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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2화 (52/87)

〈 52화 〉 갈갈갈갈갈갈갈갈!!!

* * *

어디선가 충격과 공포의 탈주가 계속되고, 전쟁이 준비되고, 시시각각 종말이 다가오는 것과는 별개로 경기도 어느 산골 마을에 있는 마탑 부지는 나름 평화로운 분위기다.

그리고, 「지원본부」 사무실의 ‘세상에, 언제나 책상 앞에 머물러 있어!’라는 괴담의 인물 또한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붉은 장미의 색과 같은 머리칼에, 지적인 안경, 성숙한 외모와 뛰어난 지성! 마탑의 지원본부 총책임자 이리엔은 오늘도──

“시발.”

──일에 갈리고 있었다.

휘리리릭─. 「조작」 마법이 걸린 깃펜들이 현란하게 춤을 춘다.

사각사각─. 수많은 양피지에 유려한 필체의 문장과 서명들이 새겨진다.

푸석푸석─. 이리엔의 다크서클은 점차 짙어져만 간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피부는 언제 생기가 넘쳤었냐는 듯 무척 피폐한 상태였다.

어느덧 이리엔이 업무에 파묻혀 산 지, 동시에 퇴근을 못 한 지 두달.

그녀 또한 이렇게 오랫동안 퇴근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으나 대규모 원정에, 마탑 습격에 여러모로 겹쳐버렸다.

그동안 그녀가 업무에 몰두한 시간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먹고 잔 시간보다 훨씬, 수 배는 더 많았고…….

‘……뒤질 것 같아.’

이리엔은 과로사를 직감했다.

이 모든 건 마탑의 서류 업무가 그녀에게 몰려 있었기 때문에, 부서의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이른바 인력난(人力?).

이는 얼마 전, 서류 노예 하나가 탈주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적어도 한 달 동안 꿀빨았던 그녀가 체감하기로서는 그러했다.

그렇게 어떤 서류 작업 잘하던 미친놈을 머릿속에 떠올린 이리엔은 미간을 팍 구기고는 깃펜을 멈추었다.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의 기념비적인 첫 기립이었다.

그렇다면 지박령에 버금가는 그녀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 이리엔은 오랜 고심 끝에 결국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뛰쳐나가 연금부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지. 그래, 이건 말이 안 돼.’

이리엔은 얼굴을 찌푸린 채 생각했다. 뭐, 부서 이동은 그렇다고 치자. 연금부로 옮기고 싶으면 옮길 수도 있지.

그러다가 업무에 여유가 생기고, 심심해지면 서류 작업도 도와주러 오고! 어?! 막 그러는 게 한국인의 ‘정’ 아니겠어?

하지만……,

“시발. 마법사로 십 년 넘게 일한 나랑 2달 차 신입이랑 목숨 걸고 맞대결 펼치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서류 작업 능력을 제외하고, 경력이나 실적이나 능력이나 결코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우리 둘인데…….

‘그 와중에 원로회는 일리 있는 대결이라는 개소리나 해대고.’

실화냐?

설마 돈 처먹었나?

그렇게 그 말도 안 되는 데스매치 날짜가 6월 10일로 확정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 이리엔은 망할 대결이 신경 쓰여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녀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손쉽게 이겨도 본전.

그러나 혹시라도 지면 개쪽 중에 개쪽.

물론 그녀는 자신이 가볍게 이기리라고 자신했지만, 웬 미친년이 뒤에 있다는 것을 떠올린 이후로부터는 자꾸만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유한나’라는 사람은 조금 제멋대로인 성격이지만, 전력으로서는 최고(?高)이자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괴물이었다.

‘준 세계관 최강자가 빽으로 붙어 있는 거, 이거 반칙이야!’

갑자기 이리엔은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한 자신과는 달리 든든한 뒷배가 있는 이진우가 부러워졌다.

아무튼, 만약 패배할 가능성이 단 1%라도 존재한다면! 이대로 6월 10일까지 심신미약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사과’를 해주고, 협상을 시도해 대결을 취소시키는 쪽이 훨씬 속 편하지 않겠는가?

아니, 애초에 걔도 굳이 대결하고 싶어 할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도 목숨이 간당간당한 싸움인데?

그렇게 생각한 이리엔은 이진우를 충분히 회유할 수 있으리라 믿었었다.

“아, 걔들요? 어제 던전 갔는데요?”

“……뭐? 우리 부서에 서류를 안 올라왔는데? 지원 안 받고 갔다고?”

“네, 자기들끼리 잘 준비했더라고요. 원정 계획서에 적힌 물자만 보면 적급 원정대랑 거의 비슷한 수준이던데.”

“…….”

그러한 연유로 회유는 물건너갔다.

게다가 복귀 예정 일자가 6월 9일. 데스매치 전날이었다. 대결 전까지 협상은커녕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리엔은 어이가 없어 그저 눈만 끔벅였다.

“……이상하게 꼬이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잠자코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잔뜩 헝클어뜨렸다. 으으, 생각대로 풀리는 일이 없다.

“에휴, 더럽다 더러워.”

일개 직장인의 설움은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는구나.

이리엔은 갑자기 세상이 미워졌다.

어떤 미친놈은 돈도 많고, 백도 있고, 직업에, 능력도 좋은 편인데!

자신은 어째서 일에 갈리고 있는 것인가.

“뭐, 그놈도 부작용은 있어 보였지만.”

이리엔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 새끼한테 능력의 부작용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뭐, 이쯤 되면 그놈이 뒤지건 말건 별 상관없긴 하다.

“그래서 던전 이름이 「현자의 시련」?”

에, 이름이 뭐 이래.

이리엔은 눈살을 찌푸리며 던전의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나갔다.

그녀는 휴식 시간을 갖는 겸 그 미친놈이 던전을 공략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훑을 생각이었다.

원정 보고서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던전의 비이상적으로 높은 마력량, 인원이 들어갈 때마다 환경이 바뀌는 불확정성. 이따금 공략 조건에 붙어나오는 일정 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면 안 되는 제약.

──던전 등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난도가 높지만, ‘현자’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보상 덕택에 공략 시도 횟수가 다수.

──셀베르크 전투부 12회, 셀베르크 원정대 3회, 헤돈 길드 1회, 무신궁 1회.

──몰살(??)은 존재하지 않음.

“뭐야, 무신궁이랑 길드도 인원 처박고 갔었네? 근데 다 실패했어? 그보다 짱깨 애들은 뭐하러 왔대? 마법사도 아닌 것들이 떡하니 마법사 보상인 걸 뭐하러 가지려고.”

쯧, 욕심만 그득히 많아서는.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혀를 차고, 보고서의 세부사항을 마저 빠르게 훑어나갔다.

‘미궁인 경우가 제일 많았고, 힘과 지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느낌인가. 들고 간 아티팩트 목록을 보면 죽진 않겠네.’

그래, 돈지랄한 걸 보면 죽지는 않을 터다. 겨우 상인과 연금술사 단둘이서 어떻게 던전을 깰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스크롤만 써서 다 죽일 생각인가?

“……흥!”

이리엔은 콧방귀를 뀌고는 책상 한쪽에 보고서를 던져두었다. 다시 깃펜들을 조작하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멍청이. 최대한 시간 썩히다가 나와라. 협상 안 해도 돼. 이렇게 된 거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마법으로 짓밟아줄게.

“내가 이기면 다시 밑에서 서류 업무나 하라고 조건을 달아볼까?”

오, 나쁘지 않은데?

이리엔은 이날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서류 노예가 될 이진우를 어떻게 부려먹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걔한테 한 달 동안 인수인계하고서 나는 마음껏 정시퇴근해야지.’

아아, 그녀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시 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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