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미소
* * *
“해치웠나?”
그리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불의 수면 아래에서 광휘가 솟아올랐다.
찬란한 황금의 광휘가 홍염의 파도를 꿰뚫어 그대로 갈라냈다.
순식간에 거리를 가득 채운 화마가 공기 중에 바스러져 흩어진다.
그래도 열기는 남아 바닥 근처에 다다른 안개비를 증발시켰다.
그렇게 거리에는 불꽃 대신 수증기의 안개가 피어올랐다.
교황은 그 가운데 오롯이 서서 그을음 하나 없는 태연한 모습과 표정으로 지붕 위의 마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우중충한 로브로 가렸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찬란한 황금의 머리칼과 새하얀 얼굴에 최상급 루비를 박은 듯한 적안의 마녀.
마녀 또한 별 감흥이 없어 보이는 얼굴로 거리의 교황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은은히 불타오르는 눈동자는 그녀의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담아내고 있었다.
서로의 증오를 마주한 그들은 마찬가지로 동시에 깨달았다. 각자의 소망을. 놀랍게도 그 또한 일치했다.
──저 녀석을 죽인다.
그들 사이에 온건한 대화는 불가능했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마녀가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그녀는 양옆으로 손을 벌린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오른손에는 화(火) 속성의 마력을, 왼손에는 뇌(雪) 속성의 마력을 구현한 그녀는 각각 그에 걸맞은 술식을 그리고, 주문을 읊었다.
동시 영창(Double Casting).
비록 마법의 수준이 중급이라고는 하나 두 마법을 동시에, 그것도 순식간에 구현해내는 것은 본디 그녀의 실력으로 불가능한 이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품속에 자리한 ‘현자의 서’가 그를 가능케 했다.
‘……침착하게, 냉정하게. 나만 잘하면 죽일 수 있어.’
신혜영은 원수를 마주한 채 이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란 것을 체감했다.
머리가 자꾸만 분노로 끓어올라 미리 세워놓은 계획을 흔들려 한다.
그녀는 치아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부여잡았다.
곧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픈 마음을 억눌렀다.
그 대신으로 마침 두 손에 구현해낸 마법을 지상에 잇달아 던졌다.
작은 태양이 빠르게 허공을 날아갔다.
벼락이 지붕에서 벽을 타고, 물기가 남은 돌바닥을 따라 원수에게 향했다.
교황은 마녀가 쏘아낸 두 마법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성창(??) 이터리움에 성력을 부여했다.
[ ‘모지 코인’ 십만 냥이 소모됩니다. ]
교황의 머릿속에 신성한 음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성창이 찬란한 휘광을 머금었다.
그와 동시에 교황은 자신의 머리로 곧장 날아오는 화염구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그 늙은 육신과 어울리지 않는 재빠르고, 힘찬 일격은 공간을 격해 멀리서 날아오던 화염구를 단숨에 베어냈다.
직후, 교황은 지척에 달한 뇌전을 곁눈질했다.
그는 창을 크게 휘두른 상태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한 바퀴를 더 휘둘러 수직으로 대지에 창을 꽂았다.
온몸에 충만하게 차 있는 성력을 그 홈에 퍼부었다.
[ ‘모지 코인’ 십만 냥이 소모됩니다. ]
그러자 주변의 대지가 신성한 휘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달한 뇌전이 몸으로 휘광을 받아댔지만, 신의 재화를 제물로 삼아 만들어진 성역을 감히 침범하지는 못했다.
[ ‘모지 코인’ 오만 냥이 소모됩니다. ]
[ ‘모지 코인’ 삼만 냥이 소모됩니다. ]
[ ‘모지 코인’ 이만 냥이 소모됩니다. ]
[ ‘모지 코인’ 오만 냥이 소모됩니다. ]
교황은 마녀가 계속 해서 마법을 던져대는 꼴을 지켜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주문을 형성해내는 모습은 옛날의 대마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위협을 느끼지는 못했다.
지속적으로 성력만 지불해주면, 성역은 그 어떤 공격도 쉽게 막아주었고, 교황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그 재화를 성력으로 바꿀 수 있는 이였다.
그 말인즉슨, 이 소모전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지녔다는 소리였다.
소란을 알아챈 근위병들이 찾아올 때까지 성역에서 버틴다면,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고 사냥을 마칠 수 있으리라.
‘……그래서는 몸소 미끼를 자처한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
교황에겐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상대가 모습만 드러낸다면, 혼자서 몰살시킬 수 있다는, 자신의 강함에 대한 절대적인 자부심이 존재했다.
그는 가늘게 눈을 뜬 채로 여전히 지붕 위에 서 있는 마녀를 노려보았다.
‘분명 주술쟁이들은 발이 느렸었지…….’
그의 머릿속에 재롱을 봐줄 필요가 있겠느냐는 물음이 떠올랐다. 과연, 그럴 필요는 굳이 존재하지 않았다.
교황 마르스는 입꼬리를 음흉하게 올리고서 중얼거렸다.
“좋아, 단숨에 목을 비틀어주마.”
그리 마음먹은 교황은 성역을 해제했다. 날아오는 마법을 창으로 가볍게 가르고,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성력을 짜내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제게 은총을.
[ ‘모지 코인’ 백만 냥이 소모됩니다. ]
교황의 왼발이 뒤로 당겨졌다. 노구의 몸이 낮추어졌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 신체에 휘광과 함께 가히 신력(?力)이 깃들었다. 그는 곧 바닥을 박찼다.
“……!”
마녀는 교황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그가 일순에 공간을 뛰어넘었음을, 바로 앞에 자리해있음을 알아차렸다.
한순간이지만, 교황의 움직임이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물론 지금이라도 그를 발견한 것은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도저히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상상 이상으로 교황의 움직임이 향상된 것도 분명 좋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머리를 뚫다 못해 흔적도 없이 깨부술 게 뻔한 광휘의 창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위협적이었다.
신혜영은 문득 명백한 위기인 와중에 데자뷰를 느꼈다.
던전에 들어온 지 두 번째 되던 날, 이진우가 죽은 날.
‘그때는 도망쳤었지.’
왜 전이석으로 도망쳤었더라.
이진우의 시체를 보전하기 위해서?
아니면, 내 목숨을?
교황과 겨루기엔 실력이 좋지 못해서?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가.
본인 외에 지켜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매한 각오과 두려움 또한 없다.
비루한 실력을 끌어올려줄 마도가 있다. 작전에 이용 가능한 부품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법사의 전력과 수단을 곱절, 그 이상으로 늘려주는, 무언가를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준비는 만전이었다.
그래서 신혜영은 어떤 마법도 사용하지 않은 채 그저 입꼬리를 올렸다.
그보다 앞서 웃고 있던 교황은 그를 본 찰나에 이변을 깨달았다.
딸칵──! 그와 동시에 은밀히 감춰져 있던 함정 술식이 발동된다.
주변 모든 건물의 지붕과 벽, 건물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며칠간 마녀가 거듭해서 중첩해둔 상급 마법, ‘폭렬(??)’의 전조였다.
그러나 교황은 그를 알아차렸음에도 발을 빼지 않았다.
어떤 피해도 입지 않기엔 늦었을뿐더러 약간의 시간만 더 투자하면, 마녀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었다.
교황은 저번처럼 마녀가 도망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살을 주고 목숨을 취한다──!
교황은 비열한 웃음을 지은 채 창을 마저 휘두르다가 머지않아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로브 아래 마녀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 대리석처럼 마찬가지로 타오르고 있었다. 또, 찰나의 순간이기에 무척이나 느렸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교황은 마법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생각보다 이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다.
“──너어어어!”
신혜영은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는 노인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정신이 날아갈 듯한 작열통이 온몸을 갉아먹었지만, 드디어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듯이 쾌청했다.
그래서 그녀는 밝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교황이 지금껏 살면서 마주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다.
──디코이.
광휘를 머금은 날카로운 창이 곧 작달막한 머리에 닿았다.
아무런 저항없이 깨부숴졌다.
허연 뇌수와 뼛조각이 비산해 허공에 흩날린다.
머리를 잃은 시체가 느린 속도로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 가녀린 주검은 주변의 무엇보다도 붉게 타올랐다.
마녀의 머리를 깨부순 교황은 창을 거둘 새도 없이 성력을 연달아 끌어올리며 찬란한 휘광을 감싸 안았다.
그는 폭발의 직격타를 어떻게든 피하려 최대한 높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동시에 시체가, 주변의 건물이 붉게,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콰앙.
화마(火?)가 하늘에 닿았다.
* * *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세상이 무자비하게 흔들렸다.
“──시발?!”
나름 균형감각과 하체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건만, 하수구의 벽면을 짚고서야 겨우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병졸들은 그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해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분명 그들은 1대500을 찜쪄먹을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 하수구에 울려 퍼지는 진동은 그를 가볍게 묵살할 만큼 거셌다.
‘설마 하수구 진짜로 무너지냐?!’
그 영감탱이……. 며칠간 관찰하면서 진심으로 나를 형제로 생각하는구나 싶었는데 이런 함정을 준비했을 줄이야.
미련한 형제바라기 영감탱이가 아니라 교활한 독사였던 건가?
나는 괜한 배신감에 얼굴을 찌푸리고, 칼을 빼 들었다.
하수구 바닥에 엎어진 근위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곧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못된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 * *