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투쟁(?)
* * *
푸르른 창공(??).
잿빛 연기가 드문드문 솟아오른다.
검성(??) 마르코는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이 몇 초 정도 기절했는지 가늠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진 않지만, 애초에 기절한 이유가 어이없었다. 마르코는 멍하니 눈을 끔벅거리며 뇌까렸다.
“……괴물이구만.”
직격은 아니었다. 참격 중간에 끼어들어 위력을 경감시키려 했을 뿐인데…….
괜히 객기를 부리다가 그대로 이승을 하직할 뻔했다.
마르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박박 털어댔다. 건물 잔해 위에 드러누웠던 터라 온몸이 먼지투성이였다.
그래서 그는 옷도 가볍게 털려다가……,
……그냥 말았다. 생각해보니 금방 다시 묻을 테고.
마르코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언제 봐도 푸르른 하늘.
비록 인조 태양과 하늘이지만, 제법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곳에 일직선으로 커다란 흉터가 생겨났다.
“이런 걸 천외천이라 부르던가.”
마르코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름 검성으로 불릴 만큼 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건만 전혀 아니었다.
세상은 넓었고, 미칠 정도로 강한 녀석들이 제법 많았다.
게다가 이번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은 아마도 혈사자(血?者).
사도(??)인 데다가 적어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
……그래서 마르코는 희열감을 느꼈다.
분명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전력으로 맞부딪칠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무인으로서 참 기쁜 일이 아니한가.
그렇기에 마르코는 제법 즐겁다는 표정으로 성문 입구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빠르게 발을 놀리며 생각했다. 오늘 자신은 큰 벽을 뛰어넘을 거라고.
결코, 죽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지 않을 것이니까.
그렇게 믿고자 했다.
* * *
신에게 선택받은 자.
사도(??)라는 것은 대충 세 가지 의미를 내포했다.
첫 번째,
신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다.
두 번째,
신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자격을 증명하는 것으로 힘과 축복을 내려받는다.
그리고, 세 번째──.
유한나는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하체에 힘을 실었다.
한쪽 발을 뒤쪽으로 밀며 앞으로 튀어 나가는 자세를 취했다.
콰드드드득──. 디딤발이 돌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포탄처럼 폭발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녀는 하늘을 날았다. 공기의 벽을 강제로 찢어발기며 무너져가는 성문을 빠르게 통과했다.
도끼를 휘휘 내둘러 돌 파편들을 치워냈다.
그렇게 한동안 날아가다가 속도가 조금 늦춰질 것 같으면, 발에 마력을 담고서 쾅쾅! 재차 허공을 박차며 추진력을 더했다.
쿠르르르릉──! 그녀가 성문을 지나친지 한참이 지나서야 잘려나간 보초들의 시체와 성문이 땅에 허물어졌다…….
[ ‘운명’이 발동 중입니다. ]
유한나는 오직 정면의 내성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바깥에서는 마력 잔재이건 인연의 실이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곳에 들어오니 확실히 잘 알 수 있었다.
저곳에 그토록 보고팠던 이진우가……!
그리고, 그를 납치한 쌍년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들과 연결된 실이 약간이지만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공격에 제법 타격을 입은 것 같았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나 보지?’
분명 죽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유한나는 목을 베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다가 차라리 다행이라며 생각을 고쳤다.
그래, 쉽게 죽여줄 수는 없다. 반드시 제 입으로 죽여달라고 말하게 해줘야지.
그렇게 그녀가 결심할 때쯤 전방의 수많은 지점에서 마력 유동이 일어났다.
그래, 큰 거 한 방 먹였다고 끝일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화르르륵─! 돌연 거대한 운석이 하늘에 형체를 드러냈다.
단 하나의 덩어리지만, 그 크기가 웬만한 산보다 커다랗다.
그 외에도 여러 마법들이 자잘하게 발현되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콰과과과광──! 이윽고 그 수많은 마법이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날아간다.
띠링─!
[ ‘운명’의 출력을 3단계로 늘립니다. ]
유한나는 문득 그들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지, 너무 가소로워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가.
그녀는 어느새 코앞까지 날아온 운석을 보며 능력을 발동시켰다.
“필연(必?). 반드시 그리되리라.”
유한나는 가볍게 말하고는 제법 싱겁게 도끼를 휘둘렀다.
대충 휘적거리는 것이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은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싱겁지 않다.
서걱─. 거대한 운석이 아주 말끔하게 반 토막이 난다.
화 속성이건. 수 속성이건. 원소 마법이건. 저주이건 한순간에 모든 마법이 해체되어 중간에 엎어지고 만다.
파시시시식──그리고, 의도치 않게 불과 물 마법이 해체되면서 함께 맞부딪혀 대량의 수증기를 일으켜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시야가 가려졌다.
유한나는 전혀 방심하지 않았다.
지지지직─. 실이 거세게 흔들리는 것이 아주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도끼를 휘적거리던 방향으로 아예 한 바퀴를 돌아버리며 그것을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연기 속에서 은밀히 튀어나온 검과 도끼가 맞부딪힌다.
발생한 충격파로 인해 서로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끼기기긱─! 날붙이들이 부딪치면서 불꽃과 소음을 일으켰다.
유한나는 감히 근접전을 벌이려 하는 우둔한 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르코는 방금 충격으로 손이 무척 저렸지만, 아주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내심 땀을 삐질 흘리며 생각했다.
──존나 강하네…….
* * *
뚜욱─뚝─뚝─…
완전히 상처를 틀어막지 못해 손가락 사이로 선혈이 새어 나온다.
핏방울이 뚝뚝 바닥에 떨어진다.
샤오팡은 복도의 벽을 짚어가며 비틀비틀 걸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벽에 새빨간 손도장이 하나씩 생겨났다.
그녀는 어깻죽지의 상처를 억누르다가 문득 뇌까렸다.
“……진짜 미친 년이었네.”
세상에, 그 미친 일격에다가 무슨 쇠약에 신체 회복 방해 저주를 담아놓냐.
불사조의 깃털이건 뭐건 회생 수단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래도 뭐 결국 살았으니 됐나.
‘내 친구도 살려놨고.’
사용인에게 비처로 데려가라 한 데다가 지속형 배리어까지 걸어놓았다. 혹여나 지붕이 무너져 깔려도 죽지는 않을 테다.
뭐, 그 덕분에 잔존 마력이 다 떨어져서 이 꼬락서니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남은 수단이 하나 있었다.
끼익─샤오팡은 한쪽 문에 몸을 지탱하며 다른 문을 겨우 열어젖혔다.
그녀는 비틀비틀 겨우겨우 걸어가 책상에 놓인 목함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열었다.
그러자 녹색 광채를 내뿜는 최상급 유물, 영옥(氷?)이 보였다.
“……아, 이런 곳에서 낭비할 만한 물건이 아닌데.”
그녀에게 있어 이 영옥의 가치는 ‘스키드블라드니르’보다도.
만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이차원에 장소를 은폐하는 유적이자 최상급 유물보다도 한 단계 더 높았다.
어쩌면 차라리 유적이건 동료건 재보이건 전부 다 내팽개치고 이것만 챙겨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것만 있다면, 그녀는 언젠가 현재 상정한 것 이상의 괴력을 보이는 혈사자보다도 더 강해질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도망치는 건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또, 애꿎은 리더를 따라온 잘못으로 동료랑 부하들이 다 죽게 되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까지 하니.
게다가……,
‘마탑에서 기르던 개나 노예 같은 건가?’
‘차라리 마탑보다는 혈사자 개인 소유라 보는 게 맞을걸?’
그토록 일을 열심히 하는 이진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질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혈사자의 개인 노예.’
그렇다면, 그 이유는 그의 주인이었던 혈사자에게서 찾을 수 있겠지.
자신이 도망가게 되면, 이진우는 결국 그녀의 손아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 막심한 고통을 받으며 삶을 살아갈 테고.
다만, 안 지 며칠 되지 않은 그를 위해 기회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았다.
하지만……,
샤오팡은 참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걸 알았지만,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베스트 프렌드는 친구를 안 버려.”
며칠간 제법 물들어 버렸다.
그녀는 피식 웃고는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유물을 이리저리 굴려보며 구상했다.
바깥에 있는 악귀나찰을 어떤 방법으로 응징해줄지.
나름 행복한 고민의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