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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4화 (34/87)

〈 34화 〉 속삭임

* * *

……흐린 뒤 맑음.

온통 먹구름으로 차 있다가도 언젠가는 맑아지는 것이 순리(?理)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점 없는 나날이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화창한 5월의 봄날.

한 여인의 얼굴도 오늘따라 맑고, 밝았다.

끼리리릭─. 하얗고 가녀린 손이 수도꼭지의 목을 비튼다.

유한나는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으로 화병을 기울였다.

쪼르륵─. 수돗물이 안쪽의 벽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그렇게 조금씩 고여간다.

‘즐겁다.’

그녀는 무척 들떴다.

손가락과 손등에 닿는 차가운 수돗물이 어째서인지 기분 좋다.

화병의 물이 찰랑거리는, 별것도 아닌 감각이 기분 좋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음에 들 정도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유한나는 정말 새삼스럽고도 굳은 다짐을 입에 담았다.

“이젠 절대로 안 놓쳐.”

그녀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끼리리릭─. 다시 비틀어 닫았다.

뚜욱─뚝─뚝─.

화병을 들어 올렸다.

로즈메리의 보랏빛 꽃잎과 초록색 잎사귀가 생기 넘쳤다.

흐음, 그녀는 코를 가져다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청량했다.

“좋네.”

유한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화병을 조심스레 창가에 올려놓았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분명 환자의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나름 특급으로 공수해온 것이니.

이내 그녀는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침대의 누워 있는 제 소꿉친구를 보았다.

이진우의 어떤 근심도 없는 듯한 편안해 보이는 얼굴.

문득 내뱉었다.

“정말 허우대는 괜찮아.”

……흐음, 뭐지. 갑자기 마음에 안 드네?

노벨피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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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렇게 한동안 떫은 표정을 하고 있다가 그녀는 돌연 장난스레 웃었다.

몸을 기울였다.

누군가와 이마가 맞닿았다.

──. 입을 맞추었다.

유한나는 제 소꿉친구와 닮은 아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넌 누가 뭐래도 내 꺼야.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도 그녀는 은근 분한 마음이 남아서 이진우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주 약하게.

타악─. 딱밤을 때렸다.

* * *

아마도.

내가 모든 사람에 빙의해본 것은 아니라 확답을 하진 못한다.

그래도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귀신(??).

바퀴벌레.

죽음.

학생 주임.

입영 날짜.

새벽에 게임을 하는데 문득 방문을 열고 쳐들어오는 어머니 등.

“…….”

내가 눈뜬 것과 동시에 느낀 것은 머리의 통증과 주변의 고요함.

무언가 얼마 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지 않았나 하는 기시감.

그리고, 목 밑까지 차오른 불안감이었다.

“낯선 천장이다…….”

……어어. 우선 눈뜨자마자 울트라 럭셔리 침대가 있는 내 침실 천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천장이 보인단 점에서부터 대량 실점이었다.

“……설마.”

아직 본 것은 천장뿐.

앞으로 실점이 일어날 만한 구석은 수없이 넘치고도 남았다.

나는 무척이나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데구르르, 눈알을 굴렸다.

하얀 벽과 천장.

단출한 실내 장식.

침대 옆에 놓인 의자.

창가의 보라색 꽃을 담은 화병.

그리고……,

‘……잘못 본거겠지?’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있는 힘껏 눈을 감았다가…….

“……뜨기 무섭네.”

그래도 사내대장부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뽑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눈을 떴다!

……그러자 창 너머의 굵고, 높고, 굳건하게 서 있는 시꺼먼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앙앙악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 * *

“아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유한나는 불퉁한 표정으로 스테이크를 자르며 중얼거렸다.

굉장히 어이가 없다는 말투였다.

“잠깐 전화하러 가니까 막 죽으려는 비명이 들려오는데……. 와아, 너는 진짜 함부로 자리를 못 비우겠다.”

그렇게 퉁명스레 말하면서도 고기를 전부 잘라 접시 통째로 내게 건네준다.

평소와 같으면, 아이 취급을 받는 듯한 느낌에 비참함이라도 느꼈겠지만.

“……웨에.”

현재 나는 유아 퇴행 직전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충격과 비참함을 느낀 참이었기에 군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부들부들. 수전증도 찾아왔는지 손이 달달 떨려온다.

그래도 억지로 포크를 집어 옮겨 검붉은 소스를 곁들인 고기 조각을 찍었다.

입에 넣었다.

……녹았다.

“뭐야, 씨발. 왜 이렇게 맛있어.”

언어를 되찾았다.

나는 바들거리는 손을 서둘러 옮겨서 조각 하나를 더 찍어 입으로 옮겼다.

그리고, 음미했다.

‘……마, 맛있다!’

드드드드──…

수전증이 멈췄다.

훌쩍, 대신 눈물이 나왔다.

“크흐으으읏!”

“뭐 하는 거야. 바보야…….”

유한나는 무척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에 상당 부분 동감하면서 거의 반쯤 울먹이듯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지금은 먹을 것으로라도 사무치는 슬픔과 두려움을 위로해야만 했다…….

‘……헝헝, 출근하기 싫어.’

그렇게 고기를 먹고 지능이 점점 복구되면서 나는 필연적으로 어떤 사실을 떠올리고 말았다.

세상에, 샤오팡?!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죽인 건 아니지?”

블루마린을 가공해 만든 듯한 찬란한 머릿결과 눈동자.

북풍이 불 것만 같은 얼굴이지만, 초면에 누구보다 농담을 잘하던 베스트 프렌드.

설마 우리 샤오팡팡이가 부랄친구 유한나 씨의 손에 죽임당한 것은 아닐까.

나는 진실을 알기가 두려워 몸을 벌벌 떨었다. 안 그래도 슬픈데 친구까지 죽으면 나 정말 정신 나갈지도 몰라. 헝헝.

유한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새침하게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걱정 마, 손끝 하나 안 건드렸어.”

“오, 정말이지?”

“내가 네 친구를 도대체 왜 죽여. 나는 너처럼 미친 사람 아니거든?”

“아니, 그야 빌런이랍시고……. 그보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지랄하네.”

헝헝, 비록 그녀의 심한 발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친구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숨통이 트였다.

얘가 살벌한 얼굴로 도끼 들고 휘두르던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터라 설마 했다.

그렇게 걱정도 풀렸겠다.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고기를 우물우물 씹어먹었다.

그런데 유한나가 불현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야, 너 혹시 출근하기 싫거나 그래?”

“……뭐?”

나는 턱 운동을 잠깐 멈추고는 유한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도대체 네가 무슨 이유로 묻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내 역린을 건드렸어.’

뭐, 사실 출근 자체가 싫거나 하진 않았다. 실제로 나는 샤오팡 패밀리에서 유능한 리더로서 일한 바가 있다.

그러나 만약 출근할 직장이 ‘마탑’이고, 직속 상사가 ‘이리엔’이라면 무척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게 될 테니까.’

아니, 사실 내가 죽여버릴 거야…….

그래, 나는 출근하기 전,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있던 것이다.

나중에 걔가 죽건, 내가 죽건 마탑 근처 레스토랑에 오긴 글렀다.

“그러니까 이렇게 열심히 먹는 거지. 알겠어?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야.”

우물우물. 나는 어느덧 5접시째 스테이크를 해치우면서 항변했다.

그래, 배불리 먹고 죽어야 때깔도 곱다니까 열심히 먹는 것뿐이었다.

“……뭐래.”

“뭐야, 불만 있어?”

“아니, 정 그러면 내가 해결해줄까?”

나는 번뜩 고개를 들었다.

자타공인 마탑 최강이라는 유한나 씨는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직시켜줄까?”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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