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1화 (31/87)

〈 31화 〉 멈춰어어어어어어!!!!

* * *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느낀 건 머리가 더럽게 아프다는 것과 주변이 조금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웬 넓은 공동이었다.

천장도, 벽도, 바닥까지 전부 황갈색 암석들로 채워진 동굴.

“……뭐시여.”

마지막 기억이 사무실이었던 나로서는 불안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일주일간 즐겼던 직장 생활이 전부 ‘아, 시발 꿈’에 불과했나?

아아, 나의 화목하던 사무실과 럭셔리한 침대가 있던 방은 전부 어디?

아니, 마탑 핫산에 불과하던 내가 겪기엔 너무 행복한 현실이었단 말인가?!

“……인생이란 참 무상한­”

“이 팀장님!”

어디선가 익숙한……,

그래, 나의 충직한 부하 직원 존슨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텔라 초콜릿 같은 구릿빛 피부의 반들거리는 대머리……!

틀림없는 존슨 대리였다!

그는 굉장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일단 안심했다.

‘……아, 꿈은 아니구나.’

그렇다면! 꿈이 아니라면! 한 달 야근만 아니라면!

지금 내게 극복하지 못할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활짝 웃으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존슨 대리에게 물었다.

“존슨 대리! 지금 여기는 어디냐! 또 무슨 상황이고!”

“……상황을 아예 모르십니까? 혈사자라는 괴물이 쳐들어와서…, 비 전투인원은 전부 여기, 내성 지하의 비처로 대피했습니다.”

나는 존슨의 설명을 듣고 새삼 공동 내부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리 많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공동 내에 있었다.

‘……뭔가 심각한 상황이긴 한가 보네.’

우리 샤오팡 패밀리가 제법 강한 축에 속한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혈사자가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그게 비빌 정도로 강력한 놈인 모양이었다.

“그보다 팀장님의 탁월한 식견이 필요합니다! 혹시 몸이 괜찮으시다면 저를 따라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으음, 어디지? 내 식견이 그리 필요하다면야 발휘해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존슨 대리는 감격한 듯 눈물을 글썽거렸다.

여차저차 그의 안내를 따라 나는 무슨 작전본부실 같은 장소에 이르렀다.

정면 벽에 큰 스크린이 달려 있고, 그 뒤에 계단식으로 모니터들이 주르륵 줄 세워져 있는 최첨단틱한 비쥬얼.

“……이거 좀 로망을 자극하는데.”

전쟁 혹은 재난 영화를 보면 꼭 한 번씩 이런 장소가 나오더라.

나는 마치 고위 관료가 된 듯한 기분으로 앞쪽의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무리로 이끌어졌다.

그들 중 내성 복도에서 이따금 마주쳤던 노집사가 반색하며 나를 맞았다.

“오오, 이 팀장님. 존체가 문제가 없는 듯해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저를 찾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 설명하기에 앞서 스크린을 봐주시지요.”

나는 노집사의 말을 따라 정면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쾅쾅쾅! 파바바밧! 현란하게 폭발하며 연기가 휘날리는 장면의 연속.

솔직히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바라보았다.

“……요새에 혈사자라는 악적이 쳐들어왔습니다. 거의 모든 전투 인원이 붙어 전투를 이어가고 있으나 고전 중. 결국엔 참패할 것이 예상됩니다. 그 결과에 이르기 전,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요.”

“……음, 그러면 그 결단이란 게 뭔데요?”

“본래 함선에는 함포가 붙어있기 마련이죠. 마찬가지로 저희 요새이자 함선, ‘스키드블라드니르’에도 비밀병기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어, 그러면 제가 그걸 조준한다던가, 아니면 타이밍을 정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이 팀장님이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참 송구하고, 어려운 부탁인지라….”

말꼬리를 흐리는 노집사.

나는 슬슬 눈을 끔벅이면서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 굉장히 말이 길어지시는데 제발 결론만 말해주면 덧나는 걸까.

그래도 그런 내 마음속 바람을 노집사도 겨우 들은 것인지 그는 긴 빌드업 끝에 드디어 내 할 일을 말해주었다.

노집사는 활짝 손을 펼쳤다.

“여기 제 손바닥 위에는 녹색과 적색 열쇠가 하나씩 있습니다.”

“네, 보입니다.”

“하나는 병기의 공격명령을 내리는 열쇠이고, 하나는 요새의 자폭명령을 내리는 열쇠이죠.”

“……네?”

노집사는 몹시 애처로운 표정으로 거의 내게 매달리듯이 말했다.

“……그, 어느 쪽이 공격용이고, 자폭용인지 모르겠습니다! 꽂는 순간 즉시 발동이 돼버리는 터라……. 부디 이 팀장님의 뛰어난 식견으로 구별해주십사……!”

“…….”

나는 재차 눈을 끔벅이며 노집사의 얼굴과 손바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탄식했다.

“……허어.”

그 뒷말은 차마 어른 앞이라 육성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속으로 읊조렸다.

이런, 씨발.

* * *

콰앙! 콰앙! 콰앙!

유한나는 상당히 짜증이 깃든 얼굴로 도끼를 연달아 내리쳤다.

그러나 검성 마르코는 금방 무너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용케 산을 무너뜨릴 일격을 계속해서 받아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좀 거슬리네. 뒤에 있는 것들.’

유한나는 앞의 검객에게 버프를 몰아주고 있는 수백 명의 마법사를 흘겨보았다.

오로지 한 대상에게 버프를 중첩해 건다는 매우 비효율적인 행위. 그러나 그렇기에 상대는 버티고 있다.

그와 더불어……,

타아아앙──!

그녀는 타격을 이어가려다 사각에서 은밀히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그 자그만 시(?)에 담긴 거력은 자신의 도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그렇기에 유한나라 할지라도 순간이지만,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노려 마법들이 발동된다.

드드드드─ 유한나는 발밑에서 느껴지는 마력 반응에 부하가 걸릴지언정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몸이 자리에서 회피하는 것과 동시에 지층을 뚫고 마그마가 솟아오른다.

콰앙! 콰앙! 콰앙! 마그마의 분출은 그녀가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연속해서 일어난다.

역시 허공을 날고 있을 때도 연속해서 화살이 날아온다.

채앵─!

게다가 끈질기게 반격을 노리는 검성의 일격까지.

유한나는 그 회심의 일격을 가뿐히 받아내면서 고민했다.

앞에 있는 중년의 검객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려 했건만 순서를 바꿔야 할 듯싶었다.

‘……아예 후위에 있는 불 마법사보다는 성벽과 망루를 오가면서 나대는 궁수의 발목부터 자를까.’

그래, 차라리 그편이 전부 정리하는 데에 편하겠어.

그렇게 결심한 전쟁의 사도는 활쟁이 녀석이 안이하게 고개를 들이밀 때를 고대했다.

*

후위(??).

마법사들 사이에 숨은 샤오팡은 녹색 보주를 쥔 채 호시탐탐 때를 기다렸다.

그녀는 한시도 전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혈사자의 틈이 보일 때를 고대했다.

‘……만약 틈을 보인다면.’

즉시 영옥을 사용해 『속박』마법을 발동하고, 저 혈사자를 봉인한다.

그리고, 모든 마법사와 흑급 인원, 함선의 병기가 동시에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그것이 샤오팡이 고심 끝에 선택한 아주 단순하고 폭력적인 응징 방법.

설령 혈사자가 『반전』이나 『무효화』로 그것에 대응하려 해도 소용없다.

최상급 유물 영옥을 사용한 『속박』은 어떤 저항도 허하지 않을 테니.

게다가 이것은 상대가 모른다면 무조건 적중되는 종류의 마법이었다.

샤오팡은 유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까울 뿐이지 작전 자체에 자신이 있었다.

자신을 파악한 이유로 보이는 실도 찾아내 더미에 붙여놓았고, 은폐(??)도 특별히 신경 써서 확실히 했다.

그녀는 아무리 혈사자라 하더라도 지금 위치는 모를 것이란 확신을 가진 채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분명 마법 발동 직전까지 제대로 파악도 못 하다가 봉인이 되고 나서야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리라.

“……근데 왜 사령부에서 연락이 없지?”

총력 병기 준비가 아직도 안 됐나?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별일이네.

샤오팡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전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함선의 병기까지 있으면 확실하겠지만, 너무 늦을 것 같으면 바로 봉인을 시켜야 했다.

콰앙! 콰앙! 콰앙!

미친 위력의 도끼를 받아내느라 ‘나름 검성’인 마르코가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버프로 어찌어찌 연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언제 때가 오려나.

눈이 빠질 정도로 전장에만 시선을 집중하던 샤오팡은 문득……,

퍼엉­!

어딘가의 깜찍한 폭발음을 듣게 되었다.

‘뭐지? 우리 마법사들 쪽은 아닌데?’

혈사자가 내려치는 도끼 소리, 궁수가 활시위를 놓는 소리와는 달랐다.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와도 거리가 멀었고, 마르코가 헥헥대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지?

샤오팡은 전장에서 한눈팔아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고개는 이미 저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지하로부터 연결된 사출구를 통해 하늘로 솟아오르는 이진우의 모습을.

“……허?”

아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샤오팡은 눈과 입을 크게 하고는 바보같이 뻐금거렸다.

상상치도 못한 이진우였다.

반면, 검과 화살과 마법을 받아내던 유한나는 문득 인연의 실로 연결된 이진우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점점……,

……아니, 땅에서 치솟아오른다?

퍼엉­!

돌연 땅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나는 이진우를 바라보며 유한나는 함정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순간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얼굴이 너무 반가웠고……,

또, 전투 중 한복판에서 솟아오르는 이진우의 모습이 참 미친 그의 정신과 빼닮았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이내 자신의 폭력적인 모습이 보이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드디어 본모습 중 일부분을 알린다는 환희를 느꼈고,

그리고……,

콰앙! 콰앙! 콰앙!

전력으로 검을 맞받아치며, 그를 한시라도 빨리 납치범 소굴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그녀에게 있어 이곳은 복마전이었다.

유한나는 부술의 극의를 발휘하며 물흐르듯 검을 흘려내고는 이진우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다리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마력을 실어 땅을 박차 날아오른다!

……진우야! 곧 갈게! 기다려!

“사수해!”

샤오팡은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고는 본인도 이진우를 회수하려 하늘을 날려다가 차라리 봉인 마법을 발동하는 게 나을 것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그녀는 급히 영옥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주문을 외었…,

“……속─.”

“싸움 멈춰어어어어어어어!!!!!”

그때, 어떤 미치광이의 목소리가 전장 한복판에 울려퍼진다.

공중에서 팔을 휘적거리던 광인은 겨우 중심을 잡고서 재차 외쳤다.

“싸움 멈춰!”

이진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주 환한 얼굴로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전쟁을 끝내러 왔다.

라고.

요새에 쳐들어온 ‘혈사자’ 유한나는 부랄 친구고, 그것을 막아내는 샤오팡 패밀리의 보스 ‘샤오팡’은 베스트 프렌드다.

그러니 분명 “싸움 멈춰!”를 시전하면, 전투가 멈출 거라는 계산.

모든 사태의 원인인 한 남자는 자신의 망상에 만족하며 미소를 지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어라?”

그러나 이진우는 포화를 뚫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유한나를 보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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