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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8화 (8/87)

〈 8화 〉 나는 분명 병신일 것이다

* * *

“상인이란 직업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고요? 그야 시스템 상점 기능이 상인한테 밖에 없으니까……. 아? 제가 아까 안 말했었나요?”

신혜영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턱을 매만졌다. 볼이 조금 붉었다.

“으음, 확실히 녹(?) 급까지는 몸이 튼튼한 일반인 정도에 불과하지만…, 요?”

눈을 번뜩 떴다.

“……그렇지만!”

신혜영은 그대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몸을 기우뚱거리고, 눈도 헤롱헤롱한 것이 아무리 봐도 조금 취한 상태. 그녀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던전과 다르게 강제적으로 참가자를 모집하는 이벤트의 특성상! 보상이 무척 후하죠! 특히 첫 이벤트는 더욱… 우읍…! 잠깐, 잠깐만… 화장실 좀요…….”

급하게 연구실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신혜영. 나는 가만히 앉아 그 꼴을 바라보았다. 제법 특이한 성격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지만, 쟤도 참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조금만 먹여야지.’

찰랑찰랑, 그녀의 맥주 캔에는 아직 반 이상 내용물이 남아 있다.

맥주 2캔 반도 안 마셔놓고, 저런 징조를 보이면 종종 대작은 힘들지 않나.

싶었지만, 그녀와 모던 바 이야기를 하며 집어치우기로 했다.

그녀의 심한 주사를 겪더라도 나는 맥켈란이 먹고 싶었으니까!

“그러려면 일단 일등부터 해야겠지…….”

새로운 역사를 써낼 시간이다.

삐빅─!

삐빅─!

삐빅─!

[ 이벤트 『무스닥』이 개시됩니다. ]

──────────────────

【 무림맹 ─ 91,000 (+300) 】

【 천마신교 ─ 85,300 (­500) 】

【 제갈세가 ─ 12,530 (­170) 】

【 남궁세가 ─ 47,200 (+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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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쉽게 말해 오전 9시.

무림의 주식 시장이 개문(?門)되었다.

전광판에 무작위로 표시되는 주식 그래프가 스멀스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흐음. 그런데 어째서지?”

나는 의문을 가졌다.

제갈세가와 남궁세가는 분명 같은 오대세가라는 범주에 있을 텐데 왜 저리 주가가 차이 나는 것일까.

현재가가 그 기업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계속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으니 제갈세가만이 이름값에 비해 확연히 주가가 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지구에만 수많은 무림이 있을 테지. 적어도 수천 개의 무림이 있을 것이다. 그 무림의 천하제일인이 당파 후계자일 수도, 천마일 수도, 매화검수일 수도 있다. 그것은 모르는 일. 그리고 나는 제갈세가가 상대적으로 영락한 무림에 도달한 것일 테다.

그러나 나는 그 비화를 알지 못한다.

이것은 커다란 문제점.

제갈세가 뿐만 아니라 어떤 세력이 강세인지 약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 무림이 어떤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가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 천주증권 ] 어플은 어떤 세력의 주식이 상한가인지 우상향인지 우량주인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추천 따윈 없다.

내가 직접 일일이 이름을 검색해 그래프를 확인해가며 어떤 것을 사야 할지 판별해나가야 했다.

아니면, 전광판을 계속 뚫어져라 보던가.

“이런, 시발.”

벌써 인터넷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내 뇌리엔 어렴풋하지만, 무협지의 지식이 남아 있다!

분명 다른 외계인이나 엘프, 드워프보다는 훨씬 앞서있을 터였다.

나는 머리를 쥐어 짜냈다.

일단 강대한 세력에 투자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무림의 사소한 스캔들까지 알진 못하니까 잘나가는 애들한테 돈을 들이붓는 게 맞겠지.

그렇다면, 그 강대 세력이 어디 어디가 있을까……?

현재 하향세인 천마신교는 킵.

솔직히 사파는 잘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정사지간은 더더욱 잘 모르겠고.

그렇다면 역시 구파 일방과 오대 세가에 투자를 해야 할까.

“구파 일방…, 일단 개방은 알겠고, 화산파…, 소림파…, 또 뭐가 있더라?”

무당, 점창, 아미, 곤륜, 종남……. 나머지는 2개가 떠오르지 않는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게 아닐까. 걔네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임팩트가 없었기 때문일 테니까.

‘개방은 거지들이니까 패스.’

칠파를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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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륜파 ─ 23,500 (+100) 】

【 종남파 ─ 18,900 (­600) 】

【 아미파 ─ 14,720 (­280) 】

【 점창파 ─ 21,200 (+200) 】

【 화산파 ─ 37,500 (+500) 】

【 소림파 ─ 40,300 (+300) 】

【 무당파 ─ 35,200 (+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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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 종남, 아미, 점창은 최근 일 년간 큰 성장세는커녕 평행선을 겨우 유지하고 있거나 하락세만을 보이고 있다.

나름 신중하게 차트를 들여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반나절 만에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화산과 소림, 무당은 괜찮은 것 같고. 명색은 유지했네.”

만약 장기적인 투자를 할 생각이라면, 충분히 넣어볼 만했다.

그래, 내가 분산·장기 투자를 할 것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런 시시한 짓거리를 할 생각은 없지……!”

어차피 모두 동등한 금액을 들고, 같은 시간에 출발하는 레이스다.

그렇다면, 조금 더 담력이 큰 쪽이 승리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겠는가.

그래…! 답은 올인…!

그게 내가 내린 정답이었다.

칠파 이후 오대 세가도 검색했지만, 투자할 것은 남궁세가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애들이 죄다 2만 후반에서 3만 초반을 맴돌 때 혼자 4만 후반 선에서 놀고 있으니.

‘그런데 제갈세가는 대체 왜 이 모양이냐.’

나름 제갈세가 좋게 봤었는데.

장르는 다르지만, 삼국지 최애캐가 나름 제갈량이었는데.

나는 왠지 모를 섭섭함을 묻어 두고, 투자할 녀석을 최종적으로 엄선했다.

정파 최강세력 무림맹(???).

비록 당장은 하향세, 그러나 언제 제운종처럼 펄쩍 펄쩍 뛰어 오를지 모르는 천마신교(???).

현재 최고의 성장세를 보이는 일대세가(一大世家), 남궁(??)까지.

그 외에도 분명 강한 세력이 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꼬우면 뇌리에 남을 만큼 강하던가.

하지만, 확실히 생각보다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무협지 짬밥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지구로 돌아가면 다시 읽어야 할 듯싶다.

“흐음…….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일등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으으으음…….

배짱.

담력.

다른 이들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정했다……!”

【 천마신교 ─ 84,500 (­1300) 】

현재 하락세인 천마코인을 풀매수한다……!

어머니께서 원래 주식은 가격이 내려가 있을 때 사는 거라 말씀하셨지.

그래, 지금 바로 그때다.

매수할 타이밍이란 말이다!

분명 내가 사면 쭉쭉 솟아오를 거야!!!

그렇게 자기세뇌를 하며 태블릿을 광클했다. 내가 가진 종잣돈은 1억 골드. 혹시 모를 참사에 대비해 소량의 돈은 남겨두고, 깔끔하게 1000주를 구입한다.

[ ‘천마신교’를 1000주 매수하시겠습니까? ]

[ 수락 / 거절 ]

돌이킬 수 없는 선택.

무려 맥켈란이 달렸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 매수(??)가 발동됩니다. ]

[ 매수 과정을 긍정 방향으로 보정합니다. ]

[ 대상을 현재가보다 10% 낮은 가격에 매수합니다. ]

“…….”

끔뻑끔뻑. 나는 내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자마자 생각하고 말았다.

사기(??).

그것도 개사기.

나는 본능적으로 매각 버튼을 눌렀다.

[ 대상을 현재가보다 10% 높은 가격에 매각합니다. ]

직감했다.

만약 일등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 병신일 것이다.

이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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