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바보 같은 사람
* * *
“죽여! 저 새끼 빨리 죽여어어어!!! 한나야! 반으로 갈라서 죽여 버리렴!!!”
“……아니! 좀…, 진정하세요!! 진우 씨!! 도대체 왜 그래요!!! 으아아아앙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유한나는 병실 안의 개판을 보면서 순간 아득한 감상을 느꼈다.
문득 옆의 미닫이문을 보았다.
지금이라도 문을 닫고 나가면 정신 나간 장소에서 탈출할 수 있겠지.
……그러나 저 개판의 주역은 자신의 소꿉친구였다. 지금 꼴을 보아하니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고 그걸 막으려면 당장 중재하는 것이 나았다.
‘이 멍청이는 꼴에 칼 들고서 뭐 하는 거야. 죽일 거면 몰래 좀 죽이지.’
에휴,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한 손에는 과도를, 또 다른 손에는 이리엔의 머리채를 쥐고 있는 소꿉친구에게 다가갔다.
그를 안간힘으로 막고 있던 금발 적안 마녀를 잠시 옆으로 치워냈다.
‘……정말이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유한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은 채 이진우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내 그는 몸을 부들대다가 고개와 과도를 동시에 떨궜다.
그렇게 살인 미수 사건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순식간에 중재되었다.
그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평화적인 해결이었…,
“나는 불만 있소!”
“나는 물도 있”
“닥쳐어어어!!!”
“…….”
이진우가 씩씩대며 소리치자 이리엔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신혜영은 무슨 연유로 이런 개판이 난 건지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해 안절부절못했고.
유한나는 그래, 한번 들어보자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귀를 기울였다.
“저년은 내게 모욕감을 줬어!”
“아니, 내가 시킨 건 정당한 노동과 그에 대한 조치일 뿐이었다니까?”
“갈(?)!!! 한 달 동안 퇴근도 못 하고 죽어라 일만 했는데 그게 정당한 노동이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빼애애애애애애애액!!!
세상의 모든 노예 중에서도 최강인 특급 사축이 울부짖었다.
병실 안의 사람들은 여태껏 살면서 그렇게 청아하고 설움이 그득한 울림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 금세 매혹되었다.
그나마 미친 이진우를 오랫동안 봐왔던 소꿉친구만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아니, 그래서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설령 죽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실추된 명예를 위해서 어떤 조치는 취해야만 해.”
“으음, 그냥 회사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툼 같은데 이쯤에서 묻지?”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과중한 업무를 안겨주는 것은 마탑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셀베르크 마탑이 일반적인 직장은 아니었지만. 개인의 바람과 성취를 위해 업무에 매진하는 마법사들이 그 직원들이었지만.
세계 3대 단체 중에서 권위적인 축에 속하는 마탑이 제 소속원들끼리 칼부림하는 상황을, 게다가 하극상이 나는 상황을 흐뭇하게 바라볼 리는 없었다.
──이대로 이리엔을 죽인다면 마탑이 이진우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던 유한나는
──애초에 그녀는 바보 같은 소꿉친구가 오랫동안 놀고먹다가 직장을 다니니 문득 상사를 죽이고 싶어진 모양이다. 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질척한 분쟁을 이곳에서 깔끔하게 끝낼 생각이었다.
“아니! 시발! 세상에, 목에 개목걸이 걸고서 한 달 동안 일 시키는 게 흔한 일이냐?! 와아아아악! 세상 존나게 무섭네!”
“……뭐?”
그래, 그녀는 분명 평화롭게 일을 마무리시킬 생각이었다.
이진우의 새로운 폭로를 듣기 전까지는.
유한나는 입을 헤, 벌린 채 이진우의 잘생긴 얼굴과 목덜미를 훑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안 채워본 목걸이를?’
시발?
요즘 평화로워졌던 그녀의 마음에 극도의 살심(?心)이 치솟았다.
유한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순식간에 다가가 붉은 머리 연구원의 어깨를 짚었다.
또, 속마음을 진솔히 털어놨다.
“……죽여버리겠어.”
“……네? 유한나 씨? 아, 아니! 저기요?!”
우드드득─! 이리엔은 자신의 어깨에 나는 소리를 듣고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평생 서류 업무와 계획 수립에만 매진했던 이로써 처음 경험하는 고통과 파열음.
그녀는 프레스 압착기처럼 짓누르는 마탑 최종병기의 악력을 느끼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이리엔은 답지 않게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유한나가 자신의 치렁치렁한 붉은 머리처럼 피로 물든 창자를 뽑아 걸어버릴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약 알았다면, 지금처럼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정도로 끝나진 않았겠지.
그렇게 이리엔이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실감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구원의 목소리는 갑작스레 들려왔다.
“유한나, 동작 그만! 거기서 손 떼라.”
“……뭐라고?”
“손 떼라고 말했다! 나의 소꿉친구여.”
놀랍게도 그녀를, 악덕 상사를 살리려는 것은 지금까지 죽으라 외쳤던 부하 직원이었다.
이진우는 자신이 언제 징징거렸냐는 듯 점잖은 모습으로 말했다.
“네 말대로 회사에서 벌어진 일은 회사의 방식으로! 또 나의 원한(??)은 내 손으로 직접 끝내는 게 맞다! 그러니 너는 손을 떼라!”
“……흥!”
유한나는 새침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며 곧바로 손을 떼었다. 소꿉친구의 말을 곧잘 듣는 편이었다.
반면 이리엔은 넋이 빠진 얼굴로 병실 바닥에 털썩 허물어졌다.
‘……사, 살았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아니, 분명 그 직전까지 갔었다.
겨우 살아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부하 직원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충직한 나의 서류 노예……?
쉬이이익─! 과도가 빠르게 면전으로 날아왔다.
히이이익─! 이리엔은 새된 소리를 내며 재빨리 바닥을 굴렀다.
성공적으로 회피에 성공했다.
“특급 서류 노예였던 나는 업무 메뉴얼을 열심히 읽어야만 했지. 그렇기에 마탑의 규칙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비록 목에 걸린 폭탄 목걸이도 제대로 못 풀어서 납치되고!
세상이 멸망하는지도 제대로 몰랐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이진우는 예전에 봤던 마탑 업무 메뉴얼 15장 135항을 읊었다.
“혹시 상사와 동료와 부하의 업무가 불만일 때는 공개적인 마법 결투로 해결하라.”
그래, 악덕 상사에 대한 응징은 정정당당한 결투로 이뤄져야만 했다.
그것에 동의해 흰 장갑 대신으로 사과 깎는 과도라도 던진 것이고.
이진우는 눈을 부릅뜨고서 자신을 부려먹었던 붉은 머리 쓰레기 악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숙히 외쳤다!
“결투다! 이리엔!”
……그렇게 당일로부터 한 달 뒤, 2021년 6월 11일 불타는 금요일의 저녁 6시로 그들의 모든 것을 건 데스매치 날짜가 잡혔다.
“……에?”
이리엔은 모르는 일이었다.
* * *
……점심시간이 끝나면서 오후 업무를 위해 신혜영과 이리엔이 돌아간 뒤.
“솔직히 지금 너로는 못 이겨.”
“……크흣.”
유한나는 곧바로 팩트 폭력을 날렸다.
진작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신음했다.
그래, 사실 각성한 지 두 달도 안 되고, 직업도 [ 거상 ]인 내게 승률은 희박했다.
분명 상인 계열이라 시스템 상점에서 무언가를 살 돈은 많다.
하지만, 어떤 직업에 한정된 무기나 갑옷과 같은 장비를 착용할 수 없다.
‘금화신공’을 제외하면 전투에 활용이 가능한 특성과 능력도 없고.
그에 반해 이리엔은 사무직에 오랫동안 종사해왔다지만 ‘적’급의 완숙한 마법사.
특성과 능력이 전투적이진 않아도 중위 마법까지는 손쉽게 발동하는 베테랑이었다.
각성한 덕에 몸만 튼튼한 나와는 차원이 다른 이능력자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소꿉친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짚으며──이리엔에게 한 것과는 달리 굉장히 상냥한 손놀림이었다──외쳤다!
“하지만, 이진우. 네가 나와 함께 수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어라?!”
“심상(心?). 상상하는 대로 그려지리라.”
유한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와 동시에 막대한 양의 마력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이내 세상을 반전시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바보처럼 멍하니 온통 하얗게 물든 우주와도 같은 세상을 둘러봤다.
유한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내가 임시로 결계를 둘러 만들어낸 심상세계(心?世?)야. 이곳에서라면 다치지 않고 얼마든지 수련할 수 있지.”
“……호오.”
“너, 어떻게 무공을 배운 모양인데 사실 그것만 제대로 수련해도 이리엔은 껌딱지처럼 쉽게 밟을 수 있어.”
“그게 정말인가요? 선생님?!”
“아아, 정녕 나를 못 믿는 것이냐. 제자야?”
“그럴 리가요!”
유한나는 흐뭇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돌연 허공에서 두 자루의 검을 꺼냈다.
그녀는 그중 한 자루를 던졌다. 나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았다.
소꿉친구는 제법 음흉한 미소를 짓고는 내게 말해왔다.
“네가 그토록 이기고 싶다면, 오늘 하루 정도는 밤새 검을 휘두를 수 있겠지? 아니면, 그 정도 각오도 없거늘 이기겠다 외친 것이냐!”
“그럴 리가 있나! 나는 한 달 내내 밤을 새워도 문제없는 몸이다!”
“그래? 그렇다면 너의 패기를 똑바로 보여봐라! 내게 진심으로 덤벼봐라!”
“으랴아아아아아아앗!!!!!”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타도(??) 이리엔…….
아니, 살해(??) 이리엔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두 사람의 의지가 끓어올랐다.
특히 이진우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검을 휘둘렀다.
그는 다짐했다.
‘반드시! 기필코 죽인다!’
그러한 다짐으로 분노의 검격은 횟수를 쌓아가고, 밤은 깊어져만 간다.
* * *
“……아아.”
여인은 신음했다.
그녀는 새까만 방안에 기겁했다가 두려워한 세상은 참 붉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 가슴을 가라앉혔다.
얼굴에 손을 올려 눈 앞을 가렸다.
“……바보 같네.”
떠나간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도.
또, 그리워하는 것도.
잔혹하지는 않아도 냉혹하게는 살아왔던 그녀에게,
다시 냉철하게 현실을 살아가고자 하는 샤오팡에게 있어 참 미련하고 슬픈 일이었다.
“이진─…”
그녀는 차마 제대로 부를 수 없는 남자의 이름을 끝없이 되뇌었다.
어째서인지 미련한 것을 앎에도 계속하게 되는 짓이었다.
샤오팡은 눈을 감았다.
이내 그녀는 머릿속으로 천진난만했던 이진우를 그리었다.
그러다 문득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사람…….”
보고 싶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