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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4화 (24/87)

〈 24화 〉 245일

* * *

창천(??)을 물들인 머리칼.

블루마린을 세공한 듯한 영롱한 눈동자.

연파랑의 벨벳 드레스는 그녀의 아찔한 몸매를 드러내고,

황망해질 정도의 미모는 고귀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천박’이라는 어쭙잖은 언사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만큼.

무려 그런 여인이 내게 황홀한 미소를 보이며 외친 것이었다.

“너, 내 동료가 되어라!”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미친 년.

그렇게 내심 읊조리니 문득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뇌리를 스친다.

친우에게 독살당할 뻔해서 황천에 발도 살짝 담가보고,

차가운 불…, 토사물 브레스도 토해보고,

겨우 도망쳐 나와 평화로운 밤하늘의 별을 세며 숙취의 여운을 즐기는데…….

하늘에서 우수수 메테오가 떨어지고 만다.

또, 빌런에게 납치를 당하고.

거기에 이렇게 납치범에게 스카우트 신청까지 받게 되니…….

아주 감개무량하달까.

‘……이걸 수락하라고 말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쉐엣!

그러나 정말로 서글픈 사실은 그녀의 제안이 제법 먹힌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제안을 받지 않으면!

대가리나 가슴팍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미래가 훤히 보였으니까!

그야말로 필사(必死).

이런 시불탱…….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 국적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서구적 미모를 자랑하시는 린 샤오팡은 은근히 눈웃음을 치며 눈치를 주고 있다.

시발, 어서 대답하라고.

무려!

무려 내가 손을 내밀고 있잖아!

라는 그녀의 퉁명한 목소리가 불보듯이 뻔한 느낌으로다가 뇌내에 울려 퍼졌다.

아님 말고.

여하튼 죽거나 노예가 될 것이라 생각만 하던 내게!

암울하던 내 미래에 ‘동료’라는 선택지가 추가된 것은 정말이지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고민했다.

‘……그야 이 새기 빌런인데? 내 첫 직장과 마을을 아주 불살라버린 사람 중 하나인데?’

그 원한을 잊지 않는다!

‘이리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엔!!!!!’

어라?

나 의외로 이리엔한테만 원한이 있고, 눈앞의 사람한테는 별 감정 없을지도?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빌런의, 악(?)의 동료로 합류하는 것이 옳은 일인 걸까. 올바른 선택지인가 고민되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래서 린 샤오팡의 동료로 합류할 것이냐?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그것은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하하하, 빌런이랑 일을 어떻게 해!

그러나 이건 내 목숨이 저울 위에 올라간 제안이다.

거절하면, 십중팔구 죽는다.

──그러나 문득 떠올린 것이다. 유치원 시절 “저는 용사가 될 거예요!”라고 외쳤던 기억을! 그때의 동심을! 정의를!

그래, 이게 맞는 거야.

‘엄마! 아빠! 한나야! 나는 먼저 간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최대한 참아내며 뇌까렸다!

“크읏…, 죽여라…!”

그러자 샤오팡은 살짝 크게 눈을 떠보이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역시 한 번에는 안 되는 건가.”

스르륵, 그녀는 나와 맞잡은 손을 놓고는 한구석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나는 잔뜩 움츠러든 채 곧 찾아올 운명을 기다렸다.

이제 떡대들이 달려들어서 나를 햄버거 패티처럼 작살내려나?!

아니면, 벽에서 기관총이 나와 두두두두­ 총탄을 내뿜는 건가?!

그렇게 내가 잔뜩 긴장해 있을 무렵.

따악­! 하고 청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들었던 핑거스냅 소리.

─────────────────!!!!!

……세상이 반으로 갈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싸늘하고 칙칙한 시멘트 바닥의 독실이 푸르른 초원으로 바뀌었을 뿐.

게다가 한쪽에 따사로운 햇볕을 가려줄 양산이 펼쳐져 있고, 테이블과 의자, 티 세트까지 세팅되어 있다.

“삭막한 공간에 갇혀 있으면, 사람이 각박해지기 마련이니까. 장소를 한번 바꿔봤어.”

“…….”

샤오팡은 의자에 앉고서 아까와 다름없는 상냥한 미소를 유지하며, 앞자리를 가리켰다.

“어서 와서 앉아.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우리 차분하게 이야기해보자?”

나는 왠지 상냥한 그녀의 미소와 목소리에 거부감을 느꼈다.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응.”

그러나 어째서인지 발걸음은 잘만 떼어졌다.

* * *

“아니,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또, 한 명도! 민간인을 죽인 적이 절대 없어! 애초에 이번 습격도 뺏긴 보물을 되찾기 위해서고. 그리고, 딱 원수 같은 놈들이 주둔해 있을 때 습격한 거라 억울한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니까? 뭐, 아무튼, 우리는 의적은 아니더라도 빌런치고는 꽤 상냥한 사람이라는 거지.”

적어도 네 생각보단 말이야.

샤오팡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개소리를 늘어뜨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들어도 믿어주지 못할 소리…….’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아니, 의외로 믿을 만할지도?’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이내 주억거리게 되었다.

불현듯 내 직감이 외쳤다.

나의 친우 린 샤오팡은 정말로 억울한 녀석이었구나 하고!

그런 친우의 동료 영입 제안…….

이것은 기꺼이 들어볼 만하지 않는가 싶었다.

“좋아, 조건을 말해보아라.”

“이야, 너 이제 제법 당당하게 말하는구나.”

“조건!!!”

“도대체 왜 동료를 좋아하나 했더니…….”

허허, 샤오팡은 헛웃음을 흘리며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더니 허탈하게 말했다.

“모두 다.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줄게.”

“……왓? 개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하하, 개소리라니.”

샤오팡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그녀는 끝내 상냥한 미소를 사수하고는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려냈다.

“물론 나도 조건 2개를 제시할 거야.”

“오, 진작 말했어야지. 뭔데. 빨리 말해봐.”

“……첫째,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거야 친우로서! 동료로서 당연한 거 아닌가? 그다음은?”

“둘째, 이곳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샤오팡은 유심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는 이제부터 영원히 마탑으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래서는 안 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해야 해. 왜냐하면, 우리는 떼어놓을 수 없는 친우이자 동료거든.”

나는 문득 십년지기 망할놈의 부랄친구를 떠올리지만……,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금세 잊혀진다.

“……그러면 그것 말고는?”

“없어. 그것만 잘 지켜준다면 최상급의 침실은 물론. 네가 먹고 싶은 산해진미를 제공할 거고, 밤마다 각국의 미녀들까지 넣어줄게.”

어때?

린 샤오팡은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녀는 이후에도 여러 감언이설을 던지며, 특급 인재인 나를 영입하려 했다.

그 결과, 나는 수락했다.

왜냐하면……,

“아, 근무시간? 으음, 네 능력의 쿨타임이 돌 때마다, 아니면 생각날 때마다 해도 돼. 나는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 믿고 있으니까!”

라는 말도 안 되는 근무조건을 들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점심시간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뭐라고?

퇴근이라는 게 존재해?

뭐라고?!!

세상에, 쉬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어?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침대에 누워 스킬 발동만 하면 되는 직장이라면, 평생동안 근무할 의향까지 있었다.

“잘 부탁해, 친구.”

“후후, 나야말로 잘 부탁해.”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만족스럽게 근무 조건을 조정한 것이었다.

으음, 진정한 동료라서 그런가. 이런 부분을 맞추는 데에 있어 궁합이 좋군.

“……이리엔 개새끼.”

그런 의미로 빨강머리악덕상사는 최악의 파트너였다.

그녀를 떠올리니 영원히 마탑으로 돌아가기 싫어지는 게 굳이 계약조건 2번은 필요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웃고 있는 샤오팡에게 물었다.

“어이, 내 친우여. 그토록 순수하고, 정의로운 너는 어째서 지구의 평화를 지키지 않는 것이냐. 보아하니 너 정도면 꽤 강할 텐데.”

나는 분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니 하늘의 메테오가 복사되는 것을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사기능력.

그런 의문 섞인 내 표정을 본 샤오팡은 피식 웃었다.

“꼰대들 아래에서 일하려니 좀이 좀 쑤셔야지. 언제까지 바보처럼 던전에다가 자원을 쏟아부을 건데? 그 쓸데없는 짓거리에 몇 명이 죽은 건지 알아?”

“아니, 친우여. 지구를 지키기 위한 영웅들의 희생을 헐뜯지는 말게나.”

“뭐,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곧 망할 세상을 지킨다고 사지에 가는 건 사양이라는 거야. 그렇게 좀 빼니까 나를 빌런으로 지정하더라고? 완전히 미친 작자들…….”

린 샤오팡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내뱉었다.

“아니, 너 말하는 거 보면 무슨 던전을 언젠가는 못 막을 것처럼 말하네. 세상이 망하는 게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포기한 것 아니…?”

“……너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샤오팡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

“설마…, 너 혹시 모르는 거야?”

“……뭐가?”

“……아니, 상태창 옆에 쓰여 있잖아. 아주 작은 글씨지만. 카운트다운.”

“……?”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태창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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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우 >

[ 등급 : 황(?) ]

[ 직업 : 거상(巨?) ]

[ 특성 : 금화신공(???) ]

[ 능력 : 거래(??), 매수(??), 매각(?) ]

[ 성향 : 중도(中?), 열혈(?血) ]

[ 근력 : 28 ] [ 체력 : 25 ]

[ 민첩 : 23 ] [ 지혜 : 41(­35) ]

[ 마력 : 30 ] [ 행운 : 75 ]

[ 소지금 : 10, 743, 488, 000 Gold ]

[ 정신 공격으로 인하여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

눈을 끔벅이며 그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맨 아래에 아주 조그맣게 쓰여 있는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그 내용은 아주 심플했다.

[ D­245 ]

그것을 본 나는 다시 눈을 깜빡였다. 두 눈을 의심했다.

“……어, 그러니까 이게.”

그러니까 내 친우가 말한 맥락에 따르자면…, 이 문구…, 숫자의 의미가…?

어?

……어어?

“……어라라? 진짜로?”

나는 한동안 믿을 수 없어 시스템 메시지만 바라보았다.

시발,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이 뜻은……,

──지구 멸망까지 245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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