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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4화 (44/87)

〈 44화 〉 만약 내가 아니게 된다면

* * *

─궁주! 경축드립니다! 마력 재능이…

빠져든다.

─어째서 무인이 아니라 주술쟁이인 것이냐.

진작 벗어난 새장의 기억을 떠올린다.

“잡것.”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가슴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린다.

주변이 수군거린다.

귀가 먹먹해진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속이 울렁거린다.

샤오팡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오직 자신의 아버지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냉막한 얼굴.

경멸의 시선.

왕의 자리에 걸맞은 패도적인 기세.

오늘따라 차가운 모습.

샤오팡은 경황이 없는 중에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저의를 파악하려 애썼다.

무슨 의도의 시험이시지?

아버지께선 어떤 가르침을 내려주시려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어째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나를 위한…,

……사실 샤오팡은 알았다.

아버지의 말이 절대 자신을 위함이 아님을.

고작 농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자신을 향한 증오가 몸서리치게 느껴졌기에.

그 이유 또한 진작 알고 있었다.

샤오팡이 속한 무신궁은 오직 무(?)를 위해 살아가는 무인만의 낙원.

마법이란 사술(??)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향한 혐오가 만연한 장소에서도 그녀는 어떻게든 자라날 수 있었다.

샤오팡의 아버지는 무인의 하늘과도 같은 궁주(??)였고, 그녀 자신은 그 하늘의 자식인 공주였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욕할 것인가.

이따금 멀리서 좋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 누구도 면전에서는 무시와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괘념치 않았다.

오직 아버지만이 계속 담담하게나마 바라봐준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하늘은 오늘 그녀를 잡것이라 공인했다.

더는 공주 취급을 받지 못하리라.

편히 지내지 못하리라.

하지만, 샤오팡에게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고개를 돌린다.

뒤돌아선다.

영원히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로 자리를 떠난다.

샤오팡은 힘이 풀려 스러지면서도 제 아비의 등을 애타게 지켜보았다.

그래도 돌아보지 않는다.

언제나 그녀를 지탱해주었던……,

저 드높은 하늘이 더는 자신의 버팀목으로서 존재해주지 않는 것이다.

샤오팡이 10살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

샤오팡은 이전보다 확연히 초라해진 별궁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름 빠르게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마음이 좋은 것은 아니라 영롱하게 빛나는 밤하늘만 지켜보았다.

파랗다─.

“내 머리처럼.”

……아니지, 새까만 건가?

문득 드는 의문에 샤오팡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피식 웃었다.

참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렇게 은은한 미소를 띄웠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 금세 울적한 얼굴로 돌아와 오직 하늘만 바라보았다.

……언제나 하늘과도 같았던 아버지는 그녀의 새장이 되어 돌아왔다.

여전히 누구도 궁주의 친자인 그녀를 면전에서 막대하거나 매도하진 않았지만, 신세가 달라진 것은 분명했다.

“……에휴.”

샤오팡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차가운 방안은 익숙해졌어도,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것이었고, 어릴 적부터 함께 했던 수다쟁이 시녀들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그녀를 감시하는 인원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참 사는 게 힘들구나─.

그래서 샤오팡은 답답한 마음에 매일 밤마다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공주가 매일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보고하라지. 속터져 뒤지겠는데 바라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녀는 볼을 부풀렸다가 다시 괴로운 마음에 창가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도대체 죽일 것도 아니고, 풀어줄 것도 아니면 어째서 이렇게 자신을 괴롭힌단 말인가.

샤오팡은 불현듯 중얼거렸다.

“아, 날고 싶다.”

그저 한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소망. 별 기대하지 않은 한 마디.

[ 각성했습니다. ]

기회가 찾아왔다.

* * *

새장에서 풀려난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자 했고, 그래서 날았다.

동료를 만났고, 함께 날았다.

그들을 위한 둥지를 만들었다. 그 누구도 자신과 동료들을 건드릴 수 없도록, 감히 가두지 못하도록 힘을 키웠다.

새로운 하늘이 되고자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늘이…….

──살려줄게. 대신 너는 영원히 이진우를 만나지 못하고, 반드시 잊어야만 해.

그러나 다시 묶였다.

샤오팡에게도 분명 처음에는 요새에 갇혀 일 년을 보내야 한다는 굴욕감이 존재했다.

그러나 크지 않았다.

어느새 그따위 것은 상관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진우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도 아파왔다.

어쩌면 이 또한 그녀가 평생토록 증오하고 기피했던 속박.

그러나 상관없었다.

“보고 싶다.”

샤오팡은 잠에서 깨어나 문득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잠시 들려 했다가 그냥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온몸이 불덩이가 된 것처럼 뜨겁고, 머리는 지끈거리며, 기운이 전혀 없다.

이런 와중에 어떻게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책상에 앉아 무리를 했는지…….

그냥 침대에 누워 쉴 걸 그랬나.

하지만, 이젠 의자에서 일어날 약간의 기운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보고 싶다.”

이진우와 제대로 친하게 지내지도, 아직 사랑을 속삭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것은 너무도 싫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샤오팡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주르륵 흘러내렸다.

요즘 거의 울보가 되었다.

너무 눈물이 헤퍼진 게 아닌가…….

샤오팡은 자신의 신세에 허탈한 웃음을 흘리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눈을 떠보니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면 그를 만나러 갈 수 있었을 텐데…….

“…….”

그녀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돌연 안간힘을 쓰면서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보석처럼 영롱한 푸른색 머리칼이 흔들렸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샤오팡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마음대로 꾸몄고, 또 연구를 위해 조성해놓은 예전처럼 차갑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자신만의 공간.

게다가 저 문밖으로 나가면 그녀가 세운 성의 모습이 보일 터였으며,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샤오팡은 고개를 떨구었다.

눈을 감았다.

입술을 짓씹었다.

──나갈 방법을 찾았다.

* * *

유한나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던전에 입장할 시간을 기다렸다.

주변에는 함께 들어갈 무신궁의 인원들이 그득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불쾌한 기분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 달은 같이 먹고 자고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겨우 일주일 밖에?’

이진우와 예비부부처럼 보낼 행복한 나날들을 꿈꾸고 있었는데…….

전부 이 시발람들 때문이다.

유한나는 이를 갈았다.

그놈의 중국 여우가 납치를 안 했다면, 자신이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중국 애들을 죽일 필요도 없었고, 그에 대한 후속 대처로 던전에 들어가자며 불릴 필요도 없었을 테지.

……나, 전생에 대륙이랑 원수졌었나.

유한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했다.

얘네들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지명해서 던전에 들어가자고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 나를 묻으려는 건가?

“……아.”

문득 드는 생각에 유한나는 침음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무섭도록 자신을 노려보는 장정만 수백 명.

아아…….

그녀는 속으로 바랐다.

‘……제발 좀 덤벼라. 빨리 죽이고 돌아가게.’

아주 간절히 바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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