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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3화 (23/87)

〈 23화 〉 해적왕

* * *

재난을 맞이했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진 셀베르크 제2 지부.

마법사들은 민간인들의 눈을 피해내고자 넓은 범위에 결계를 펼쳤고, 드넓은 평야를 구축했으며, 본래와 똑같은 형태의 마탑을 굳건히 세웠다.

그러니 언뜻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러나 그 외의 주거 환경은 어떤 깡촌보다 조악한, 대량의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막사만이 우후죽순으로 설치된 피난민 캠프.

일손이 비는 마법사가 급하게 건물을 건조하지만, 그것이 지어지는 동안에는 초라한 막사 생활이 불가피해 보였다.

“엄마, 이제 괜찮은 거야?”

“으응, 괜찮아. 아저씨들이 불 다 껐대.”

어린아이는 제 어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서 그녀의 다급했던 얼굴을 떠올리며 재난이 지나갔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괜찮다며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는,

그리고, 그 외의 민간인들은 방금 일이 으레 있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분명 영역이 쑥대밭이 될 만큼 대참사였으나 어떤 희생 없이 번번이 살아남았던 그들은 이번에도 괜찮다며 자신들을 위안했다.

실제로 그들의 집은 실시간으로 지어지는 중이었고, 후속으로 지원 또한 이어질 것이 확실했으니 그 말이 옳았다.

그러나 그리 위안하며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이들만 캠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민간인들이 생활하는 곳보다 조금 넓은 정도에 불과한 막사.

허름한 책상 앞, 의자에 앉은 셀베르크 지원 본부 팀장 이리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붉은 머리를 제 손으로 헝클어뜨렸다.

“……시발.”

낙오자가 생겼다.

그것도 바로 제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이었다.

온전히 자신의 실수로 폭심지에 두고 와버렸다.

이것은 언제나 착실히 제 몫을 해왔던 그녀로서 굉장히 당황스럽고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병신 같은 년.”

아무리 ‘술’의 형태를 띤 독극물을 들이마셨다 하더라도.

그래서 머리와 내장이 뒤집히는 듯한 통증을 겪었더라도.

쾅쾅쾅! 갑작스럽게 메테오를 떨구면서 빌런들이 쳐들어왔더라도.

바로 옆의 전력 외 인원 둘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더라도.

……세상에, 겨우 봉쇄구 하나를 못 풀고 도망쳐서는 안 됐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이리엔은 욕지거리를 하며, 쾅쾅! 탁자에 머리를 내리박았다. 주르륵, 그녀의 이마팍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분명 자원으로써 이진우의 현재 가치는 낮았지만, 기댓값은 확실히 높은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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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서류 작업에 매우 재능이 있는 특출난 인재.

이렇게 한 달간 일만 시키다가 저세상으로 가면, 귀신이 되어 자신을 얼마나 괴롭히겠는가!

죽어도 그런 꼴은 못 본다!

그래도 이진우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정황상 이유는 몰라도 빌런들에게 납치를 당한 듯했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시발, 내가 어떻게든 구해낸다. 노예야. 제발 살아만 있어라.”

자신의 서류 노예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이리엔은 척살대에 참가했다.

전세계 셀베르크의 힘을 한데모아 더러운 빌런들을 척살하고자 조직된 추적대였다.

이번 기회에 정의를 더럽히는 추악자들을 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나.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유물은 찾아와라. 이리엔.

……뭐, 마탑의 늙은이들은 제 탐욕으로 빌런들을 쫓는 듯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이진우를 구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이리엔은 『힐』을 사용해 피를 대충 멎게 하고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다시금 읽었다. 그것은 현장의 생존자와 공간의 잔존 기억을 살피며, 빌런의 신원을 특정해놓은 보고서였다.

메테오의 시전자인 마도사와 흑급 마법사를 격살한 검성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도 적의 수괴 중 하나는 제대로 알아내긴 했다.

……그러나 이리엔의 얼굴에 드리워진 근심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린 샤오팡.”

이명 ‘하늘의 대붕.’

‘흑’급일 것이 확실한 고위 환영술사.

전조 없이 나타나 목적을 이루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아주 유명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기동과 은페에 있어서 제일이라 평가받는 마법사.

즉, 존나 잡기 어려웠다.

“……시발.”

그를 추적해야 하는 척살대 참모인 이리엔으로서는 그만큼 곤란한 자가 따로 없었다.

“이걸 어떻게 찾아서 조지지?”

그녀는 그 방법에 대해 고뇌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십 년이 넘게 잡지 못했던 빌런이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야 했다.

이진우를 평생 서류 노예로 부려먹을 생각이 만만한 이리엔은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되찾아온다.

* * *

끼이이익─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그것을 보며 나는 상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떡대 형님이 몇 명이나 들어와 나를 햄버거 패티처럼 곤죽으로 만들지.

아니면, 나이스한 누님 고문 기술자에 의해 손톱도 뽑히고, 살도 찢기면서 엉엉 울게 될지.

나는 앞으로 내가 처할 아주 잔혹한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했다.

시발. 인생 첫 납치를 당해 인생 첫 고문에 어쩌면 죽음까지 겪을 생각을 하니 정말 손발이 달달 떨리고, 눈물도 주륵주륵 흐를 것만 같은데 마음이라도 다잡아야지.

그래도 사나이의 지조는 지키겠다며. 손톱 2개 정도까지는 버틴 다음에 질질 짜겠다며 다짐한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

나는 눈앞에 제시된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두 눈을 의심했다.

뭐지?

무슨 의미지?

설마 관용의 손길인가?

살려주겠다?

아니면, 그냥 희망고문?

그것도 아니라면, 시발놈아! 손발이 묶여서 손도 잡지 못하지?

시발, 영원히 꿈틀대면서 지렁이처럼 고통이나 받아라!

라는 고도의 비꼼일까?

나는 순간 아득한 감각을 받으며, 손을 내민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찬란한 청발에 백옥 같은 피부,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미녀는 문득 내 손발의 족쇄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웁쓰, 뭐야. 손 묶여 있었네? 아니, 어차피 도망치지도 못하는데 심플하게 하자니까.”

그리고, 그녀는 싱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더니 손가락을 한 번 튕기었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울리고, 족쇄가 순식간에 잘려나간다. 그것들은 스르륵 미끄러지며 바닥에 몸을 뉘었다.

나는 수 시간 동안 바라왔던 해방을 맞이했음에도 순순히 기뻐할 수 없었다.

그야 시발, 아주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다시 손을 내밀고 있는 저 파란 머리 귀족 영애틱한 미녀는 나를 납치한 장본인이었으니까.

무슨 할라우드 배우처럼 생긴 사람이 나 같은 일반인을 납치?

설마 몸값을 받아내려는 건가?

나 황금고블린인 거 어떻게 알고 잡아왔대니.

나는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사실 그냥 농락 플레이였고, 당장이라도 뒤에 있는 떡대를 시켜 나를 두들겨 팰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

그러나 내게 주어진 사색의 시간이, 선택을 고민하는 사치가 슬슬 끝에 달한 듯했다.

왜냐하면, 유괴범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것이 보였으니까. 그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 뒤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녀의 손을 얼른 붙잡았다.

그제야 미녀는 다시 싱긋 웃으며, 나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우리는 마치 사교댄스를 출 것만 같은 모양새를 취하게 되었다.

나를 납치한 장본인이자 아무리 봐도 유럽산 미녀인 그녀는 눈과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나는 린 샤오팡.”

……뭐라? 웬 중국인?

나는 충격적인 사실에 깜짝 놀라서 그만 입을 쩍 벌려 버렸다. 그래도 일단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푸른 머리칼의 중국산 미녀는 매우 들뜬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너, 내 동료가 되어라.”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끔벅였다.

생각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나를 납치한 이 여자는……,

미친 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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