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
* * *
콰드드득─! 유한나는 붙들고 있던 무인의 머리를 으스러뜨렸다.
피와 뇌수가 사방에 튀었다.
자신의 얼굴에도 그 파편이 묻었지만, 그녀는 괘념치 않았다.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을 뿐이었다.
뭐지?
이 불쾌감은?
도대체…,
진우야……?
유한나는 이진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끓어오르는 분노에 바득바득 이를 갈다가 이내 표정을 다잡고 준비를 마저 해나갔다.
차곡차곡 시체로 제단을 쌓는다.
인세의 보물이라 불릴 만한 것들을 기물과 제물로 배치하고 지정한다.
성배에 모아왔던 신혈(?血)을 담는다.
이것은 유한나가 사도의 위에 앉은 이래 최대 규모로 거행하는 의식.
그리고,
그녀는 읊조렸다.
“아버지, 공물을 받으시옵소서.”
드드드드─
천지가 울리고 공간이 일렁인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왔던 대망의 의식이 시작되었다.
소꿉친구를 탈환하기까지 머지않았다.
그러나 유한나는 환희의 미소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진우를 만날 생각에 기뻐하면서도 섬뜩한 표정을 짓고서 생각했다.
……어떤 년이지?
* * *
샤오팡에게 납치당해 이동 요새 ‘스키드블라드니르’에서 생활한 지 이레.
또, 새 직장에 출근한 지 닷새가 흘렀다.
어느새 정형화된 내 일정은 대강 이러했다.
“하아아암~”
오전 7시.
누가 깨우지 않아도 기지개를 피며 칼같이 기상한다.
마법사가 되면서 신체 능력이 좋아진 덕분인 건지, ‘금화신공(???)’ 때문인 건지 나는 언제 일어날지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내 생체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은……,
내가 쿨타임에 맞춰 30분마다 착실하게 일어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띵딩딩~ 굿모닝~ 띵딩딩~ 빠빠빠…!’
숙면을 하다가도 때가 되면, 뇌 내로 굿모닝 송을 들으며 기상하는 것이다!
[ ……를 매각하시겠습니까? ]
[ 수락 / 거절 ]
[ ……를 매수하시겠습니까? ]
[ 수락 / 거절 ]
그렇게 일어나 매크로처럼 능력을 사용하고는 다시 드르렁 꿈나라로 직행한다.
그 사이클을 30분마다 반복하는 것이 돈 복사의 극의(??).
마탑에서는 나흘 동안 아예 안 자면서 일했으니 이 정도는 아주 가뿐했다.
“이 팀장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존슨 대리도 잘 잤어?”
오전 8시.
이진우 부서로 지정된 사무실에 출근해 내 휘하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아직 닷새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우리 부서의 직원들은 모두 정시출근을 하고, 근면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또, 그들은 내가 언제나 30분마다 노가다를 진행하는 것을 알았기에 나를 선망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당신 같은 독종은 또 처음 봅니다! 라고 말했었나?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자존감 상승에 먹이로 주었다.
한때 악덕 상사를 두었던 나는 윗물이 맑아야 한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잘 알았다.
그래서 나도 직원들을 존중하고, 가능한 한 그들에게 복지를 베풀려고 노력했다.
일단 전자는 우리 부서가 승승장구해 안 풀리는 일이 없고, 또 괜찮은 사람들이라 딱히 어렵지가 않았다.
그리고 후자는……,
[ 소지금 : 2, 310, 743, 488, 000 Gold ]
포브스 선정 갑부 1위에 등극한 내겐 너무나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자, 금일봉이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게!”
“아아!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두둑한 흰 봉투를 건네자 감격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는 부하 직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짝짝짝짝─! 부서 직원들이 다같이 밝게 웃으며 손뼉을 친다.
아아, 이런 부서 직원들의 하모니야말로 회사 생활 극상의 행복.
또, 이런 베풂이야말로 돈을 사용하는 방법의 극치가 아닐까.
나는 그런 진리를 깨달았다!
아무튼, 그렇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문득 광합성이 하고 싶어지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원래 회사 업무 시간에 멋대로 나가면 절대 안 된다.
그러나 내 주 업무는 사무실 주재보다 매수·매각 노가다였기에 사실 장소는 상관없었다.
“아아, 여긴 언제나 화창하구나.”
‘스키드블라드니르’라는 요새의 내성, 그 안쪽에 자리한 정원.
짹짹 지저귀는 참새와 파릇파릇한 분재 나무,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
그리고, 따뜻한 햇볕을 느끼며 그것들의 정취에 흠뻑 젖어 든다.
……아아, 마탑에 있을 때는 산책할 시간 따위가 있을 리 없었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고,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었어.
언제나 사무실 업무의 연속이었지.
무려 한달동안이나.
“이리엔 씹새끼.”
천만번을 말해도 모자라다.
내 인생 제일의 원수! 악적! 악덕 상사! 악마 그 자체! 루시퍼!
“……그리고, 헌신짝처럼 버려졌지.”
좆같은 마탑 패밀리.
그러나 이번 샤오팡 패밀리는 다르다!
그녀는 내게 럭셔리한 방과 침대, 부서와 사무실, 그리고 ‘팀장’이라는 직위를 줬다!
흐흐흐흐, 내가 팀장…! 내가 팀장이라고!
그렇게 30분 정도 낄낄대며 산책을 다녀오면 딱 점심시간이 된다.
곧장 내성에 달린 식당으로 달려가면, 미슐랭 셰프들이 따끈하게 만들어준 취향저격 국밥을 먹을 수 있다.
아, 물론 스테이크도 나온다.
그리고, 그 뒤로는 오전 일과와 비슷한 맥락의 일들이 반복된다.
[ ……을 매수하시겠습니까? ]
[ 수락 / 거절 ]
[ ……을 매각하시겠습니까? ]
[ 수락 / 거절 ]
나는 수락 버튼을 누르면서 힐끗힐끗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30분.
정시 퇴근까지 30분이 남았다.
게다가 이것은 그냥 퇴근이 아니다. 무려 금요일에 하는 퇴근!
그 말인즉슨, 내일은 주말이었다!
나는 자다가도 일하는 미친놈이었지만, 내게도 휴식은 필요했다.
그래서 애초부터 정해놓았다.
나를 알아주는 패밀리를 위해 평일에는 미친 듯이 일하고, 주말에는 미친 듯이 쉬자고.
“아아, 수락 버튼 누를 수 있어도 절대로 안 누를 거야. 절대 일 안 함.”
그런 다짐을 해놨기에 나는 주말을 기다리는 설렘을 극도로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시계만 들여다보면서 삼십 분의 카운트다운을 셌다.
‘아, 뭐지. 겁나 즐겁네.’
세상에, 삼십 분을! 1800초를 세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젠장! 이 재미를 이제야 알다니 인생 절반 손해 봤어!
‘이리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엔!!!!!!!!!!!’
하릴없이 노는 나와 달리 다른 직원들은 열심히 나름대로 돈 복사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속으로만 이리엔을 저주했다.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아이 킬유.
그렇게 노가리를 까는 내 시야에 문득 쫑긋쫑긋 문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샤오팡의 눈동자와 파란 머리칼이 들어왔다.
어제부터 계속 기웃거리는 걸 보면 조금 많이 심심한 모양이다. 하긴 여기 전파도 안 터져서 폰도 못하니까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으읏?!”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더니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휘파람을 불면서 사무실에 들어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깔 웃을 뻔했지만, 사장님의 위엄을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참았다.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5시 55분. 정시 퇴근까지 5분이 남은 때.
이 정도면 조기 퇴근이라는 아량이랄까, 권능을 베풀어줄 만한 시간이다.
“자,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이번 주 고생 많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봐요~”
“네, 팀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팀장님 덕분에 재테크가 뭔지 알게 됐어요! 존경합니다!”
“이 팀장님! 부디 사장님과 오붓한 시간 보내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 직원을 모두 내보냈다.
샤오팡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순식간에 비어버린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아니, 무슨 왕처럼 지내고 있네.”
“에이,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일 뿐이죠.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냥 일 좀 쉬엄쉬엄하라고 말하러 왔어. 너 퇴근 없이 살잖아.”
“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잘 챙겨줘?”
내가 그렇게 물으니 샤오팡은 돌연 볼을 붉히며 쭈뼛댔다.
그리고 그녀는 한참 동안 입을 뻐금거리다가 기어코 뱉어냈다.
“……그야 우린 베스트 프렌드잖아!”
“……?!”
나는 그 말을 듣고 울컥했다.
나를 돈줄로만 생각한 건 아니었구나!
언젠가 나를 [ 특급 노예 ]라고 저장해놨던 이리엔과 달리 샤오팡은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붉은 눈시울을 훔치고는 달려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샤오팡은 헉, 하는 숨소리를 내더니 품에서 버둥댔다.
아, 숨 막힌가?
아니면 다 큰 숙녀를 껴안는 건 확실히 무례에 해당하는 경우일지도 모르겠다.
설령 베스트 프렌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녀를 놓고 떨어지려는 순간 문득 소량의 마력 파동이 느껴졌다.
“……어?”
퍼억 샤오팡은 손에 마력을 깃들게 하면서까지 내 가슴팍을 밀쳤다.
나는 뒤로 나자빠지며 허공에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드드드드─! 그녀는 무척이나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서걱─.
세상이 반으로 잘려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