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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4화 (54/87)

〈 54화 〉 운명 탐색기

* * *

현자의 돌을 연성하기 위해 던전 『현자의 시련』에 들어온 지 어느덧 여드레. 신전에 지내게 된 지는 닷새가 지났다.

‘교황의 형제’라는 미묘한 위치에 선 나는 굉장히 호화로운 방을 받았다.

경이로울 정도로 푹신한 침대 덕에 평생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들고는 하지만, 결코 안주해서는 안 된다.

가출한 신혜영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눈을 감은 채, 내면을 관조했다.

────무(無).

현재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번뇌를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모든 걸 잊는다.

그리고, 나는 떠올린다.

칠흑의 심연 속.

새까만 악의의 탑에 갇힌, 수중의 돈을 쓰기는커녕 서류를 작성하기에 바빴던 과거를 되돌이켜본다.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철.

한쪽 시야에 들어오는 사탄보다 악랄한 붉은 머리의 상사.

‘반드시 죽인다.’

나는 안색을 굳힌 채 어째서 던전을 공략해야만 하는지 삶의 목표를 떠올렸다. 그래, 현자의 돌만 있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덕 상사에게 고통받던 나는 이윽고 책상 서럽 안에 갇혀 있던 계좌를 발견한다.

[ 소지금 : 40, 150, 782, 396, 000 Gold ]

그래, 내겐 돈이 있어.

──와장창!!

그렇게 금화를 퍼부어 벽을 깨부순다.

[ ‘금화신공(???)’이 3성(成)에 달했습니다. ]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불현듯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알림에 눈을 떴다.

2성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다음 고지가 아슬아슬했던 것일까. 미처 소화하지 못했던 마력을 갈무리하자 3성에 다다랐다.

“무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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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쁨의 환호성을 외치고는 천천히 마력을 운용했다. 그러자 몸뚱이가 한층 가벼워졌을 뿐만 아니라 한 번에 운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 전개 속도, 응집력까지 전부 한 단계씩 수준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쁘지 않아.”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자의 돌 연성과 이리엔 살해, 그 모든 것을 향한 발판이 차근차근 준비되어간다.

* * *

교황은 미친 놈이다.

이것이 임시로 생긴 내 형제에 대한 가벼운 감상평이었다.

“오오, 나의 형제여──!”

“그래. 마르스.”

“과연 오늘도 평안하신가!!!”

“으음, 그럭저럭…….”

“아아아아! 그럭저럭이라니! 내 부덕이 크구나! 여봐라! 사르한카가 좋아하는 황금 스테이크를 당장 내오도록 해라!”

“…….”

나는 멍하니 요리사를 채근하는 법복 차림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비록 내 생각 없이 뱉은 한마디에 호들갑을 떨고, 내게 ‘마르스’라고 가볍게 이름을 불리는 노인네.

하지만, 그는 명실상부한 이 도시의 절대권력자이며, 동시에 ‘무한 코인교’의 교황이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무려 신께서 점지해주신 형제 사이라고.

‘으음, 잘 모르겠다.’

그 덕분에 나는 신전에 머무는 요즘, 그에게서 부성애인지 형제애인지 뭔지 영문 모를 애정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에 굉장히 질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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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지 ─ 832 Gold (+148) 】

──────────────────

“마르스.”

“왜 부르나, 사르한카.”

“돈이 복사가 된다. 그냥 복사가 돼.”

“모든 건 주님의 은총이지.”

코인님을 믿으면 돈이 복사된다. 그러니까 그 코인님이 말씀하신 우리가 형제라는 말도 꽤 믿을 만한 소리가 아닐까.

그런 개똥 같은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일단 세례식에서 ‘모지’가 친히 내려준 ‘사르한카 가르커니카’라는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강제로 이름을 받는, 굴욕적인 처사!

그런 느낌보다는 ‘아, 이곳 이름을 받았구나. 친목질하기는 편하겠네.’라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해 신전 내에서 활동을 개시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고, 교황과 조찬과 석찬을 반드시 함께하고, ‘모지’를 기리는 예배에 되도록 참석하는 정도였다.

던전의 공략 조건이 ‘15일간의 생존’인 만큼 곧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분명했고, 우군을 늘릴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었으니 이 정도 노력은 충분히 할 만했다.

물론 교황이 내게 형제라면서 뭐든 퍼줄 듯한 모양새를 보여도 맹신하지는 않았다.

【 악명 48 (+12) 】

“……아직도 못 찾았네.”

나는 찌푸린 얼굴의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교황의 형제의 친구, 즉 귀빈을 찾는다면서 병력을 대거 동원했다는 데도 그러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신혜영이 신전으로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거나.

혹은 그녀를 찾을 의지가 전혀 없거나.

어쩌면 신혜영을 쫓아낸 존재가 아예 그들일지도 몰랐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지금 내가 괴물 아가리에 들어와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됐다. 언제나 내게 친절하게 웃는 노인이 언제라도 등에 칼을 꽂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했다.

항상 그것을 상기하며 지낸 닷새였다. 함께 경계할 친우가 없으니 홀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나날이었고.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 고독한 여정으로부터 벗어날 실마리를 찾아냈다.

【운명 탐색기】

◆ 대상이 지정하는 운명의 현실화 확률을 ‘3회’ 추산합니다.

◆ 대상의 행운 수치에 따라 운명의 현실화 확률을 ‘1회’ 증가시킵니다.

◆ [ 1,350,241,630 Gold ] ─ 던전 패널티로 통상보다 100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합니다.

“……더럽게 비싸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손에 쥔 보석들로 치장된 손거울을 내려다보았다. 이따금 화장실 거울을 바라본 경험은 있어도 불꽃 건담 의수보다 곱절로 비싼 손거울을 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시발 어째 밤낮으로 뒤져도 이것밖에 답이 안 보이는데 어쩌겠는가. 어쩌면 탐색 계열의 물품보다도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행운 : 77 ]

“……럭키 세븐. 너만 믿는다.”

상태창을 열어 행운 수치를 눈여겨본 나는 괜한 희망을 품으면서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운명을 지정했다.

“나와 신혜영은──”

* * *

[ 누군가 당신을 훔쳐봅니다. ]

신혜영은 돌연 안색을 굳혔다. 그녀는 은연중에 세워놓은 마력방벽을 통해 정체 모를 누군가가 자신을 훑어보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괘씸한 이의 마력을 역추적하려 시도했다. 이내 깨달았다.

──불가능하다.

‘격’이 달랐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감히 마주 볼 수 없는 마력의 향연.

마법사로 따지면, 최소 ‘흑’ 등위.

유물로 따지면, 최상급을 바라볼 만한 수준이었다.

‘……누구지? 교황? 그는 마법을 쓸 줄 모른다고 들었는데…….’

신혜영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워진 탓에 미간을 찌푸렸다. 문득 드는 조바심에 무심코 엄지손톱을 짓씹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 모습을 보고 묻는 간부의 물음에 그녀는 표정을 고치고는 손을 내저었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맞겠지.

“후우.”

신혜영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서 준비된 단상 위로 올라섰다. 또각또각, 공동에 가벼운 발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오롯이 선 그녀는 주위를 훑었다. 자신의 앞에 기립해 있는 흑의의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만 해도 마법과 수리검을 나눈 원수지간임에도 그들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적개심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총기와 경외심만이 엿보일 뿐이다.

그것은 단신으로 아지트에 쳐들어와,

무력(?力)으로.

아니,

마력(?力)으로 자신들을 정복하고, 현혹시킨 마녀를 향한 진심 어린 존경이었다.

그렇게 단숨에 레지스탕스의 세력을 홀라당 잡아먹은 신혜영은 담담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나도 몰라.’

예상외로 일이 너무 잘 풀렸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거나 협력을 받으려다가 아예 보스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옛날에 존재했던 대마녀(大??)의 후예이니 부디 두목이 되어달라나 뭐라나.

그야말로 일사천리(一???).

마치 엿 팔아먹듯이 순식간에, 제멋대로 보스로 추대받아버렸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신혜영은 어깨가 무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진해졌다.

그녀에게는 이진우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과 염원이 존재했으므로.

게다가 어찌 보면 레지스탕스와 자신의 목표는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할 일은 아주 간단했다.

그래서 신혜영은 싱긋 웃는 얼굴로 흑의의 마법사들에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망할 신전 새기들을 쳐부숩시다.”

그것은 순수한 미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선언.

마녀는 각오했다.

어떻게든 복수를 이뤄낼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누가 죽건 전혀 상관없으리라고. 그녀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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