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월요일
* * *
조졌네.
그 사실을 열다섯 번의 연성 실패와 일곱 번의 폭발사고를 겪고 나서야 깨닫고 말았다.
“쉐엣.”
나는 슬쩍 신혜영을 곁눈질했다. 마이 파트너 연금술사 씨. 분명 처음만 해도 기운이 넘쳤던 그녀는 어느샌가 죽은 눈으로 잿더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우 씨, 조금 늦게 말하게 된 것 같지만요?”
“응응, 무엇이느냐.”
“아무래도 가망이 없는 것 같아요. 포기하고 다른 거를 만들죠.”
“음. 아주 좋은 생각이야.”
『현자의 돌 연성 프로젝트』
대실패…….
하지만, 문제는 없다.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것은 현자의 돌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그저 다음 계획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음, 기대가 되는군.’
신혜영은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이제 쓸모가 사라져버린 마법의 항아리를 한쪽에 처박아놓고, 새로운 마법의 도구를 꺼내었다.
비커.
삼발이.
알코올램프.
왠지 중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는 과학 실험도구들이 실험대 위에 올려졌다.
“……뭐지?”
분명 난도를 낮추라고 말하긴 했는데 순식간에 연금술에서 중학교 실험 수준으로 격하돼버린 것 같다.
이는 프로젝트 최대 투자자로서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금발 적안의 돌팔이 연금술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시선을 회피하더니 결국 쩔쩔대며 말했다.
“……아니, 그 뭐냐. 어차피 다음 등위로 올라가려면 공적치를 채워야 하니까~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하는 게 좋지 않나…….”
“혓바닥이 길군.”
“원래 첫판은 연습게임이라고 하잖아요! 프로젝트 첫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
뻔뻔해…….
저번 주부터 현자의 돌 만들고 진리의 문 열 생각에 기분 좋았었는데!
정신적 피해 보상 빨리 책임져!
라고 진지하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뇌수를 촉촉하게 적셨지만, 참았다.
“……하하하하.”
본인부터 자신이 내려놓은 비커 세트를 허탈하게 바라보며 웃는 꼴이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으니.
사람이 저런 상태일 때 건들면 좆된다.
특히 저 녀석은 뭔가 꼬운 게 생기면 이번에는 식용 알코올이 아니라 아예 알코올램프를 따서 먹일지도 모른다.
……무섭구만.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초보자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진짜 초급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고, ‘중급’ 마력 물약이나 회복제, 탈모치료제 같은 것들을 연성했다.
[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
‘확실히 현자의 돌이 다른 것보다 더럽게 어려웠었나 본데…….’
마법의 중고등학교 비커 세트를 꺼낸 이후로 신혜영은 단 한 번도 연성에 실패하지 않고, 연달아 실험에 성공했다.
“……하하.”
아마도 그녀는 자신감을 되찾고,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 그런 근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보글보글─!
그렇게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비커 바라보기를 10시간이 지나고,
나는 형형색색으로 끓어오르는 용액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이었다.
‘……재미없어.’
진지하게.
어쩌면 끔찍한 생각이지만, 이리엔과의 서류 업무보다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성 기뻐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지켜보기만 하는 건 너무 심심하다.
역시 현자의 돌이 아니면…….
그렇게 나는 다시 뜨거운 열망을 가슴 속에서 불태우다가 문득 옆의 노가다 동료 신혜영을 바라보았다.
“……헤헤.”
“…….”
그녀의 상태는 나보다 훨씬 안 좋아 보였다. 아침만 해도 말똥거렸던 눈은 어느새 초점이 흐려졌고, 입에서는 전혀 명랑하지 못한, 서글픈 웃음소리만이 흘러나왔다.
……나는 조용히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곧 퇴근 시간이니 조금만 루팡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자아 성찰을 해보았다.
‘사실은 나 적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닐까.’
왠지 출근 첫날부터 일하기 싫은 걸 보면 사실 나는 직장에 출근해선 안 되는 인재인 것이 아닐까.
새로운 사무실과 업무, 함께 일하는 동료까지 전부 얻었는데 의욕이 안 난다.
결국 똑같은 노가다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현자의 돌을 못 만들어서 그런 것인지.
‘그냥 이리엔 죽이고 싶다…….’
찌리리릭─!
……그런 훌륭한 생각을 떠올리니 우중충하던 머리가 순식간에 맑아진다.
나무늘보에 빙의해 있던 뇌 속의 뉴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나는 벌떡 일어나 외치는 것이다.
“유레카아아아아!!!”
“……헤?”
떠올렸다.
강철은 모르겠고, 현자의 돌을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가 되는 방법이 떠올랐다.
아주 기발한 생각이.
* * *
“다녀왔습니다!”
나는 한층 말끔해진 기분으로 귀가했다. 아니지, 어쩌면 귀가를 했기 때문에 기분이 말끔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기분이 좋았고, 파김치가 되어 늘어질 정도로 기운이 없지도 않았기에…….
“음?”
……나는 곧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왠지 불길하게 홀로 조명이 켜져 있는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굉장히 심각한 분위기로 소파에 앉아 깍지를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한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얘는 또 왜 이런다니…….
“……뭐시여. 무슨 일이 있는 게냐.”
“…….”
스르르륵─ 어느새 동거 6일 차인 소꿉친구 씨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얼굴은 여태껏 살면서 봤던 모든 광경 중에 가장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한나는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서 실소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애(??).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단체로 미치는 날인가. 아니면, 많이 아픈 날인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월요일…….
이것은 결코 좋지 못한 날이다.
* * *
깜빡─!
깜빡깜빡─!
샤오팡은 갑자기 몰려오는 뻐근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새 그녀는 수십 시간을 넘어 수백 시간째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쉽지 않네.”
그녀는 중얼거리고서 보석같이 영롱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과제를 직면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그래서 샤오팡은 이를 악물고서 다시 녹색 보주에 마력을 쏟아냈다.
눈이 빠질 것 같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에 탈력감이 그득했지만.
어떻게든 『초월』이란 특성을 가진 유물, ‘영옥’을 지배해 제약을 풀어내야 했다.
‘한시라도 서둘러야 해…….’
슬슬 그 남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곧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겠지. 그렇게 되고 나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어쩌면 내가 왜 이렇게 애를 쓰고 있었나 이유조차 잊어버리겠지.
──그야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니까!
“……바보 멍청이.”
샤오팡은 그 바보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되찾기 위해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
그녀에겐 멍하니 자빠진 채 눈물을 훌쩍거릴 시간이 없었다…….
샤오팡은 오직 한 가지 염원만을 바라보고 이루기 위해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오늘도 그녀의 밤은 깊어져 갔다.
내일도 마찬가지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