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존나 힘드네
* * *
누군가의 절망을 짓밟고서라도 태양은 언제나 떠오르기 마련이다.
동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 새벽.
황금처럼 밝고, 찬란한 휘광이 온 세상을 비추는 시각.
일찍이 일어난 성직자는 제단 앞에 무릎 꿇은 채 신께 기도했다.
그리고, 그를 찬양했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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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지 ─ 684 Gold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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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희를 보우하시나니…….
“감사합니다.”
현실의 강림이 머지않아서인지 그 은총이 하늘을 꿰뚫을 기세다.
이대로라면 당일에는 수익률 200%를 찍을지도…….
그래프에서 보이는 황금빛 전망에 무한 코인교의 교황, 마르스 가르커니카는 흐뭇한 미소를 그리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
이는 ‘모지’님께서 친히 내리신 교리이자 가르커니카의 평생 철학.
배교자들은 돈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서 개소리를 외쳤지만, 그분께서 내려오신다면 그들도 깨달으리라.
돈이, 황금이, 코인이 곧 진리라는 사실을!
“그를 알리기 위해서는 삿된 것들을 먼저 정화해야겠지.”
지하에 숨어있는 개미…, 아니, 바퀴벌레들이 득실득실했다.
감히 신성한 그래프를 넘보다가 저절로 고꾸라진 이들.
불신을 넘어 ‘황금’이 아닌 ‘마법’이라는 삿된 것을 믿기 시작한 이들이었다.
‘모지’님의 강림까지 12일, 분명 짧지만 고된 여정이 되리라.
황금빛 휘광에 발광하는 바퀴벌레들을 친히 구제해야만 할 테니.
게다가 몇십 년 만에 나타난 마녀의 후신까지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걱정 따윈 없었다.
“오늘부로 형제와 함께할 수 있으니.”
아아,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가르커니카는 팔십 년 평생 단신으로 코인 시장의 그래프를 바라보았다.
그 고행은 도저히 인간으로서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버텨냈다.
“돈이! 황금이! 코인이 복사가 되는데!”
과연 고행이 썼던 만큼 과실은 달았다.
“낮에도! 밤에도! 언제나 복사가 되는데!”
성직자는 매 시간마다 눈을 감고, 기도하면서 머릿속에 그래프를 떠올렸다.
그렇게 언제나 신실하고, 대주주였던 그가 이제 와서 비루한 개미와 마녀 따위를 두려워할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신께서 점지해주신 형제마저 곁에 있으니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짐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다.
“아아, 모든 건 하늘보다 높고! 황금보다 찬란한 ‘모지’님의 은혜 덕분──!!!”
가르커니카는 감사한 마음으로 제단에 넙죽 몸을 숙였다. 그렇게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래프에 고개 박고 있기를 두 시간…….
그렇게 그는 오늘도 마음의 양식을 만족스럽게 늘릴 수 있었다.
상향곡선이었다.
“자, 오늘도 가난을 교화해볼까──.”
가르커니카는 형형한 눈빛으로 어느새 밝아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확신했다. 아아, 저 하늘은,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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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지 ─ 696 Gold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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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들리라고.
* * *
심신이 통일되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더럽게 심란하건만 잠은 정말 잘 온다던가.
“……으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성기사를 따라 신전에 도착해 무슨 의식을 펼치고, 신혜영의 모습을 설명하고, 기다리는 동안 상점창을 뒤지고, 교황과 만나 대화를 하고, 뭔가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어쩌면.”
──지금 손으로 짚고 있는 침대는 샤오팡 패밀리 시절의 침대와 거의 맞먹는 사이즈, 촉감과 탄성일지도 모르겠다고.
적어도 여관방의 딱딱한 침대와는 격이 다른 침소였다.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아.”
왠지 ‘무한 코인교’라는 말도 안 되는 사이비 집단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다. 던전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형제여어어어어어어어!!!!!
설령 연배가 훨씬 위인 교황이 거의 발광하며 나를 형제라 부를지라도 밖에서 개고생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시야 한쪽의 카운트를 확인했다.
【 악명 34 (+2) 】
“……그사이에 더 올랐네.”
나는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잠만 잤으니 악명이 오를 소지가 없다.
그렇다면 신혜영이 어디선가 무언가를 저지른 것이겠지.
도대체 뭘 했길래 한도의 3분의 1이나 악명이 차오른 걸까.
“쩝, 연락이라도 좀 받지.”
나중에 만나면 잔소리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상점창을 열었다. 전부 훑으려면 눈알이 빠질 듯 수많은 물건이 목록을 이루었다.
……이거 카테고리나 검색 기능 좀 빨리 업데이트했으면 좋겠는데.
“이름을 정확히 모르면 검색이 안 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연관 검색어 없는 게 말이 돼?
나는 불퉁한 목소리로 뇌까리고는 목록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교황과 함께하기로 약속한 조찬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때까지 상황에 맞는 탐색 계열의 유물이나 아티팩트를 찾아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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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급 돌멩이】
【잿빛 마법사의 시험지】
【황금 주괴】
【전설의 얀데레를 봉인하는 개목걸이】
【세계수의 나뭇잎】
【불꽃 마녀의 건담 의수】
【최면 어플】
【좀비 천마의 혈액】
【드래곤의 비늘】
【겨울성의 유리구두】
【초강력 접착제】
【S++ 헌터유】
【이세계 천마의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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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만한 게 딱히 없네.”
상점창에 등록된 물건은 더럽게 많은데, 탐색 계열 아티팩트는 특히 적은 걸까.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만약 공략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물건을 살 생각도 있었는데 돌멩이나 트라우마가 솟는 개목걸이는 고사하고, 다른 물품들도 영 눈에 차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불꽃 마녀의 건담 의수】인가…….”
【불꽃 마녀의 건담 의수】
◆ 태양처럼 붉고, 매끄러운 광택의 메카 의수! 무척이나 단단합니다. 또, 로켓 발사와 화염 방사 기능이 있습니다.
◆ [ 741,638,510 Gold ] ─ 던전 패널티로 통상보다 100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합니다.
‘……저기서 100배면 74,163,050,000골드.’
[ 소지금 : 31, 560, 643, 938, 000 Gold ]
분명 소지금에 비하면, 적은 액수다.
하지만, 나중에 던전에서 나갔을 때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급하게 돈을 쓸 구석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대신 머릿속에 이름을 확실히 메모했다. 저거 반드시 구매하고 만다.
“……근데 진짜 더럽게 안 보이네.”
나는 곤란함에 혀를 찼다. 계열마다 대표적인 유물, 아티팩트 이름은 전부 외워둘걸. 뒤늦은 후회지만, 입맛이 썼다.
분명 덜렁거리긴 해도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위험하면 알아서 탈출할 것이다. 게다가 아티팩트도 덕지덕지 발라놓았으니 갑자기 죽어버리지도 않겠지.
……하지만, 솔직히 눈앞에 없으면 걱정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난 적당히 칠걸.”
재차 뒤늦은 후회였다.
나는 깊은 한숨을 뱉어내고 다시 열심히 상점창을 뒤적거렸다.
혜영이를 찾을 수 있는 탐색 계열 유물이나 아티팩트!
아니면 그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어디로든 문이라도.
그러나 역시 끝내 찾을 수 없었다.
【 악명 36 (+2) 】
교황과 약속한 조찬 시간에 이르렀을 때쯤, 그녀의 악명은 더 올라 있었다.
* * *
……레지스탕스의 은신처.
하수구의 어느 공동에 흑의를 걸친 마법사들이 집결했다.
그들은 언뜻 보면 닌자처럼 보였지만, 마력을 가슴 속에 품은, 분명한 마법사였다.
신전을 전복시키기 위해서만 전력을 다하는 그들이 공동에 갑작스럽게 모이는 이유는 현자의 샘을 탈취한 스파이에 이어 아지트에 쳐들어온 침입자 때문이었다.
흑의의 마법사들은 대형을 갖추고, 언제라도 마법을 발동할 수 있게 마력을 운용하면서 침입자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되는 맞은편 통로를 노려보았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마법에 능통한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아지트를 거침없이 깨부수고 있는 침입자가 괴물도, 성기사도 아닌, 바로 ‘마법사’라는 걸. 그것도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고위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침입자를 더욱 두려워했다. 자신들과의 격차를 명백히 알아차릴 수 있었기에.
“…….”
저벅저벅─.
마침내 발소리가 들려왔다.
공동의 마력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격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어둠에 가려져 있던 침입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녹색 로브를 눌러 쓴 160cm 정도 되는 금발의 여인.
마법사들은 그녀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연약한 소녀가 아니라 고위 마법진을 항시 발동하는 고위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웅성거렸다.
항시 발동! 안정적으로! 언제라도 발동할 수 있게 고위 마법진을 유지하고 있어!
게다가 다른 손으로는 더블 캐스팅까지 준비하고 있다니! 말도 안 돼!
오오! 세상에, 맙소사!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금발 적안의 마녀는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주위를 슬그머니 살폈다.
으음…….
득실거리는데?
시발, 저거 언제 다 정리해.
“존나 힘들겠네.”
신혜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미리 형성해놓았던 마법을 시전했다.
공동을 메운 마력의 색깔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의외로 곧 정리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