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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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그를 위한 일기예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과 기회가 우후죽순 솟아날지, 또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만큼 불행이 몰아칠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삶은 더욱 극적이다.
금발 적안의 마녀는 붉은 가죽 커버의 낡은 고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미심쩍은 마음이 들어 이곳에 자신을 데리고 온 ‘레지스탕스’의 원로에게 물었다.
“……이게 뭐.”
“대마녀님의 것으로, 옛적에 ‘현자의 서’라고 불린 유물입니다.”
“…….”
그래, 그녀도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가죽조차 바래진 낡은 서책에 불과하지만, 실은 파멸적인 마력을 내재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이란 것을.
‘……아예 현자의 서일 줄은 몰랐지만.’
설마 공략 보상이 떡하니 등장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어쩌다가 혼자서 거의 다 깨부숴버린 하수구의 아지트에서. 신혜영은 괜히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혹시 명령을 들어야 주겠단 소리를 할 거라면──.”
“아뇨, 그냥 드리겠습니다.”
“……뭐?”
“아니지, 드리는 건 아니군요. 애초에 당신의 것이니까요.”
마녀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아지트를 죄다 부숴놓은 침입자한테 이런 보물을 거저 주겠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할 무렵, 원로는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신혜영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감격스럽단 말투로 외쳤다.
“그야 당신이야말로 위대하신 대마녀님의 진정한 후예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마력 운용! 가용 마법의 수! 전개 속도까지! 모두 퍼펙트! 저희 같은 반푼이에 비해 당신의 마력은 너무나도 찬란한 겝니다!”
“…….”
신혜영은 생각했다. 던전이 형성될 때 이진우의 사고가 많이 함유된 것인지 뭔가 원로의 말하는 투가 꽤 닮았다. 고인에 대한 비방일지도 모르나 솔직히 불쾌하다.
그래도 그녀는 흑의의 마법사들이 어째서 죄다 경외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얘네만의 환장하는 요소가 있나 보지. 진우 씨는 현자의 돌, 레지스탕스는 마녀 직업군이 쓰는 마법이라던가.’
신혜영은 대충 납득하며, 현자의 서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무슨 함정이 있을지라도 충분히 맞받아칠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마법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투욱──.
그녀의 백옥 같은 손가락과 붉은 서책이 살포시 맞닿는 순간. 신혜영의 머릿속에 셀 수 없이 많은 정보가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이 서책은 지금껏 자신이 마주한 물건 중에 제일가는 유물이며, 본인의 마법을 진일보시켜줄, 상상 이상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적어도 그녀가 ‘현자의 서’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중급 마법사의 등위에서 가볍게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것이었다.
또, 마녀는 확신했다.
──이번에는 이진우의 원수를 반드시 갚을 수 있으리라고.
“암살을 합시다.”
누군가가 거수하고서는 말했다. 개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흑의 차림의 마법사였다. 바로 오늘 레지스탕스의 두령에 오르게 된 신혜영은 그 평단원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두령으로서 바로 끼어드는 것도 뭐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아니, 그게 통하겠소?”
“그게 될 것 같으면 진작 양지에 마녀 교단을 세웠겠지.”
“우리가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뭔데!”
“당신 바보야?!”
이 세상에는 브레인 스토밍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것일까.
기껏 용기를 내 의견을 말했더니 사방에서 비난 폭격을 맞는다.
결국 의견을 낸 평단원은 손을 내리고는 금세 쭈그러들었다.
오, 저런.
마녀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괜히 의견을 물었다고 생각했다.
새로 취임한 보스로서 피드백을 받으려고 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이 사람들이 굉장히 화가 많은 편이라는 사실만큼은 잘 알게 되었다.
신혜영은 일단 공동의 냉소적인 분위기를 환기하려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흠흠, 첩자의 말에 따르면, 교황은 내일 오후 도시 외곽 시찰에 나선다고 한다. 겨우 근위병 대여섯만을 대동한 채.”
레지스탕스의 원로에 따르면, 침소에 숨어들거나 음식에 독을 타 교황을 암살하려는 시도는 옛적부터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면에서의 습격은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스 가르커니카라는 인물이 그들로서는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괴물’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의 나라면 할 만해.’
이건 자만일까.
신혜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스크롤의 힘을 빌려야 고급 마법을 겨우 쓸 수 있는 천둥벌거숭이가 유물의 전능감에 중독돼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당일 갑작스럽게 결정된 도시 외곽 시찰 일정은 신전의 자신들을 낚으려는 함정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수많은 신관과 기사, 병사를 거느리는 교황이 제 갑옷을 내던지고 무방비하게 거리를 거니는 경우는 매우 적다.
근처에 몰래 병력을 숨겨놓을지라도 평소보다는 수가 극히 적을 터.
──함정일지라도 전부 깨부순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남은 일주일간 교황을 죽일 수 있는 확률이 극히 줄어들었다.
진우 씨를 죽인 교황을 죽인다──.
어떻게든 해낸다.
신혜영은 자신의 사명을 떠올리고, 살벌한 눈빛과 목소리로 읊조렸다.
“내일 저희는 지상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신전을 깨부숩니다.
그녀가 레지스탕스의 두령으로 취임한 지 1시간 만의 일이었다.
* * *
[ ‘운명 탐색기’를 사용합니다. ]
[ 대상의 행운 수치가 매우 높습니다. ]
[ 대상이 지정한 운명의 현실화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
“……조금 안심이네.”
원래도 현실화 확률이 높았던 운명에 대폭 증가한다는 알림까지 떴으니 거의 확실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제야 나는 신혜영에 관한 걱정을 덜어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자, 그러면 다음 계획을 점검해볼까.”
띠릭─.
나는 곧바로 상점창과 연동된 기능, ‘코인 거래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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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지 ─ 848 Gold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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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또 올랐네.”
나는 ‘모지 코인’의 훌륭한 우상향 그래프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수익률만 보면, 돈 불리는 데에 좋은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이 코인의 보유 수량이 신전을 넘어서서 던전 전체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대변한다면?
“시발, 바로 풀매수 때려 박아야지.”
나는 물량이 풀리는 족족 ‘모지 코인’을 매수했고, 그 결과 며칠 만에 일대 부자이자 코인교의 교황인 마르스의 다음가는 보유 수량을 달성할 수 있었다.
오직 Money만큼은 세상의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마인드의 내게 이곳의 법칙은 호랑이에 날개를 다는 것과 동일했다.
“쩝, 코인 물량만 남으면, 곧바로 매수해서 마르스도 이기는 건데 아쉽네.”
물량이 생기는 족족 매수하는 건 마르스도 마찬가지라서 그의 코인 보유 수량을 도저히 넘을 수 없었다. 상당한 웃돈을 주고 매수하고 있는데도 그러했다.
그렇게 내가 짙은 아쉬움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마르스는 내게서 더 찬란한 황금의 기운이 느껴진다면서 야단법석을 피웠다.
나는 그 황금의 기운이 뭔지 모르겠는데,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친구다.
“사르한카. 혹시 코인을 취급하지 않는 자들을 보았는가.”
저녁 만찬을 함께하던 중, 마르스 가르커니카가 간만에 진중한 얼굴로 말하였다.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기억을 짜냈다.
“으음, 꽤 많았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무한 코인교’가 사이비 정도가 아닌, 국교의 위세를 자랑하는데도 코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코인은 복사가 돼. 이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모지’님의 은총이지. 그를 거부하고, 다른 노동을 하다니.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우둔함이다.”
“음, 그래서?”
“그래도 나는 자신의 힘으로만 발걸음을 내디디려는 서민들의 마음가짐을 높이 산다. 그들의 피땀눈물은 공경받아 마땅하다.”
“훌륭하네.”
“하지만, 이교도들은 다르다!”
빠드드득─. 마르스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더니 이윽고 이를 거칠게 갈았다. 슬슬 치아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나이일 텐데 괜찮은지 걱정됐다.
“한때 코인을 영접한 주제에 패가망신하는 우둔함이로고. 거기에 멍청한 자신이 아니라 감히 ‘모지’님을 탓하는 주제 모름이라니!”
──건방지도다아아아아아!!!
무한코인교의 교황 마르스 가르커니카는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며, 화를 삭이는가 싶더니 형형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어투로 말했다.
“내일 이교도 사냥을 나설 것이다. 사르한카, 그대도 당연히 함께하는 것이겠지?”
“…….”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잠깐 고민했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본 마르스는 나이답지 않게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모든 걸 끝낼 전쟁이 다가온다.
……무려 탈주 닌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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