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병신
* * *
언제였더라.
고된 서류 업무에 파묻힌 나날이 너무도 길었던 터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마탑에 처음 왔던 날이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기보단……, 서류 작업이 참 많았었다.
그래……,
“이리엔 쌍년.”
아무튼, 그때로부터 긴 시간이 흐르고, 나는 드디어 신혜영이 그렇게도 강력히 추천했던 와플 가게에 들르게 된 것이다.
이곳도 천상의 스테이크집처럼 마법을 사용해 환상적인 와플을 만든다고 들었기에 큰 기대감이 들었다.
“아저씨, 와플 하나에 얼마예요?”
“하나에 2,500원.”
“그러면 초콜릿 맛이랑 사과잼 맛 각각 2개씩 주세요.”
“다 해서 만 원.”
내 재산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마법의 와플치고는 제법 양심적인 가격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 그 녀석도 이걸 먹으면서 좀 기분이 풀리면 좋을 텐데 말이야.
나는 그런 바람으로 와플이 든 종이봉투를 받아들고서 집으로 향했다.
그래, 내 집.
여기서 ‘집’이라 불린 것은 허름한 원룸 자취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잠깐 흐뭇한 마음으로 눈 앞에 펼쳐진 전경을 바라보았다.
번화가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너무 외지지도 않은 적당한 위치.
판타스틱하게 조형된 철제 대문과 그 너머 잔디가 촘촘히 깔린 널찍한 마당.
유한나와 함께 수련하기 위해 부지 한쪽에 마련한 실내 훈련장.
거기에 가장 중요한 집의 실내에는 화룡점정으로 무려 방이 네 개에! 화장실은 두 개나 있었다!
“……뭐, 평수에 비해 적은 것 같긴 한데.”
어차피 두 사람만 살 생각이니 이 정도면 차고도 넘치는 수준이다.
이런 주택을 퇴원한 당일에 바로 구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겠지.
이리엔에게 데스매치와 부서 이동을 확약받고 오는 길이라 한참 기분이 좋았던 나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마당을 가로질렀다.
나는 제법 가벼워진 마음으로 끼익─,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자신의 방에 있을 동거인을 향해 형식상의 산뜻한 귀가 인사를 했다.
“한나야, 다녀왔……,”
……그리고, 현관 앞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유한나와 눈이 마주쳤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아이컨택에 나는 순간적으로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누구?
그녀의 자랑스러운 부랄친구가 아닌가.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그녀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한나야, 안녕?”
“…….”
그러나 나의 소중한 소꿉친구 유한나 씨는 굉장히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한 번 꼬나보고 곧바로 등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숙연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다가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조신하게 신발 정리를 하고서 집안에 발을 들이밀었다.
유한나와의 친구 인생을 통틀어 Top 5안에 드는 싸늘한 기색. 극악으로 눈치가 없는 나조차 낌새를 알아챌 수밖에 없는 분위기.
……그렇다. 동거인이 내게 화가 더럽게 많이 난 듯했다. 그러나 정말로 큰일 난 점은 단순히 화가 많이 났다는 점이 아니다.
‘……이유를 몰라.’
어느덧 퇴원 후, 유한나와의 동거 나흘째.
동시에 냉전(戰).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 * *
‘삐졌네.’
그런 생각이 들지언정 결코 그 말을 입밖에 내뱉어선 안 된다. 만약 입에 담는다면 냉전 기간이 곱절로 늘어나 심신에 막심한 피해를 줄 것이었다.
이것은 모쏠아싸찐따의 삶 이십이 년을 살면서 절실히 깨달은 진리 중 하나였으니 착실히 지켜야만 했다.
‘좋아, 그러면 상대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하지 않는 기본조건을 충족했어. 이제 한나의 기분을 풀어볼 방법을 찾아볼까?’
라는 생각으로 더욱 상냥하게 이름 부르기, 목욕물 받아주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제육볶음 해주기 등등.
냉전이 일어난 나흘간 동거인으로서 해줄 만한 일들을 성심성의껏 수행했다.
거기에 지난 오랜 세월 동안 그녀가 단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한 번씩 외출할 때마다 푸딩이나 아이스크림, 와플 등등 간식을 사 왔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그녀의 얼어붙은 미소를 녹이지 못했다.
도대체 나의 무슨 잘못이 너를 그리 차갑게 만든 것이냐, 한나야아아아!!!
‘……아니, 입에 침 고인 거 다 아는데.’
나한테 얼마나 화가 났길래 저렇게 냉담하게 반응하려 애쓰는 걸까.
제 죄를 통감한 나는 더욱더 깊이 반성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 죄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내 죄질을 더 무겁게 했다.
휘익─휘익─.
정자세로 목도를 휘두르던 나는 슬쩍 옆의 유한나를 곁눈질했다.
후웅─! 후웅─!
마찬가지로 정자세로 검을 내리긋는 그녀의 모습은 완벽 그 자체.
평소와 달리 도복까지 갖춰 입으니 검의 명인이란 느낌이 확 와닿는다.
분명 저 발끝만큼만이라도 따라 할 수 있다면 이리엔 정도는 썰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따라 할 수 있게 좀 도와줄래? 나의 베스트 프렌드?’
아니, 애초에 동거하게 된 것도 수련 때문이었잖아.
적어도 훈련장에서는 잘 알려주다가 딱 집에 들어가면 화내는 건 어떨까.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애타게 바라보지만,
유한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후웅─! 후웅─! 묵묵히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슬슬 진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데…….’
나는 절실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검을 휘두르며 내 죄가 도대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 * *
‘……개새끼.’
유한나는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속으로 이진우의 욕을 수십 번 되뇌었다.
그렇게 화가 난 티를 팍팍 냈는데 어떻게 나흘간 사과 한 번을 안 하지?
그녀는 그 와중에 왠지 이진우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자기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뭐, 자기가 잘못한 것을 제대로 모르니 어중간하게 사과할 바에 제대로 알 때까지 계속 찌그러져 있겠다는 것이 아닐까?
“……후우.”
그래도 울화는 여전히 치솟아 오른다.
그녀는 최대한 고른 숨을 내쉬려 노력하며 후웅─! 후웅─! 검을 내리쳤다.
처음 한 번은 여우 같은 금발 마녀를 상상하며, 다음 한 번은 그것에 홀라당 넘어간 이진우를 생각하며.
그것을 무한(無?)하게 반복한다.
──내가 하루 종일 함께할 생각에……,
후웅─!
──진짜 얼마나 설렜는데……,
후웅─!
──시발, 쌍년이! 그걸 뺏어가?!
후웅─!
그러한 분노로 벼려진 검격이 어느덧 생각지도 못한 나흘째 이어지고 있었다.
“……존나 눈치 없는 새끼.”
유한나는 무심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가 곧바로 마력을 은밀히 운용해 이진우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리고는 나 도대체 무얼 위해 쓸데없는 내숭을 부리고 있는 거지.
‘그냥 덮쳐버릴까?’
문득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어쩌면 진작에 이르렀어야 할 지극히 당연한 사고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정(??).
사랑(?).
세계 평화(世? ??).
자존심(??心).
요즘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했던 그녀는 자신이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래, 만약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가장 중요한 오직 두 번째 것만…….
우정 따윈 개나 주고.
오직 사랑만.
‘맞아, 베프가 무슨 중요한 타이틀이겠어.’
무슨 수단이건, 어떻게든 결혼하면 모든 관계의 상위호환 아닐까?
──흑화(?化).
수년간 참아왔던 유한나의 머릿속이, 마음이, 욕망으로 거무죽죽하게 물들어갔다.
좋아, 덮치자.
거의 9할 9푼 9리 정도 마음먹은 유한나가 이진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물구나무를 선 바보 같은 소꿉친구를 발견하였다.
유한나는 잠시 얼이 빠진 채 그를 바라봤고, 멍청이는 거꾸로 선 채로 장렬하게 외쳤다.
“바보라서 정말 미안하다아아아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내가 눈미새라서! 시발! 그냥 네가 화가 풀릴 때까지 계속 물구나무서 있을게! 내게 돌을 던져라아아아!!!”
도대체 저걸 사과라고 하는 병신 같은 소꿉친구가 어디 있을까.
몇 번이나 눈을 감고 떠봐도, 아무리 시야에 담아봐도 바보 같아 보이는…….
저런 바보를 수년간 좋아했던 자신이 저절로 우스워지는 듯한…….
“푸흡, 병신…….”
유한나는 며칠간 참아왔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런 병신 같은 놈을 어째서인지 좋아하게 된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오랫동안 봐왔던 순수하고 고집 센 병신이 너무나도 웃기고, 마음에 들어서.
“……에휴.”
그리고, 그녀는 다시금 자신의 신세에 화가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이진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으억, 바보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유한나는 손을 내밀어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속으로,
아니, 들뜬 목소리로 내뱉었다.
“병신.”
그러고는 다시 어이가 없어져서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