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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6화 (26/87)

〈 26화 〉 행복(幸?)

* * *

반짝이는 별이 아름다운 밤하늘 위로 긴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유성우가 우수수 떨어진다.

하늘의 별이 전부 추락하는 듯한 압도적인 광경.

소녀는 그것이 아름답고 호들갑을 떨면서 제 부모에게 안겼다.

그녀의 부모는 흐뭇하게 웃으며, 소원을 빌라고 말했다.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순진하던 어린 시절의 신혜영은 곧이곧대로 그들의 말을 믿었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부디 우리 가족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음, 화목하게도요. 다른 친한 사람들이랑도 그러면 좋겠어요.”

또, 뭐라 말할까 한참 고민하던 신혜영은 그냥 눈을 번뜩 떴다. 그녀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었으므로, 그걸로 충분했다.

이제 다시 별똥별을 봐야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양손에 붙잡고 하루종일 쳐다봐야지.

조금 코가 시릴 정도의 추위지만, 충분히 버틸 수 있어!

해맑게 웃으며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슈우우웅­ 커다란 운석만이 보였다. 신혜영의 표정이 금세 굳었다. 그녀는 운석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콰앙.

흙먼지와 살점이 비산했다.

죽은 것이었다.

나도.

어쩌면 사랑하는 가족도.

“…….”

신혜영은 아주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밤하늘도, 가족의 웃는 얼굴도 아니라 칙칙한 숙직실 천장이었다.

……다행이다.

신혜영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사실을 떠올렸다. 슬픔에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이 두 손에 묻혔다.

째깍째깍.

벽걸이 시계의 초침 소리가 울려퍼진다.

7시 반.

곧 출근 시간이었다.

*

비록 종말(??)이 예정돼 있다지만, 실제로 그것이 이뤄지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셀베르크 마탑은 그래 보였다. 그것은 놀랍게도 박살난 지 사흘 만에 완벽히 재건되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말끔해져 신혜영이 속한 연금부 직원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그녀는 조금씩 새것으로 바뀐 마법 용품들과는 달리 여전한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평소 같으면, 그들과 농담 따먹기라도 할 텐데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것들이 신청됐나 확인만 하고, 연구실로 이동하려는데……,

“……그, 혜영 씨. 척살대에 합류할 건지 오늘 안에 확답해달라고 공문 내려왔더라.”

그럭저럭 안면이 있던 동료 마법사가 전달사항을 말해주었다.

신혜영은 알겠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문은 고이 접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연금().

그녀는 전투 마법에 제법 능숙했으나 생산 계열에도 한 발 걸치고 있어 제작 활동만으로도 공적치를 쌓을 수 있었다.

이제 각성 던전을 한 번만 더 돌면, 적(赤)급으로 승급할 테지만, 그 공적치를 계속 쌓아놓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래서 신혜영은 오늘도 마법 물품을 만들려 했다. 그러나 오늘따라 정신이 산만한 게 영 집중이 안 됐다.

그녀는 멍하니 마법 용품에 담긴 용액을 바라보았다. 불길한 보랏빛 색채를 띠는 것이 독극물처럼 보였으나 사실 해독제였다. 그것은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쉬이이익──!!!

그렇게 오늘 그녀는 넋이 빠진 채로 있다가 몇 번씩 실수했다. 실력에 비해 간단한 제작과정임에도 그러했다.

만약 옆에 있던 마법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폭발 사고가 한 번쯤 났을지도 몰랐다.

콰르르르─ 신혜영은 쏟아지는 수돗물을 받아 얼굴에 문댔다.

피부에 차가운 물이 닿으니 조금 정신이 차려지는 듯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는 거울을 보았다.

아아, 언제나 빛나던 피부는 푸석했고, 눈빛은 죽어 있었다.

신혜영은 여태껏 살면서 이처럼 초췌한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하.”

그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도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꼬리는 꽤 서글퍼보였다.

­있잖아, 넌 뭐가 그리 슬퍼서 그래?

곧 다음 등위로 나아갈 수 있다.

단 한 번의 위기만 극복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가족을 살릴 수 있다.

종말에 휘말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거울 속의 나는 뭐가 그리도 슬프길래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혹시 일주일 뒤의 원정이 겁나서 그래?

거기서 죽을까 봐?

아니, 그건 아니다.

‘착한 마법사는 존재해도 나사가 착용된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격언처럼 그녀도 점점 나사가 빠지고, 죽음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이, 동료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러한 죽음의 압박감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 사흘 전 자신의 담당이던 마법사가 빌런에게 납치된 것처럼.

“……흐흑, 으으, 아아아아!”

신혜영은 세면대 앞에서 털썩 무너진 채 오열했다.

그녀의 필름이 끊기기 전 마지막 기억은 스피리타스를 마시고 거의 죽으려 하는 이진우의 얼굴이었다.

사람의 얼굴이 저리 새하얘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실실 쪼갰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진우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아아아!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진우 씨가 죽었어!”

마안으로 꿰뚫어 봤기에 알 수 있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이진우의 운동 수행 능력이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졌었음을.

그래! 내가 죽인 거야!

내가 술을 먹여서 죽인 거라고!

이리엔 씨한테도 물어보니까 슬픈 눈으로 나를 피했었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신혜영은 지난 이틀 동안 그랬던 것처럼 한참을 울부짖다가 불현듯 주머니 속의 공문을 꺼내 살폈다.

척살대(??).

온갖 흉악한 빌런을 쫓는 만큼 분명 위험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보상도 쫀쫀하다.

심지어 원정대 일정과도 겹치니 참가할 이유의 빈약함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신혜영은 다짐한 것이었다.

이진우의 죽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자신!

그러니 빌런의 목을 베서 그의 넋이라도 기려주자고!

반드시 복수해주자고!

신혜영은 새빨개진 눈시울을 훔치고는 중얼거렸다.

이번엔 제법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진우 씨, 조금만 기다려요. 저 아니면 빌런 중의 누군가는 한 명 올라갈 테니까. 같이 짝짝꿍해보자고요.”

그녀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자 그녀의 마음속 이진우가 활짝 웃었다. 신혜영도 마주 웃어 보였다.

그렇게 그녀는 심마(心?)를, 마음에 얽매어놨던 이진우를 떠나보냈다. 동시에 화장실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척살대 모집 공문을 손에 꽉 쥐고서…….

* * *

“…….”

막 잠이 깬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호화로운 방과 그 천장.

“하아, 다행이다. 시발꿈인 줄 알았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혹시 숙직실 침대라던가 그랬다면, 당장 목매달러 갔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곳의 울트라급 푹신편안한 침대를 몰랐다면 모를까.

“주말은 쉬어야지, 일하는 건 월요일에 해도 돼.”라는 샤오팡의 친절한 말을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매끼 식사로 미슐랭 셰프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면 모를까.

“마사지는 없나.”라고 중얼거렸더니 전문 마사지사가 3명이나 나타나 극상의 마사지 시간을 겪게 해주지 않았다면 모를까.

차라리 마탑에서 납치당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극상의 즐거움에 익숙해져 버린 이상 블랙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견뎌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아, 날씨 좋네.”

나는 극상의 행복함을 느끼며 화창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아, 행복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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