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반드시
* * *
콰앙─!
문이 닫히자마자 줄곧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던 유한나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아,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보아서 그런 걸까. 평소보다도 아쉬움이 컸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현관문을 탁탁 두드렸다.
자그만 소리지만, 혹시라도 듣고 나와주지 않으려나 싶어서.
“…….”
묵묵부답이었다.
유한나는 슬픈 눈으로 현관문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저 문을 따고 들어가 쾌활한 미소를 짓고서.
“그냥 밥까지 먹고 갈게!”
라고 말하며,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안 된다.
잠깐의 행복을 위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간의 행복을 저버릴 수는 없다.
참자…….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돼.
앞으로 한 번의 고비만 넘어서면 진우가 원하는 대로.
마치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듯이 이뤄질 수 있어.
그녀는 그를 알았지만,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망할 제약 같으니.”
유한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민하다가 곧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도둑고양이에게 다 차려놓은 밥상을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띠릭─ 이윽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이전에 인연을 만들어 두었던 마탑 원정대의 인선 책임자였다.
“어, 나야. 원정대 인선에 추천할 사람이 있어. 지원본부의 신혜영이라고. 응, 황(?)급. 적(赤)까지 간당간당하데. 그래…, 고마워. 잘 대해주고, 응, 부탁할게. 다음에 보자.”
그렇게 전화를 끊고,
유한나는 속이 간질거리는 감각을 꾹 눌러놓았다.
진우의 옆자리를 임시로 비우게 할 뿐만 아니라 그냥 아예 꺼져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지혜의 고서’, ‘만상의 현자’와 같이 세상의 어떤 비밀이건 알아내는 방법이 존재했다.
혹시라도 진우가 알아챌 가능성이 있다면, 흉악한 일을 행해선 안 됐다.
잠수와는 결이 달랐다.
이진우는 그런 것 정도는 거뜬히 용서할 수 있는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남을 괴롭히는 행위는 단순히 질색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쌓아놓은 우정을 산산이 조각낼 것이 뻔했다.
그녀는 그러한 이유로 암살과 협박을 선상에 올려두지도 않았다.
그리고……,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으니까.”
유한나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언제나 틱틱대지만, 나름 착한 심성을 가진 그의 옆에서 장난스럽고 친근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 모습에 하나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기를 바랐다.
그 찬란한 미래를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그러니까 제발 착한 사람으로 남게 해줘.
“……그래도 대비는 해야겠지.”
띠릭─!
한쪽에 주차된 차량이 웅웅 울어댔다.
한낱 대학생이 소유로 하기엔 지나치게 비싼 모델의 외제차.
그러나 그녀에겐 동일 차량을 수십 대도 살 수 있는 재력이 있었다.
그것을 더이상 감출 필요가 없었고.
유한나는 운전석에 앉아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검색했다.
이진우의 정조를 지켜낼 마법.
그녀는 그것을 발동시킬 재료를 얻기 위해 곧바로 던전에 갈 예정이었다.
자신은 앞으로도 자리를 비울 일이 많았고, 그동안 잘생긴 진우에게 다가와 꼬리칠 여우년들이 많을 게 뻔했으니까.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휴식이 절실했으나 진우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히 넘쳐났다.
“……진우야.”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하지만, 이제 머지않았어.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그런 말들을 애달픈 목소리로 되뇌던 유한나는 이윽고 이진우와 가정을 꾸리는 당연한 미래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반드시.
이루고 말 거야.
유한나는 강렬한 염원을 품었다.
* * *
아, 따분하다.
내일이라도 놀러 올 것만 같았던 유한나도, 금방 내게 출근하라며 닦달할 것 같았던 신혜영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지난 사흘 동안 나는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폰을 하다가 문득 느껴버린 것이다.
지루함을.
“……뭐지?”
뭐가 문제인 거지?
완전 파라다이스 그 자체인데.
마력을 너무 많이 써서 머리가 돌아버렸나 어째서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지?
“……손나 바카나.”
나는 경악했다.
엄청난 추론 끝에 알아차려 버린 것이다.
지금 내 몸은 ‘노동’을 원하고 있었다.
22년 백수 생활을 마치고, 취직한 지 하루 만에 수익률 500%를 달성했던 그때의 성취감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 미친 거 아냐?
그때의 일 처리가 워낙 완벽했지만! 나 너무 멋졌었지만!
굳이 핫산이 되기를 자처하다니.
그건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애써 그런 생각을 하며 근로 욕구를 억눌렀다.
그래, 게임이나 하자.
내 사수 씨가 부르지 않고 있을 때, 이 여유로움을 만끽해보자.
[ 적이 아군을 학살 중입니다. ]
[ 전장의 지배자! ]
[ 전장의 화신! ]
[ 마무리. ]
“…….”
이런, 시발?
아니, 못하면 말이라도 제대로 처들어야지.
왜 조또 못하면서 나대가지고 뒤져주고 앉았어.
너희 제정신이야?!!!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키보드를 내려칠까 말까 찰나에 수천 번을 고민했다.
유한나 덕분에 돈도 많이 생겼고, 전에 듣기로 골드도 한화로 환전할 수 있다고 하니 분명 나는 부자다.
그러나 오랫동안 소시민이었던 에고가 샷건을 멈춰 세웠다.
그래.
참자.
나는 겨우 게임 따위에 열을 내는 멍청이가 아니니까.
완벽하고 냉철한 자산투자가니까.
그렇게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하자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아니…, 우리 사수님. 연락도 안 받고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러나 출근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망할 직장은 결계로 뒤덮여 싸여 있는 마법의 공간이었고, 나는 마법을 쓸 줄 몰랐다.
게다가 나를 픽업해줄 사수님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
아니, 맥켈란 사주겠다고 연락하라매!!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
신혜영 너도 유한나 과였어?
이렇게 잠수 타기야?
돈도 안 빌렸으면서 내 연락을 안 받는 이유가 대체 먼데?
내가 찐따라서 마음에 안 든 거니?!
질척질척.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듯한 집착과 분노가 모태솔로인 내 마음속에서 마구마구 솟아났다.
마찬가지로 마법사라는 유한나가 혹시 안내를 해줄 수 있을까 싶어 연락을 해보았지만,
[ 띠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이동됩니다. ]
“……아니, 이새기는 또 어디 갔어.”
또 잠수다.
아니, 진짜 미친년인가.
대체 먼데.
몰래카메라인가?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던 나는 문득 내 잔고를 확인했다.
[ 잔액 : 49, 735, 000 원 ]
그야말로 엄청난 자릿수의 전투력.
이것은 며칠 전까지의 나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부여했다.
겨우 후링글스 한 통에, 키보드 하나에 쩔쩔매던 내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 지금이라면.”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트레이닝복을 벗고 최대한 깔끔한 옷을 갖춰 입었다.
오늘의 이진우가 지향하는 패션은 꾸미지 않은 듯하지만,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그것이다.
끼익─
현관을 나서며,
나는 당당하게 포부를 입에 올렸다.
“플렉스.”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명품을 싹쓸이할 생각에 마음이 쿵쿵 설레었다.
지금까지 소시민이었던 나는 이제 안녕.
오늘부터 나는 프린스 Lee다.
그렇게 시내버스를 타고, 백화점에 도착한 나는 마법의 주문을 외쳤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살게요!”
분명 될 줄 알았다.
“네, 236, 480, 000원입니다.”
그나마 싼 곳으로 왔는데.
나름 이성을 지켜 라인 하나만 가리켰는데.
백화점의 명품샵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더럽게 비쌌다.
“…….”
……쪽팔려서 도망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