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그때, 마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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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저벅.
무거운 발소리가 몇 번 울리고, 사내가 가림막을 젖히며 텐트 내부로 들어왔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그는 오른쪽 모포에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교대다.”
아주 짧은 한마디.
그러나 그것은 아주 확실히 상대에게 전달되었다.
간신히 잠든 것을 단숨에 깨버릴 정도로.
……들썩들썩.
모포 아래의 인물이 뒤척였다.
흔들리는 모포 옆으로 금색 머리칼이 삐져나왔다.
그렇게 부글부글 끓던 모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팟, 하고 솟아올랐다.
“……허.”
금발 적안의 마녀는 멍한 얼굴, 다 쉰 목소리로 신음했다.
이내 그녀는 자신을 깨운 남자와 어두운 텐트 내부를 둘러보더니 불현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 불침번.
세 시간의 취침 시간은 말도 안 되게 쏜살같이 흘러가고 말았다. 신혜영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흘러나오려는 비애의 눈물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남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곧 하품하며 제 텐트로 향했다. 제 할 일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이었다.
신혜영은 고양이 세수를 몇 번 한 뒤, 비척비척 일어났다. 머리맡에 놓아둔 마법의 장화를 신고서 텐트를 나섰다.
텐트를 나서자 보이는 것은 공터 근처의 거수(巨?)들과 새까만 하늘.
웬만한 빌딩보다 높고 굵은 나무들이 그득해 저 밑으로 들어가면 하늘조차 보이지 않을 듯했다.
마법사들이 강제로 밀어내 베이스캠프를 세웠지만, 본래 이 공터도 빽빽이 나무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적(赤)급 던전.
[ 트롤의 낙원(?) ]이라는 이름의 던전 내부로 그녀는 현재 원정대에 속하여 이곳을 정복하기 위해 파견된 상태다.
즉, 이곳은 언제 괴물이 덮칠지 모르는 위험구역으로 불침번이 필수 불가결.
그리고, 이번이 신혜영의 차례였다. 잠이 덜 깬 그녀는 비틀거리며 베이스캠프 중앙쯤에 있는 모닥불 앞에 앉았다.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뒤로 넘기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초번도, 말번도 아닌 딱 중간이라서 다른 날보다 훨씬 비몽사몽했다.
짜악─! 그녀는 살짝 볼을 내려치려다 조금 세게 쳐버렸다. 그 덕분에 함께 불침번을 서던 이들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제법 뻘쭘한 일. 그러나 그저 그뿐인 일일 텐데 그들의 시선에는 미약하지만, 적의마저 섞여 있었다.
신혜영은 그것을 알았지만, 별다른 내색을 하진 않았다. 조금 얼굴을 찌푸린 채 모닥불에 손을 내밀었다.
낙하산.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불리고 있단 사실을 알았다.
자신 또한 어째서 원정대에 낄 수 있었는지 의문과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남들은 오죽할까 그리 위안할 뿐이었다.
녹(?) – 황(?) – 적(赤) 흑(?)
이것은 던전과 이벤트의 난도를 나타내는 등급인 것과 동시에 시스템이 규정하는 마법사의 등위이기도 했다.
등위 중 가장 높은 흑(?) 급 중에 마법을 전혀 모르는 이도 있었으니 시스템이 나타내는 등위는 사실상 순수한 주술(?), 마법(??) 실력과 무관했다.
그러나 등급이 오를수록 강제적으로나마 그에 걸맞은 실력을 얻게 됐기에 전투적인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일종의 편법.
그럼에도 수많은 마법사는 그 방법으로라도 경지를 올리기 위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던전에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던전에 들어가 할당량을 채워 시험의 자격을 얻으려 했다.
녹이라면 황.
황이라면 적.
적이라면 흑.
본인의 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각성’ 던전에 들어가 공략하는 것으로 자신이 진급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한다. 자신의 수준보다 높은 곳을 정복하는 여정이므로 굉장한 위험한 일인 것이 분명했으나 수많은 마법사가 뛰어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선결과제인 던전에 들어가는 것부터 막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등급을 통틀어도 ‘각성’ 던전은 굉장히 희소했고, 정복하면 사라지는 일회용이었기에 들어갈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적(赤)급의 각성 던전은 특히 더했고, 적어도 뒷배 하나 없는 신입 마녀는 평생 들어갈 확률이 아주 적었다.
온 세상의 마탑과 마법사들이 노리는 자리였으므로.
“황(?)급 마법사 신혜영. 이틀 뒤까지 원정 준비를 마치도록 하시오.”
“……네?”
그래서 신혜영은 갑자기 날아온 소집 통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울고불고 빌어도 안 될 것이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통과됐다.
솔직히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신혜영은 자신이 누구한테 밉보여 묻어지는 걸까 생각도 했다.
설마 이런 귀중한 자리를 소비하면서까지 그럴 리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아무튼, 다음 등위로 나아가는 것은 그녀 또한 원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응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낙하산을 마다하지 않고 원정대에 참가했다.
뭐, 그 덕분에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받게 됐지만.
갑자기 이틀 전에 자리를 차지한 특급 낙하산이라면서 말이다.
아니, 지들도 뇌물 주고 들어왔을 게 뻔한데.
여하튼 그렇게 보름간 원정을 지내며, 본래 숫기가 없던 편인 신혜영은 제법 얼굴이 두꺼워지게 되었다.
남들이 쏘아 보내는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자기 일에 집중할 정도는 됐다.
그녀는 불침번 시간 내내 묵묵히 결계 술식을 주시했다.
비싼 장비와 결계를 몇 중으로 펼쳐놓아 경계가 엄중했지만, 던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혹시 모르지. 트롤의 낙원이라는 던전명답게 마력 파장을 파훼하는 트롤이 나타날 수도 있고, 어쩌면 모든 것으로부터 은신하는 어쌔신 트롤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나간 생각이려나?’
모락모락 타오르는 모닥불이 신혜영의 몸을 노곤하게 만들지만, 그녀는 되도록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불침번을 수행했다.
낄낄대고 있는 다른 두 불침번과 꽤 상반된 모습이었다.
“…….”
그렇게 1시간 반이 지났다. 다음 불침번과 교대할 시간이 된 것이다.
슬슬 신혜영도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음 불침번을 깨우려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피슉──!
문득 그런 소리를 들은 듯했다. 그녀는 일어나려던 몸을 무너뜨리고,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동시에 다른 불침번들의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그녀는 외쳤다.
“습격이다아아아──!!!”
그리고, 그녀는 콰앙─! 불침번석에 놓인 버저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날카로운 경고음이 베이스캠프에 울려 퍼졌다.
다다다닥─. 텐트 곳곳에서 원정대원이 재빠르게 튀어나왔고, 미간에 단검이 박혀 쓰러지는 자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그것을 던진 범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원정대원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원정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인공태양! 당장 인공태양을 띄워라!”
그거 띄우면 모든 결계와 방비망이 무소용이 된다고. 숲의 모든 괴물이 달려올 거라고 대꾸하는 이는 없었다. 사실상 이미 뚫린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지이이잉─
마력이 결집해 만들어진 작은 태양은 빠르게 캠프 위로 치솟았다.
그제야 주변의 광경이 그나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 마법의 신이시여.”
그때까지도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던 신혜영은 슬쩍 고개를 들어 수림 속을 확인했다.
그리고 보았다.
남색 두건과 암행복을 착용한 트롤과 안테나를 등에 지고 다니는 알몸의 트롤을.
마안(??)의 소유자인 그녀는 정확히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어쌔신 트롤 ]
[ 어떤 트롤보다 날렵하고, 은밀하게 기동합니다. 암살이 특기입니다. ]
[ 안테나 트롤 ]
[ 어떤 트롤보다 약한 육신을 가졌지만, 이들은 어떤 파장도 훼방을 놓을 수 있습니다. 전파, 마나 방해가 특기입니다. ]
“……이런, 시발.”
신혜영은 생애 처음으로 시발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타악─! 그녀는 자신의 주둥아리를 쳤다가 머리도 한 대 두들겼다.
입이…, 아니 머리가 방정이었다.
쿠웅─!
콰앙─!
쿠웅─!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그들 뒤로 다른 트롤들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물량이었다.
그것을 본 신혜영은 잠깐동안 패닉에 빠져 있다가 결국엔 울며 겨자 먹기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마법을 캐스팅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시발. 좆같아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여리고 순진했던 마녀가 강인한 전사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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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혜영 >
[ 등급 : 황(?) ]
[ 직업 : 마녀(??) ]
[ 특성 : 마안(??) ]
[ 능력 : 중급 마법, 연금() ]
[ 성향 : 중도(中?), 순진(?) ]
노벨피아 유
[ 근력 : 13 ] [ 체력 : 10 ]
[ 민첩 : 11 ] [ 지혜 : 43 ]
[ 마력 : 48 ] [ 행운 :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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