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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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급 던전 : 현자의 시련 >
※ 현자의 힘을 얻고자 하는 도전자들의 지혜와 의지, 직관을 시험한다.
※ 공략조건 : 360시간 생존
※ 악명이 100을 넘어가면 시련은 중단된다.
[ 보상 : 현자의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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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메랄드처럼 비취색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바닷가를 따라 달리며 청춘(?)을, 인생의 숨 가빠짐을 느끼는 것이었다.
“흐억, 흐어…….”
사실 숨넘어갈 듯 내쉬는 것은 신혜영뿐이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린 함께 청춘을 만끽했다.
아마도.
내가 자갈을 바닷가에 대여섯 번 던졌을 때쯤 허리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심호흡하던 신혜영이 돌연 고개를 들고서 대꾸했다.
“아니, 저희 도대체 왜 도망친 거예요!”
“원래 사이비랑은 말 한마디도 나누면 안 돼. 나 모태신앙이야.”
“아니, 그래도 굳이 달릴 필요가 있었어요?”
“왠지 빨리 자리를 안 피하면 뭔가 다 같이 달려들 것 같잖아.”
던전의 공략조건은 어디까지나 ‘15일간의 생존’. 그러나 우리가 떨어진 곳은 아무리 봐도 안전해 보이는 도시 안쪽이다.
그렇다면 도시에 재난 재해가 몰려오거나 몬스터가 쳐들어온다든지.
도시의 사람들이 전부 우리의 적이거나 밤낮 쉴 틈 없이 우리의 암살을 시도하는 암중의 세력이 있다든지.
어느 쪽이건 앞으로 개똥 같은 상황이 닥쳐올 것은 분명했다.
괜히 아티팩트를 온몸에 칭칭 둘러놨다고 객기 부리다가 한순간에 목숨이 날아갈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했다.
“굳이 괴물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달려들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신혜영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지,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의외로 정상적인 추론을 하시는군요.”
“…….”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래요? 흑급 던전 중에는 지성체가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는데 아예 시가지에 떨어지는 건 확실히 드문…, 적어도 저는 처음 들어보거든요.”
그만큼 이상 사태라는 거죠. 마녀는 흐트러진 고깔모자를 반듯이 정리하며 덧붙였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서 대답을 기다린다.
나는 저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과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번 던전에 무언가 수수께끼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보름간의 험지 서바이벌을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궤가 다른 방식.
도시에 떨어진 만큼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상황을 살피는 것이 나을 테지.
무언가 이상한 점이 없는지…….
왠지 부자연스러운…….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코인밖에 없는데.”
사제복을 입고서 “코인을 믿으십니까?”라고 묻는 아주머니가 어느 세계에서건 정상일 리는 없었다.
아, 그러면 괜히 튄 건가.
나는 바보처럼 이마를 '탁' 쳤고, 신혜영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뭐, 뒤늦게라도 수사 방향이 정해진 게 어디냐고 생각하는 것이 심신에 이롭겠지.
아무튼, 우리의 결론은 이러했다.
──코인 사이비 아주머니가 수상하다…….
*
항구에서 시가지 쪽으로 이동했다.
그편이 도시의 분위기를 살피기 좋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거리의 인파를 뚫고 가느라 사람들에게 포위당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우릴 덮칠 기색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관심 없는 태도로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군것질거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좌판을 벌여 골동품을 파는 모습이 꽤 생동감 넘쳤다.
던전에 의해 창조된 NPC 같은 것이 아닌, 우리는 진짜 사람이라는 듯.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라는 듯한 모습.
‘그래도 휴대전화 들고 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걸 보니 일단 현대 배경은 아닌가? 중세거나 아예 판타지?’
그렇게 생각하며 대로에서 한적한 시장길로 빠져나오는데 신혜영이 내 허리를 쿡쿡 찌르더니 고개를 가까이하고서 속삭였다.
“눈치챘어요?”
“뭐를. 현대가 배경은 아니라는 거?”
“아뇨. 그거 말고요. 그…, 사람들 목 쪽을 유심히 봐봐요.”
나는 사뭇 심각한 그녀의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을 은밀히 곁눈질했다.
그리고, 바보같이 그제야 깨달았다.
거리의 행인 중 반절 이상이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금화를 줄로 엮어 만든…….
“아니, 어째서 불안한 것이지?”
모처럼 항구 도시니 상업이 발달했고, 동전이나 금화를 목걸이처럼 하고 다니는 풍습이 충분히 있을 만도 하거늘…….
──코인을 믿으십니까?
자꾸만 아까 들었던 사이비 아주머니의 차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흐음, 왠지 내 머릿속에 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사이비 코인교에 심취했으리라는 시나리오가 떠올랐어.”
“우연이네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분명 보고서에 따르면 진입하는 인원의 지식과 사상에 따라 환경이 바뀐다고 했는데 그러면 이거 내 탓이냐?”
“백퍼센트입니다.”
“으음…….”
뭔가 머릿속에 코인이나 주식밖에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굉장히 서글퍼지는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신혜영에게 물었다.
“그러면 직진과 유턴, 둘 중에 하나 골라봐.”
“……갑자기요?”
“빨리, 하나만.”
“으음, 그러면 직진으로 할래요.”
“음, 그렇구나.”
나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신혜영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당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나는 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싱긋 웃었다. 그러자 신혜영은 더욱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아주 구깃구깃해졌다.
* * *
번뜩─!
관에 죽은 듯 누워 있던 노인은 뚜껑을 발로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의 무릎 꿇은 사제들에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신탁이 내려왔다──!!!”
“오오오오오오!!!”
“정녕 신탁이! 신탁이이이이!!!!”
“예하!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신탁이 내려온 것입니까아아아아!!!”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신전.
사제들의 환호성을 음미하던 무한코인교의 교황, 마르스 가르커니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서 외쳤다.
“앞으로 단 14일만 지나면, 그토록 바랐던 우리의 신께서 강림하신다───!!!”
“오오오오오오!!! 마이 지져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코인이! 코인이 복사되는 영광의 때가 도래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신께서는 영광스럽게도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더 알려주셨다───!!!”
오오오오오오오, 끝없이 이어지는 환호성.
교황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오늘 우리의 형제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형제의 이름은──
“───진우야아아아아!!!!”
……그 시간부로 항구 도시 ‘모지’에는 교황의 형제를 찾으라는 포고문이 뿌려졌다. 현상금은 ‘모지 코인’ 1만 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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