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죽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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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이번 화는 ‘다크 모드’로, ‘검은 배경에 하얀색 글씨’로 보셔야 더욱 즐거운 감상이 될 터이니 부디 그래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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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했다.’
노벨피아 소설 총 400,000화 유
샤오팡은 입술을 짓씹었다.
순간 들려오는 이진우의 목소리에 정말로 마법을 멈춰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바보 같은 판단으로 인해 소중한 친구가 혈사자에게 붙잡혀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지?’
이제 영옥을 사용하면 이진우가 함께 봉인에 말려 들어간다.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으면, 혈사자에 의해 하나씩 분쇄될 뿐이고.
샤오팡은 눈을 감고 최선의 수를 떠올리려 머리를 쥐어 짜냈다.
그러나 떠오르는 것은 전부 이진우를 희생하면서 혈사자를 죽이는 방법뿐.
그녀의 찢어진 입술에서 주르륵, 선혈이 흘러내렸다.
*
투욱─.
발과 대지가 맞닿는다.
유한나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자신의 품에 꼭 안은 소꿉친구를 바라보았다.
이진우는 멋쩍은 기색으로 두리번거리더니 그녀의 팔뚝을 툭툭, 쳤다.
“으응? 내려줘?”
“응, 비쥬얼이 쪽팔리니까 빨리 내려줘.”
유한나는 안타까움을 느꼈으나 오랫동안 감금당한 소꿉친구의 기분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그를 내려주었다.
“흠흠.”
이진우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목과 옷매무시를 가다듬고는 지적인 회사원의 분위기를 내뿜으려 노력했다.
일주일간 쌓아온 샤오팡 패밀리 자산관리부 팀장의 위엄을 지켜야만 했다.
“좋아, 놀랍게도 구김 하나 없군.”
이진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정장에까지 버프를 준 스크롤의 효과를 마음속으로 97점이라 메모해두었다.
그는 웬만큼 대단한 게 아닌 이상 백 점을 주지 않는 타입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인가?’
이진우는 입꼬리를 귀에 걸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한나는 언제 미친년처럼 도끼를 휘둘렀냐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고,
샤오팡은 의외로 온건한 그들의 분위기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소개를 할 때군.’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모든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단 사실에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또, 평생 유한나를 제외하고 없었던 베프 목록에 샤오팡이 생겨나면서…….
──서로에게 베스트 프렌드를 소개하는 행위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이진우는 눈을 감고, 화창한 봄날의 푸르른 하늘 아래 잔디밭을 뛰어노는 절친 셋을 상상해보았다.
“……정말이지, 아름답군.”
극한의 설렘이 느껴졌다.
이진우는 눈을 부릅뜨고는 십년지기 소꿉친구에게 먼저 고개를 돌렸다. 아주 활짝 피어난 미소를 보였다.
유한나도 한 점의 어둠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한나야, 소개할게.”
“응? 누구를?”
이진우는 그녀의 반문에 푸흣, 웃음을 터뜨리고는 정면의, 저 먼발치서 자신을 바라보는 샤오팡을 가리켰다.
유한나는 살짝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의 손가락을 따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황급히 고개를 돌려 소꿉친구를 보았다.
그와 연결된 인연의 실에서 대표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감정은 ‘설렘’과 ‘뿌듯함’, 그리고, ‘우정’이었다.
또 다른 우정(??).
──새로 사귄 베스트 프렌드야.
이진우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울려온다.
유한나는 돌연 귀를 막았다.
그러나 초월적인 신경은 그가 말하는 내용을 어떤 누락 없이 똑바로 전달했다.
──샤오파아아앙~~!! 사실은 말이야! 얘도 내 친구야! 아마도 나 때문에 쳐들어온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안 싸워도 돼!
……샤오팡?
유한나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그러나 이진우의 해맑은 얼굴을 바라보니, 말똥한 눈동자가 파란 머리칼의 여인을 향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들은 모양이었다.
“……쟤가 새로 사귄 친구인가.”
“응응. 너 이후로 처음 사귀는 베프라니까? 아, 쟤 새침해 보이지만, 의외로 감성이 잘 맞는다? 너랑도 그럴”
“……그래, 똑같은 베프인가.”
유한나는 중얼거리며, 손을 내뻗었다. 이윽고 그것은 이진우의 이마에 닿았다.
그는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지만,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믿고 기다렸다.
띠릭─!
[ 권능 ‘자유의 날개’가 대상에게 걸린 제약을 확인합니다. ]
[ ………… ]
[ 현재 ‘정조보호’ 외에 어떤 제약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
“……하하.”
세뇌가 아니다.
그것을 깨달은 유한나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는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인 거였는데 너무 늦었던 걸까?
스르륵, 그녀는 이진우의 이마와 맞닿은 손을 내려놓았다.
……이내 눈을 끔벅였다.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았다. 귀를 막았다. 숨을 멈췄다. 마력 운용마저 잠시나마 틀어막았다.
아주 잠깐.
오직 하나만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3초…….
유한나는 조금 말끔해진 얼굴로 활짝 얼굴을 피더니 소꿉친구를 바라보았다.
소꿉친구는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온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래, 새로 사귄 친구를 소개하고 싶어서 많이 신나있구나.
나는 네 마음을 아주 잘 알아.
아마도…….
아니, 분명 누구보다도 잘 알걸?
어쩌면 너보다도 그래.
“진우야.”
“응? 왜 불러, 한나야?”
“너는 이제 우리가 싸우지 않고, 같이 하하호호 놀았으면 좋겠지?”
“하하, 당연하지! 나중에 우리 셋이서 한강이라도 가서 라면 끓여…”
라면……?
진짜 지랄하고 자빠졌네…….
“응? 너 방금 뭐라고 하지 않았냐?”
“진우야.”
“응? 왜 부르니, 친구야.”
“조금만 자고 있어 볼래?”
“응? 그건 또 무…”
콰아아아아앙──!! 유한나는 어느새 들어 올린 손으로 이진우의 머리를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이진우는 잠깐 움찔거리다가 결국 땅에 몸을 뉘었다.
우드드득─. 유한나는 손의 관절을 풀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경악한 표정의 푸른 머리칼 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언젠가는 있을 일이었어. 진우도 이성 친구 하나쯤은 생길 나이지. 그럴 걸 알았는데……. 그래, 너무 안이했나 봐.”
──그 덕분에 다른 베스트 프렌드도 생겼네.
유한나는 자조어린 웃음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하하, 확실히 유쾌하네. 진우의 소중한 친구를 이렇게 만난다는 건. 방금까지 싸우던 애가 사실 베프의 베프였다니.”
──사실 너무나도 불쾌해.
그녀의 머리카락은 잔뜩 헝클어지고, 베일은 흔들리더니 바닥에 떨어진다.
유한나는 가시 화관을 손에 쥐고는 있는 힘껏 쥐었다.
[ ‘즉결심판’을 발동하시겠습니까? ]
“……하하, 그런데 이걸 어쩌지. 너희들한테 즉시 사살 명령이 떨어진 걸 이미 듣고 온 참인데 말이야.”
──이거 참, 어쩔 수 없네?
콰드드득──. 화관의 붉은 가시는 손아귀를 그대로 꿰뚫는다.
검붉은 피를 잔뜩 몸에 묻힌다.
가시 끝에 핏방울이 맺힌다.
흔들린다.
떨어진다.
유한나는 눈을 감고서 회한에 가득 찬, 아주 슬픈 목소리로 읊조렸다.
타악─.
“……어?”
샤오팡은 뺨에 어떤 액체가 떨어진 감각을 느꼈다.
무심코 손을 들어 닦았다.
손바닥을 보았다.
핏자국…….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주변의 다른 이들도 하나둘 고갤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하늘은…,
온 세상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비록한 다리 건너서지만, 그래도 ‘우정’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줄게.”
유한나는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상냥한 미소와 살벌한 목소리로 선택지를 제시했다.
“전부 죽던가……. 아니면,”
──눈치껏 처박혀 있어.
***
……눈을 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