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사랑
* * *
재난이 지나가고, 그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기 위해 죽은 자를 매장하고 마을을 재건한다.
드드드드─!
콰과가강─!
인부들은 자재들을 들어 옮기고, 마법사들은 하늘을 떠돌아다니며 그들을 보조한다.
그렇게 무너진 성문과 성벽을 첩첩이 쌓고, 파헤쳐진 지반을 평평히 다지며, 하늘을 크게 가로지르는 흉터를 말끔히 메꾼다.
초인적인 이들이 공사를 진행하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속도로 순식간에 복원되어간다.
그 덕분에 요새 스키드블라드니르는 이따금 굉음이 울려퍼질 뿐, 언뜻 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법 멀쩡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 정도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왔고,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검성(??) 마르코는 온 힘을 다해 망치를 내리쳤다.
대지 깊숙이 말뚝을 박아 넣었다.
자신이 어째서 검이 아닌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지 강한 의문을 느꼈지만, 그래도 착실히 말뚝을 땅에 박아넣었다.
그렇게 마르코가 요새의 성벽을 빙 둘러가며 대지에 박아넣은 말뚝이 총 72개. 그것들은 곧 각각이 빛을 발하고, 서로 공명하여, 선을 잇고는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든다.
술식 전개(Procedure expansion).
여의도보다 넓은 면적의 요새를 뒤덮는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쨍그랑──!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빛무리. 마르코는 넋이 빠진 얼굴로 반나절 동안 개고생한 결과물을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읊조렸다.
“시발.”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분한 마음에 이를 박박 갈다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무언가를 열심히 써재끼던 동료한테 물었다.
“어때? 성과는 좀 있나?”
“…….”
무슨 의미라도 찾으려는 절박한 물음.
그러나 샤오팡 패밀리의 특급 결계사 드와이스는 침중한 기색으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마르코는 땀방울이 물거품이 되는 소리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시바알…….”
어느덧 ‘유한나’라는 재앙이 지나간 지 보름. 마찬가지로 샤오팡 패밀리가 스키드블라드니르에 봉인된 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아직도 그들은 탈출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고 있었지만, 결과가 영 신통치 못했다. 이번엔 요새를 대규모 술식을 이용해 통째로 전이시키고자 했지만, 역시 처참히 실패해버렸다.
이대로라면 일 년도 더 걸릴 듯싶었다.
“시발, 그냥 전투직이면, 전투만 하지. 무슨 결계사야? 결계술까지 이렇게 완벽해…….”
“……미안, 보름 줬는데 실패함. 요새 드러내면 부서짐. 가망 없음.”
“아니,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나. 다 같이 갇혀 있는 신세인데.”
마르코는 나름 연장자로서 풀죽은 동료를 위로했다. 사실 지금 상황이 그렇게 긴박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들이 연명하기 위해 유한나와 맺은 계약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유한나와 계약을 맺는 이 자리의 모든 인원은 2022년 1월 1일이 될 때까지 최상급 유물 ‘스키드블라드니르’에서 나가지 못한다.
※다만 지구를 제외하고, 다른 세계로의 이동은 허락한다.
다른 조건 없이 오직 지구로 이동하는 것만을 막는 제약. 그렇기에 더욱 파고들 틈이 존재하지 않았고, 파훼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 개고생을 하고 있었다.
‘……뭐, 샤오팡은 따로 다른 내용의 계약을 맺는 것 같았지만.’
그 계약의 내용이 문제인 걸까.
솔직히 마르코로서는 이대로 여유롭게 정비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굳이 지구에 내려갈 만큼 요새의 물자와 인력과 자금은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샤오팡은 결계 쪽을 전력을 쏟아달라고 부탁하고, 요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조직의 리더로서 본분을 다해야 한다면서 요새를 주기적으로 돌고는 했었는데 하루 종일 연구실에 처박혀 있기만 하고…….
“걱정이구만.”
마르코는 내성 쪽의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쩝, 안타깝게 혀를 차고는 이번엔 마법의 펜치를 쥐고서 아침부터 줄곧 박아놓았던 말뚝을 뽑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그렇게 심야까지 계속 일했다.
* * *
무한(無?)한 것은 없다.
대마법사에 속하는 샤오팡은 분명 막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쉬지 않고 쏟아붓다 보면 언젠가는 마력이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유물을 길들이는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력이 회복되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따로 계속해나갔다.
“……이게 아닌가?”
샤오팡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다시 사각사각 머릿속에 떠오르는 술식의 내용을 양피지에 정리했다.
제약과 더불어 요새 전체에는 봉인의 술식이 걸려 있었다. 구성원 모두에게 걸린 마력의 계약과 동기화된 이 무슨 악랄한 결계.
나중에 영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이것을 파훼하려면 결국 술식을 동원해야 했고, 그랬기에 그녀는 마력이 없을 때도 쉬지 않고 봉인과 결계술 연구를 계속했다.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연구에 몰두했을까.
주륵─. 인중을 타고 무언가 흘러내렸다.
샤오팡은 그것을 닦아냈다.
붉었다.
“……어?”
언젠가는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 * *
……언제였더라.
사실 잘 모르겠다.
별생각 없이 주워와 놓고는 아무런 전조 없이 정이 들어버렸다.
혹시 나한테 돈을 듬뿍 퍼줘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100배는 많긴 하다.
으음,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속물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야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니까!
세상에서 가장 해맑게 웃으며 내게 친절히 손을 내미는 그 남자의 모습.
어째서인지 그를 보며 무언가 한참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실제로도 지금 나는 이상한 강박과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하하, 나 역으로 세뇌당했나……?
그렇게 사고를 이어가던 샤오팡은 문득 서러워지는 마음에 내뱉고 말았다.
“……야, 네가 베프하자고 했잖아.”
내가 먼저 동료 하자고 말했지만, 친하게 지내자고는 네가 먼저 말했잖아. 그런데 너는 어딜 놀러 가서 이렇게 내팽개쳐놓는 거야.
“……다 바보 같아.”
샤오팡은 울먹이며 퉁퉁 부은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었다.
그녀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시시각각 그녀를 조여오는 망각의 저주는 너무나도 독했고, 이진우를 만나러 가기 전에 그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울 것이었다.
이대로면 만나지 못한다.
저주가 완전히 숨통을 조이면 자신이 무얼 애쓰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겠지. 지금처럼 진탕된 몸을 요양한답시고 계속 침대에 누워 있으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었다.
샤오팡은 멍하니 고찰하기 시작했다.
초인인 자신이 이토록 몸이 망가질 정도로 매달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자신이 그토록 바보 같은 이진우를 만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던 걸까.
그리고, 깨달았다.
어쩌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은 ‘베프’의 마음이나 우정 따위가 아니라…….
연심(?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