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9화 (49/87)

〈 49화 〉 무언가 이상하다

* * *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머리가 엉망이다.

헝클어진다.

메스껍다.

분명 꿈일 거라고 믿었다.

이게 현실일 리가.

“개의 먹이로 주어라.”

그 말에 마녀는 번뜩 정신 차리고는 근위병에게 질질 끌려가는 시체를 보았다.

입술을 짓씹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팠다.

현실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동료의 시체를 짐승 먹이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신혜영은 품속의 스크롤을 꺼내 단숨에 찢어발겼다. 한순간에 전능감이 몸에 깃들었다. 그를 기반으로 마력을 운용한다.

회로를 가열시킨다.

뇌가 터질 것 같더라도, 눈의 실핏줄이 끊어지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순식간에 끓어 올린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곳에 있는 민간인…,

아니, 던전의 몬스터를 모두 죽여서라도 이진우의 시체를 사수한다.

그래도 신혜영은 은연중에 사방에 펼쳐질 진을 전방에 중첩해 출력을 집중시켰다.

주문을 읊조렸다.

본래 그녀의 수준으로는 허락되지 않을 마법.

“마그마(Magma).”

우드드득─.

공간에 억지로 벌려진 틈으로 붉은 파도가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화려한 법복 차림의 노인을 향해 쏘아졌다.

노인은 손을 휘둘러 막아보려는 듯했지만, 그대로 뒤덮인다.

그 후로 억제할 수 없는 파도는 주변의 하얀 대지와 민간인들을 전부 휩쓴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대로 녹아내렸다.

광장은 화마에 휩싸였다.

신혜영에겐 그들을 신경 쓸 의리와 의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 또한 없었다.

플라이(Fly).

마녀는 공중을 부유하더니 곧 쏜살같이 날아갔다.

불지옥에 혼비백산하여 누구 하나 그녀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신혜영은 안정적으로 이진우의 시체에 닿을 수 있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했잖아요……. 현자의 돌 같이 만들자고 그랬잖아요…….”

그 바보 같던 이진우가 정말 이렇게 죽어버릴 줄이야.

너무 바보 같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살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마법의 여파가 시체를 휩쓸지 않도록 제어한 터라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제외하고는 상처 하나 없었다.

신혜영은 그 사실에 약간의 위안을 얻고는 전이석을 사용해 자리를 피하려 했다.

배리어(Barrier).

그 순간 아티팩트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그녀는 등 뒤에서 암습이 이뤄졌음을 직감했다. 순식간에 배리어가 부숴진다. 그 틈을 빌어 몸을 피했다. 동시에 전이석을 발동했다.

그리고, 신혜영은 자신에게 창을 내찌르는 노인의 푸른 안광과 마주했다.

진우 씨의……,

나의….

원수(??)……!

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다짐했다.

“반드시 죽여……!”

휘릭─.

창이 공중을 꿰뚫었다.

무한코인교의 교황, 마르스 가르커니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것은 단순한 속임수나 신이 일으키는 ‘기적’의 한 종류가 아니다.

“……마법(??).”

재차 나타났는가.

노인은 침중한 기색으로 곧바로 추격을 명하려다가 여전히 비명과 화마가 들끓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신은 그에 화답했다.

하늘에서 황금빛 휘광이 내려온다. 불타는 땅을 비춘다. 화마가 멎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살아남은 이들의 사라진 팔다리에서 새살이 돋아난다. 이미 녹아내린 이들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자 은총(??).

띠링─!

[ ‘모지 코인’ 오만 냥이 소모됩니다. ]

물론 대가는 지불해야 했다.

“근위병!”

“부르셨습니까! 성하!”

교황 마르스 가르커니카는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했다.

“근위대를 이끌고 형제를 찾아라! 분명 그라면 찬란한 황금빛을 내뿜을 수 있을 터다. 다시는 가짜에 현혹되지 말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모지 성(?) 기사단’에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마녀를 정화하라고 전해라!”

“예! 전달하겠습니다!”

근위병은 곧 교황의 명을 받들기 위해 바쁜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가르커니카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인지 근위대나 성기사나 전부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어서, 하루빨리 나의 형제를 만나야 마음이 편해지겠어.”

교황은 생각했다. 나의 단 하나뿐인 형제여. 그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 * *

첨벙첨벙.

한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물이 튀긴다.

나는 배수로의 물이 신발에 스며드는 감각을 느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찝찝해.’

하지만, 감내할 수 있다.

왜냐고?

나는 닌자가 돼야만 하니까!

[ 생존시간 21시간 23분 12초 ]

‘……뭐, 2시간은 더 남았나.’

나는 신혜영과 만나기로 약속한 24시간이 되기까지 제법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계속 닌자를 따라 배수로 지하 깊숙이 들어갔다.

그래, 어디까지나 조사를 위해 쫓는 것이다. 닌자에 대한 로망도 분명 있지만! 소중한 동료를 버리고 새로운 닌자의 낙원에 가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뭐, 혜영이는 어련히 잘 할 테니까.’

그래! 그렇게 동료를 믿고서 악랄한 닌자의 세상에 발을 들이미는 거야! 무슨 레지스탕스의 신입 의식을 치른다고 하던데 아주 샅샅이 즐겨주겠어!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닌자를 따라갔다.

그리고, 웬 파이프가 가득한, 으슥하고, 축축한 공간에 도착했다. 닌자 선배는 찡긋, 윙크를 하면서 말했다.

“자, 전부 너랑 같은 신입이니까 기다리는 동안 잘 지내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떠나갔다.

“……에엣?”

나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온통 흉터 가득한 험상궂은 인상에, 울퉁불퉁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살기를 풀풀 내뿜는 닌자 레지스탕스 동기생들.

어떻게 된 게 대기실에 있는 열댓 명이 전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야야, 뭘 꼬라봐. 불만 있냐?’

그래도 입사 동기인 만큼 잘 지내는 게 서로 좋긴 할 텐데.

나는 턱을 매만지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으음, 그런데 설마 우리끼리 싸우라고 내버려 두고 간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닌자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

·

·

“……젠자아아앙! 하루 만에 시드 50%가 날아가는 게 말이 되냐고!”

“자네도 이트코인에서 물렸나? 나도 한 번만 더 롱치려다가 그대로 뒤져버렸다니까?”

“시발, 너네 바보냐? 그나마 넣을 거면 안전한 모지 코인에 넣었어야지.”

“아니, 코인에 안전한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런 거 따질 거면 주식을 해야지요.”

나는 눈을 끔벅이면서 어느덧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 닌자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즐겁게 떠드는 모습이 사이가 좋아 보였다.

다만 대화 주제가 인술(人?)이나 가문의 원수가 아니라 코인으로 돈 잃은 이야기라는 것이 굉장한 흠이었다.

정확히는 내 닌자의 로망에 금이 갔다.

“……실화냐.”

게다가 마법사로 각성한 이후에 코인으로 돈 잃은 경험이 없었던 나는 구석에 가만히 처박혀 그들을 곁눈질하기만 했다. 전부 돈 잃은 이야기만 하는데 나 혼자 벌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나도 나름 눈치란 게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소외감을 느꼈다.

“……훌쩍.”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곧 의식 시간이 다가왔다.

끼익─. 선배 닌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나의 닌자 롤모델은 내게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힘차게 말했다.

“축하한다! 이제 우리는 의식을 하러 간다! 분명 익숙하지 않은 힘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겠지! 분명 죽는 사람도 나올 거야!”

그러나 그녀의 말에 겁먹는 닌자 동기들은 없었다.

나 역시도 그랬고.

그것을 확인한 닌자 선배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의식을 통해! 너희는 오늘부로 새로운 경지에 이를 거야! 그래, 오늘부로!”

어째서일까.

나는 그녀가 다음 할 말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활짝 웃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마법사가 된다!”

그래! 오늘부로 나는 닌자가 된……!

“……어?”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어라?”

무언가 이상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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