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현자의 시련
* * *
직장은 씨발이다.
아니, 사회생활의 시발점이라고.
“쉽지 않군.”
나는 언제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비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온종일 실험도구만 가만히 바라보는, 확실히 편하다면 편한 일과.
함께 멍하니 있는 착한 동료도 있으니 나름 즐거운 나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건 아니야.”
그래, 이건 아니다…….
샤오팡 컴퍼니의 자산 관리부 팀장으로서 재직 경력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무미건조한 직장생활을 도저히 버텨낼 수 없다.
지금 내겐 그럭저럭 어려우면서 적당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업무가 필요해……!
‘가능하면 팀장으로 직위를 올려줘도 좋고.’
어느새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 벌써 이직이 마렵다. 혹시 길드 가는 거……, 아직도 안 늦었으려나?
……그러한 번뇌도 오늘까지.
인류는 언제나 방법을 찾아냈고, 나 역시 직장생활의 해답을 찾아냈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들면 될지니.
“아직 한 발 남았다.”
나는 한 발이라기에는 산처럼 쌓인 서류철을 들고 연구실에 입장하면서 당당히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신혜영은 입을 헤 벌리더니 금세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그건 뭐예요?”
“현자의 돌을 만들 방법.”
“……아직 포기 안 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 자신 없는데요.”
그렇게 말하고는 우물쭈물 손가락을 비비적댄다. 그야말로 고된 직장생활에 자신감 잃은 어린양의 모습.
그리고, 내 수중에는 그녀를 비커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할 수단이 있었다.
“……에, 이거 뭐야. 현자의 서? 던전 탐험?”
내가 준비한 계획서를 읽어가는 신혜영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간다. 그를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자의 서.
정확한 기능은 모른다.
황급 던전, 「현자의 시련」의 공략 보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 던전이 아직 공략되지 않아 이름을 제외한, 어떤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왠지 신혜영한테 현자의 서라는 걸 주면 현자의 돌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아.’
똑같이 ‘현자’라는 이름이 달려 있는데 쥐꼬리만큼이라도 도움은 되겠지.
철저한 직감…….
아니, 철저한 직관(??)!
신혜영이 현자의 돌을 못 만드는 실력이라면 아예 현자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각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공략 실패 횟수가 무려 17회나 되는 곳을 저희끼리 공략하자고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니?”
“저는 아닌데요…….”
“그렇다면, 그런 너를 설득하기 위한 다음 서류를 준비해봤어.”
나는 수많은 서류철 중의 하나를 뽑아 가늘게 눈을 뜬 마녀에게 건넸다.
신혜영을 한숨을 푹 쉬더니 그것을 받아들고는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표정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뭔가 준비가 엄청 철저하네요. 긴급 탈출석에 방어 아티팩트에, 진지 구축 세트에…, 지난 주에 계속 없어졌던 게 이거 준비하려고 그런 거였어요?”
나는 바보가 아니다.
아마도.
적어도 마탑에 들이박은 던전 탐험 보고서를 읽고서 충분히 가능하단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리엔과 일하면서 증오와 분노를 많이 느꼈지만, 동시에 던전과 아이템에 관한 정보도 많이 터득할 수 있었다. 서류를 간략하고 명료하게 정리하는 법은 덤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양분 삼아 내가 철저히 준비한 이번 계획!
설령 공략에 실패할지라도 죽을 위험은 없고, 가능성도 충분하다!
신혜영도 그것을 직감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적어도 위험하진 않겠네요. 의외로 준비도 제법 철저하고…….”
“……의외로?”
“흠흠, 그러면 언제 던전 갈까요? 가기 전에 원정 계획서도 제출해야…….”
“아, 서류는 내가 미리 제출해놨어.”
“……네?”
“그리고, 우리 원정 날짜는……,”
신혜영은 눈을 크게 뜨고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지했다.
“내일이야.”
분명 환상적인 원정이 되리라.
* * *
황급 던전, 「현자의 시련」
황급 이하의 능력자가 최대 5인까지 입장이 가능한 던전으로 특이점이라면, 원정을 할 때마다 내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생환자의 보고를 들어보니 던전에 입장하는 인원의 지식과 사상을 엮어 새로운 환경을 형성하는 것 같았다고.
그래도 공략 조건은 언제나 동일하게 ‘던전에서 15일간의 생존’이었다.
“그런데 그 뭐냐, 6월 10일에 이리엔 씨랑 대련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대련이 아니라 데스 매치.”
신혜영은 제법 디자인이 예쁜 마법사 정복과 몸에 걸친 아티팩트를 정비하며 물었고, 나는 혹시 집에 빼놓고 온 물건은 없나 아공간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오늘 날짜가 5월 25일 화요일.
우리가 무사히 던전을 공략한다면, 6월 9일 수요일에 돌아올 터였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이 대망의 데스매치 날이었고.
‘확실히 일정이 촉박하긴 하군.’
그러나 괜찮다.
“인생은 실전이야.”
보름간 던전을 공략하며 날뜩해진 살육 본능으로 이리엔을 참살한다. 이번 던전 원정은 무엇보다 실전이 부족한 나를 충족시켜줄 완벽한 기회.
“또, 완벽한 계획이로군.”
“혼잣말 그만하고 이제 슬슬 입장하죠.”
“넵, 알겠습니닷.”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우리는 표정을 굳히고 던전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황금색으로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문으로.
내가 워낙 아싸라서 대학교 엠티 때도 못 가봤던 남양주에 자리한, 인식저해결계가 펼쳐진 던전으로 들어간다!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세상 장렬하게 외치며 문과 맞닿았다.
물컹─!
그 순간 옛날 초등학교 시절 문방구점에서 500원을 주고 샀던 슬라임의 감촉을 느끼고, 의식이 흐려졌다.
──잠시간의 부유감.
[ 대상을 탐색합니다. ]
[ 현자의 시련을 새로이 구축합니다. ]
[ ── 완료 ── ]
……나는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질끈 감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푸르른 하늘…….
새하얀 석재로 만들어진 가옥들…….
끼룩끼룩─갈매기 소리가 들려오고, 짠 내가 코끝을 훑고 지나간다.
한창 부두에 들어오는 선박 위로 선원들이 닻을 내리고, 화물들을 옮기는 모습이 보인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온갖 연령대의 사람들이 새하얀 도시의 거리를 거닌다.
복식과 피부색은 제각각 달랐지만, 그들은 틀림없는 인간의 생김새를 띄고 있다.
의외로 말끔하고, 정상적인 던전의 모습…….
“이상하네요.”
“그러네. 존나게 이상하네.”
아무리 던전의 형태와 종류가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말끔하고 평화로운 항구 도시가 그 환경이고,
고작 황급 던전에 이런 지성체들이…, 그것도 인간이 도시 단위로 나온다니.
비록 던전에 처음 들어오는 나였지만, 참 이상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곧바로 착용해놨던 아티팩트를 살폈다.
그러나 환상 및 세뇌 감지 아티팩트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던전의 몬스터를 감지하는 레이더 또한 반응이 없다.
신혜영 또한 붉은 눈을 밝히며 도시 곳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입술을 짓씹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이게 진짜 던전이라고?’
이런 도시에서 지내는 것이라면 15일 버티는 건 너무 쉽지 않나?
온갖 복마전을 상상해놨던 우리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파라다이스.
분명 무언가 함정이 있을 터다…….
그렇게 신혜영과 내가 혼란에 빠져 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그때, 돌연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다가왔다. 이전에 유한나가 입었던 복식과 유사한 느낌.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하여 전투태세를 갖췄다.
여인은 그 모습을 보고, 곧바로 멈춰서더니 누가 보더라도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코인을 믿으십니까?”
“……왓?”
나는 귀를 의심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