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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2화 (12/87)

〈 12화 〉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 * *

우당탕탕─! 무거운 무언가가 나뒹구는 소리에 신혜영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띵하다.

그녀는 머리를 짚고서 슬금슬금 연구실 의자가 나뒹구는 지점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흐린 시야 너머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진우가 시체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신혜영은 무덤덤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임무 끝났나 보네.”

하긴 조금 오래 잤지…….

신혜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진우의 상태를 훑어보았다.

그녀가 가진 마안은 그가 마력 탈진에 걸린 것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것까지 꿰뚫어 보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는 마안이기에 모든 것을 볼 수 없지만, 상승폭을 보고 유추해보건대 아마도 일등이나 그게 근접하는 성적을 거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등급도 올라갔겠지…,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강체화(??化).

경량화(??化).

주문을 머금은 신혜영의 몸에 붉은빛이, 이진우의 몸에는 푸른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몸에 한층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슬쩍 몸을 숙였다.

그리고, 이진우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거뜬히 들어 올렸다.

가녀린 체구의 여성이 180cm의 거구를 들어 올리는 진풍경이었다.

그녀는 뚜벅뚜벅 걸어가 방금까지 자신이 누웠던 소파에 이진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언제나 소지하고 있는 마법 주머니에서 마력 물약을 꺼내 그의 입에 콸콸 들이부었다.

그러자 이진우의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이 약간이지만, 혈색이 돌아왔다.

한숨을 돌린 신혜영이 숙직실에 가서 마저 눈을 붙일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드드드드─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마법 사고라도 났나?”

현 시각 새벽 6시.

마탑에 남아 있을 이들은 야근하는 사무직이거나 연구에 미쳐있는 마법사 양반들이다.

그녀가 알기로 양쪽 다 기운 좋게 복도를 뛸 위인들이 아니었다.

끼익─ 신혜영은 문밖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과 하얀 연구원복을 입은 사무직들이 죄다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어째서?

그렇게 멍하니 멀뚱거리던 중 마침 지원본부의 팀장, 이리엔이 눈에 들어왔다. 신혜영은 그녀가 겨우 들을 정도로만 속삭였다.

“저기……, 이리엔 씨?”

“……으응? 뭐야. 혜영이구나. 너 아직 퇴근 안 했었어?”

이리엔은 급한 용건이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어쩌면 직급이 높아서 늦장을 부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녀는 원체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신혜영은 다른 부서지만, 능력 있고 인망이 있는 그녀를 동경하는 편이었기에 수줍은 투로 대답했다.

“네, 이번에 들어온 신입을 담당하게 돼서…….”

“아아, 고생이 많네. 네 일도 많아서 바쁠 텐데.”

“에이, 아니예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나요? 전부 급하게 어디로 뛰어가시는 것 같던데.”

아아, 이리엔은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배배 꼬면서 대답했다.

“이번에 고등급 던전에 들어갔던 마법사가 복귀해서 말이야. 제법 희소한 괴물 부위 가져왔다는 소문이 싹 퍼져서 죄다 달려가는 중이지.”

“아, 어쩐지. 전부 달려가시더라니. 그러면 그 고등급 던전이 어느 정도 등급인가요? 적? 흑? 그러면 그 마법사분도 대단한 분이시겠죠?”

“너도 마탑에 들어온 지 그렇게 오래 안 됐으니까 이름은 모르려나?”

이리엔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복귀한 마법사에 대해 어떤 표현을 해야 할지……. 그녀는 긴 고민 끝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명쾌하게 말했다.

“그냥 최고전력.”

“……헤에.”

신혜영은 막연히 대단하다는 생각만을 하면서 방긋방긋 웃었다. 알코올 기운이 남아 있어서 그런가. 조금 웃음이 헤픈 느낌이었다.

그녀는 헤헤, 거리며 궁금증도 해결됐으니 이리엔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 또각또각­ 또렷한 발소리를 들었다.

신혜영은 고개를 돌렸다.

흑발의, 차갑게 굳은 표정의 미녀가 자신을 향해서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 * *

“프리미엄 골드 아니면 마일드?”

“아, 그…….”

“그냥 마일드로 준다?”

“아, 네넵…. 주는대로 먹겠습죠.”

부엌에서는 멀리 떨어진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은 유한나는 무척이나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며 녀석의 처우에 대해 고민했다.

보름 넘게 버로우를 탔던 친구가 돌아온 것은 분명 경사스러운 일이다. 녀석과 얼싸안고 룰루랄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도 하지만, 반면 아구창에 파이어펀치를 박아 넣겠다 다짐한 것도 수만 번.

이대로 그냥 넘어간다면, 사나이의 다짐이. 보름간 느꼈던 분노와 배신감이 눈물을 흘리고 말겠지.

나는 유한나에게 상냥한 미소를 내보이며, 그녀 생애 마지막이 될 커피를 제조했다. 뭐, 갈 땐 가더라도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그녀는 내 미소를 보고 어째서인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유한나에게 커피를 건네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지그시 그녀를 노려보았다. 유한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우물쭈물 있기를 몇 분.

그녀는 결심이 섰는지 이내 하하,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우야! 너 마법사가 됐다며?! 정말 축하해! 아, 참! 그리고 나도 마법사야! 무려 너보다 훨씬 먼저 각성한 선배…,”

“…….”

“아…, 그…, 뭐…. 제가 엄청 어려운 던전을 깨느라 많이 늦었습니닷……! 연락 없이 잠수를 탄 점 정말 죄송하고 반성하는 중입니다!”

“그래. 제 죄를 아는 것을 보니 다행이구나. 그렇다면 죗값 치를 각오도 되어있겠지.”

나는 주먹을 움켜쥔 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유한나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밤톨만한 머리를 내리쳤다.

으악!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너무 세게 때렸나 싶었지만, 그 생각도 잠깐 보름간의 고생이 다시 떠오르며 분노가 은은히 타올랐다.

“야, 그래서 너 언제 돈 갚아. 아니, 금방 갚는다며, 자식아. 아니, 그리고 너 설마 내 번호 뿌린 건 아니지? 그러면 진짜 너 내가 죽여 버릴….”

“아, 잠깐만! 폭력 멈춰! ……일단 돈을 바로 보내줄게? 기다려봐?”

그렇게 말한 유한나는 후다닥 휴대전화를 꺼내 조작하기 시작했다.

띠링─! 침대 한쪽에 던져 놓았던 내 폰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나는 어디 한 번 보자는 마음으로 그것을 집어 곧바로 확인했다.

[ 유한나 ]

[ 50, 000, 000원 ]

“……이건 뭐꼬.”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 보는 자릿수의 액수. 모의 주식이라며 몇억씩 굴린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나는 빤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유한나가 팔짱을 낀 채 제법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그 뭐냐. 나머지는 이자 받았다고 생각하고 잘 써라?”

“미친년이. 50만 원 빌려놓고 무슨 비트코인으로 갚고 앉았네.”

“응, 나 돈 많아? 그러니까 혹시 되돌려준다던가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이게 자본의 힘인가.

본래 내가 훨씬 우세했던 우리 둘의 관계가 순식간에 균형을 맞춰간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별생각없이 커피를 들이마셨다.

아, 어느새 미지근해졌다.

“시발, 이렇게 돈도 많았으면서 대체 돈은 왜 빌림? 상하차 뛸 뻔했던 내 마음을 네가 알까 모르겠다.”

“……아니, 그거 결국엔 안 뛰었­”

“공감을 하란 말이야. 이 자식아. 그래서 왜 빌렸어?”

“아니, 능력 때문에 좀 빌렸어. 그, 제약이 생기면 강화되는 능력이라.”

왠지 말하기 꺼림칙한 듯한 소꿉친구의 표정. 뭐, 여러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시스템이나 마법을 일반인에게 알릴 수 없다는 등의 제약이 있으니 나한테도 못 알린 것이고.

으음, 슬슬 용서해줄까?

내가 슬슬 풀리는 기색을 보이니 유한나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조금 더 우려먹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기도.

헤실헤실 웃던 유한나는 문득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맞다. 너 사수로 엄청 예쁜 애가 붙었다던데? 성격은 괜찮아?”

“뭐야,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에헴, 내가 발이 조금 넓은 편이지. 그런데 너 부정은 안 한다?”

“뭐, 예쁘기도 하고, 착한 것도 맞는 것 같으니까?”

“흐응……, 그렇구나?”

유한나는 잠시 입을 꾹 닫더니 금세 밝게 웃으며 부랄친구 텐션을 이끌어냈다.

나도 분노와 배신감 같은 것은 그만 내려놓고, 오랜만에 마음 편히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가 유한나가 주박(?)을 위해서랍시고 내 번호를 뿌린 것을 실토해버려 꿀밤을 몇 대 더 맞은 것은 덤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자신이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단언했다.

그것을 제하고는 굉장히 편안하고, 즐거운 부랄친구 토킹 타임이었다.

“슬슬 일어나야겠네.”

“뭐야, 웬일로? 밥도 안 먹고 가게?”

“보름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나도 수습 좀 해야지. 네 연락처 건도 있고, 돈 빌린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웃는 그녀. 그러나 묘하게 기운이 없어 보인다. 그런 녀석이 걱정되어 바래다주려 했지만, 됐다면서 저지당했다. 배웅은 현관까지면 충분하다고.

유한나는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손을 흔들었다.

마주 흔들었다.

조만간 다시 보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 약속을 잡지 않아도 심심할 때 바로 만나서 놀고 그랬으니.

콰앙─! 문이 닫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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