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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2화 (22/87)

〈 22화 〉 무엇이든 할 수 있어!

* * *

오늘따라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주변에 그늘 따위가 없어 온전히 달궈졌다. 태양은 대지를 온전히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한나도.

“…….”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망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셀베르크의 한국 지부는,

마탑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은 분명 번화한 동네는 아닐지언정 황폐한 곳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참상은 무엇인가…….

허리가 잘려나간 마탑과 그것을 본받은 것일까. 제각각 화마에 잿더미가 되거나 돌덩어리에 으스러진 마을 건물들…이었던 흔적.

그런 붕괴의 참상은 유한나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시야에 들어왔고, 결국 그녀는 온전한 건물 하나 없는 폐허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진우야.”

유한나는 넋이 나간 듯 소꿉친구의 이름을 되뇌며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비틀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

전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곧바로 그녀를 뒤따르며 사건의 개요를 읊었다.

4월 30일 11시경. 고위 환영술사와 화 속성의 마도사, 검성이 속한 빌런 조직이 결계를 파훼하며 침입.

침입 직전에 중앙관제실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을 보아 마탑 내부에 첩자가 있던 것이 확실함.

침입 직후, 곧바로 결계를 펴 민간에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 막았지만, 빌런과 응전한 대다수의 마법사들이 사망. 그중에는 흑(?) 급 마법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그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든 전력 외 인원과 핵심 물자 등을 피난처로 옮길 수 있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어느새 유한나는 주점 ‘그랑블루’가 자리했던 터에 도착해 그대로 주저잖았다.

그것을 본 전령은 놀라며 다가갔지만, 이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에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독기로 가득 차 당장 누군가를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전령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결코 유약한 여학생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그녀가 온갖 괴물의 멱을 따는 인간병기라는 사실 또한.

‘……여기, 분명 여기야.’

소꿉친구를 애타게 찾던 고위 마법사는 땅 위에 손을 올리고, 가늠했다. 분명 이진우는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그것은 물리적으로 찌부러졌거나 마법에 의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다.

납치당했다.

그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고.

누군가 이진우에게 걸어놓은 추적 마법을 따돌리고, 마법사라면 조금씩 흘릴 수밖에 없는 마력 잔재의 흔적마저 완전히 은폐시키면서까지 그를 납치했다.

현재 유한나가 알 수 있는 거라곤 희미하게 느껴지는 인연의 실로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녀는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분명 이진우가 게임을 하면서 이따금 쌍욕을 박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온라인의 일이다.

그는 현실에서 미움을 살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빌런의 눈에 유독 미워 보였을 리가 없을 터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째서 내 마법을 파훼할 정도의 실력자가…, 어째서 하필 진우를? 도대체 어째서……?

빠드득. 유한나는 이를 갈았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찾아야 해.”

이진우의 눈알이 파내어지고, 팔이 잘렸더라도 숨만 붙어 있다면.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를 살려낼 수 있다.

어떻게든 원상복구시킬 수 있다.

……그러면 일단 찾아야 했다. 이진우가 죽기 전에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어떻게?

유한나의 마음속에 분노, 불안, 두려움, 서글픔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녀는 단 한 가지.

간절하면서도 명확한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냉철하게 사고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희생을 치러야 그를 되찾을 수 있을까.

또, 자신은 그를 위해 어디까지 배팅할 수 있는가.

곧 그녀가 내린 결론은 명쾌했다.

전부 다.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과 기반, 이진우를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전부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

유한나는 문득 고개를 젖히고 평화로운 하늘을 올려보다가 뇌까렸다.

“……뒈진 녀석이 있다 했지?”

“네, 급파된 인원이 시체를 회수해 빌런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답니다.”

“내놔.”

“……네?”

그녀는 별안간 전령에게 고개를 돌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새끼 시체 당장 내놓으라고.”

전령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멍하니 있다가 섬뜩 놀라며, 제2 지부에 연락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한나는 곧바로 땅바닥에 진을 그리며 마법의 개시를 준비했다. 그 재료가 혈액이었기에 그녀는 얼굴과 손이 잔뜩 붉어진 채로 중얼거렸다.

“……곧 구해줄게, 진우야.”

이진우만 구할 수 있다면.

그녀는 시체를 수만 개라도 파헤치고, 제 목숨도 초개처럼 바칠 수 있었다.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 * *

어두컴컴한 독방.

손과 발이 묶여서 엉거주춤 엎어져 있는데 거기에 땅바닥이 차갑고 딱딱하기까지 해서 정말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다.

“……아니지, 어쩌면 더 위험할지도?”

대한민국 교도소는 적어도 죄수를 사형시키거나 고문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언제 조져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시발.”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거지. 그 이유를 떠올리니 이가 달달 떨려온다.

붙잡힌 이유는 간단했다.

메테오를 쏴갈기며 쳐들어온 빌런 연놈들이 찾아올 때까지 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잘만 튀었는데 어째서 나만 못 튀었는가…….

■■■■■■■■■■■──────!!!!!!!

하늘에서 빗발처럼 쏟아지는 유성우.

반대로 지상에서는 그것을 요격하는 마법이 이러저리 날아다닌다.

그것을 얼마 전까지 민간인이었던 내게 꽤 파멸적인 비쥬얼이었다.

흡사 외계의 싸움이랄까.

그것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로 좆된 게 아닌가 싶어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이리엔이 어깨를 흔들며 외쳤다.

“이진우! 우린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튀기만 하면 돼! 전에 읽었던 긴급 탈출 매뉴얼! 기억나지?! 피난처! 제2 지부! 스크롤을 써서! 피난처에서! 만나면 되는 거야! 알겠어?!”

“……예! 오케이! 알겠으니까 그만 소리 질러요!!!”

그렇지 않아도 쾅쾅, 곳곳에 울리는 폭음 때문에 귀청이 다 떨어지는데 이리엔이 막타를 노려버린다.

뭐, 그래도 살 방도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는 것은 큰 희망이 되었다. 정말로 뒤지는 줄 알았는데, 어라? 긴급 탈출용 워프 스크롤이 있었네?

“시발, 진짜 개나이스네.”

내 생애 처음으로 마탑제 물품에 감사할 날이 찾아왔다.

이리엔이 마지막으로 외쳤다.

“피난처에서 만나!”

“오케이! 땡큐!”

이리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크롤 두 개를 겹쳐서 찢어버린다. 들쳐메고 있는 신혜영의 몫까지였다.

슈루루룽─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운석 처맞기 전에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품속을 뒤적여 스크롤을 하나둘 꺼냈다.

혹시나 빌런들이 제2 지부 위치를 알아채지 못하게 여러 곳을 경유해야 한다나.

“……이건 7번이고, 이게 1번인가?”

쾅쾅쾅! 주변에 운석이 떨어지는 한 가운데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나는 그제야 스크롤을 쫘악 찢었다!

가즈아아아아아아!!! 어디로든 문!!!

띠링─!

[ ‘최상급 마력 봉쇄구’에 의해 ‘텔레포트’가 불발되었습니다. ]

[ ‘텔레포트’의 올바른 발동을 위해 봉쇄구를 해제해주십시오. ]

“…….”

나는 별안간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읽다가 문득 목에 둘러진 폭탄 목걸이를 만졌다. 참고로 열쇠는 이리엔에게 있었다.

“……시발.”

나는 처참한 심정을 느끼며 조용히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시발, 개조졌네.

이후, 빌런에게 발견돼 포획당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이리엔! 개새끼야! 망할 놈의 블랙기업! 망할 상사 새기! 만나면 반드시 죽여버린다!!!”

그리고, 어딘가로 끌려와 꼼짝없이 독방에 갇혀 상사를 저주하는 신세.

꼭 이런 대사를 뱉는 애들은 삼류 악당이라서 곧 뒤질 운명이던데.

하지만, 속에 북받쳐 오르는 화를 발산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

아니, 시발. 지가 걸어놓은 목걸이를, 공간이동 봉쇄 같은 기능을 깜빡하고, 먼저 튀는 게 말이 돼? 사람이 할 짓이야?

시발. 물론 목걸이를 걸고 있는 나도 깜빡했지만, 시발! 걸어놨으면 책임을 져야지!

씩씩, 그렇게 화를 내다가도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실은 아까부터 너무 불안했다.

최대한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겁에 질린 개처럼 깽깽 짖을 뿐이었다.

“……아, 진짜. 시바알.”

정말 마음 같아선 두 손에 얼굴을 처박고 엉엉 울고 싶었다.

하지만, 손발이 묶여 있어서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르르륵,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사나이의 수치. 젊은 꼰대인 나는 그 수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최대한 억눌렀다.

그렇게 이거 진짜 어쩌면 좋지.

정말 뒤지는 건가?

만약 뒤질 거라면 고문은 안 받고 깔끔하게 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넋을 놓은 채 코를 훌쩍이며벽에 기대어 있기를 몇 시간.

끼이이익─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어두운 독방에 빛이 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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