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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1화 (21/87)

〈 21화 〉 봉화(?火)

* * *

영원(氷?)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통, 시련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에 이른다.

그것은 두 달간 업무에 묻혀 살아온 이리엔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이윽고 모든 서류를 해치운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내뱉는다.

“……드디어 퇴근이다.”

장장 2개월! 이리엔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느라 집에 가지 못한 시간이었다.

어느새 숙직실을 제집 같이 사용하는 그녀에게도 엄연한 자신의 집이 있었다.

사실 집이 필요한 걸까.

그런 생각까지 하기 시작한 워커홀릭 이리엔에게도 직장을 벗어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주말 내내 방콕이나 할까?”

어떻게 쉬어야 잘 쉬었다고 소문이 나지? 그녀가 행복한 고민을 하며 기쁘게 퇴근길에 오르려던 순간이었다.

지잉─!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설마 잔업 요청은 아니겠지? 이리엔은 괜한 불안감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린 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 특급 노예 ]

[ 빨ㄹ리ㅇ하서 살ㄹ려세요;; 베이ㅇ커가 13번지 ‘그랑블루’]

“……이건 뭐야.”

다잉 메시지?

아니면 구조신호인가?

무슨 영문인지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 문자다.

이리엔은 머리를 긁적이며 특급 노예, 이진우의 저의를 유추했다. 나를 싫어하는 눈치던데 웬일로 나한테 연락을 한 걸까. 그 와중에 주소는 언젠가 갔었던 주점이네.

‘암살?’

내가 너무 미워서 함정을 팠다던가? ……에이, 내 일을 한 달 정도. 아주 조금 떠넘겼다고 죽이려 들기야 하겠어? 흐음,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용건일까.

그녀는 명확한 답을 떠올리지 못해 그냥 이진우에게 답장을 보냈다. 뭐, 술이라도 마시자는 거냐고.

그러나 답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리엔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가 일단 주점 ‘그랑블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울 일이 돕고, 함정이라도 부수거나 도망친다. 여차하면 폭탄 목걸이를 터뜨리면 되고!

룰루랄라. ‘퇴근’이라는 마력에 의해 굉장히 너그러운 상태인 이리엔은 가벼운 마음으로 주점에 들어섰다.

금세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흐흑, 친구가 필요해……. 모두 나만 따돌려! 왜애?! 으아앙악!”

“우웁! 우우우웁!”

“…….”

뭐지, 이 취객들은.

그녀는 굉장히 골치가 썩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예 오지를 않았다면, 상관없었을 텐데 도착한 이상 처리를 하는 게 성미에 맞았다.

“……그보다 혜영이는 왜 여기 있지?”

오늘 원정에서 돌아온 건가? 남의 일이라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이리엔은 마뜩잖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혜영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나긋이 불렀다.

“혜영아, 너무 많이 마셨어. 그러니까 이제 집에 가자.”

“……언니? 어케 알고…, 여기 오?어요오? 흐헷….”

“자, 일어나자. 옳지?”

“저는 왜…, 왜 아무도 저를…, 안 놀아줄까요오? 억울해! 으아앙악!!!”

얘가 왜 이러지. 뭐 잘못 먹었나.

처음 보는 신혜영의 모습에 질색하던 이리엔은 문득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진우를 노려보았다.

맞네, 이 사람이 범인이네. 어떻게 애를 이렇게 취할 정도로 먹일 수가 있어?

만약, 이진우가 알게 된다면 굉장히 억울해할 생각이었다.

당장 그는 이리엔이 노려보건 말건 정말로 뒤질 것 같았으니까.

시발, 들이마신 게 알코올인지 독인지 불인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로 위장이 존나게 아프다.

우웁! 우으으읍! 만약 토해내면, 장기까지 함께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까지 들 정도의 고통을 겪던 이진우는 결국엔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에휴.”

이리엔은 고개를 저었다. 쟤는 또 얼마나 마셨길래 저러는 걸까. 적당히 제 주량껏 마시지. 또, 적당히 좀 먹이고.

“짜안~~!”

그 와중에 신혜영은 이진우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몸을 일으키곤 잔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짜안!”

“혜영아. 너 그만 마셔야 해…….”

“한 잔만! 딱 한 잔만 같이 마셔요!”

이리엔은 본래 술을 마실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녀의 애절한 표정을 보며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생각했다.

‘그래. 그냥 빠르게 한 잔 마시고 근처 숙소에 눕혀놓자. 그게 최선이야.’

그러면 나도 한 잔 시켜야 할 텐데. 고민하던 그녀의 앞에 문득 크리스털 잔이 놓였다. 투명한 액체가 그 안에서 찰랑거렸다.

이리엔은 갑자기 이게 웬 것인가 하고 웨이터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서비스입니다.”라고 말하며 망설임 없이 떠나간다.

이리엔은 여전히 아리송할 따름이었다.

“……뭐지?”

“언니이이이….”

그녀는 자신을 보채는 신혜영과 술잔을 번갈아 보다가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술 종류도 못 물어봤지만, 뭐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라는 아주 안이한 판단을.

““짜안!””

째앵­. 술잔을 부딪치고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배시시 웃는 신혜영.

이리엔은 그녀를 보며 피식 웃고는 단숨에 투명한 액체를 들이켰다.

* * *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나는 변기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또, 나는 누구인가.

시밤바. 내가 지금 토한 게 내장인지 알코올인지 모르겠다. 입속부터 위장까지 안 아픈 구석이 없었다.

“……시발.”

차가운 불은 실존했다. 분명 찬 것이었으나 더럽게 뜨거웠으니.

정말로 뒤지는 줄 알았다.

나는 거의 뒤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화장실 벽에 기대었다.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신공의 공능 덕분인지 알코올로 이글거리던 위장과 어지럽던 머리가 점차 확연하게 나아졌다. 그래도 얼얼한 감이 아예 사라지진 않아서 명치 부근을 어루만지며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로 무서운 녀석.”

겨우 물 좀 섞었다고 이런 극독을 먹이다니. 정말로 죽을 뻔했다.

그 사실에 나는 열불이 났지만, 한편으로 당장 그녀를 마주하는 것은 두려웠기에…, 가게 밖으로 도피행을 감행했다.

노벨피아 소설 총 400,000화 유

휘이이잉─

어느덧 5월에 이르러 적당히 선선한 밤바람이 남은 취기를 마저 날려보낸다.

그리고, 밤하늘은 시골에라도 온 듯 반짝거리는 별들과 둥근 달로 가득 차 있다.

“……예쁘네.”

황천길을 구경하고 와서 그런지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듯하다.

그렇게 가게 입구에 서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콰앙! 굉음이 귓전을 울리며, 시야 한쪽에 불빛이 번뜩인다. 무슨 일인가 하여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새까만 마탑 중상층쯤에 커다란 화마가 일어난 모습을.

“……어?”

마탑에서 일하다 보면 싫어도 굉음에 익숙해지게 된다. 마법사들이 실험을 진행하다가 펑펑, 아주 자주 터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발음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마탑 외벽에 불이 붙는다던가.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아니, 오히려 마법 방비가 철저하다고…….

“……저거 괜찮은 거 맞아?”

무심코 속의 불안감을 내뱉지만, 그것에 대답해줄 행인이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주점 안에 있는 나름 마탑 고위직을 떠올리고는 다급히 뛰어 들어갔다.

“이리엔 씨! 이리엔……?”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해봐야 신혜영을 다독일 이리엔을 상상했건만 아니었다.

비록 그녀는 핼쑥해진 얼굴일지언정 가뿐하게 신혜영을 들쳐메고 있었다.

……누가 보면 납치하는 줄 알겠네. 아니, 살기등등한 얼굴을 보니 어쩌면 진짠가 싶기도 하다.

뭐, 괘씸한 신혜영의 처우는 아무래도 좋다. 단순한 화재일지언정 바깥은 상황이 급해 보였던지라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놀렸다.

“뭐, 마탑에 불이 붙어?”

이리엔은 굉음에 관해서는 역시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마탑 외벽에 불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가게 밖으로 급하게 뛰쳐나갔다.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타오르는 마탑의 외벽.

슬슬 하나둘씩 거리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

그들과 이리엔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외벽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거 안 괜찮은 거죠?”

“……중앙관제실.”

“네?”

“결계 시스템을 전부 관리하는 층이야. 그런데 저기가 터졌는데 지금 경보음도 안 울리고 있거든?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뭐, 중요한 곳이 빨리 가서 불 꺼야 하는 거 아니예요?”

“……아니, 이미 늦었­”

콰앙─.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콰드드드드드득── 보름달이, 하늘이. 마탑을 감추던 결계가 유리장처럼 부서진다.

■■■■■■■■■■■──────!!!!!!!

뒤이어 들려오는 굉음.

그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손차양을 해야 했다. 갑자기 시야가 너무 밝아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하늘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시발?”

운석이 우수수 떨어져내린다.

높은 창공에서 불을 머금은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우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만 수백 개.

종말(??).

나는 감히 그 단어를 떠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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