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순애(??)이자 순애(??)
* * *
“……녹색은 평화. 적색은 전쟁.”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무려 샤오팡 패밀리 전체의 목숨이 내 손에 달린 것이다.
겨우 단 한 번의 선택에!!
“……아니, 적색이 자폭 버튼이라고?! 그러면 평화로운 녹색이 비밀의 결전 병기? 리얼리? 그거 확실해? 정말로 맞는 판단이야?”
찰나의 시간.
그러나 내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수천 가지!
그것들이 전부 쓸모도 없고, 근거도 없다는 사실은 정말 크나큰 문제였다!
“…….”
슬슬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 나는 문득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쾅쾅쾅! 푸슝푸슝! 블록버스터 뺨치는 장렬하고 화려한 사운드와 이펙트의 연속.
그러나 여전히 맞부딪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녀석들 더럽게 빠르기 때문……,
“……어, 뭐야. 조금씩 보이는 것 같은데?”
설마 나 ‘만화경 사X안’을 각성해버렸니? 혹시 닌자가 되어버렸나? 마탑을 나와버렸으니 탈주 닌자? 오히려 좋아! 서류 작업하는 마법사보다는 상사 멱따는 콩가루 탈주 닌자가 훨씬 더 나아!
“팀장님!”
한참 악덕 상사를 살해하는 열망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존슨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서 모니터를 조작하던 구릿빛 대머리 존슨 대리는 산뜻한 미소와 반듯하고 흰 치열을 동시에 내보이며 외쳤다.
“잘 안 보이시는 것 같아서! 0.5배로 재생속도 낮췄습니다! 이제 좀 보이세요?!”
“……할 거면 0.25배로 낮춰.”
“네! 받들겠습니다!”
지이이잉──
그제야 나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재생속도가 느려졌다.
아니, 진작에 이랬어야지…….
나는 혀를 차면서 스크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
뭐지, 이번엔 또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
스크린에 남사스러운 디자인의 성녀 코스프레를 한 유한나가 나오고 있는데?
아니, 잘못 본 거겠지.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니, 아무리 봐도 유한나 맞는데?”
마치 첫사랑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이건 무슨 개똥 같은 예시지?
나는 이마를 짚고서 간략하게 상황을 정리해보려 애썼다.
그러니까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두르는 저 사람은 내 소꿉친구고.
또, 사람들이 그렇게 괴물이라 떠들어대는 그 ‘혈사자’이자,
게다가 나의 직장에 갑자기 쳐들어온 범인이란 말인가?
“……흐음, 흥미롭군.”
그러다가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열쇠를 구분할 필요 없이 그냥 내가 중재하면 되는 거 아닐까?
어차피 한쪽은 부랄친구, 다른 한쪽은 베스트 프렌드인데?
“……사실 내가 비밀 병기였다는 거지?”
오, 그런 거였네.
이런 전개는 무척이나 흡족한걸?
나는 머릿속에 떠올린 놀라운 작전을 곧바로 실행하기 위해 노집사에게 다가갔다.
“으음, 신호탄을 발사하는 용도의 사출구가 있습니다만……. 이 팀장님, 그것은 어째서 물으시는지?”
“전부 제게 맡기시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음후후후훗…….”
나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상인의 극의! 상점창을 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일반적인 인간의 몸으로 대포가 발사되는 과정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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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 힘 버프 스크롤】
【최상급 체력 버프 스크롤】
【최상급 신체 강도 버프 스크롤】
【최상급 민첩 버프 스크롤】
【최상급 지혜 버프 스크롤】
【최상급 마력 버프 스크롤】
【최상급 목청 버프 스크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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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고로 머리를 쓰는 동물이지.”
그렇다면! 그것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그만 아닌가!
나는 그러기 위한 도핑으로 스크롤 7장을 동시에 드로우했다!
‘……열쇠를 판별하는 아이템도 상점창에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뒤늦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뭐, 내가 하려는 방법이 더 평화적이고 좋은 방법이니까!
지금은 그저 오오옷! 내 신체가 강해지는 게 느껴져! 라고 반응하면 되는 시간이다.
[ ……도킹을 진행합니다. 포탄이 제대로 안착하였습니다. ]
[ 발사까지 5초…, 4초…, 3초…, ]
결국, 사출구에 안착한 나는 눈을 감고 무기질적인 발사 안내 방송을 들으며 다짐하는 것이었다.
올해 내 목표는 무려 노벨 평화상.
그리고, 그 목표에 한 걸음을 내딛는 위대한 작전명은 “싸움 멈춰!”
“……완벽하군.”
띠릭─!
[ 발사합니다. ]
드드드드드드득─! 엄청난 압력이 몸에 가해지며, 순식간에 나는 지하에서 하늘을 향해 발사된다!
파앙─!
하늘에 떠올랐다.
허공에 뜬 나는 팔다리를 휘적거리다가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는 전장의 모두를 바라보며 외치는 것이다.
“싸움 멈춰어어어어어어어!!!!!”
그때까진 분명 사이좋게 화해하고, 계속 팀장 직책으로 일할 수 있으리라 믿었었다.
*
오직 이진우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오직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포화를 뚫는다.
유한나는 아주 결연한 마음으로 오직 이진우를 되찾기 위하여 병기를 휘둘렀다.
서걱─. 오른손에 쥔 도끼를 휘둘러 불의 파도를 가른다.
직후 궁수가 화살을 쏘아내지만, 허공을 마력이 깃든 발로 박차 빙그르르 한 바퀴를 회전해 회피한다.
카앙─! 한 번 막아내고 나서도 연이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없다면, 팔뚝의 견갑으로 간신히 막아낸다.
콰득─! 갑옷이 산산이 조각난다. 그것으로 다음 화살은 막아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분명 대지에서라면 여유롭게 피하거나 막아낼 수 있는 일격.
아니, 설령 공중에 있을지라도 그녀라면 어떠한 소모 없이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한나는 그러지 않는다.
그렇게 애매한 공격을 막아내고, 피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바엔 차라리 장비를 소모하면서라도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선다.
마법을 가른다.
화살을 가른다.
철검을 가른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진우를 향해 다가가는 어렵고도 단순한 과정의 반복.
그렇게 급박한 와중에도 그녀에게는 남들은 모를 속사정이 존재했다.
이전부터 깐족대던 궁수가 틈을 보여도 발목을 자르지 않는다.
애검이 반으로 갈린 검객의 목덜미를 굳이 가르지 않는다.
유한나는 꿋꿋하게 공격만을 피하고 베며, 이진우를 향해 나아간다.
그 이유는 당연히……,
‘……진우가 싸움 멈춰! 라고 말했으니까.’
순애(??)이자 순애(??).
상대를 다치게 해선 안 된다는 제약이 생겼지만, 그 제약을 업고 목표를 이룰 만큼 더욱 강해진다.
그래도 힘들다면 조금 더 희생을 치러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다가간다.
소중한 나의 소꿉친구, 나의 사랑, 멍청한 이진우를 악의 무리에게서 구해낸다.
되찾아온다!
유한나만의, 자신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하고, 지켜내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절실한 마음가짐이 진작 초월(??)에 이르렀던, 한계에 맞부딪혔던 그녀의 육체를, 마력을, 능력을 조금씩 진화시킨다.
그 사실을 깨달은 유한나는 허공을 박차다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것을 멈추었다.
몸을 웅크린다.
모든 힘을 발끝에 응축시킨 다음……,
콰드드득──!
단 일점(一?)으로 불보라를, 화살을, 공기의 벽을 꿰뚫는다.
터억.
드디어 닿았다.
유한나의 덜덜 떨리는 손아귀가 애타게 찾던 남자의 옷자락에 닿았다.
이젠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것을 꾸욱, 굳세게 붙잡았다.
여태까지 무섭도록 시린 표정만을 짓고 있던 그녀는 그제야 안심했는지 사르르 얼굴을 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포근하게 읊조렸다.
“……잡았다, 멍청이.”
어느덧 유한나가 이진우와 헤어진 지 750시간 만의 재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