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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5화 (35/87)

〈 35화 〉 불구대천(???)

* * *

월요일.

영어로 Monday.

학생이건 직장인이건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질색하는 끔찍한 날.

그럼에도 세상에는 직장에 기쁜 마음으로 출근하려는 사람이 소수지만, 존재했다.

“후후, 오늘도 출근해볼까?”

셀베르크 마탑의 어느덧 재직 5년 차인 강수희가 그랬다.

현재 그녀는 1층 로비에서 방문객을 맞는 접수원 일을 하고 있다.

갑자기 마력 특이체질이라면서 보호조치가 이뤄지고, 마법이 있단 사실에 놀라고,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걱정한 것도 옛일이었다.

“수희 씨, 안녕.”

“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강수희는 봉급은 두둑하고, 복지는 훌륭하며, 주택 마련까지 해주는 데다가 가깝기까지 한 직장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

“네, 접수됐습니다. 77층으로 가시면 교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뭐, 가끔 특이한 객을 만나기도 했지만, 판타지를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보호 마법이 덕지덕지 발린 터라 웬만해서는 그들이 자신을 해칠 수도 없었다.

‘음, 게다가 마법사를 만날 일은 흔치 않지.’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강수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마탑 로비에서 마법사들을 접객하는 일이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다고 여겼다.

물론 그녀에게도 가끔 일하기 싫어지는 상황이나 날짜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런 날은 극히 드문……,

“……저기 한나 씨?”

“네, 왜 불러요?”

강수희는 넋이 빠진 얼굴로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과 자신의 손에 들린 보고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따금 한 번씩 보았었다.

거대한 괴물 시체와 함께 텔레포트해 오는 유한나를.

그녀가 갑옷이나 사제복을 입은 모습은 참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호감’.

오늘 검정 가죽 재킷과 청바지라는 조합의 사복 차림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래서 또각또각 유한나가 걸어왔을 때, 얼마나 좋아했던가.

꺄아꺄아, 언니 저 죽어요!

‘……이제는 아니야.’

강수희는 죽은 눈으로 보고서를 보았다.

[ 원정대 정기 보고서 : 이 이상 던전을 공략해도 멸망은 불가피함 ]이라는 언뜻 봐도 일개 접수원이 보기엔 너무 무거운 내용.

서류가 전혀 밀봉되어 있지 않아 첫째 장뿐이지만, 생으로 봐버렸다.

‘아니, 직접 원로회에 올리면 될 텐데! 아니, 밀봉이라도 하면 됐을 텐데! 아니, 어째서 이렇게 보여주는 건데에에에!!!’

위가 쓰리다.

절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녀는 마음 같아선 서류를 반환하고 싶었지만, 차마 우상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뇨. 제가 서류봉투에 따로 담아서 올려도 될까 해서요.”

“아, 그래 주시면 고맙죠. 잘 부탁드릴게요, 수희 씨?”

그러나 강수희는 불현듯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는 유한나를 보며, 가슴이 끓어올랐다.

예뻤다…….

참고로 그녀는 광신적인 얼빠였다.

‘……그래, 뭐, 내년에 확정적으로 세상이 망한다는 게 무슨 대수라고.’

강수희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서랍에 넣어놨던 사인지를 꺼내 유한나한테 내밀었다.

사인을 받았다.

그녀는 그걸로 만족했다.

오랫동안 마법사들과 부대낀 덕분인지 마찬가지로 나사가 빠져버렸다.

‘하지만 뭐 어때?’

강수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세계 종말까지 단 236일 남은 날이었다.

* * *

전직 마탑 서류 노예, 현직 병원 환자인 내게 자랑거리를 내세우라고 말한다면 대충 3개 정도를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친구가 없는 찐따지만, 소꿉친구 하나는 있어 완전 찐따는 면했다는 점.

둘째. 일하느라 돈 쓸 시간이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돈은 많다는 점.

셋째. 크게 쓸데는 없지만, 제법 건강하고 튼튼한 몸으로 자랐다는 점.

그렇다. 나는 튼튼하게 자라 어릴 적부터 병치레한 적도 없고, 딱히 큰 사고를 겪지도 않아서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없었다.

“음, 미묘하군.”

그런 내가 단 하나뿐인 소꿉친구한테 폭행당해서 두개골 골절로 입원한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맛있지만, 부족해!”

생전 처음 먹는 병원 식사로 기대 이상의 함박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어제 먹었던 천상의 스테이크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참으로 미묘했다!

“안타깝구나. 함박 스테이크야……. 하필 세계관 최강자를 만나다니.”

그것도 어제.

나는 그 안타까운 현실에 슬픔과 함박 스테이크를 함께 입에 머금었다.

으음, 확실히 맛있다. 병원 식사로 미음 같은 것이 나오리라 생각했던 내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는 레벨.

그렇기에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나는 감성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참담한 심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푸르른 하늘과 뭉게뭉게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는 모습이 제법 보기 좋다.

……굵고, 높고, 굳건하게 서 있는 칠흑의 마탑만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좆같군.”

죽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저 외면도, 내면도 새까만 직장 건물을 보니 어제 유한나가 했던 이야기가 다시금 절실해졌다.

“상인 조합인가…….”

정확히는 세계 3대 이능력자 단체인 ‘길드’에 속해 있는 상인 조합이었다.

유한나가 말하기를 제법 많은 대외활동을 한 터라 그쪽에도 연줄이 있다던가.

자신이 귀띔하면, 그쪽으로 가자마자 최소 ‘팀장’에, 어쩌면 ‘이사’ 자리로 영입될 것이고, 최대한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 했다.

대신 한국에는 지부가 없어 미국의 본단으로 넘어가 일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또한 제주도행 비행기밖에 타본 적이 없던 내게 있어 즐거운 이야기였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인데…….”

으으으음, 막상 밥상이 차려지니까 고민되는 것은 배부른 심보일까.

나는 유한나가 병문안 선물이라며 놓아두고 간 토마토 주스를 들이켜며 생각했다.

……그래도 은원(??)은 확실히 끝맺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 토마토처럼 머리를 깨부숴주지…….”

그렇게 나는 이리엔과의 생사결(?死?)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마침 퇴원 예정일은 내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리엔의 목을 베러 마탑 지원본부에 쳐들어간다!

“아아, 마탑 부수기인 것이다…….”

화산(火山)처럼 끓어오르는 분노!

이 울화를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쏠 수 있도록 벼려내야만 한다!

[ ‘금화신공’을 발동 중입니다. ]

나는 침대 위에 정좌한 채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스르르륵­ 단전에 청량한 마력이 결집하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무협이 아니야!”라고 외치겠지만, 이것은 분명 내공이 아니라 마력이었다.

‘좋아, 짧은 시일 내에 태산압정을 쓸 수 있는 일류의 마법사가 되어 이리엔의 목덜미를 베는 거다……!’

라는 체계적인 살인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있던 참이었거늘…….

똑─똑─!

곧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하필…….”

나는 꼭 공부 다 하고 게임하려는데 방에 어머니가 들어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냥 무시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무슨 용무가 있어서 들린 것일 테니 일단 환영해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적당히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 들어오세요!”

드르르륵─. 병실의 문이 옆으로 열리고, 방문객의 정체가 드러났다.

“흐윽……. 저는 진우 씨가, 흐극, 분명 죽은 줄 알았어요……. 으허어엉.”

“…….”

짜란─.

질질 짜는 금발 적안의 마녀가 등장했다.

신혜영은 훌쩍이며, 침대 옆으로 다가와 아예 엉엉 울어댔다.

아직도 얼얼한 감각이 생생히 떠오르는 스피리타스의 공포가 남아 있던 나는 엉엉 울고 있는 신혜영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고민했다.

‘……갑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머리채를 붙잡고 알코올을 들이붓는 건 아닐까.’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응, 죽진 않았지. 그러니까 축하주로 네가 몇 병 쏴라. 아, 너는 마시지 말고.”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고, 언제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활짝 웃으며, 코를 훌쩍이는 신혜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붉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웃으며 내 손을 마주잡았다.

그렇게 감동과 우정의 재회를 하는데…….

드르르륵─. 돌연 병실 문이 열렸다. 나는 의외의 인물에 눈을 끔벅였다.

“……어라?”

적발(赤?).

검정 무테안경.

살짝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다크서클.

흰 연구원복.

그녀는 병실 문에 우두커니 걸쳐 서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아, 진우 씨. 나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 자, 여기 병문안 선물로 과일 바구니를 가져왔어. 얼른 먹고 나아야 해?”

이새끼는 도대체 왜 온 거지?

얘도 병문안이랍시고 온 걸까?

그런데 얘 어째서 안 들어오고 문에 걸쳐 서서 바구니를 받아가라는 듯이 있는 거야?

기분 탓인가?

아니, 이 새끼 인성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같은 수만 가지 생각을 거쳐 나는 결론을 내렸다.

불구대천(???).

나는 이리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으로 손을 뻗어 드르르륵─ 서랍을 열었다.

그래, 유한나가 사과를 잘라주고서 그곳에 넣는 것을 봤었다.

──과도를 들었다.

“……하하.”

살육(??)의 시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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