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9화 (39/87)

〈 39화 〉 인생 절반 손해 봤어......!

* * *

“……흐음.”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랄까. 바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병실이 깨끗한 편이라고는 하나 저렇게 드러누워 있으면 옷에 먼지 다 묻는데…….

무슨 이유로 저러는지는 몰라도 나는 죽은 듯 엎어져 있는 친구를 외면할 정도로 의리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지막이 이름을 불렀다.

“뭐하고 있어, 샤오팡.”

“…….”

응답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서 직접 내려가 샤오팡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 자체로 예술품 같은 청색 머리칼로 뒤덮인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다른 신체부위를 건드리진 못하고, 가녀린 팔뚝만 쿡쿡 찔렀다.

“샤오팡,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기운 없이 쓰러져 있어. 일어나봐.”

“……으으.”

샤오팡은 쉰 목소리로 신음했다. 이내 들썩들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매력적인 제안을 건넸다.

“있잖아. 내가 천상의 스테이크집을 찾았는데 말이야. 너 일어나면 한턱낼 테니까 먹고 싶으면 빨리 좀 일어나.”

“으, 진우…, 진우우으으야…….”

“……샤오팡?”

“진우…, 진우우으…, 진우으아야아아…….”

오늘따라 샤오팡의 말투가 맥주와 소주를 각각 5병은 잡순 것처럼 어눌하다.

오랜만의 재회의 반가움으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덥석­. 팔을 붙잡혔다.

“……어라?”

“진우……,”

샤오팡이 내 팔뚝을 강하게 움켜쥐며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끼기기긱─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완전히 피투성이.

그녀는 서글픈 목소리로 외쳤다!

“진우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허미 시발!!!”

콰득─.

물어뜯겼다.

[ ‘금화신공’이 발동 중입니다. ]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면서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평온하다.

샤오팡도, 다른 시체도, 어떤 좀비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아, 시발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려 하는데…….

드르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진우야,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의미심장한 미소의 유한나와 왠지 부루퉁한 표정의 신혜영이 보였다.

나는 왠지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들을 맞이했다.

“목마르지?”

라면서 금방 생수병을 건네는 유한나는 어제처럼 가죽 재킷 차림이었고, 옆의 의자에 쭈뼛거리는 신혜영은 퇴근하고 갈아입었는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여담으로 트레이닝복의 지퍼는 숨 막힐 듯 굳건히 꽉 채워져 있었다.

* * *

……셀베르크 마탑 영역 내의, 마법의 스테이크 전문점 『호트와그』

신혜영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맛집에 온 것에 제법 들떴었다.

한 끼에 기본으로 수천이 드는 가격대에 언젠가는 먹어야겠다고 생각만 했지 이렇게 병문안에 이어 들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스테이크를 거의 다 썰어놓았다.

그러나 10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지 못하고 있다.

“이리엔 개새끼! 나는 그 새끼를 반드시 죽여야만 해! 알아들었어?! 숭고한 사명을! 지금 일천만의 직장인이 복수를 고대하고 있다고!”

“……아, 네.”

신혜영은 이진우의 열변을 새겨듣는 것만으로도 왠지 숨이 가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별생각 없이 어제 무슨 일로 싸운 것이냐고 물었다가 괜히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체험하고 있다.

‘……무, 무섭네.’

이진우는 열화가 남았는지 씩씩대며 스테이크 두 조각을 포크로 한 번에 찍고는 그대로 입에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우물우물 참 복스럽게 씹어먹는다.

금발 적안의 마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제야 자신도 스테이크 첫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대망의 첫 시식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기 조각을 씹으며 음미했다.

그리고,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압도적인 미미(美味).

신혜영은 입속에 사정없이 몰아치는 황홀한 맛의 폭풍을 맞닥뜨렸다.

그녀는 살면서 이만큼 맛있는 스테이크…, 아니,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인생 절반 손해 봤어…….”

무심코 중얼거렸다.

신혜영은 맛의 폭풍 이후 몰려오는 감동과 서러움으로 인해 훌쩍거리면서도 스테이크를 한 조각씩 성실하게 해치웠다.

그렇게 그녀가 정신없이 스테이크를 반쯤 해치웠나. 벌써 세 접시를 비운 이진우가 말을 덧붙였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한동안 또 못 볼 거야. 한 달간 수련해야 할뿐더러 일단 걔 업무 지시받는 게 더럽게 싫어.”

그는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편 레스토랑에 와서 줄곧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유한나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는 생각했다.

‘……무려 한 달! 삼십 일이나! 진우랑 도대체 뭐하면서 보내지?’

유한나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온갖 망상을 머릿속에서 전개했다. 그 끝은 언제나처럼 이진우와의 가족계획을 넘어 노후계획까지 이를 것이었다.

그리고, 신혜영은 ‘아, 그러시구나.’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입을 뻐끔거렸다.

……그녀는 말하기에 앞서 슬쩍 옆의 유한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천진난만하게 말하기가 조금 꺼려지는 원인.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는지 자신을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솔직히 많이 무서웠다.

그러나 마녀는 문득 목덜미까지 채워진 지퍼를 만지작거리고는 결단을 내렸다.

“저기 진우 씨, 그러면 혹시…….”

“응, 혜영아 왜?”

신혜영은 잠깐 우물쭈물 쭈뼛거리더니 이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라도 연금부에 오시지 않을래요?”

이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오.” 하고, 진심을 담은 감탄사를 토했다.

그리고, 유한나는 뒤늦게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넋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구깃구깃 얼굴을 찌푸렸다.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살기는 덤이었다.

“아니, 그…, 팀장님이랑 싸우시면 지원본부에 있기 어색하실 테니까…….”

“아니, 진우는 나랑 이직을……!”

“그것참 좋은 의견이었다! 그러면 내일 당장 연금부서로 출근하도록 하지.”

“에엣?”

“……뭐? 진우야?”

싸움은 언제나 공평해야 한다.

라는 지론을 지닌 이진우는 심사숙소 끝에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리엔과 마찬가지로 출근하면서 나중에 맞대결에서 이긴다면 그보다 완벽한 승리가 또 어디 있겠느냐고!

게다가……,

그에겐 믿음직한 소꿉친구 겸 무공 선생님이 있었다!

이진우는 유한나에게 고개를 돌리고선 환한 미소를 보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이, 믿고 있다고!’

유한나는 부랄친구 십수 년 짬밥으로 어렴풋이 그 생각을 알아채고는 경악했다.

그녀는 속으로 읊조렸다.

‘……개새끼가?’

그리고, 예상 이상의 성과를 얻은 신혜영은 어리둥절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유한나를 발견하고는 무심코 신음했다.

“……에?”

* * *

“……뭐야, 사표?”

이리엔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흰 봉투를 쳐다보았다. 그것을 내민 당사자인 이진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칼부림까지 하면서 한동안 못 볼 것 같더니 이틀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고.

‘제 소꿉친구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신고 먹었을 놈이…….’

하지만, 이리엔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어째서지? 그녀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수리해줄게.”

이전에는 다른 직원의 수 배는 능률이 높고, 의외로 고분고분한 편이라 놓치기 싫은 마음이 컸지만……,

……그녀의 부하직원은 상상 이상의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은 놓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그래서 이리엔은 흰 봉투를 향해 기꺼이 손을 내뻗어 붙잡았다.

그러나 순순히 놓아지지 않는다.

“뭐야, 사표 안 줘? 야, 야, 빨리 봉투 놔. 수리해달라매.”

“아뇨, 이건 사표가 아닙니다.”

“……뭐?”

이리엔은 재차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곧 이진우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담담하게 선전포고했다.

“한판 뜨자, 이리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