루에 너무 많이 하려는 거 아니야?”

“아, 그게 제가 임의로 짠 일정이 아니라서요. 많이 급해요.”

그 말에 나는 몸을 기울였다.

혹시 자기 업무도 있는 와중에 내 일을 돕고 있는 건가?

진짜로? 이건 감동인데?

훌쩍, 내 감수성이 차오르려 하자 신혜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바로 태클을 걸었다.

“아, 참고로 제가 아니라 진우 씨 일정이 바쁜 거예요?”

“나?”

“네, 님이요.”

“여기 혹시 세상을 위해 단련한다는 명목으로 첫날부터 훈련한다던가. 각개전투라던가 하는 거는 아니지?”

그렇다면, 조금 퇴사하고 싶어질지도.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신혜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진우 씨가 꼭 참여해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그래요.”

“뭔데, 누구 인사라도 가는 건가?”

“그건 아니고, 오늘 자정에 던전 말고 ‘이벤트’라는 게 또 열리는데 거기 꼭 가셔야 해요.”

“거기 안 가면 어떻게 되는데?”

“죽어요.”

나는 눈을 끔벅거리며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신혜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서 옷을 받아들었다.

다음 일정!

빨리 다음 일저어어어어엉!!!!!

“서두르자.”

“네. 그러면 일단 저기 칸막이 들어가서 빨리 환복이나 해요.”

“넵. 명받았습니다.”

바로 칸막이로 달려가 탈의(??)와 착의(?)를 순식간에 이루어냈다. 무려 목숨이 걸려 있는 옷 갈아입기다. 빨리 해내지 못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나는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뒤 빨리 이동하자고 신혜영을 보챘다.

그녀는 입꼬리를 실룩이며 다음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앞으로 일정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친구 보정을 안 받았을 때의 새침한 신혜영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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