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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7화 (47/87)

〈 47화 〉 직진 혹은 유턴

* * *

인간관계가 단계별로, 차근차근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때도 존재하지만, 때로는 한순간에 시공을 초월해 끝자락에 닿는 예 또한 존재한다.

군청색 창문이 밝아오는 여명으로 인하여 점차 청백색으로 변하고 있을 때쯤,

스르륵─.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신혜영은 반사적으로 여관방 내부의 방비를 살폈다.

창문과 출입문, 천장과 바닥, 사방의 벽에 부착해놓은 트랩, 공간 침입 억제 아티팩트, 혹시 모를 폭격에 대비한 방어 아티팩트, 독연에 대비한 정화 아티팩트 등등.

모든 것이 별문제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건너편 침대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눈빛으로 태평하게 숙면을 취하는 이진우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금발 적안의 마녀는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밤 동안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전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나이는 직진이다.”

한 멍청이가 엄숙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이 사람도 무언가 생각이 있으리라고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이진우가 좌판을 펼쳐놓고 골동품을 파는 상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을 때도 어련히 잘하리라고 믿었었다.

“혹시 코인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가 해맑게 웃으며 골동품상에게 그런 말을 하였을 때, 신혜영은 기겁했다.

‘미친 놈아!!!’

그녀도 언젠가 탐문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세상에, 저런 멘트로 서두를 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신혜영은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모르는 척을 할까.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그를 끄집어낼까. 찰나의 고민을 했다.

그러나 이진우가 금세 골동품상과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닌가. 뭐지……? 그녀는 상의 없이 멋대로 튀어 나간 그에게 살짝 새초롬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대화하고 왔어요?”

“으음, 크게 두 가지를 듣고 왔어. 일단 ‘무한코인교’라는 종교가 있다는 것과.”

“그리고요?”

“자기는 코인 안 산대.”

“…….”

이진우는 멋쩍게 웃으며 정보 값을 대신해 골동품상에게 구매해온 밋밋한 색깔의 로브를 곧바로 옷 위에 둘러 입었다.

만약 험지에 떨어지면 은밀한 기동을 위해 입었던 가죽 경장과 덕지덕지 온몸에 붙여놨던 아티팩트들이 순식간에 가려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신혜영은 문득 자신의 복장을 한 번 훑었다.

수월한 마력 운용을 위해 나름 실용적으로 제작된 마녀 정복…….

비록 고깔모자에 오프숄더에, 제법 짧은 치마였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복식과 비교해 굉장히 많이 튀는 디자인이었다.

마녀는 뺨을 긁적였다. 그녀는 잠시간 고민했다가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로브를 쓸어내리는 이진우의 허리춤을 쿡쿡 찔렀다.

“……저기, 진우 씨?”

“응? 왜?”

“그, 저도…….”

“응응?”

아, 이렇게 도시에 떨어질 줄 알았으면 나도 여비 챙겨오는 건데…….

신혜영은 의아해하는 이진우의 눈을 슬쩍 피하고는 수줍게 대답했다.

“로브 사주세요…….”

솔직히 그녀는 방금까지도 마음속으로 질책했던 동료에게 금방 구걸하게 된 상황이 제법 쑥스러웠다.

그리고, 이진우는 뺨이 연분홍의 색으로 물든 신혜영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별안간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순진한 마녀의 귀에 음흉하게 속삭였다.

“그러면 로브 사주는 대신에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하는 거다?”

“……네에?!”

무, 무, 무슨 음흉한 짓을 하시려고! 신혜영은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얼굴을 아예 홍당무처럼 물들였다.

그리고……,

……그녀는 로브를 받는 조건으로 이진우를 따라다니며 함께 “코인을 믿으십니까?”를 수백 번 정도 되뇌어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 철판을 깔고서 모르는 이에게 무차별적으로 다가가 당당히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신혜영에게 있어 그것은 로브를 사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정도 더 쪽팔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심야가 다 되어서야 그녀는 지친 심신을 이끌고 여관 침대에 몸을 눕힐 수 있었다.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이진우와 같은 방을 쓴다는 사실은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런 쑥스러운 감정이 철저하게 무뎌지는 날이었으므로.

다만 그녀는 서서히 수마에 빠져들면서 생애 가장 굳센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 어제부로 정체성이 금발 적안 사이비가 되어버린 신혜영은 차게 식은 눈으로 이진우를 내려다보며 재차 다짐했다.

“……오늘은 절대 안해.”

*

“……라면서 개별행동을 하게 되긴 했는데.”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를 쟁취하더라도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생겨난다.

그 자유가 언제라도 사라질까 봐.

혹은 자유를 잃는 것 이상의 불안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조사를 빠르게 진행하자! 라고 강력하게 주장해 이진우와 헤어져 탐문하기 시작한 신혜영은 문득 두려운 상상을 하고 말았다.

──지금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무슨 바보 같은 짓거리가 일어나고 있을까…….

“……어, 왠지 불길한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그녀는 갑작스레 찾아온 심마(心?)를 다잡으려 노력했다.

금발 적안의 사이비 마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마인드컨트롤을 시도했다.

그래, 이진우 씨…….

그래도 의외로 똑똑한 사람이니까…….

“으음.”

에이, 나보다 어른인데 어련히 알아서…….

“으으으음…….”

아니, 바보야! 어제 그 고생을 해놓고 바로 돌아갈 걸 고민한다고?!

“……하아.”

신혜영은 손으로 눈앞을 가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했다.

무슨 유치원생 꼬마를 동물원에서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

결국, 그녀는 기나긴 내적갈등 끝에 이진우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설마…….’

벌써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겠지.

그렇게 믿으며…….

*

“나 좀 천재인 듯.”

나는 원래도 알았지만, 새삼 다시 깨달은 사실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새로 알아낸 사실들을 수첩에 필기했다.

어제 이뤄졌던 수사의 연장선.

항구도시의 이름이 ‘모지’라는 것과 이 도시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단위가 ‘금화’와 ‘모지 코인’뿐이라는 사실.

이곳은 도시 동편의 상업 지구이고, 도시 서편 행정 지구에 ‘무한코인교’의 신전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덕분에 도시에 금이 넘쳐나 동화와 은화가 아예 사장되었다는 사실까지.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길래 금화밖에 없다는 거지?”

어쩐지 도시 사람들이 전부 싱글벙글 웃는 상이더라.

다 돈이 많아서 그랬구먼.

이렇게 말하면서 나도 어제 엉겁결에 금화로 싸구려 로브를 사고 그러긴 했는데…….

[ 소지금 : 31, 560, 743, 938, 000 Gold ]

“뭐, 큰 상관은 없겠지.”

나는 속이 저절로 든든해지는 계좌를 확인하고서 다음 전도자를 찾아 길을 나섰다.

“……어라?”

그리고, 어째서인지 힐끗힐끗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불현듯 싸한 기분을 느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벽이 있었고, 또 수십 가지 벽보가 붙어 있었는데…….

개중 대부분이 나와 똑 닮은 몽타주였다…….

게다가 어제오늘 시장조사를 통해 알아낸 바로 한화로 500억이나 되는 현상금이 내 목에 걸려 있는 상태.

“……오우, 쉐엣.”

오직 직진만을 하겠다며, 다짐한 지 단 작심일일(?心一?).

그 굳센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서둘러 유턴을 시도했……,

“저기 있다아아아아아────!!!”

그 순간 좆됐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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