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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9화 (9/87)

〈 9화 〉 1994년, 내가 운남에 있었을 때의...

* * *

나는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식은 죽 먹기를 좋아하지 않아도 그것을 먹어서 복권 당첨을 할 수 있다면 열 그릇이라도 처먹을 것이다.

이번에 그런 마음으로 임했지만…….

[ 매수(??)의 재사용 대기시간 ]

[ 00:28:21 ]

[ 매각(?)의 재사용 대기시간 ]

[ 00:29:07 ]

“……흐음. 역시 인생이 만만하진 않아?”

노쿨타임이면 굴착기 뺨치는 채굴 능력을 보일 자신이 있었건만. 역시나 제한이 있었다. 뭐 이 자체로도 충분히 사기라고 볼 수 있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 107,605,000 Gold ]

그래도 이벤트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원금의 10%에 육박하는 이윤을 보았다.

모든 돈을 쏟아부었으면 훨씬 더 이익을 봤을 테지.

그러나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 괜찮다.

시스템 메시지의 말대로라면 30분마다 능력을 쓸 수 있다.

6시간 이내에 11번은 더 이 짓거리를 반복할 수 있다는 소리.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30분마다 복리로 20%씩 돈이 늘어난다.

온 세상의 투자자가 갖고 싶어 할 정도로 사기 능력이다.

‘……근데 뭐지. 머리가 띵한데.’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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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우 >

[ 등급 : 녹(?) ]

[ 직업 : 거상(巨?) ]

[ 특성 : 금력(力) ]

[ 능력 : 매수(??), 매각(?) ]

[ 성향 : 중도(中?), 열혈(?血) ]

[ 근력 : 13 ] [ 체력 : 15 ]

[ 민첩 : 11 ] [ 지혜 : 22 ]

[ 마력 : 15(+15)(­4) ] [ 행운 : 73 ]

[ 소지금 : 307, 605, 000 Go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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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 감소했다.

매수와 매각은 각각 마력을 ‘2’만큼 소모하는 듯싶었다.

그러면 3, 4번밖에 못 쓰는 건가?

무슨 마력 회복 수단이나 그런 건 없나?

“뭔가 아쉬운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지금 내가 그짝이었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이윤 100%는 넉넉하게 도달할 것 같지만,

비싼 술을 얻어먹으려면 메달권 안에는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흐음.”

새삼 주위를 훑었다.

외계인, 엘프, 드워프, 오크, 무슨 저글링 비스름한 괴물까지 얌전히 착석해 모의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다.

갖가지 종족들이 한곳에 모여 아무런 문제 없이 태블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정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 뭔가 대환장파티 같은 기분.

그리고 그 와중에.

[ 103, 594, 500 Gold ]

[ 105, 753, 900 Gold ]

[ 107, 390, 800 Gold ]

어째서인지 존나게들 이윤을 많이 보고 있다.

심지어 나랑 비비는 애도 있네.

저게 말이 되나?

나는 진짜 돈 복사를 하는 능력이 있는데?

“……하긴 나만 치트키 가지고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게다가 상인이 원체 행운(幸?) 수치가 높은 직업이라 돈이 잘 벌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랬었나?

그 행운 수치와 사기 능력의 콜라보가 다른 사람에게도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나를 이길 지도 모른다.

그것은 즉 방심할 때가 아니란 소리.

하지만……,

[ 행운 73 ]이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상위에 해당하는 편이 아닐까 싶은데…….

‘어때, 나 자신을 믿고 한 번 꼴아박아봐?’

【 천마신교 ─ 85,000 (­800) 】

내가 친히 들려준 덕분인지 주가가 500골드나 오른 천마신교를 한 번 더 매수해볼까.

고민하던 나는 문득 떠올렸다.

‘그런데 내 치트스킬 어디에서 돈을 가져오는 거지.’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렇다.

수요와 공급 너머 어딘가, 발할라에서 돈을 퍼오는 건가.

아니면, 모의 주식이라 가능한 짓거리?

“아니…, 한국 주식 신화를 써낼 생각이었는데…….”

설마 금감원에 잡혀가려나.

그건 아주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필승 전략을 다시 세웠다.

분산 투자를 하면, 괜히 스킬의 혜택을 못 받는 돈들이 생기니 오히려 손해다. 스킬 쿨이 도는 짜투리 시간에 돈 넣어놓으면 알아서 돈이 불어나는 종목에 전액 투자한다.

굉장히 불편한 주식 투자 방법. 분명 10분 전만 해도 당연한 방법이었는데, 돈 복사를 한 번 겪고 나니 이만큼 불안한 게 또 따로 없다.

“그러면 어디에 투자하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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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맹 ─ 91,300 (+600) 】

【 화산파 ─ 37,700 (+700) 】

【 소림파 ─ 40,200 (+200) 】

【 무당파 ─ 35,100 (+600) 】

【 남궁세가 ─ 48,200 (+1700) 】

【 제갈세가 ─ 11,800 (­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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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당장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종목에 돈을 넣는 것이 맞고,

그중 미친 듯이 5만 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남궁세가에 돈을 넣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처럼 보였다.

“하지만 꺼려진단 말이지…….”

에엣? 오늘만 벌써 6천 원 올랐는데? 정말로 오성전자 10만 가는 거야? 에? 정말로? 아니, 이런 바보 같은…, 안 들어가면 바보인 상황인 건가?

라는 생각에 펜트하우스를 거하게 지어버렸던 전적이 있는 나는 지금 상황에 강한 트라우마를 느껴버리는 것이다.

만약 남궁세가에 넣었다가 주가가 대폭락하면, 맥켈란이 문제가 아니라 멘탈이 깡깡 깨져버릴지도 몰라…….

“솔직히 꼴리는 건 제갈세가인데…….”

【 남궁세가 ─ 48,500 (+2000) 】

【 제갈세가 ─ 11,500 (­1200) 】

스읍. 나는 아리까리한 기분으로 천지 차이가 나는 그래프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도 아까 대충 보니까 사기 능력이 발동 안 돼도 즉시 매각은 되는 것 같던데.

“절충안을 실행할 수밖에 없나.”

나는 일단 모든 돈을 남궁세가에 쏟아붓기로 했다. 10% 디스카운트가 안 된 가격으로 사려니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다. 현재가보다 100원을 올린 48600원의 가격으로 전 재산을 투자해 매수한다!

[ ‘남궁세가’를 2200주 매수하시겠습니까? ]

[ 수락 / 거절 ]

띠링─!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는 애써 불편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점소이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뭐 좀 물어봐도 될까?”

“네! 얼마든지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점소이.

그냥 서비스 정신으로 나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반겨주는 듯한,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얼굴.

정말 기모노만 안 입었으면 좋아할 수 있었을 텐데…….

‘어떤 미친 새끼가 입힌 걸까.’

그것을 물어보려다 말았다.

혹시 어머니가 입혀주셨다고 말하면, 탈룰라가 되어버리니 그냥 사전에 차단하련다.

“다른 무림 단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비화나 앞으로 얼마나 유망할지. 그런 것들이 궁금한데.”

“아아, 접객에 관한 부분 이외에는 제게 권한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으음…, 객잔 안에만 있으면 안전한 건 확실히 맞지?”

“네, 확실해요!”

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왠지 모를 확신에 저절로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왔다.

“무림인들한테 가도 저 사람들이 나 죽인다던가 그런 위험은 없는 것도 맞지?”

점소이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확실합니다. 당신이 천주객잔 내에 있는 이상, 화경의 무인이 덮치더라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지킬 수 있습니다.”

짐짓 확신에 찬 목소리.

시스템 하에 있는 단체 혹은 장소는 어떤 규칙에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고 했다.

천주객잔(??客?)의 경우, 절대 상해·약탈·방해 행위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그 규칙 중 하나였고.

그렇다면, 다칠 걱정 않고 무림인 구경을 하러 가도 괜찮겠지.

점소이에게 손을 흔들고는 태블릿을 챙겨 또각또각 층계를 올랐다.

웬 놈이 움직이는 거지.

일층의 참가자부터 이층의 무림인까지 죄다 내게 시선을 보냈다.

‘……갑자기 쫄리네.’

아니…, 무림인들 면상이 왜 죄다 험악하게 생긴 거지.

무슨 조폭처럼 생겼네, 다들.

등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애써 태연하게 로봇처럼 움직이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나마 선량하게 생긴 도복 차림의 아재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곳에 무림에 대해 잘 아시냐고.

아재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대가 괜찮다면 내가 알려주겠…,”

……까지 말하다가 문득 이마에서 땀을 흘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는 볼의 흉터를 긁적이며, 한구석의 노인을 가리켰다.

자신이 아는 한 저분이 제일 무림에 대해 잘 아실 거라며.

나는 아재의 말을 믿고, 등지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가 여쭈었다.

그러자 노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마주했다.

“어떤 아해가 나를 찾아왔는고. 혹시 남궁의 검에 대해 궁금하다면 내가 친히…….”

“그, 혹시 제갈세가에 대해 여쭈려고 하는데 말이죠.”

“……뭐라. 제갈세가?”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던 노인의 미간이 매우 기분 나쁘다는 듯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그것을 본 나는 뭔가 팔뚝에 소름이 돋아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네에, 왜 망했나 싶어서.”

“아아…. 무슨 소리인가 했구나.”

그제야 노인은 미소를 되찾았다.

노벨피아 유

노인은 제갈세가가 얼마나 어리석고, 어째서 영락할 수밖에 없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아주 길게 남궁세가가 얼마나 훌륭하고, 어째서 굴지의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장장 연설했다.

“제왕검형의 위대함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남궁세가의 주식 그래프처럼 아주 곧은! 검로와 기세! 심과 기와 체의 조화가 이루어진 검격!”

“……오오. 그런데…, 저기…. 선생님?”

“자, 이제 내가 운남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아니…, 저기…?”

그렇게 2시간이 날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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