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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6화 (56/87)

〈 56화 〉 서약

* * *

“자네는 신을 믿는가?”

눈을 감고 기도하던 마르스 가르커니카가 돌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정기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제 막 본당에 들어선 나로서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

눈을 끔뻑였다.

동시에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며 저 물음의 저의 과연 무엇일까 해석했다.

‘신’을 믿는가.

이 신전이 던전 안의 세상이고, ‘무한 코인교’의 본단인 것을 떠올리면,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테다.

혹시 숨겨진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신인 ‘모지 코인’님을 믿느냐 묻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뭐, 호감이냐 비호감이냐를 따지자면, 호감 쪽에 가깝겠지만, 신앙의 대상으로 믿느냐고 한다 치면──.

‘아니, 믿겠냐?’

솔직히 코인 덕분에 돈도 많이 벌고, 즐거운 오락거리로도 생각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한낱 코인 종목을 신봉할 정도로 코인에 중독되지는 않았다.

분명 현실에서나 던전에서나 매일 수십 번씩 코인 거래소에 접속하지만! 코인 그래프를 들여다보지만! 결코 코인 중독은 아니다!

‘……어라?’

어쩌면 중독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만약의 가능성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결국 진실한 대답을 찾아내 고했다.

“역시 좋아는 하지만, 믿진 않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속으로 마력을 끌어올릴 준비를 마쳤다.

──여봐라아아아!!! 병사아아아아아아!!! 여기 불신자가 있다아아아아아아!!!

라면서 교황이 근위병들을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그대로 배드 엔딩 루트를 향해 달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진정한 탈주 닌자의 복수극을 찍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 양심은 중요하니까.’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아…….

나는 한편으로 뿌듯함을,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감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르스는 굳은 얼굴과 입가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허허, 그런가? 뭐, 그걸로 됐네.”

그러나 그는 내 걱정과는 달리 너털웃음을 치고는 여태처럼 코인 그래프만 가만히 들여다볼 뿐이었다.

나는 그 반응에 아리송해져서 그 뒷모습만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이상하시구만.

방에서 나와 예배당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지 코인 그래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러나 교황은 전혀 기뻐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다.

평소였다면, 조금만 위로 꿈틀대도 이 아름다운 우상향 그래프를 보라며 아주 지랄발광을 했을 텐데.

어쩐지 오늘따라 세상의 제일가는 부자이자 권력자인 교황을 뒷모습이 고독하고 처량해 보이기만 했다.

“곧 신께서 내려오신다네.”

한동안 침묵하던 마르스는 대뜸 말을 뱉었다. 딱히 대답을 원하고 던진 말은 아닌 듯했기에 나는 계속 입을 다문 채 기다렸다.

교황은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다.

전체적으로 어두워보이는 얼굴의 인상과 거칠한 피부와 달리 교황의 눈빛과 입꼬리는 아이의 것과 닮아 있었다.

노인은 말했다.

곧 신께서 강림하시면 찬란한 황금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온 세상의 사람들이 부유해질 것이라고.

제대로 된 삶을 누리고,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불신자와 이교도가 없는 세상이 오리라고.

기아도, 가뭄도, 전쟁도, 모든 불행한 것이 사리지게 되리라고.

오직 행복만이 가득 찬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그런 세상의 모습을 보면, 분명 자네도 ‘모지’님을 믿게 되겠지.”

교황은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이상향을 풀어놓았다. 어쩐지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반드시 이뤄 보이겠다는 기개가 엿보이는 듯했다.

‘……그날, 나 집 돌아가야 하는데.’

나한테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 * *

안개비가 추적추적 쏟아져 내렸다. 태양은 황급히 먹구름 뒤로 몸을 숨겼다. 새파랗던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어졌다.

태풍이 몰려올 징조였다.

항구도시 ‘모지’의 시민들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았다.

그 덕분에 부두 근처는 진작부터 아예 셔터를 내린 상태였고, 웬만하면 거리에 행인과 상인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다같이 집에서 쉬는 날이라 정한 듯 자취를 감추었다.

상식적으로 도시를 시찰하기에는 전혀 좋지 못한 날씨였다.

그러나 교황은 일정을 강행했다. 그가 시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발 빠르게 하수구 지하까지 도달했다.

“……뻔하네.”

신혜영은 가늘게 눈을 뜬 채로 중얼거렸다. 예측한 것일까. 신전 측에서 역으로 함정을 파놓은 게 분명했다.

혹은 그저 자신감의 발로에 불과하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쪽에서 덮쳐올지도 모르지.’

마녀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아지트의 경계를 확실히 정비했다.

보루가 허술하게나마 존재하는 것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향후 전략에 큰 차이를 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대기 인력에게 당부한 신혜영은 이번에는 일전 습격의 기억을 토대로 선별한 마법사들 앞에 자리했다.

그녀는 엄숙한 표정으로 대열을 맞추고 서 있는 그들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법 결연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마녀는 맨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끌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상에 올라섰다.

“…….”

신혜영은 온통 먹구름으로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뒷골목이라 그런지 그 공기가 더욱 축축했고, 물웅덩이가 길바닥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우비나 우산이 없더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을 것이 분명했다.

마녀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허공에 술식을 그려냈다.

순식간에 그려진 붉은 오망성은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을 모두 끌어안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이나 바닥의 물웅덩이는 더는 그들을 적시지 못하게 되었다.

마녀는 눈을 좁히며, 시간을 가늠하고는 녹색 로브를 움켜쥐었다.

눈을 감았다.

어느 바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했고, 점점 알아갈수록 미친 모습을 보여줬던 사람.

‘확실히 스피리타스를 먹인 건 미안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때문에 잡혀간 줄 알았었다.

‘멍청이.’

기껏해야 중급 연금술사인 사람한테 세상에, 최종테크와 맞먹는 현자의 돌을 만들라는 건 사람 새기인가?

‘혹시 인성 문제 있어?’

던전에 들어와서 사이비 짓을 시킨 건 정말 선 넘은 짓이었다.

“……제대로 화를 냈어야 했는데.”

정말 슬프게도 먼저 돌아가신 덕분에 어떤 말도 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뭐, 나중에 하늘나라에서라도 보면 그때 갈구면 되겠지.

자신이건, 그를 죽인 교황이건, 둘 중 누군가는 갈 테니 심심하진 않을 터다.

신혜영은 은은한 미소를 잠시간 띄우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요 며칠간 계속 해왔던 다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죽이자.

이진우의 가슴에 비정하게 구멍을 낸 노친네의 멱을 따버리자.

아예 산 채로 온몸을 불사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아니면, 항구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장(??)을 해버릴까?

마녀는 머릿속에 원수를 떠올리며, 심장을 살의(??)로 가득 채웠다.

이 분노는 그녀의 숨이 바스러질지라도, 마력이 메마를지라도, 몸이 멈출지라도 어떻게든 움직이게 해줄 원동력이 될 터였다.

신혜영은 어느 날 같잖은 이유로 해맑게 웃던 이진우를 떠올린 채, 섬뜩한 표정과 메마른 목소리로 맹세의 말을 읊조렸다.

“목숨을 걸고서 반드시 죽이겠습니다.”

그렇게 마녀는 서약했다.

* * *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마차는 악천후를 뚫고서 거리를 내달렸다.

어두운 하늘과 황량한 거리의 풍경은 화려한 마차와 어우러지지 못했으나 바퀴는 그를 무시한 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도시 외곽을 빙빙 돌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주르륵─주르륵─. 교황 마르스 가르커니카는 넋을 놓은 채 투명한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어째서인가 누군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허허, 나도 늙은 건가. 벌써부터 이렇게 집중력이 떨어져서야.”

교황은 잡념을 떨쳐내려는 듯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그래, 신의 강림은 머지않았고, 그래프는 오늘도 우샹향에, 마침내 지하에 득실거리던 해충들을 박멸하는 날이다.

계획은 완벽하다.

잔챙이는 신뢰하는 형제에게 맡겨놓았고, 제 주제를 모르는 해충은 손수 하나씩 박멸해나가면 된다. 벌레는 주제를 모르고 오늘도 역시나 제게 달려들 테니.

수십 년간 해왔던, 어느덧 무뎌진 일을 오늘 한 번 더 할 뿐이었다.

교황은 불현듯 눈을 번쩍 뜨고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불의 파도가 마차를 덮쳤다.

옆에서 그를 호위하던 말과 병사는 한순간에 파도에 덮쳐져 그대로 녹아버린다.

화염의 파도는 관성에 의해 건물에 부딪히고는 거리에 넘실거린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지만, 절대 바스러지지 않고, 거리를 불태웠다.

높은 건물 위의 마녀는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그리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불의 수면 아래에서 광휘가 솟아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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