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파국(??)
* * *
콰앙─콰앙─콰앙─!
메테오가 셀 수 없이 떨어지는 폭심지.
활활 불타는 거대한 운석과 부딪힌 결과로 마을은 짓이겨지고 불타오른다.
샤오팡은 여유롭게 불바다 위를 거닐었다. 오랜 잠입 끝에 유물을 탈취하는 데에 성공한 그녀는 마탑을 빠져나와 허공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로 유물이 든 목함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귀에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리엔 개새끼야!!! 으아아악! 죽어서도 가만 안 둔다 내가! 아아아아아아아악!!!!”
샤오팡은 눈을 끔벅였다.
웬 미친놈이 메테오가 떨어지는 와중에 안 도망치고, 샤우팅을 질러댄다.
혹시 긴급 탈출용 스크롤이 없는 건가? 모든 인원한테 하나씩 배부돼있을 텐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셀베르크 마탑의 인원은 굳이 따지면, 전부 다 적이었고. 적을 구해줘서 이득 볼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확인 정도는 하고 갈까?”
뭐, 그래. 확률은 낮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으니까.
샤오팡은 무덤덤하게 마나를 끌어모았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점차 푸르게, 창천의 색을 물들었다.
천안(??).
샤오팡은 하늘 위에 서서 비명을 지르는 청년을 굽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남자는 놀랍게도 황금빛 아우라를 내뿜었다. 그의 잠재력이었다.
“……허어?”
샤오팡은 의외의 결과에 아미를 찡그리면서도 계속 남자를 꿰뚫어 보았다.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저 남자의 잠재력은 그녀가 지금껏 본 능력자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나와 비슷한 정도인가?”
상상 이상의 월척.
샤오팡은 돌연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여전히 샤우팅을 내지르는 사내 앞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녀는 인재 욕심이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어?”
이진우는 자신의 앞에 떨어진 그녀를 보고 샤우팅을 멈추었다.
눈을 아주 동그랗게 뜨고서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샤오팡은 가식적으로 환히 웃으며, 특급 인재에 해당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를 구해주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려나?
아주 약간의 기대를 하고서.
“……시발.”
“……으응?”
“으아아아아악!!! 이리엔 개새끼! 너 때문에! 도망도 못가고! 결국 빌런 만났잖아! 책임져! 내가 모쏠인 것도 전부 다 너 때문이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샤오팡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쌍욕을 내뱉는 이진우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순간 와락 얼굴을 구겼다.
특급 인재를 찾으러 왔더니 특급 또라이도 겸하는 녀석이었다.
……첫인상이 영 좋지 못했다.
“도망치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일만 적당히 잘 해주면 평생 호사를 누리게 해줄게.”
샤오팡은 그에게 요새를 안내해주며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일단 제약으로 그의 도주를 얽매어놨지만, 마음까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런 직접적인 부분까지 속박하려 들면 분명 세뇌에 거부반응 일어날 테니.
그래서 한 말이었는데……,
“응~ 도망칠 일 없어~”
이진우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에 생기가 넘치는 것이 납치당한 사람의 모습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샤오팡은 그가 정신방어 능력을 지니고 있단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당장 이진우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혹시 휴가를 원한다면 너무 오래는 말되 언제든지 쉬고, 여자를 원한다면 말해. 얼마든지 보내줄 테니까.”
“……이게 회사? 복지?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떤 곳에서…, 아, 그런데 일단 휴가는 혹시 모르겠고, 여자는 안 보내줘도 돼.”
“그래? 창부를 넣어주는 게 아니야. 마법사나 일반인 중에 미인으로 엄선해서”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자만추라서.”
……샤오팡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의심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진우는 왜 바라보냐는 듯 말똥한 눈을 끔벅거렸다.
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만추라니…, 지금 순애파라서 억지로는 안 만난다는 소리인가?
“……참 배부른 소리를 하는구나.
언젠가 완전히 세뇌되어 영영 못 나갈지도 모르는데 저런 발언이라니.
샤오팡은 고개를 저으며 참으로 어리석고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월요일에 안내해줄 때는 그 정도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야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니까!’
샤오팡은 눈을 감고 이마에 손을 올렸다. 혹시 감기에 걸렸나, 열이 나나 의심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초인 중의 초인으로 꼽히는 그녀가 잔병치레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두근두근─!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의 가슴은 이렇게나 가쁘게 뛰는 걸까.
샤오팡은 정말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영옥(氷?)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마력 탈진은 아닐 테고, 정신 오염 계열?
“……흥.”
샤오팡은 콧방귀를 뀌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력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계속 붙잡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이럴 때는 잠깐 머리에 휴식을 주는 것이 훨씬 더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
그런고로 그녀는 산책을 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섰다.
이진우의 사무실은 겸사겸사 들르는 경로에 불과했다.
곧장 바로 갔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힐끔. 샤오팡은 이진우의 사무실 문을 슬쩍 열고서 안쪽을 확인했다.
그는 뭔지는 몰라도 책상의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전파가 안 터지니 휴대전화는 아닐 테고 아마 열심히 일을 하는가 싶었다.
“……벌써 원금의 백 배는 벌어놓고. 도대체 얼마나 더 벌어주려는 거야!”
그녀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이 훔쳐보고 있다가 그녀는 은폐와 기동의 대가라는 이명에 맞지 않게 이진우에게 들켜버렸다.
저 자신도 어이가 없던 실책이라 그녀는 쭈뼛대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이진우가 전혀 비웃거나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아 샤오팡은 금방 안심하고, 나름 너스레를 떨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오,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잘 챙겨줘?”
분명 장난스레 하는 말.
그녀 또한 언제나처럼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 됐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샤오팡은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어째서 그에게 잘해주려는 걸까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뇌 내 회로가 정지했다가 긴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 베스트 프렌드! 적어도 지금은 그렇기에! 그래서 잘 해주려 한 거뿐이다!
샤오팡은 제 자신을 그리 세뇌시키고는 그럼에도 약간의 쑥스러움을 느끼며 결국 내뱉었다.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적어도 아직은! 그, 뭐시다냐! 친구 사이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리고,
온몸으로 껴안아졌다.
“허억?!”
그 순간 그녀는 온몸이 간질거리는 것을 넘어 소름마저 끼치는 감각을 받았다.
그동안 인연이 없었던 순수한 우정 혹은 감정과 부딪히는 것이 낯설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샤오팡은 버둥대다가 점차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녀가 편안한 느낌에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 하던 참이었다.
■■■■■■■■■■■───────!!!!!!
비정상적인 양의 마력이 감지되었다.
그녀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일단 이진우를 손으로 밀쳐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배리어를 형성했─…
* * *
터억─. 순백(?白)의 세상에, 그들만의 낙원에 천사가 내려왔다.
그 천사는 순수하게 하얀 사제복과 베일을 쓴 차림이면서 동시에 불길하게 빛나는 헤일로와 가시 화관을 머리 위에 띄우고 있었다.
또, 흉악하게 생긴 거부(巨?)를 손에 들었다.
유한나는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새하얀 성벽에 다가섰다.
만에 하나의 경우를 위해 성문 앞에 세워둔 보초 둘은 누군가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하하 웃으며 수다를 떨어댔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녀는 도끼를 머리 위로 거뜬히 들어 올렸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날붙이에 모여든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버지, 공물을 받으시옵소서.”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제물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동시에 막대한 신력(?力)이 그녀의 몸에 깃들었다.
유한나는 그제야 조금 만족했다.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마력이 깃든 눈으로 상대를 확실히 바라보았다.
──내리쳤다.
서걱.
몸이 반 토막 난 줄도 모르고, 시시덕대는 보초들 너머로.
거산처럼 굳건하게 서 있는 성벽 너머로.
하늘 너머로.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모두 베고자 했다.
그래서 베었다.
끼기기기기긱──!
거대한 성문이 이내 반으로 잘려나가며 스러진다.
선혈이 허공을 떠돈다.
그녀의 얼굴과 의복에 핏방울이 묻는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유한나는 문득 중얼거렸다.
“안 잘렸네…….”
목.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