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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0화 (20/87)

〈 20화 〉 으아앙악!!!

* * *

불타는 대지. 땅바닥은 온통 활활 타올라 마그마에 가까운 상태이고, 이따금 하늘에서 불타는 운석 따위가 떨어지기까지 한다. 인간이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환경.

그런 극악의 환경을 태연히 거닐 수 있는 용사들이 존재했다.

흑(?) 급 던전. 그를 공략하는 ‘흑’ 등위의 마법사들.

사실 그들을 마법사라고 부르기엔 칼과 창 같은 날붙이를 든 이들이 훨씬 많았지만, 결국에 그들은 모두 셀베르크 마탑 소속이었기에 뭉뚱그려 마법사라 불리었다.

그 역전의 마법사 중 일인(一人), 유한나는 눈치가 더럽게 없는 소꿉친구를 어떻게 덮칠지 고민하다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드드드드드드드──!!!!!

“……허?”

이진우와 연결되어 있는 인연의 실이 거세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실을 타고 느껴지는 감정은 격렬한 동요! 유한나 또한 더불어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진우야! 무슨 일이야?!’

아니, 우리 진우. 침착하고 대범한 애인데. 웬만하면 잘 놀라지 않는 편인데, 어째서 이렇게나? 혹시 위급한가? 아니면……,

‘설마 여자?’

……어느 쪽이건 매우 좋지 않다!

유한나는 표정을 잔뜩 굳힌 채로 대열 맨 앞에 있던 원정대장에게 다가갔다. 마침 보스의 위치를 유추하던 그는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가끔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만, 그래도 유한나는 전천후에 능력자에 가까웠고, 특히 그녀의 능력 [ 운명 ]은 위기를 대처하는 데에 아주 요긴했다.

성격은 몰라도 능력만큼은 믿음직스럽다는 것이 유한나를 향한 동료들의 평가였다.

“무슨 일인가. 혹시 보스를 찾았나?”

“아뇨. 저는…,”

당장 던전을 이탈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려 했던 그녀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드드드드──…

아까부터 격하게 흔들리던 인연의 실이 잠잠해진 것이다. 동시에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던 본능도 점점 가라앉는다.

‘……뭐지? 괜찮아진 건가?’

유한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던전 내라서 상황을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당장 던전을 이탈할 필요는 없다.

‘……아니, 그래도 서둘러야 해!’

이진우…, 눈치는 더럽게 없는 주제에 얼굴은 잘생겨서 언제 여우가 달라붙을지 모른다. 주기적으로 퇴치해주지 않으면 안 돼!

다시 마음이 조급해진 유한나는 눈을 감고 자신의 능력 [ 운명 ]을 극한으로 발동했다.

[ ‘운명’의 출력을 3단계로 늘립니다. ]

……원하는 것은 우리가 보스를 어디에서 조우할 것인가.

“……찾았다.”

유한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앞장서서 원정대를 인솔하기 시작했다. 이따금 괴물들이 나타났지만, 단칼에 베어 버렸다.

‘……분명 내가 처음이겠지?’

그 숙맥에 넌씨눈인 이진우가! 다른 사람한테 바를 가자고 했을 리가 없어! 그래…, 던전에서 나가자마자 진우한테 바에 가자고 하자! 우리 바에서 하는 첫 데이트…….

“흐흐흐흐…….”

내일……, 아니. 오늘 안에 빠져나간다. 그렇게 결심한 유한나의 발걸음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흠흠.”

한편으로, 혹시 유한나가 이탈한다는 소리를 할까. 은근히 걱정하던 원정대장과 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잇달아 내쉬며 그녀를 뒤따랐다.

……정말 다행이다.

* * *

“그래서 말이죠? 원정대장이랑, 제 전담 고참 빼고! 어케…, 어케 아무도 저한테 말을 안 걸 수 있죠? 으아앙악!! 이게 말이 돼요?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해! 아악!”

“……으음, 그랬구나. 혜영이…, 고생을 많이 하고 왔구나?”

나는 그리 대꾸하면서 주르륵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정면에 앉은 신혜영의 볼이, 아니 얼굴 전체에 붉은 기가 감돌아 있다.

“흐에?”

저번에 보니 맥주 2캔만 마셔도 거의 뒤지기 직전까지 가던데. 오늘 그녀는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마신 걸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특히 원정 잘 다녀왔냐는 물음에, 동료들 많이 사귀었냐는 물음에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앵그리 상태의 신혜영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도 찐따인데. 친구가 별로 없는 아싸인데. 정말 배려심이 부족했구나. 벌써 2시간째 그녀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는 자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있죠? 불침번을 서는데…, 닌자 트롤이! 알몸에 안테나를 지고 있는 트롤이! 으아앙악!!!”

어쩌면 그냥 미친 거일 수도?

“……아, 저 화장실 좀, 전화 좀 하고 올게요오? 히히.”

신혜영은 헤벌레, 누가 봐도 취한 사람의 웃음을 내보이고는 벌떡 일어나 비틀비틀 화장실로 걸어갔다.

나는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해방이군.

그렇다면, 그 유예시간을 잘 활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터다.

나는 이마를 짚고서 빠르게 머리를 빙빙 회전시켰다.

“……찐따를 위로하려면, 어떤 말을 뱉어야 하지?”

왕따를 당한 친구를 위한 매뉴얼…, 도대체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까. 슬픔 멈춰!? 아니, 이건 아닌데.

으음, 친구라고는 유한나밖에 없어서 대처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새기는 남녀 구분 없이 잘 지내는 인싸새기였는데.

반면에, 나는? 그야말로 완벽한 찐따. 그리고, 친구가 한 명밖에 없는 아싸.

“……그러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되는 건가?”

오, 그게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나를 넘어서는 찐따 아싸는 없었으니까!!! 젠자아아앙!!!

“흐헤, 다녀왔어요.”

“응, 그러면 나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네에! 얼른 다녀오세요오…….”

그렇게 말한 신혜영은 거의 슬라임처럼 테이블에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걸까. 나 없는 동안 오바이트는 하지 않겠지? 섬찟한 상상을 하며, 서둘러 화장실을 다녀왔다.

“많이 기다리진 않았지?”

“네헤! ……금바앙, 오셨네요오?”

헤벌쭉 웃으며 나를 맞이하는 신혜영. 원래도 생긋생긋 잘 웃던 그녀지만, 오늘따라 특히 더 웃음이 헤프다. 진짜로 다음번에는 술 먹이지 말아야지…….

그래도 오늘 마신 맥켈란 30년만 벌써 5병. 이 정도면 뽕은 뽑은 것 같다. 넋두리하는 사람 앞에서 너무 타산적인 생각을 하는 건가?

약간의 반성을 하며 자리에 앉는데, 콧수염을 기른 멋쟁이 웨이터가 투명한 액체가 담긴 크리스탈잔을 테이블에 놓고 간다.

뭐지? 맥켈란은 아닌데?

“혜영아, 이거 뭐야?”

“흐헤헤.”

뭔가 의아함을 느낀 나는 이것의 정체를 물어보지만, 신혜영은 헤픈 웃음을 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잔을 들어 올렸다. 원래도 주량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마법사로 각성하면서 훨씬 주량이 늘었다.

그래서…,

꿀꺽, 망설임 없이 잔에 담긴 액체를 들이켰다. 그리고, 나는 목격했다. 크리스탈잔 아래로 신혜영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봐버렸다. 술이 닿은 윗입술이 저릿하다.

“……흐헷, 스피리타스.”

“……우읍?!”

풀네임 스피리터스 렉티피코와니. (Spirytus Rektyfikowan)

정제 증류주. 말 그대로 증류해서 고도로 농축시킨 알코올이라는 뜻이다.

대체로 95~96.5%의 무시무시한 도수를 자랑하며, 식용가능한 알콜의 최종단계.

간단하게 말해. 세계에서 가장 독한 술이었다. 초고도수의 대명사로 유명한 바카디 151보다 20%는 더 높은 미친 술! 나는 그것을 들이킨 것이다!

활활활! 식도를 타고 내려간 스피리타스가 위에 도착한다. 그것을 받아 깜짝 놀라 위는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또, 그 알코올의 기운을 옮겨 받은 내장들도…….

혀에 느껴지는 은은한 달콤함과 비강을 채우는 버터향과 별개로 입안에서 위장까지 활활 불태우는 이것은 도무지 좋아할 수 없었다!

“……어째서? 나는 너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내게 이걸 먹인 거지?!”

콰앙! 나는 테이블에 샷건을 치며 신혜영에게 물었다. 그녀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름 타산적인 생각을 했지만! 술값으로만 3천만 원은 뜯어냈지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를! 그녀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어째서냐니. 진심으로, 흐헷! 그 이유를 묻는 건가요? 흐헷….”

신혜영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님…, 제 잔에 물 탔잖아요오!”

“……흐억!”

앗, 노림수를 들켜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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